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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에이션트 드래곤.
토벌대원으로서 참가하는 것은 귀족의 작위를 가지고서도 불가능했다. 토벌대의 행정을 보는 드라닉 관리관의 입장에선 모집기간이 끝난 토벌대에 참가하고 싶다는 타국의 귀족이 토벌 바로 전날에 고집을 부린 것이다. 설령 왕이 와도 참가는 불가능하다고 관리관은 딱 잘라 말한 것이다.
애쉬는 관리관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토벌대원으로서 참가하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러나 상인으로서 토벌대를 뒤따라가는 것은 지금이라도 가능하다. 신청이고 뭐고 멋대로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은 스스로가 감당해야하지만, 대마수를 토벌한 테드와 사이나에게 드래곤 마운틴의 몬스터 따위가 위험이 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이 되는 것은 사탄교다. 애쉬는 개인적으로 정보를 찾아 움직였으나 드라닉에 숨어 있는 사탄교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 소집 장소가 드라닉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추가로 사탄교에 대한 정보를 드래프리온의 용왕에게 넘긴다. 용왕의 협력을 바라는 것은 없지 않아 있었다. 그가 드래프니온의 유명한 정예 무력집단인 용기사단(Dragon Knights)을 파견해주면 그 만큼 기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탄교가 드라닉에 있다는 정보를 넘긴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토벌대 탓에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애쉬는 그 토벌대가 사탄교의 목적일지도 모른다고 어필했다. 허나 돌아온 것은 자부심에 가득 찬 말이었다. 드라닉의 토벌대는 결단코 사탄교 따위에 패배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말. 애쉬는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이라고 느껴졌다.
사탄교에 대한 위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대륙과 떨어져 있는 섬이라고 해도 이상할 정도였다. 자만인가, 오만인가. 교만인가. 혹은 전부인가. 애쉬는 그들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고 협력을 구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 이유로 상인으로서 토벌대의 뒤를 따라가게 됐습니다! 상점의 이름은 오딘의 마법 상점입니다!”
“……마법 상점?”
“무기 상인이나 잡화 상인을 칭하려면 그에 맞는 상품이 있어야하는데 저희들에겐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상인 행세를 하면서 상품을 팔지 않으면 곧바로 의심을 살테고요. 그래서 테드님의 전문분야인 마법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마법 도구는 기본적으로 가격이 높아서 토벌대원들이 잘 찾지 않는다는 것까지 상정내였다. 운이 안 좋으면 토벌기간내에 단 하나의 마법 도구도 팔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상인들의 정보까지 입수했다.
“뭐, 상인이 훨씬 낫겠죠. 토벌대는 토벌대장의 통제를 받아야 하니까요. 스크롤 같은걸 팔아야 하나.”
일반인들은 생활과 관련되어 있는 마도구를 원하고 구입한다. 지금에 와서는 집집마다 냉장고 하나 정도는 있을 정도다. 반면에 모험가나 용병처럼 전투가 일상인 자들은 전투계열의 마도구나 일회에 한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스크롤을 주로 구입한다.
“준비된 스크롤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스크롤은 편리하긴 한데 위력이 어느 정도 떨어져서 사용하지 않아요.”
스크롤은 단지 찢는 것으로 발동되어 누구나가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마법사가 발하는 마법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며, 발동까지 10~20초가량 소모된다.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 젖을 경우 발동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럼 스크롤은 팔지 못하겠군요. 이번엔 돈이 목적이 아니라 토벌대를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니 상관없으시겠지만.”
“스크롤이야 재료가 있으니 만드는 것에 문제는 없어요. 이번 기회에 적당히 돈을 벌면 좋겠죠.”
스크롤의 재료는 의외로 별거 없다. 주재료가 되는 것은 양피지와 상등급의 마석이다. 달리 마나석이라고도 불리는 마석은 모험가 길드에서 구하면 된다. 양피지는 구하기가 더 쉽다. 잡화상점에 들어가서 양피지를 달라고 하면 된다.
상등급의 마석은 테드의 아공간에 넘쳐나니 양피지만 구하면 된다.
“그래도 보통 마법사들이 스크롤을 만드는데 몇 시간은 걸린다고 들었습니다만…. 거기다 간간이 실패까지 한다고….”
“스크롤 제작은 보기보다 상당히 정교한 작업이니까요. 양피지에 새기는 마법진이 조금만 틀어져도 실패하죠. 다만 저는 좀 달라요. 저급의 마법이면 3분이면 가능해요.”
고위급 마법도 스크롤에 새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마석이다. 마석을 정제할 필요가 있는데 현재 테드에겐 딥크스의 고대 유적에서 얻은 마나 액체가 있다. 마나 액체를 사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거 참. 다행이군요. 그럼 전 준비를 해야 할게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호텔의 앞에서 애쉬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토벌대가 밖으로 나가 있는 사탄교가 드라닉에 모종의 수단을 실행한다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기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애쉬가 움직인 것이다.
테드는 도시의 중심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심부에 있는 중심대광장에는 굉장히 많은 인파가 모여 있다. 이번에 나가는 토벌대가 드라닉 중심대광장에 모여서 토벌대장의 연설을 듣기 때문이다. 일종의 의식 혹은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이번에는 토벌대원의 숫자만 3,000명이 넘기 때문에 구경하러 온 자들까지 합하면 중심대광장은 현재 미어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숫자일 것이다.
“크리크라고 했던가. 이번 토벌대장의 이름이.”
중심대광장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함성 소리를 들으며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드라닉의 토벌대장은 대대로 용왕이 임명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이 왕가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드라닉의 토벌대를 데뷔무대 삼는다.
“듣기로는 나처럼 흑발흑안의 미남자라고 하던데… 용왕에게 사탄교에 대한 것을 들었을 테고 토벌대장이 될 정도면 어느 정도 능력은 있겠지.”
만약 사탄교가 토벌대와 마주쳤을 경우 테드는 토벌대가 빠르게 후퇴하기를 원했다. 그들까지 지키면서 사탄교를 상대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드래프리온에서 뭘 하려는 거냐, 사탄교.”
⁂ ⁂ ⁂
토벌대를 뒤따라가는 상인들은 토벌대와 일정 간격을 두고 움직였다. 간격이라고 해봤자 고작해야 50~100M 정도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 이상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토벌대의 방해가 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테드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방해가 되고 있었지만.
토벌대의 일정은 드래곤 마운틴의 겉부분을 돌아가면서 안쪽의 일부를 처리하는 것이다. 위험한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길을 찾는 것은 쉽다. 역대 토벌대가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비포장도로를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드래곤 마운틴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주일 후 부터다.
토벌대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며 발을 맞춰 걸어가고 있었다. 거슬리는 발소리에 놀란 몬스터들이 뛰쳐나와도 신출내기 전사들은 냉정하게 칼과 창을 들고 대처했다. 드래곤 마운틴 초입에 나오는 고블린들은 하염없이 죽어나갔다.
뒤따르는 상인들은 안전했다. 가끔가다 뭣 모르는 고블린들이 상인들을 덮쳐도 고용한 호위들이 빠르게 처리했다.
“그쪽이 펠리스 왕국의 귀족이오?”
할 일도 없어 멍하니 걷고 있는 테드를 향해 말을 걸어온 것은 손들에 비늘이 있는 용인족 사내였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상인의 복장이 아닌 형형색색의 고급스러운 천으로 만든 타이트한 옷을 입었다. 전형적인 귀족의 복장을 하고 있는 남자는 입가에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펠릭스 왕국 출신의 브리뉴 자작입니다.”
여객선 사건으로 트링거라는 신분은 버리고 새로이 애쉬가 구해준 귀족 신분을 입에 담았다.
“브리뉴 자작? 듣어 보지 못했군. 나는 드래프리온의 자작인 데이록 신크룬이네. 신크룬 상단의 주인이고, 여기서는 토벌대원들을 위한 약을 팔고 있지.”
자랑스럽게 말해도 테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저는 마도구를 팔고 있습니다. 오딘의 마법 상점의 주인이죠. 뭐 필요한 마도구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나와 같은 귀족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호기심에 한 번 찾아온 것 뿐이라네. 그런데 자네는 호위가 없군?”
데이록의 주위에는 강철제 갑옷과 무기로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모험가가 아닌 병사라는 것은 그들의 무장이 전부 통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깨 부분에는 파란색 잎사귀 문장이 그려져 있다.
“저는 마도구 상인인 동시에 마법사입니다. 제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죠. 거기다 아내도 제법 뛰어난 마법사죠.”
아내라는 말에 데이록의 시선이 테드의 옆으로 향했다. 칙칙해 보이는 검은색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로브틈으로 흘려나온 갈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를 했다.
“음. 부부와 함께 여기로 온 건가. 자네들은 금술이 좋군. 내 아내는 지금쯤… 어휴. 말을 말지.”
귀부인들을 불러서 한껏 사치를 부리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쉬이 상상되어 데이록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마도구를 팔 생각을 하고 참 특이하군. 경쟁자들이 거의 없어도 토벌대원들은 마도구를 살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떤가? 이곳에서 얻을건 별로 없을 것이네.”
“그것도 그렇지만 마법사로서 몬스터의 부산물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진짜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과연. 판매가 아니라 구입이 목적이었던가.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 그래도 상인이니 판매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내가 어느 정도 소문을 내주겠네.”
그럴 필요 없다고 냉정하게 쳐내기에는 상대가 너무 거물이었다. 테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뭘 원하시는 겁니까?”
“이야기가 빨라서 좋구만. 뭐, 너무 걱정 말게. 별거 아니니까. 그저 이쪽에 작은 실수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자네 혹시 포션을 가지고 있나?”
테드는 상대가 이미 준비를 하고 찾아 온 것임을 알았다. 마도구 상인은 마도구만 파는게 아니다.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재료와 포션도 마도구가 취급하는 품목 중 하나이다.
“많은 물량은 아닙니다만,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크룬 자작님께선 포션도 취급하십니까?”
“주로 취급하는 것은 약초와 약이지만 포션도 취급하네. 토벌 대원들 중에서 전사들의 자제들이 주로 포션을 구입하지. 그런데 이쪽의 실수로 포션의 개수가 맞지 않아서 말이네. 그래서 자네의 포션을 구입하고 싶네.”
“……좋습니다만 상당히 비쌀 겁니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그건 어쩔 수 없지. 정가보다는 비싸게 쳐주겠네. 그러니 어서 물건을 꺼내보게.”
데이록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런 곳에서는 도시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도 가격이 껑충 상승한다. 심할 경우 3배 이상으로 차이난다. 특히나 포션은 여분의 목숨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니 만큼 더욱더.
테드는 아공간에서 상자채로 꺼내들었다. 사람의 머리가 딱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나무 상자는 적색의 뱀같은 특이한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자네 엄청나게 뛰어난 마법사였군. ……아니! 이것은!”
아공간에 감턴하던 데이록의 두 눈이 번쩍 떠진다. 그의 시선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10개의 붉은색 포션이 아니라, 상자 쪽으로 시선이 가있었다.
“보존의 상자! 어떤 물건이라도 넣어 두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상자가 아닌가!”
“아…. 뭐, 그렇습니다.”
테드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상자와 포션은 대미궁섬 바빌로니아의 심층에서 모험을 하며 주운 것들이다. 마석이라도 잔뜩 들어 있는 줄 알고 기대하며 상자를 깠는데 막상 보니 상급 포션 10개만 들어 있었기에 실망하고 아공간에 쳐박아 둔 것이었다.
설마 상자 쪽이 특별한 물건인줄은 전혀 몰랐다.
“800골드! 이 상자와 함께 800골드에 사겠네!”
약제를 관리하다보면 조금만 실수해도 금방 상해버리거나 변질되어 버리는 약초와 약품들이 있다. 이 상자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손쉽게 약품을 관리할 수 있었다.
“네, 뭐. 그 정….”
그 정도로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테드의 왼팔을 사이나가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치의 양보도 허락하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가 흥분한 데이록의 귀에 박혔다.
“1,000골드. 그 이하는 안 됩니다.”
“……부인의 남편에게는 아공간이 있네! 자네들에겐 이 상자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뜻이지. 800골드도 상당히 비싸게 쳐주는 것이네!”
“싫으면 마시지요. 경매장에 올려도 1,000 골드 이상의 수익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크룬 자작님은 어디까지나 포션을 사러오신 것이 아닙니까?”
“끄응….”
데이록이 옅게 신음을 흘렀다. 보존의 상자는 경매장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 물건이다. 경매장을 이용한다면 확실히 1,000골드는 가볍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다.
데이록의 머릿속에는 이득과 손실이 휘몰아치며 정리되어가기 시작했다. 쉽게 상하는 약초와 약제는 상당히 비싸며 약간의 온도나 습도만 바뀌어도 변질되기 때문에 관리비도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다. 그러나 보존의 상자만 있다면 관리에 신경쓸 필요는 없어진다. 포션에 비해 약은 부피가 작으니 상당히 많은 양을 넣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손해다. 그러나 10년, 20년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구입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무감정한, 어떻게 보면 기계같은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데이록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감사함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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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테드는 아공간 주머니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습니다.
손쉽게 돈을 벌다보니 금전감각도 개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