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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84화 (18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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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에이션트 드래곤.

25. 에이션트 드래곤.

드래곤 마운틴이라는 거대한 산맥의 입구라 할 수 있는 드라닉은 요새도시로 유명하다.

처음 드라닉은 드래곤 마운틴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지어진 요새였다. 그러다 차츰 용인족들이 드래곤 마운틴으로 모여들었다. 용인족 새내기 전사들이 경험과 함께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또한 몬스터가 있는 곳에 모험가가 빠질 수 없었고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경제가 활성화되고 자연스럽게 도시로 커져나갔다.

드라닉은 해마다 정기적으로 토벌대를 구성해 드래곤 마운틴의 몬스터를 사냥한다. 매해 하는 이 토벌대는 어느새 신참 용인족 전사들의 입문식이 되어있었다. 용인족 사이에서 토벌대의 경험이 없는 용인족 전사는 멸시받기 일쑤다.

그리고 토벌대는 의외로 위험하지 않다. 국가에서 물자를 지원해주며, 한 번에 삼 천 명이 넘는 대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거대 몬스터는 드래곤 마운틴의 아주 깊숙한 곳에 마련한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토벌의 이유로 드래프리온의 전폭적인 지원은 못 받게 됐어요.”

드라닉으로 향하는 마차안에서 애쉬는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테드 일행은 워프 게이트가 아닌 마차를 이용한 이동수단으로 드라닉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사탄교가 드라닉으로 집결했기에 워프게이트를 이용하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환상마법이 아니라 변장으로 모습을 감췄다.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얼굴의 생김새를 화장으로 감췄다.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지 않으면 한 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냥 협력을 하기 싫은 거겠죠.”

테드가 퉁명스레 내뱉었다. 여객선의 사건만 없었다면 협력 따윈 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협력을 요청했는데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들은 자존심이 강하니까요. 아마도 우리라면 사탄교따위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매년 정기적으로 행하는 토벌대는 신참 용인족 전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토벌대를 이유로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린애 농담 같은 변명이다.

“억지로 협력을 요청해봤자 제대로 도와줄리도 만무하니 그냥 받아 들었어요. 혹시 사람이 필요한가요? 드라닉에서 사람을 구하는 건 조금 불안하지만 모험가라면….”

애쉬의 말에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아요. 알지도 못하는 모험가는 되려 발목만 잡을 뿐이니까요. 뭐, 우리들끼리 힘내야죠. 사이나도 이번엔 전력을 다해야해.”

“알겠습니다.”

변장을 위해 은색의 머리카락을 갈색으로 물들인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드님과 사이나님만 있어도 참 든든하네요.”

애쉬는 테드와 사이나와 함께 다니면서 그들의 힘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들의 무력은 이미 펠리스 왕국의 최고라 할 수 있는 집행자들을 넘어서고 있다. 어떤 적들이라도 테드와 사이나의 상대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토벌대에 참가할 수는 없나요?”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지나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드라닉 근처에 다가옴에 따라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마부가 마차의 속도를 줄인 것이다.

“토벌대 모집 기간은 삼주 전에 끝났습니다만… 테드님은 혹시 사탄교와 토벌대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탄교의 소집기한과 내일 토벌대가 출발하는 것을 생각하면 싫어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죠.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데비크로 만드려는 것은… 아, 이건 아니네요.”

데비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드래프리온으로 소집할 이유가 없었다. 대륙 각지에서 흩어져 숨어서 활동하는 것이 더욱 안정적이다.

테드는 사탄교를 쫓은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도대체 사탄교의 최종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확신한 것은 그들이 네메스 대륙에 결코 이롭지 않다는 거죠. 해충과도 같은 놈들이에요.”

“테드님의 말에는 저도 동의하고 있지요. 천사와 악마가 중간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토벌대의 건은 맡겨주세요. 드라닉에 도착하면 곧바로 알아보도록 하죠. 귀족의 신분을 잘 이용하면 아마 참가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정 안되면 드래프리온의 왕가에 도움을 구하죠.”

“굳이 토벌대에 참가할 필요는 없어요. 개인적으로 토벌대를 뒤따라가면 되니까요.”

이번에 벌어지는 토벌대는 역대급으로 크다. 작년에 토벌대의 규모가 작았다는 것도 이유이며, 이번에 드래프리온의 날씨를 비롯한 모든 것이 좋은 해였기에 몬스터의 번식이 폭증해 자연스럽게 토벌대의 규모도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토벌대의 뒤를 따르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상인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이득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 상인들은 토벌대원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무기나 생필품을 판다.

토벌대는 뒤따라오는 상인들을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상인들의 경우 스스로 사비를 털어 용병이나 모험가를 호위로 고용한다.

이번에 토벌에 참가하는 인원은 3,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그 뒤를 따르는 상인과 호위까지 합하면 약 5,000명이 넘는 대인원이다.

“도착했군요. 그럼 여기서 따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녁에 뵙도록 하죠.”

마차가 드라닉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차 밖으로 나가 북적거리는 행인들 사이로 사라졌다. 이윽고 마차는 드라닉에서 가장 큰 호텔에 도착한다.

테드가 드라닉에 머무는 동안 이용할 호텔이다. 토벌대의 건을 생각하면 실제로 호텔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적을 테지만.

테드는 10층이 넘는 고급 호텔을 올려다봤다. 특이하게도 층수가 높을수록 숙박비가 배가 되는 구조를 하고 있는 호텔이었다. 로얄 스위트룸이 있는 11층에서는 드래곤 마운틴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유명해진 호텔이다.

테드는 이왕이면 11층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애쉬가 예약을 했을 때는 11층은 이미 누군가가 선점해버리는 바람에 대신 바로 아래층인 10층을 예약했다. 10층만 해도 그 가격이 돈 많이 버는 상인도 주저할 정도라 토벌건으로 사람이 붐비는 시기에서도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드래곤 마운틴에는 수호룡의 둥지가 있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드래프리온에 살고 있는 3마리의 에이션트 드래곤을 수호룡이라 한다. 그들은 시스템에 의해 드래프리온이라는 섬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신 섬안에서 온전한 힘을 발휘한다. 드래프리온이 다른 국가의 침공을 받지 않고, 설령 침공을 받아도 반드시 이기는 이유가 바로 수호룡의 존재 때문이다.

또한 드래프리온 왕국의 용왕(Dragon Lord)은 수호룡에게 부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드라칸의 하늘을 뚫을 듯한 자존심의 이유가 바로 수호룡이다.

‘사탄교가 드래프리온을 선택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겠지. 다른 국가는 물론이고 모험가 길드도 드래프리온에서 쉽게 움직일 수 없으니까.’

사탄교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남아 있었다. 수호룡이 사탄교의 적이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만약 테드가 사탄교의 간부였으면 절대로 수호룡이 있는 드래프리온을 집결지로 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계의 최강 생물이라 불리는 에이션트 드래곤은 테드로서도 얕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흑룡 크루틱과는 약간의 인연이 있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루틱의 힘을 받은 네크로시스의 수장인 포굴과의 인연이었다. 물론 그 인연 때문에 크루틱과 마주칠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수호룡이란 것들은 꼴에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 약 30년 전이었다.

‘어찌되었든. 여기서 끝을 보자 사탄교.’

재차 각오를 다지면서 호텔의 안으로 들어갔다.

⁂ ⁂ ⁂

아스타로트는 상의를 벗은 채 근육이 들어차있는 육체를 과시하듯 앉아 있는 탁한 금발 머리의 남성을 쳐다봤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색단발 머리는 부스스하고 허공을 주시하고 있는 붉은 눈동자는 공허함이 가득하다.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는 그가 바로 그레온 그레모리다. 서열 32위의 악마.

아스타로트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침실문을 바라봤다. 신체능력이 남다른 아스타로트는 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남녀의 헐떡거림과 고급침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레온의 계약자가 또 창녀를 데려와서 놀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된 게 평범한 인간이 하루도 질리지 않고 매일 창녀를 바꿔가며 성행위를 할 수 있는지 아스타로트로선 그레온의 계약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그레온이 건조한 입술에 자신의 혀로 침을 바르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바알에게 죽는 거야? 진짜 불쌍하네.”

경박함과 나른함이 공존하고 있는 목소리에 아스타로트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그는 불쾌함을 가지고 입가에 조소를 달고 있는 그레온을 노려봤다.

“멋대로 남의 과거를 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사도 놈들의 말을 빌리자면 내 권능은 일종의 패시브니까.”

“대상을 가리지 못하는 것 뿐이지 권능의 사용 유무는 조절 가능하지 않나.”

“만일을 대비해 항상 켜놓고 있어. 네 말대로 방심하지 않고 있다고.”

킬킬 웃는 그레온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레온 그레모리이라는 악마는 과거를 보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생물에 한해서 대상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까지도 본다. 예를 들면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였을 적의 기억과 아주 사소해 잊어버린 과거마저도 본다.

대상의 과거를 보는 그레온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악마는 단지 보기만 하는 그의 권능을 웃으며 무시했지만, 상대방의 과거를 본다는 것은 경험과 기술을 간접적으로 훔친다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아스타로트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권능이었다.

“아, 그 천사 계집이 당했네? 누구한테 당한거야?”

“내 과거를 봤다면 알고 있을 텐데.”

“테드 크루시안 말이지.”

그레온이 히죽하고 창백한 입술을 찢으며 웃었다.

“그놈에게 방해당한 게 몇 번이야?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나 방해하는 거 보니 바알이 빡칠 만도 하네.”

그레온에게서 진지함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사탄교에 대한 집착이 없었다. 아스타로트의 계획이 틀어지든 말든, 중간계에서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보면 드라닉에 들어오고도 남았겠네. 그런데 아무 조취도 안취하는 거야? 뭣하면 내가 나설까? 사이나도 보고 싶은데.”

“…관둬라. 네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전투 능력면에서 너보다 뛰어난 메타엘이 놈에게 당했다.”

“나도 그때보다 강해졌거든? 바론 꼬봉년의 과거를 보고 배웠는데 마법이란거 정말 쓸 만 하더라고.”

“……그건 언제 훔친거냐.”

“처음 봤을 때부터니까. 대략 3년 전인가. 바론의 무공이란것도 훔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일부분 밖에 몰라. 바론은 사도가 되기 전에 배웠나봐.”

그때 침실문이 벌컥 열리며 벌거벗은 비만의 사내가 나타났다. 거대 돼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체구의 남자는 훅훅, 더러운 숨을 내뱉고 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푹 젖어있으며, 숨을 내쉴때마다 뱃살이 흔들렸다. 오른손에는 창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있는데 게거품을 물고 있는 것이 보통의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헉! 헉! 이봐 그레온…! …훅! 다시 작아졌잖아!”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베인이 그레온을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레온은 그를 한차례 훑어보다가 사타구니에서 시선이 멈췄다. 보이기조차 부끄러운 작은 물건이었다. 너무 작아서 뱃살에 파묻혀 성기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다.

“아, 미안. 효과시간이 다 됐나 보네.”

그레온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베인의 성기가 말도 안될 정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의 팔뚝만한 사이즈로 변하고서야 만족스런 웃음을 지은 베인이 획 몸을 돌렸다. 손에 붙잡힌 창녀가 도움을 바라는 눈으로 그레온과 아스타로트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문은 쾅 소리와 함께 닫히고 침대의 스프링이 혹사되기 시작했다.

“정말 내 계약자는 욕망에 충실하다니까! 킬킬.”

그레온과 달리 아스타로트는 한숨을 내쉬며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다. 원래 높은 곳을 좋아하는 그는 드래곤 마운틴이 한눈에 보이는 이 호텔의 테라스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계획은 잘 되는 거야? 너무 실패만해서 믿음이 안 생기는데.”

“계획의 8할은 이미 성공했다. 테드 크루시안은 너무 늦었다. 그를 막기만 하면 문제 없이 성공이다. 또한 그를 막기 위한 대비책 또한 준비가 끝났지.”

테라스의 투명한 문을 열고 나선다. 내부의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상쾌한 공기가 들어온다. 테라스 한쪽에 구비되어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이번엔 결단코 실패하지 않는다.”

아스타로트가 머물고 있는 호텔의 바로 아래층 테라스에서 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테드는 테라스를 통해 볼 수 있는 드래곤 마운틴과 요새도시의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에 사탄교가 있단 말이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혹시나 싶어 고결한 눈을 발동해 도시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탄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사람이 너무 많아 찾는 것이 불가능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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