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83화 (18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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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닷길.

“이번엔 마인드 컨트롤로 가자. 백치가 되든지, 뇌가 터져 죽든지 알게 뭐야.”

기절해 있는 루인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마법을 발동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은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다. 누군가로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정신계 마법을 저항하는 것이다.

어떠한 마법적 대비도 하지 않고 단지 믿는 것 뿐인데도 정신계 마법의 저항력을 갖다니… 테드는 생각할수록 정신계 마법은 영 아니라고 생각했다. 편리하지만 리스크가 컸다.

“으… 아…! 아아!”

루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내질렀다. 마인드 컨트롤에 저항하면서 정신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을 실시간으로 느끼는 것이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정신은 온전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고 테드가 마법을 멈추지 않는다면 백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 나는…! 시, 시리엘 님…!!”

루인이 믿음을 보내는 대상을 찾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눈에 실핏줄이 선명한 것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시리엘은 너를 구하러 오지 않아.”

테드가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루인이 테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팔과 다리가 없는 그로선 떨쳐낼 수 없다.

“아, 아니다! 시리엘 님…은 반드시… 나를 구원해… 주실거다…!!”

힘겹게 목소리를 내뱉어 문장을 완성했다. 그것이야 말로 루인의 믿음이었다.

《정신부정(Negative)》

“구원? 시리엘은 널 버리고 도망갔어. 네가 바라는 구원은 어디에도 없어.”

정신약화계열 마법과 함께 들으라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시리엘 님은…! 도망친 것이….”

《정신약화(Deprave)》

“넌 미카엘라 교단의 성기사잖아. 미카엘라보다 시리엘을 찾나? 아니, 시리엘이라는 천사가 정말 존재하나?”

수없이 많은 천사 중에 중간계에 알려진 천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가장 유명한 천사가 미카엘라를 비롯한 4대천사이며, 그들은 프리티스 제국의 4대 교단을 대표한다.

“시리엘 님을… 모욕하지 마라…! 그분은 미카엘라 님의 사자로서…!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강림하셨다!”

테드는 픽 웃었다. 시리엘이 그런 식으로 둘러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미카엘라의 사자였다면 뭐하러 루인같은 놈을 데리고 다니겠는가. 미카엘라 교단 전부를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절망(Despair)》

“그리고 널 버리고 천계로 돌아갔지.”

“그렇지 않…….”

“네가 악마에게 졌기 때문이다. 정의는 실현하지 못하고 팔과 다리는 잃고 추하게 죽어가고 있지.”

“설령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뒤를 이을 거라고? 시리엘이 다시금 강림할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

대답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루인의 얼굴에 감정이 사라진다.

마인드 컨트롤이 성공적으로 먹혔다는 것이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는 것일까. 꼴에 다섯 번째 날개라고 상당히 저항한다.

“내 질문에 대답해라. 너와 시리엘의 목적은 뭐지?”

“시리엘 님의 뜻을 따라 네메스 대륙에서 악을 배제하는 것이다.”

루인의 대답은 예상했던 바이다. 시리엘은 루인을 믿지 않았고, 그에게 까지 자세한 목적을 설명하지 않았다. 또한 루인이 진실만을 말한다고 해서 완전히 신뢰할 생각은 없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가 반드시 진실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테드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이어져 있던 표식이 끊어졌다. 마법이 성공적으로 발동된 것이리라.

“질문을 바꾸지. 드래프리온으로 가는 이유는?”

“사탄교에서 소집령이 떨어졌다. 시리엘님과 나는 그 소집령에 응해 드래프리온의 드라닉으로 향했다.”

드라닉은 드래곤 마운틴의 입구에 있는 유명한 도시다. 드래프리온의 왕도에서 반나절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사탄교의 목적은 뭐지?”

“모른다.”

“시리엘의 자세한 목적은?”

“멍청한 악마들을 이용한 방법임을 알고 있다.”

“…….”

테드는 잠시 말을 삼켰다. 사탄교에 대한 것은 시리엘이 대부분 처리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소집령이 떨어졌다고 했는데… 그 소집령이란 것은 너희들에게만 떨어졌나?”

“네메스 대륙에 흩어져 있는 사탄교 전체에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전원 소집인가. 그거 좋은데. 한 번에 끝낼 수 있겠어. 그럼 언제까지 드라닉으로 도착해야 하지?”

“삼일 후다.”

“…….”

내일 드래프리온에 도착하면 곧바로 마차를 구해 드라닉으로 달리던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야 한다.

“……그 소집령이란 건 언제 떨어 진거지?”

“5개월 전이다.”

5개월 전에 아우티리아 왕도로 향한 사탄교의 습격이 있었다. 테드는 직접 사탄교와 부딪히고 그들의 계획을 막아냈다. 아마도 그 일이 계기가 된 것 일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루인이 알고 있는 정보는 적었다. 대부분이 테드가 알고 있는 것들이며, 심지어 틀린 부분까지 있었다.

부가적으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시리엘의 권능이었다. 테드는 그녀가 정신 계열의 권능인줄 알았으나, 사실은 달랐다.

빙의의 권능.

자신의 영혼을 대상에게 빙의 시키는 권능이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대상에게 빙의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오랫동안 시리엘을 모셔온 루인이 말했다. 덤으로 여러 가지 제한도 있는 모양이었다.

“알아낼 건 다 알아냈어. 상당히 마력을 소모해서 피곤하니 이만 끝내자.”

《마인드 브레이커(Mind Break)》.

루인의 고개가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희미하게 반짝이던 눈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썩은 동태눈을 연상케 하는 눈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직시한다. 벌려져 있는 입을 통해 바닥으로 침방울이 떨어졌다.

대상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했을 때에만 발동하여 백치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이다.

팔과 다리도 없으며 지능도 짐승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죽여주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백치로 만들었군요! 이걸로 제법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거에요!”

애쉬가 두 눈을 반짝이며 루인의 상태를 살폈다. 팔과 다리가 잘려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생물이다 보니 프리티스 제국으로 넘길 때까지 관리가 필요하다.

애쉬는 그가 제국으로 넘어가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 상상해봤다.

아무리 다섯 번째 날개라고 해도 이 지경이 되면 쓸모가 없어진다. 처형될 것이 틀림없었다.

⁂ ⁂ ⁂

“하아… 하아… 하….”

시리엘은 두 눈을 부릅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천장에 달린 금색 조명을 쳐다보며 마음을 달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그제야 지금의 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천계의 거대 도시 중 하나인 ‘엔트리’에 존재하는 자신의 집이다. 시리엘은 넓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지난번에 잠시 천계에 들린 이후로 3년만에 돌아오는 집이었다. 등에 느껴지는 안락함을 애써 무시하며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등 뒤에 있는 4장의 날개와 머리위의 금빛의 링은 언제나처럼 깨끗했다. 다행히도 큰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었다. 성력이 소모되긴 했으나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회복 될 것이다.

미세하게 팔과 다리, 날개를 움직이며 영혼이 육체에 정착되었음을 확인한 시리엘은 돌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발끝에서부터 몸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천계에 있는 이상 안전하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불안감을 뿌리쳐냈다. 그리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미카엘라… 미카엘라에게 실패했다고 연락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동경하는 미카엘라에게 실패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다정한 그녀는 괜찮다며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줄 것이 분명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침실의 문을 열자 거실의 청소를 하고 있는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소녀 천사가 보였다. 시리엘이 고용한 가정부로 집의 관리를 맡고 있다.

“어머! 시리엘 님! 하시던 일은 잘 끝났나요?”

밝고 명랑한 목소리에 시리엘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가정부다.

“네. 잠시 미카엘라님에게 갔다 올게요. 그때까지 집을 부탁해요. 리지아.”

“몇 년이나 해온 일인걸요! 맡겨만 주세요!”

비록 실패는 했으나 기회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권능인 ‘빙의’라면 파장이 맞는 천족을 찾고 약간의 사전 공작을 하는 것으로 다시 중간계로 갈 수 있다.

리지아의 인사를 뒤로하고 집밖으로 나선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걸어 다니는 천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사가 보였다. 천족은 천사가 푹신한 구름 위에서 산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의 생활자체는 그들과 다름없다. 다만 이곳엔 위험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다툼? 그건 악마나 어리석은 종족들이나 하는 것이다. 욕망이 거의 없는 천사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알았다. 악마들은 천사를 두고 발전할 줄 모르는 안일한 놈들이라고 욕했고, 천사는 악마를 두고 욕망에 가득 찬 비열한 자들이라 욕했다.

시리엘이 중간계와는 달리 새하얀 하늘로 두 쌍의 날개를 활짝 펼쳐 날아올랐다.

천사는 태어날 때부터 날개수가 다르다. 일종의 재능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은 한 쌍이고 복수의 날개를 가진 천사는 드물었다.

하늘에서 미카엘라가 있는 천계의 중심으로 향하려던 시리엘은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은색의 빛을 똑똑히 보았다.

마치 창같은 모양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리엘의 세상이 은빛으로 물들었다.

천사 2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가 은빛으로 가득 찼다. 소리, 시야, 감각 모든 것이 은빛으로 칠해졌다.

약 10초가 지나 은빛이 사라진 도시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지면이 파헤쳐진 거대한 크레이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새하얀 성의 가장 높은 곳에 기거하는 미카엘라는 서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청백색의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그녀의 등 뒤에 있는 12장의 날개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져갔다.

단 한순간이지만 그녀는 악마의 힘인 ‘마력’을 느꼈다. 악마가 있어선 안 되는 천계에서 말이다.

“미카엘라. 방금의 거대한 마력은…!”

우리엘의 묵직한 목소리를 흘러 넘기며 서쪽을 주시한다. 곧이어 새하얀 은색의 빛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저긴 엔트리 도시가 있는 곳… 설마 습격인가! 천사들을 이끌고 가겠다!”

우리엘이 12장의 날개를 한 번에 펼치며 날아올랐다. 성밖으로 시끄러운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며 미카엘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 은빛은 궁니르…… 설마. 레칸이…?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들은….”

미카엘라는 떨리는 오른손을 느끼며 왼손으로 진정하라는 듯 붙잡았다.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궁니르라고 해서 꼭 그들만 사용하라는 법은 없다. 마력이 느껴졌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들이 사용했다면 불순물이라 할 수 있는 마력이 느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카엘라는 안심하지 못했다.

“…저건 그들이 사용하는 것과 완벽하게 똑같은 궁니르.”

미카엘라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궁니르의 사용자를 찾는 다는 것은 전 세계를 뒤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여기가 중간계보다 작은 천계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궁니르를 사용하는 자를 내버려 둘 순 없다. 그게 악마라면 더욱더.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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