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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닷길.
해저로 점점 깊이 내려가는 테드는 손에 잡힌 시리엘의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던 빛이 미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 년은 정말로 천사인가?’
현재는 심해 500M 정도다. 몸을 강화시키는 것에 성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고 해도 천사 특유의 막대한 성력을 생각하면 지금 시점에서 약해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시스템에 의한 제약이 있다고 해도 천사로서의 압도적인 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메타엘과는 날개의 수 부터 차이가 나지. 어쩌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적을지도 모르겠어.’
메타엘은 사탄교에 있는 3명의 교주 중 하나였다. 만약 그와 비슷한 직위를 가지고 있다면 상당한 많은 양의 정보를 빼낼 수 있었을 것이다. 테드는 아쉬운 감정을 뒤로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바로 아래에 있었다. 심해공포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다행히도 테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있는 것은 약간의 호기심이다.
점점 가라앉는다.
검은색 물고기가 보였다. 어두워서 테드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이 물고기는 특이하게도 떼로 몰려다니는 피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진 물고기였다. 대략 150마리 정도 모여 있는 물고기의 외견은 피라니아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삐죽삐죽하게 아무렇게나 자라있는 송곳니들은 테드가 알고 있는 피라니아와는 달랐다. 본래 피라니아는 민물고기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아닐뿐더러 심해에서 살지 않는다. 이곳이 지구였다면 말이다.
그것들은 테드와 시리엘을 발견하는 순간 맹렬하게 헤엄쳐 쇄도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뢰를 연상케 하는 속도로 달려든다.
‘배리어.’
투명한 방어막을 사용했다. 그러나 피라니아와 부딪히는 순간 맥없이 박살나 사라진다.
‘매혹(Charm).’
피라니아에게 마법을 건다. 그렇게 뛰어난 정신계 공격은 아니다. 단순히 적의를 갖지 않고 친근감을 느끼는 정도가 전부다. 어느 정도 지성이 있는 동물이라면 가볍게 떨쳐내는 수준의 마법인데 피라니아는 보이는 것처럼 무식한지 쉽게 마법이 통했다.
피라니아가 경로를 수정한다. 노리는 것은 테드가 아니라 시리엘로 바뀌었다.
입을 쩌억 벌리며 다가오는 물고기 떼에 시리엘이 기겁한다. 성법을 발동하려고 해도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수압을 견디는 것이 고작이었다.
‘성력으로 몸을 강화하고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
피라니아가 사정없이 그녀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팔과 다리, 몸통, 머리까지 모조리 이빨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찢어졌지만 피부가 찢어져 피가 배어나오지는 않았다. 몸은 무사했다. 그러나 날개는 아니었다.
비교적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천사의 날개에서 비릿한 피가 흘러나온 것이다. 피냄새를 맡은 피라니아가 곧바로 날개 쪽으로 달려들었다.
시리엘의 얼굴이 고통과 굴욕으로 일그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성력이 폭발하듯 증가하며 머리 위에 금빛 링이 반짝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피라니아가 성력에 밀려 사방으로 멀어졌다. 그것들은 이내 다시금 뭉치기 시작하고 시리엘을 먹어치우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30CM가 넘는 삐죽한 이빨이 아무렇게나 돋아난 거대한 입이 피라니아 무리를 단번에 삼켜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피라니아로도 부족한지 테드와 시리엘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탐색을 하듯, 이것은 맛있는 것일까 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메갈로돈!’
30M가 넘어가는 커다란 상어였다. 테드가 알고 있는 전설에 몇 번 등장 한 적 있는 메갈로돈은 크라켄 보다는 약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바다에서 만나면 그냥 죽었다고 생각해야하는 거대 몬스터였다.
이내 메갈로돈이 결정을 내렸는지 커가란 입을 벌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테드가 당장 마법을 준비할 때, 한쪽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촉수가 메갈로돈의 몸을 감싸고 잡아끌기 시작했다. 붙잡힌 메갈로돈이 거칠게 몸을 비틀었다.
그것은 메갈로돈 보다 2배 이상 큰, 30개가 넘어가는 촉수를 가진 거대 문어였다. 메갈로돈이 발광을 하며 통나무보다 굵은 촉수를 물어뜯었다. 촉수는 빠른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한다.
테드의 등뒤로 7마리의 메갈로돈이 물살을 가르며 크라켄을 향해 쇄도했다. 이빨을 치켜 세우며 크라켄과 부딪힌다. 이빨 뿐만이 아니라 메갈로돈의 꼬리도 촉수를 쳐낼 정도로 위력적이다.
시리엘은 그 광경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고, 테드는 점점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흥미진진하게 괴수대전을 관람했다.
그러다 크라켄을 상대하고 있던 메갈로돈 한 마리가 돌연 방향을 바꿔 테드를 향해 쇄도했다.
테드는 갑자기 공격 목표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리엘의 몸에서 나온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메갈로돈의 몸에 닿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프로즌.’
거대 상어의 몸이 얼어붙는다. 촉수가 날아와 냉동 메갈로돈의 몸을 획 감아 자신의 입으로 털어 넣었다.
‘…갑자기 달려든 이유는… 그런가. 시리엘의 권능인가.’
이미 테드는 시리엘의 능력을 정신지배 계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 메갈로돈이 가까이 있는 시리엘이 아닌 테드를 노렸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확실하다.
메갈로돈과 크라켄을 시작으로 심해 몬스터는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뇌전을 내뿜는 거대 해파리, 날카로운 칼날처럼 생긴 비늘을 가진 은색 물고기, 몸안의 내장이 훤히 비치는 물고기 등 겉모습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기괴한 심해 생물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2,000M 정도 내려왔을 때, 드디어 지면을 밟을 수 있었다.
테드는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밑바닥을 한 번 쳐다보고서, 자신의 손에 붙들린 채로 축 늘어져 있는 천사를 쳐다봤다. 옷은 피라니아에 뜯어먹혀 알몸이었다. 티하나 없는 피부에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사타구니에 보이는 가지런한 음모까지 예쁜 몸이었지만 테드는 싸늘한 눈으로 시리엘의 상태를 살폈다.
피라니아에게 물어뜯긴 머리카락은 산발처럼 되어 있었고, 새하얀 복부에 물결 모양과 비슷한 푸른색의 문신이 있었다. 천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문신이다. 천족들은 이것은 천인(天印) 혹은 성인(聖印)이라 부른다. 이 부분에서 테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성력은 미약하다. 여기서 몸을 강화하고 있는 성력이 사라지면 그녀의 몸은 지상에 비해 200배가 넘는 압력을 가진 이곳에서 단숨에 찌부러져 죽을 것이다.
‘슬슬 한계인 것 같군. 죽으면 곤란하니 지상으로 올라가 볼까….’
지면에서 가느다란 붉은 실 같은 것이 수 십 가닥 튀어나왔다. 그것은 테드와 시리엘의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테드의 몸은 위광으로 인해 보호되어 있어 뚫지 못했으나 시리엘은 달랐다. 시리엘의 하얀 피부에 붉은 실이 꽂힌다.
그리고 실이 팽팽하게 변한다. 피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굵기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지는 것을 보고 테드가 혀를 찼다. 여기서 시리엘을 잃을 수 없다.
마력을 담은 발로 지면을 걷어찼다. 지면이 터져나갔고, 붉은 실과 연결되어 있던 동그란 생물체가 위로 떠올랐다. 테드가 발로 한 번 더 차자 육체가 터져 자욱한 피안개가 바다속에서 퍼져나갔다.
‘텔레포트’
2,000M의 해저에서 곧바로 여객선의 갑판 위로 올라온 테드는 다크 체인으로 시리엘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었다. 기압이 변하며 가해진 충격에 의해 기절한 시리엘의 입을 어떻게 열까 고민하던 테드의 옆으로 사이나가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
“고생이랄 것 까지야.”
사이나가 건네는 새하얀 수건을 받아 들었다. 얼굴과 몸에 묻어 있는 바닷물을 닦아낸다. 그래도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기에 샤워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일은 끝마칠 생각이었다. 이런 일은 시간을 질질 끌수록 안 좋았다.
“사이나, 그 놈은?”
“말씀하신대로 살려두었습니다. 현재 기절시켜 놓았으며, 애쉬님이 마련하신 방에 애쉬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럼 거기로 가자. 알아낼게 산더미야.”
방으로 안내하는 사이나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
검은 쇠사슬에 묶인 시리엘이 바닥에 질질 끌렸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선상파티는 어떻게 됐어?”
“선원들이 나서서 급하게 정리했습니다. 승객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금은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뒷수습을 하고 있습니다. 애쉬님이 정보 조작에 들어갔습니다만… 보는 눈이 많아서 완전히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소란이 벌어졌으니 당연하겠지. 정신계 마법으로 기억을… 아니다. 그냥 애쉬에게 맡기자.”
기억 조작은 테드로서도 수고가 너무 가는 마법이다. 수 백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한 번, 한 번 씩 다 걸어주어야 하며, 한 번 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선 정밀하고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일이면 드래프리온에 도착하기에 시간도 촉박하다.
“아마 드래프리온에 협력을 구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애쉬라면 지금의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 생각했다.
사이나는 복도 구석에 있는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무거운 철문을 가볍게 밀어젖혔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이 삭막한 방안의 풍경이 들어왔다. 이곳은 원래 창고용으로 사용한 곳이었는데, 방이 필요하다는 애쉬의 부탁에 선원들이 황급히 내부 물건들을 치워서 마련한 방음이 잘되는 공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뒤이어 문이 쿵 소리와 함께 닫혔다.
“아, 테드님. 오셨군요. 이 놈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깨울까요?”
애쉬가 바닥에 아무렇게 던져 놓은 루인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마법으로 알아내면 되니까. 오히려 깨워서 시끄럽게 구는게 짜증나죠.”
“그거 다행이군요. 아, 그래도 가능하다면 이놈을 살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익이란 신분은 프리티스 제국에서도 무시 못 할 신분이라 이용할 수 있거든요. 정말이지, 곤란해 하는 프리티스 제국 놈들이 눈에도 선하네요.”
“저희들의 정보도 새어나갈 텐데요.”
“기억 조작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가능하긴 한데 자칫하면 백치가 될 수 있어요.”
“백치인 쪽이 오히려 더 낫습니다. 이미 카인드 트링거 귀족을 암살하려는 모습을 수많은 승객과 선원들이 지켜보았으니까요. 자신에게 이로운 발언을 하지 못하는 백치가 되는 쪽이 훨씬 낫죠.”
“그럼 백치로 만들죠. 그게 더 편하니까. 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쇠사슬을 끌어 당겼다. 시리엘이 힘없이 끌려왔다. 그녀의 머리위에 있던 금빛의 링과 하얀색 날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복부에 있는 푸른색 물결 모양의 문신을 보자면 겉보기에는 천사가 아닌 평범한 천족으로 보였다.
그래. 천사가 아니라 천족으로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분명 천사였다. 천사의 상징인 날개와 링을 가지고 있었고, 권능이라 볼 수 있는 것을 사용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천사는 가지고 있지 않은 천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선천적인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새긴 문신인걸까. 어느 쪽이든 직접 알아내면 그만이다.
테드의 오른손이 시리엘의 연갈색 머리의 정수리를 붙잡았다. 다크 체인이 사라진다.
두 눈을 감고 집중상태에 들어선다.
“메모리 리딩(Memory Reading).”
대상의 기억을 읽는 메모리 리딩은 어떻게 보면 마인드 컨트롤 이상으로 위험한 마법이다. 대상의 기억을 읽는 과정에서 대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격이나, 기억이 애매하게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마법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정신계 방어 장벽 마법을 몇 개나 두를 필요가 있었다.
허나 테드는 정신 계열에 관해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마성’과 ‘고결한 눈’ 덕분에 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마법이 완전히 발동되어 시리엘의 기억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테드의 마법이 무언가에 반발하듯 튕겨나갔다. 테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붉은빛 눈동자에 시리엘의 몸속에서 반투명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빠져나간 영혼은 허공에 생성된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테드는 시리엘의 권능이 무엇인지 눈치 챘다.
“이런 제길!”
머릿속에 영혼을 붙잡는 마법 몇 개가 떠올랐다. 그러나 어느 것도 준비에서부터 발동하기 까지 시간이 걸린다. 가장 빠른 것은 사자의 서를 이용하는 것인데 지금 상태에선 느리다.
테드가 급한 대로 손을 내뻗었다. 영력을 두른 손이 영혼과 접촉한다. 비단천같은 영혼의 감촉이 느껴지자 망설이지 않고 쥐었다. 영혼의 일부가 떼어져 나갔다.
테드가 다른 손을 뻗었다. 영혼을 붙자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소멸시키기로 한다. 보나마나 천계로 돌아가는 것이거나 사탄교로 도망가는 것일테니 천사나 사탄교들에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손이 시리엘의 영혼에 닿는다. 영혼은 곧이어 검은 공간에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테드는 바닥에 쓰러진 시리엘… 아니, 레아 메이필을 내려다 봤다.
“주인님 그 천사는….”
“괜찮아. 표식은 남겼어. 어디에 있는지 똑똑히 느껴져.”
과연 고대 마법이라고 할까. 설마 다른 세계에 있는데도 확실하게 느껴질 줄이야. 영혼에 남긴 표식으로부터 전해지는 좌표를 떠올리며 씩 웃었다.
좌표를 알았다고 해서 테드가 세계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어떻게 넘어가는 지 알 수 없다. 악마나 천사를 소환하는 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시스템이 막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식에 의한 연결고리는 이어져 있다.
“《암브로시아(Ambrosia)》”
테드의 마력이 폭증한다. 온전한 암브로시아가 아니다. 패널티를 막대한 고통만 느껴지는 것으로 축소한 대신 제약을 없앤 열화판 암브로시아다. 열화판이라고 해도 보통의 버프 마법보다는 몇 배는 좋은 효율을 자랑한다.
증폭된 막대한 마력을 표식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솔직히 너무 과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천계에서 마법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는다는 상황이 있을 수 있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마법이 제대로 발동되는 것을 느낀 테드의 시선이 팔다리가 없는 루인에게 향했다. 약간 짜증이 담긴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마인드 컨트롤로 가자. 백치가 되든지, 뇌가 터져 죽든지 알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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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