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24. 바닷길.
테드는 시리엘이 날개를 꺼내는 순간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강제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바다의 냄새를 맡으며 시리엘을 쳐다봤다. 시리엘은 갑작스레 풍경이 바뀌었음에도 안색하나 변하지 않았다. 저항한다면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순순히 테드를 따라 마법에 몸을 맡긴 이유는 그녀의 입장에서도 좁은 곳보다 넓은 곳이 좋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왜 비열한 악마를 소환했나요?”
시리엘이 날개를 사용해 공중으로 비상하며 물었다. 테드는 여객선의 속도를 맞춰서 하늘을 날고 있는 시리엘을 가늘게 뜬 눈으로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사실 대로 말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천사보다 나으니까.”
“……제가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당신, 악마가 천사보다 낫다고 말했나요?”
그녀의 푸른색 눈이 분노로 이글거린다. 도발의 의미를 담아 말했던 테드조차 놀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악마나 천사나 오십보백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선택하라면 악마 쪽이야. 니들 천사는 써먹지도 못해.”
“……그렇군요. 당신은 배덕자였군요. 당신같이 능력있는 사람이 배덕자라니… 굉장히 안타까워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간 배덕자를 처리하는 것도 저의 임무죠.”
“천사는 그런 점이 짜증난다 말이지.”
악마와 천사는 기본적으로 중간계의 생물을 무시한다. 태어날 때부터 우수한 신체능력과 권능을 가진 그들의 눈에는 인간이 고블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 악마는 자신들을 떠받드는 마족을 무시한다. 관심에도 없다. 어차피 중간계의 생물이기 때문이다.
반면 천사는 천족을 자신들의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종교까지 만들어 떠받드니 이용하기 쉽다. 단지 그 뿐이다.
“당신을 여기서 죽이지 않을게요. 소환자인 당신이 죽으면 악마를 죽일 수 없게 되니까요.”
“……나도 널 여기서 죽이지 않아. 천계에서 어떻게 중간계로 기어 나왔는지 알아야겠어.”
무녀가 말한 천계의 문이 열리고 무수히 많은 천사가 쏟아져 나왔다는 말이 마음 한 구석에 걸렸다. 어쩌면 눈앞에 있는 그녀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운 좋게 메타엘을 죽인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 말은 광오하군요.”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테드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메타엘을 알고 있다고? 설마 너도 사탄교냐?”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서도 처음부터 사탄교를 떠올리지 않은 자신을 질책했다. 이 여객선은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드래프리온으로 간다. 사탄교가 드래프리온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천사가 드래프리온에 가는 목적은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다. 확인사살로 그녀는 사탄교의 교주 중 한 명이었던 메타엘을 알고 있다.
“메타엘은 저와 마음이 맞는 동료였어요. 대의를 위해 사탄교라는 지저분한 곳으로 함께 발을 뻗었지요. 아무리 중간계에서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곤 하지만… 그가 당신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상당히 의외였어요.”
시리엘의 말투는 침착했다. 악마와 비교당했을 때와 달리 특별한 감정을 표하지 않았다. 동료로서의 애착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희들 말고 다른 천사는 없나?”
시리엘이라는 자신도 모르는 천사가 사탄교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제가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지요.”
하늘에서 달을 등지고 두 장의 하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성력이 개방되며 성스러운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럼, 나중에 천천히 물어보도록 하지.”
테드의 홍채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동시에 수 십 개의 다크체인이 시리엘을 향해 쇄도한다. 시리엘이 양손을 곱게 포개었다.
“아무리 뻗어도 닿지 못하니…….《성자의 가호(Blessing of Saint)》”
사슬이 시리엘의 몸에 닿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간다.
테드는 자신의 두 눈으로 아주 약하게 시리엘 주위의 공간이 비틀리는 것을 포착했다. 성법을 이용해 다크 체인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게 공간을 왜곡 시킨 것이다.
“성법을 사용하는 천사인가. 특이하군.”
“특이할 것은 없어요. 본래 성법이란 천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너희들에겐 권능이 있을 텐데?”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성력은 권능보다는 성법에 더 알맞죠. 물론 성법이 권능을 따라 잡을 수는 없지만요.”
“그래 알겠다.”
테드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명백한 비웃음에 시리엘의 눈썹이 꿈틀거리다가 끝부분이 서서히 올라갔다.
“권능이 쓸모없는 거로군. 안 그래?”
악마와 천사라는 이유로 모두가 위협적인 권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걔중에는 정말로 쓰잘데기 없는 권능을 가진 자들이 존재한다. 물론 권능도 사용하기 나름이다.
테드가 사이나에게 듣기로 한 악마는 ‘개미로 변하는 권능’이란 것을 가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심코 밟으면 죽는 개미로 변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권능이었다. 마계에 있는 악마들이 그의 권능을 비웃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사용함에 따라 응용이란 것이 가능해졌다. 몸의 일부를 개미의 것으로 바꾸고, 거대 개미로 변하는 등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그는 거대 여왕개미로 변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는 매일 거대 개미를 출산했고 세력을 불렸다. 졸지에는 누구도 비웃을 수 없는 악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용하고 발전시켜도 소용없는 권능도 있다.
“혹시 눈물을 흘리는 권능 같은 거 아니야?”
슬픔을 조종하는 권능이 아니다. 그냥 눈물샘을 건드려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권능이다. 굳이 활용하자면 악어의 눈물 정도가 전부다.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장난 같은 권능이 실제로 한 하급 악마가 가지고 있다고 사이나에게 들었다.
“……어지간히도 저를 모욕하는군요. 제 권능을 당신에게 알려드릴 이유는 없어요.”
시리엘이 성력을 일으켰다. 마치 후광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성력을 보며 테드는 혀를 찼다. 확실히 그녀의 성법사로서의 능력은 뛰어났다. 공간을 왜곡 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프리티스에 존재하는 교단식으로 치자면 그녀의 실력은 육익(六翼)이상이다. 마법사로 표현하자면 마도사 이상이다.
“신성한 빛의 이름으로. 《빛의 일격(Holy Strike)》”
세 개의 빛줄기가 테드를 향해 떨어졌다. 테드가 블링크로 옆으로 피했다. 그러다 아차했다. 지금 자신이 서있는 곳은 날고 있는 시리엘과 달리 여객선의 위였다. 테드가 피하자 충격은 고스란히 여객선이 받는다.
쾅! 여객선이 흔들렸다. 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빛은 배의 갑판을 뚫는 것에 멈추지 않고 내부까지 박살냈다. 다행히도 바닷물이 들어와 침수될 정도는 아니어서 여객선은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위험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미친년. 여객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는 거냐?”
“그들의 희생으로 악마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그들은 영광을 느끼겠죠.”
“…그렇겠지. 너희들에게 있어 우리들의 가치란 딱 벌레 이상. 그 정도 뿐이겠지.”
“당신은 정말 유능하군요.”
시리엘이 웃으며 양손을 꽈악 붙잡았다. 이번에는 12줄기의 빛의 줄기가 여객선을 향해 떨어진다. 그 중 절반은 테드를 노리고 있으나, 나머지 절반은 여객선의 가장 높은 곳, 선장실을 노리고 있다.
상대는 자신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발판을 없애는 것으로 자신에게 전투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여객선은 그의 약점이기도 하다.
“리플렉트.”
테드가 여객선을 감싸는 거대하고 투명한 거울을 만들었다. 투명한 거울은 그대로 빛을 반사시키고 사라진다. 시리엘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빛줄기를 피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며 은은하게 웃음을 짓고서 받아들였다. 순수한 성력으로만 이루어진 홀리 스트라이크는 그녀에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오히려 소모되었던 성력의 일부가 회복되기까지 했다.
천족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는 천사의 특성이었다.
“역시 당신은 그들을 버리지 못하는군요.”
“버릴 이유가 없지. 드래프리온에는 여객선으로 도착하고 싶기도 하고.”
“그데 당신의 패인이 될 것입니다.”
그녀가 한 쪽 손을 테드를 향해 내밀었다.
“어리석은 죄인에게 낙인을. 《광명의 족쇄(Bright Fetter》”
테드의 주위에 나타난 새하얀 빛이 그의 몸을 건들고 구속하기 시작했다. 테드는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다크 체인과 비슷한 성법이다. 그러나 다크 체인처럼 절대적인 봉인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력을 억제하고 흐름을 방해하는 정도다.
시리엘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광명의 족쇄라는 성법은 강력하다. 일단 한 번 걸리고 나면 육체적으로 벗어나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메타엘을 쓰러뜨렸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은 그 악마를 이용해 쓰러뜨린 것이겠죠. 악마의 도움이 없는 당신의 실력은 겨우 이정도. 아스타로트가 당신을 경계하는 걸 이해할 수 없군요. 뭐, 결국은 그도 어리석은 악마라는 거겠죠.”
“대충 상대해주다가 정보를 뜯어내려고 했어.”
천사를 상대로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테드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적당히 봐주면서 전투에 밀려나는 척 하며 고양된 시리엘에게 대화를 걸어 원하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생각이었다.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 그냥 반죽여 놓고 정보를 얻기로.”
양팔과 양다리를 흔들었다. 구속하고 있던 빛이 옷에 묻은 먼지처럼 맥없이 떨어졌다.
“텔레포트.”
시리엘의 등뒤에 나타난 테드가 손을 뻗어 희고 가는 목을 붙잡았다. 흠칫하고 깜짝 놀라는 시리엘의 몸과 하얀 날개에 순식간에 서리가 서린다. 죽일 수는 없으니 노리는 것은 움직임을 방해하는 정도의 동상이다.
“걱정마, 곧 따뜻하게 느껴질거야.”
쓰레기를 버리듯 무심하게 바다로 내던졌다. 거대한 물분수가 솟구치는 곳으로 향해 화염구 12개가 날아갔다. 화염구가 터지면서 다시금 바닷물이 높이 튀어 오르고 아주 잠시지만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다 테드는 자신의 복부에 그려져 있는 황금빛의 성법진을 발견했다. 마법진과 비슷하지만 성법이라 무슨 효과를 가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았다. 공격 계열 혹은 약화 계열의 성법이라 해도 성법진으로부터 느껴지는 성력을 보자면 테드가 현재 입고 있는 ‘위광’을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분 나쁘니 해제해둘….”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비행 마법이 풀릴 뻔 해 테드의 몸이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테드는 자신의 몸을 노린 무언가가 튕겨나간 것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신계열의 성법인가? 마법과 마찬가지로 정신 계열의 성법은 굉장히 희귀한데.
‘……성법의 기색은 느끼지 못했다. …권능인가.’
복부에 그려져 있던 성법진이 발동한다.
동시에 테드는 바다 속으로 전이되었다.
위광의 효과 중 하나인 어떤 환경에서의 적응하는 효과가 자동적으로 발동하며 수압에 의한 고통과 산소부족에 의한 질식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위광의 효과에 대해 부가적으로 설명하자면 설령 용암 속으로 전이되어도 멀쩡하게 헤엄칠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태양같은 환경이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전이 계열의 성법이었나.’
테드는 시선을 위로 올렸다. 지금 밤이고, 이곳은 바다 속이지만 대낮처럼 환하기 그지없었다. 입고 있는 사제복이 여기저기 찢어진 시리엘이 눈앞에서 온몸으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엘이 양손바닥을 테드를 향해 내밀었다. 손바닥 앞에 성법진이 빠르게 그려진다.
이번엔 테드가 익히 알고 있는 성법진이다.
홀리 스트라이크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공격계 성법인 《디바인 버스터(Divine Buster)》다.
‘발동되기 까지 5초 정도인가. 느리군.’
성법의 위력과 복잡함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편이지만 테드의 눈에는 차지도 않았다. 자신이라면 2초 이내에 발동할 자신이 있었다.
테드가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시리엘이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 공기방울이 바다 위로 빠져나갔다.
‘기왕 바다 속으로 온 거. 심해 데이트나 하자고.’
자신의 몸에 중력 마법을 사용한다. 그 무엇보다 빠르게 테드의 몸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손에 들린 시리엘이 전신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조명으로 딱 좋았다.
10M… 20M… 40M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운이 좋게도 지면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심해까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도중에 몇 번이나 정신 공격을 받았지만 처음처럼 몸을 비틀 거릴 정도의 충격은 없었다.
시리엘이 자신의 목을 붙잡은 테드의 손을 떨쳐내려고 발악했다. 그러나 아무리 성력을 담아 공격해도 테드의 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거기다 점점더 바다속으로 끌려감에 따라 육체에 부여되는 수압이 점점 증가된다. 성력으로 육체를 강화시키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80M까지 내려온 테드는 시리엘의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성력으로 강화된 그녀의 육체는 시시때때로 강력해지는 수압을 거뜬히 버텨내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공기 쪽이다.
‘모처럼이니 이건 서비스 해주지.’
그녀의 가슴을 투시해 직접 마법으로 공기를 만들어 넣어주었다. 이 얼마나 착한가! 스스로의 매너에 감탄한 테드는 조금 더 중력의 힘을 늘렸다.
300M 정도 내려갔을 때, 시리엘의 발악이 더 거세졌다. 그리고 동시에 특이한 물고기를 지나쳤다.
고블린의 얼굴을 갖다 붙인 듯 한 물고기였다. 크기는 2M 정도 된다. 물고기라기 보다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몬스터에 가깝다. 하기야 지구에서도 심해에 대한 것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네메스 대륙이라고 심해에 관한 정보가 있을 리 없었다.
‘알려지지 않은 심해 몬스터인가. 모험가 길드에 발표하면 내 이름이 붙을지도 모르겠어. 테드 피쉬! 라던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와 시리엘의 몸은 점점 더 심해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