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77화 (177/277)

177====================

24. 바닷길.

24. 바닷길

펠리스에 들어온 테드는 우선적으로 펠리스의 수도로 향했었다. 그곳에서 비밀리에 라이거와의 만남을 가지고 곧바로 수도를 떠났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딥크스는 침묵했다. 모험왕이 역적인 테드에게 가담했다는 것을 빌미로 모험가 길드를 건들이지도 않았고, 집행자인 애쉬를 이용해 펠리스를 도발하지도 않았다.

메피아는 그저 역적인 테드 크루시안을 안타깝게 놓쳤다는 사실을 귀족과 백성들에게 알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테드는 펠리스 왕국의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항구 도시 벨코마. 하루에도 수 십 선의 배가 들어오고 나가기로 유명한 이곳은 해산물과 무역선으로 유명한 도시다. 더불어 관광도시로 유명하다. 펠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5개의 도시 중 하나다.

테드는 벨코마에서 여객선을 타고 드라칸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참고로 여객선의 예약은 모두 애쉬가 이미 도시에 들어오기 전에 끝마쳤다.

“이게 벨코마에서 유명한 대게군요. 확실히 오늘 새벽에 잡은 대게라 그런지 상태는 최상입니다.”

여객선에 승선하기 전에 점심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제법 유명한 해산물 전문점에서 벨코마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대게 찜을 맛본 사이나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평소에 조용한 그녀가 감탄을 할 정도면 이 대게 찜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다.

“진짜 오랜만이네. 대게를 먹는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꽉차있는 대게살을 흡입하듯 먹으며 테드가 말했다. 대게장에 밥까지 쓱쓱 비벼 먹으니 지구에 있던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에도 여동생이 대게를 좋아하지 않아서 대게를 많이 먹지는 못했다.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했었다.

“주인님이 마음에 드신다면 여기서 대게를 몇 박스 정도는 구해놓아야겠군요.”

아공간에 넣어 놓으면 딱히 보관에 신경쓸 필요도 없이 최상의 상태로 보관 하는 게 가능하다.

“가끔씩 생각날 때 먹으면 딱 좋겠어.”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표했다. 그리고 즉시 사이나가 움직였다. 그녀가 음식점의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여기는 음식점인 동시에 해산물도 파는 곳이라 문제 없이 대게를 구할 것이다. 평민들이 큰맘 먹고 대게를 살 정도로 제법 비싸긴해도 그건 테드와 사이나에게 통용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에 대마수 토벌과 고대유적을 하면서 모험가 길드에서 얻은 돈이 상당하다.

“그런데 테드님. 굳이 이렇게 드래프리온으로 향하는 이유가 뭔가요? 저도 집중적으로 조사는 하고 있지만… 드래프리온에서 딱히 특이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기왕이면 대책을 세우고 철저한 상태로… 놈들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도록 준비하고 가고 싶습니다만….”

드래프리온으로 움직이는 것은 애쉬도 찬성하는 바이다. 사탄교라는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함이라는 숭고한 뜻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더 준비를 한 뒤에, 일망타진할 수 있도록 그물망을 짠 뒤에 갔으면 싶었다.

“대륙과 모험가들의 영향력이 적은 드래프리온이라 가능성은 높지만 놈들의 본거지라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애쉬 씨가 생각하는 준비라는 것은 국가단위로 움직이는 거겠죠. 그건 확실할지 몰라도 놈들이 지례 겁먹고 다시 도망칠 수도 있어요.”

테드는 애쉬가 드래프리온의 국왕에게 협조를 요청하려는 것을 뜯어 말렸다. 드래프리온의 정부에 사탄교의 입김이 닿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거기다 드래프리온은 오만하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더불어 대륙의 침공을 받은 역사가 거의 없고, 그나마 있던 전쟁의 역사도 수호룡의 비호아래에 모조리 승리를 거머쥐었다. 더불어 마족과 천족보다 태생적으로 우수한 신체능력 덕분에 그들은 스스로를 불패의 종족이라 부른다.

협조 요청? 일단은 받아들이겠지만 자신의 국가에 숨어 있는 사탄교에 멋대로 토벌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직 드래프리온에 사탄교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모르죠.”

애쉬가 입을 열어 반론하려다 이내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테드가 알아서 잘 하리라. 무책임한 변명 같지만, 그는 지금까지 사탄교를 쫓아왔고 토벌해왔다.

“이번에는 한 놈을 생포할 작정이에요. 마법을 이용해서라도 정보를 불게해서 끝장을 봐야죠.”

“테드 님이 생각하신 대로 되면 좋겠군요.”

마침 사이나가 돌아 왔다. 그녀의 손에든 접시 위에는 새빨간 새우 12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우소금구이다.

새우를 좋아하는 테드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

“역시 사이나. 끝내주는 센스야.”

사이나가 살짝 웃었다.

“별일 아닙니다.”

식사를 끝내고 여러 해산물을 구입했다. 대륙 내부를 떠돌아다니는 테드에게 해산물을 접할 기회는 적었기 때문에 아공간에 비축 할 필요가 있었다. 이리저리 도시를 움직이자 어느새 승선을 할 시간이 되었다.

“제가 예약한 여객선입니다. 2년 전에 만들어진 여객선이죠. 이름은 ‘부라리요 호’입니다. 이름은 이상하지만 현재 드래프리온으로 항해하는 여객선 중에서 안전성과 편의성 면에서 최고죠. 테드님과 사이나님은 전에 준 트링거 귀족의 신분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애쉬가 이끌고 간 곳은 커다란 여객선 하나가 있는 부두였다. 철로 만들어진 이 여객선은 중세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현대의 여객선을 떠올리게 하는 배의 내부를 뜯어보면 과학이 아닌 마법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커다란 여객선의 앞은 대륙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중 일부는 여객선에 탑승하는 사람들이고, 일부는 항해 시작 전에 행하는 전통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제사?”

테드가 여객선 앞에서 행하는 전통 의식을 보며 중얼거렸다. 선장과 선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엄숙한 표정으로 바다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조출하게나마 마련된 제사상이 있었다. 제사상의 위에는 해산물과 과일 몇 개가 올라와 있다.

천천히 불타는 초의 향이 코 주위를 간질였다.

“아. 제사 말이군요. 큰 여객선이 항해를 하기 전에 행하는 전통입니다. 바다의 신령과 조상님들에게 이번 항해가 무탈하도록 부탁드리는 것이죠.”

제사를 지내는 이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검은 머리에 백발이 희끗희끗 비치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새하얀 제복 위에는 선장을 나타내는 황금색 돌고래 모양의 훈장이 반짝이며 매달려 있다. 오로지 국가에 인정받은 선장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훈장이야 말로 그의 자부심이자 긍지였다.

“해왕과 신령, 바다의 선조님들이시여. 부디 이번 항해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선장의 엄숙하고 절도 있는 목소리가 부두에 있는 모든이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직후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일제히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한 후에 그들은 신속하게 의식을 끝마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장이 먼저 여객선으로 올라탔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뱃고동 소리가 거세게 울렸다. 그에 맞춰 사람들이 여객선으로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자, 이제 올라타면 되요. 저도 여객선을 타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는데요.”

애쉬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여객선을 처음 타는 건 테드와 사이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대열을 맞추어 여객선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시설이 가장 좋은 VIP룸으로 예약해놓았죠.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는 방이라 배특유의 흔들림도 없고 쾌적한 방이죠. 아, 물론 카인드님과 멜리나님은 한 방으로 잡아두었습니다. 저는 그 옆방이고요.”

기분 좋은 애쉬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카인드와 멜리나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몰락 귀족의 신분을 말한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제가 이 여객선을 얼마나 타보고 싶었는데요.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죠. 신기하지 않나요. 이런 거대한 철덩어리로 바다를 건넌다는 게!”

“하늘을 나는 배도 있는데 뭘 새삼스레.”

“저처럼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특별한 임무가 없는 이상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죠. 솔직히 카인드님을 따라다니면서 대륙을 구경할 수 있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자유 귀족이신 카인드님이 아니었다면 평생 동안 타지 못했겠죠.”

애쉬가 흥분해 고래고래 외쳤다. 주위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생각없이 내지른 외침 같지만 애쉬는 은연중에 말하고 있었다. 위대한 귀족분이시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그 효과로 옆에 있던 승객이 테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안내를 하던 선원들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는데요.”

“귀찮은 일은 미연에 방지해야죠.”

테드의 속삭임에 애쉬가 씩 웃으며 말했다.

⁂ ⁂ ⁂

“환상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군요.”

하얀색의 프리티스 사제복을 입은 여인이 나지막히 말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어딘가 나릇한 분위기를 담은 미형이었다.

“흑발흑안과 은발의 메이드…… 확실한 특징을 보니 알겠군요. 테드 크루시안입니다. 설마 그도 드래프리온에 향할 줄은 몰랐군요. 교의 정보가 새어나간 것 같습니다.”

시리엘의 옆에 있던 성기사복을 입은 준수한 얼굴의 짧은 금발 남성이 말했다. 시리엘이 입고 있는 황금색 문양이 들어간 사제복과 매우 흡사한 옷이었다. 커다란 차이점을 하나 꼽자면 활동하기 쉽도록 거추장스러운 부분을 모조리 제외했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성법이 치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시리엘 님. 그들에게 보고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보고… 말이죠. 루인, 이 기회에 알아두세요. 그들은 우리의 적이에요. 지금은 목적이 있어 함께 행동하고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섬멸해야하는 악의 중추들이죠. 그런 그들에게 우리가 보고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루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충의의 뜻을 보였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럼 저들을 못 본 척 하시겠습니까?”

“그 방법이 최고라고 생각 들지만… 증오스런 악마를 보고서도 못 본 척 할 수는 없지요. 다행히 우리가 먼저 저들을 발견했습니다. 배에 탑승하신 승객 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면 될 일이죠. 루인은 아직 그걸 가지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시리엘님에게 받은 성물을 제가 버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품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깃든 힘은 악마를 파멸케 하는 힘이니, 적절한 시기를 노려 그걸 사용하도록 하지요.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악을 처단하는 거에요.”

“아아…! 벌써부터 제 눈에는 악마가 괴로워하며 사라지는 광경이 보입니다! 정의가 또 다시 승리하는 광경이!”

루인의 몸이 환희에 떨었다.

앞에서 들려온 초를 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최고였으리라.

“꼴값 떨고 있네.”

루인의 푸른 눈동자가 앞을 맹렬히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루인과 마찬가지로 여객선의 탑승을 위해 줄을 서고 있는 배불뚝이에 옆머리에 작은 뿔이 솟아난 마족 남자가 있었다. 부유한 상인같은 복장을 한 그는 입꼬리 한 쪽을 말아 올리며 루인을 한 차례 훑어봤다.

“누가 천족의 골빈 연놈들 아니랄까봐. 대화도 참 아스트랄하게 하네.”

“이, 이, 이, …이! 불경한 놈이!!”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루인이 외쳤다. 오른손은 허리춤에 있는 검손잡이를 꽉 잡고 당장이라도 뽑아들 듯이 움찔움찔 거리고 있었다.

“왜? 검 뽑아서 찌르게? 찔러봐! 찔러보라고!”

마족 남성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이 루인에게 튀어나온 똥배를 내밀었다. 소란스러움에 주위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속으로 한 숨을 삼킨 시리엘이 서둘러 루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루인! 진정해요! 여기서 검을 뽑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져요. 우리의 목적은 잊지 않았겠죠?”

“크윽!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 저놈이 시리엘 님에게 모욕을…!”

“저는 괜찮아요. 저런 악의 찌꺼기같은 마족들은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어요. 그들이 내뱉는 말은 루인의 귀를 더럽혀요. 반응하지 마시고 무시하세요. 자아, 저를 따라 심호흡을 해요. 후~ 하, 후~ 하.”

“후~ 하. 후~ 하.”

시리엘을 따라 크게 숨을 내쉬기 시작한다. 가슴에 고인 뜨거운 것을 입 밖으로 내보내자  주체할 수 없던 분노가 식어 내린다. 과연 시리엘 님 이시다!

“아이고, 승객 여러분! 저 꼬라지좀 보시오! 연놈들이 쌍으로 미쳐서 지랄이오! 내가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제대로 된 천족놈들을 본 적이 없어! 본적이!”

마족 남성이 자신의 튀어 나온 배를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출렁출렁 거리는 배를 보는 루인의 얼굴이 한껏 굳어 졌다. 당장 검을 뽑아들어 놈의 내장을 빼주고 싶었다. 그럼 저 출렁이는 배도 홀쭉하게 들어가겠지.

“너 같은 놈을 상대할 시간이 없다. 좋게 말할 때 꺼져라!”

“어이쿠! 이젠 대놓고 협박하네! 여러분 모두 들었소? 저 천족 놈이 꺼지지 않으면 당장 내 배를 가르겠다고 했소!”

“그런 말 안 했다!!”

앞으로 나가려는 루인의 팔을 붙잡은 시리엘을 도와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승객들을 이끄는 역을 맡은 여객선의 선원이었다. 하얀 복장을 한 그는 빠르게 다가와서는 마족과 루인의 사이에 섰다.

소란의 중심이 마족 상인과 천족 사제라는 것을 확인한 선원은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짜증스러움을 구태여 숨기지 않았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여객선 내부에서는 소란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승선을 하기 싫으시다면 저리로 나가주시지요.”

마족과 천족의 다툼은 흔한 편이었다. 실제로 그는 선원으로 생활하며 몇 번이나 겪은 상황이기도 했다. 심할 경우 칼부림까지 나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경우 가차없이 내쫓아야 했다.

“미안하오. 그렇지만 저들이 먼저 나를 위협했소. 혹시 여객선 안에 나를 지켜줄 병사가 있소?”

“저놈이 또 되도 않는 망발을…!”

“진정해요, 루인. 우선 여기에 계신 여러분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려요.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해요.”

시리엘이 먼저 고개를 숙이자, 루인이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선원은 그들을 한 차례 노려보고서 입을 열었다.

“다시는 이런 소란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족 분께서 질문에 답하자면 여객선 안에는 몬스터와 치안을 대비한 전투병력들이 있습니다. 저희 선원들이 거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다시금 이런 소란이 일어날 경우 죄를 묻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흠. 알겠소. 저들이 나를 기만하지 않는다면 문제없는 일이오.”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거에요.”

마족 한껏 루인과 시리엘을 노려보며, 시리엘은 지친 기색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 작품 후기 ============================

천족과 마족은 유전자 레벨로 서로 싫어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