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75화 (17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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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마수.

메피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대 유적으로 향했다. 그녀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찢어진 가죽 옷을 걸치고 있는 모험가였다. 그는 바깥 상황에 어리둥절하다가 서둘러 고개를 무릎 꿇으라는 동료 모험가의 손짓에 동료의 옆으로 뛰듯이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도 모험가였다. 반쪽이난 창을 등에 메고 있는 모험가다. 메피아는 모험가들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브렌을 비롯한 모험가들 전원이 거지나 다름없는 꼬락서니다. 그런 주제에 피부에 자잘한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피에 젖은 넝마 같은 옷도 보였다. 그러나 꽤나 좋은 포션을 사용한 것인지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없군.”

고대 유적에서 나온 모험가는 총 10명이다. 그 중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테드 크루시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긴장을 풀며 자신의 오른손 검지에 있는 사파이어 반지와 손목에 있는 은색 팔찌를 건드려 확인했다. 준비는 되어 있다. 상대는 산맥의 절반을 날릴 정도의 대마법을 사용한 직후다. 지쳐있을 것이다.

메피아의 시선이 다시금 사이나에게 향했다.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네년의 잘난 주인이 보이지 않는군. 정말로 고대 유적에 있는 게 확실하나? 밖의 상황을 알고 도망친 건 아니고?”

사이나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리라고 말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당신 따위가 무서워 도망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네년의 어조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놈이라면 짐의 남동생을 해칠 생각은 하지도 못했겠지.”

거기다 테드는 한 번 단신으로 쳐들어 온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은발의 메이드를 구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비록 십이각 중 두 명이 있다지만, 황궁에 비하면 경비 부분에서는 허술하다.

달리 생각해도 사이나가 이곳에 있는 한 테드는 도망치지 않는다.

“……저 폐하.”

메피아의 관심 밖에서 정신을 추스린 애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렸다. 이곳이 딥크스의 황궁이었다면 그녀의 곁에서 보좌를 핑계로 아부를 하기 위해 모여 있는 귀족들이 예의가 없다며 노발대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귀족들이 없고, 마침 메피아도 멍하니 있던 참이었다.

“무엇이냐?”

“하늘 위의 붉은 마법진… 폐하께서 손수 사용하신 것이옵니까?”

메피아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법진은 방금 완성되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운석을 소환 할 수 있다.

“그렇다. 짐이 준비한 마법진이다. 이제 완성되어 발동만 하면 되는 상태다.”

“소인이 비록 마법에 대해서 무지하지만, 저 마법이 심상치 않은 대마법임은 알고 있사옵니다. 혹여 무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어찌하여 고대 유적까지 소멸케 할 수 있는 대마법을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있겠사옵니까?”

“…….”

메피아는 애쉬를 얼굴을 지긋이 쳐다봤다. 안경너머의 눈동자에는 떨림이 없다. 그는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용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묻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일터.

“간단하다. 여차하면 그대와 모험가를 비롯해 고대 유적까지 포함해서 날려버릴 생각이기 때문이다.”

“허나 고대 유적은…….”

“알고 있다. 어쩌면 고대 유적 안에는 전설에나 나올법한 보물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그 고대 유적을 없애는 것은 국가적으로 보나 대륙적으로 보나 뼈아픈 손실이지. 허나 그럼에도 짐은 태자를 살해한 역적을 없애고 싶다. 간혹 잠자리에 들면 꿈속에서 남동생이 나오는 날이 있다. 올린버크는 원통하다고 짐에게 말하지. 짐은 한시라도 빨리 올린버크의 한을 풀어주고 싶다. 그게 설령 고대 유적을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메피아는 말하는 중간에 웃음이 나올 뻔 한 것을 참았다.

올린버크가 꿈속에서 나온다? 거짓말이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꿈속에서 본적 없다. 오히려 지금 와서는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쩔 때는 속 시원하게 말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자리는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내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만약 그녀가 올린버크가 죽은 것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고 대처도 하지 않는다면 제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메피아의 평가가 냉혹하기 짝이 없는 황제로 알려지는 것은 둘째 치고 황태자 암살의 배후에 메피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생겨난다. 실제로 메피아가 숙청 할 때 귀족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나돌았다. 황녀가 황제의 자리를 탐해 황태자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그녀의 눈에 애쉬가 침음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테드를 소문이상으로 테드를 증오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귀족과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사소한 것이라도 이용해야한다. 그게 황제의 자리다.’

가족이 죽어 분노한 황제. 귀족과 백성들의 공감을 사고 동정심을 받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여기에 있는 모험가들을 보내주실 수 없겠사옵니까? 이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 당했다라, 그 말을 믿을 만큼 메피아는 어수룩하지 않았다. 테드는 지명수배가 되어있다. 은발의 메이드라는 눈에 띄는 하녀까지 거느리고 있으며 황태자 살해라는 죄목을 가지고 있기에 지명수배지를 한 번 본 자라면 잊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여기에 모여 있는 모험가들은 A등급의 모험가다. 거대 클랜을 운영하는 자들도 있다. 한 때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군. 그대와 모험가들은 몰랐겠지. 모를 수 밖에. 놈은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놈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벗어나도 좋다. 지금 일어서서 숲을 나가라. 바깥에 있는 병사들이 그대들을 공격하지 않게 조치를 취해주겠다.”

솔직히 말해서 모험가들이 거슬렸다. 때로 덤빈다고 해도 마법을 발동 시켜 몰살 시키는 수가 있지만, 모험가 길드가 껄끄럽다. 더군다나 애쉬는 펠리스 왕국의 집행자다. 주권 결정전이 얼마 안남은 시기에 되도록 타국과의 마찰은 피하고 싶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테드를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폐하의 크나큰 자비에 황성하옵니다. 잠시 모험가들과 의견을 나누어도 되겠사옵니까?”

“그대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지.”

메피아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고대 유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브렌님 폐하께서 자비를 내려주시니 모험가들을 이끌고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시지요.”

애쉬가 브렌에게 다가와 말했다. 브렌은 입을 꾹 다물고 불만스레 애쉬를 쳐다봤다.

“지금 우리보고 그를 버리고 도망치라는 것이오?”

브렌에게서 흉흉한 분위기가 새어나온다. 그가 말하는 모험가의 신의에 위배되는 행동이나 다름없는 것을 애쉬가 강요했기 때문이다.

“도망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곧 모습을 드러내실 테드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서라는 것입니다. 테드님과 사이나님이라면 우리가 없어도 이곳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테드님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은 인정하오. 허나 그는 몇 시간 전에 산맥의 절반을 증발시키는 고대 마법을 사용했소. 지금의 그는 만전의 사태가 아니오.”

“……여러분이 여황에게 기회를 받은 것은 모험가 길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으로 남아서 싸운다면 그 이점은 사라집니다. 브렌님의 행동은 스스로 선택해 역적을 돕는 행위입니다. 역적의 동료가 됩니다. 즉, 상대방에게 정당한 명분을 쥐어주게 되죠. 모험가 길드도 나설 수 없어요.”

그렇다 메피아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득이었다. 떠난다면 그것으로 좋고, 남는다면 역적의 동료가 되니 모험가 길드도 뭐라 할 수 없다. 메테오로 한 번에 쓸어버리면 된다.

“……본인은 남겠소. 다른 모험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브렌이 주위에 있는 모험가들에게 물었다. 잠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몇몇의 모험가들이 입을 열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신의’보다 실리는 선택했다.

“……브렌님에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저희는 딥크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모험가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생각하면… 브렌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적의 동료로 지명 수배를 당하면 저희 클랜 자체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클랜을 위해서도 이곳에 남을 수 없습니다.”

생계, 클랜 등을 이유로 그들은 떠날 것을 말했다. 모험가 중 20명이다. 브렌은 탄식하면서도 그들을 이해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두고온 동료가 있다. 그들을 억지로 붙잡을 순 없다.

“알겠소. 본인은 당신들의 사정을 이해하오.”

브렌은 떠나가는 20명의 모험가를 보며 애쉬를 향해 시선을 넘겼다. 애쉬는 이곳에 남았다.

“당신은 왜 남았소? 아까는 떠날 것처럼 말하더니.”

“저들처럼 여기서 벗어나는 게 현명한 선택이죠. 근데 제 임무가 테드님의 옆에 붙어 있는 거라서요. 어떤 일이 있어도 붙어 있으라는 전하의 말이 뒤늦게 생각났죠. 이 일을 빌미삼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라이거 전하는 바라던 바라고 하겠죠.”

애쉬는 라이거가 이곳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했다. 어렸을 때부터 모셔온 주인이다.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분명 메피아의 앞에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기꺼이 선전포고를 날릴 것이다.

……이곳에 라이거가 없는 것에 감사하며 애쉬는 메피아를 쳐다봤다.

메피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애쉬를 보고 있었다.

“이것이 그대의 뜻인가?”

“그렇사옵니다. 폐하.”

애쉬의 얼굴에 평소의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메피아는 시선을 고대 유적을 향해 돌렸다.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저는 흩날리는 재가 아니라 애쉬 제딘으로서 선택했습니다. 제 독단적인 선택에 펠리스 왕국의 뜻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흥.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날아오는 비웃음에 애쉬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포석은 깔아 놓았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면 펠리스와 관계없는 애쉬의 독단이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다. 비록 애쉬는 펠리스에 돌아가게 되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리고 겨우 이런 일에 쉽게 일어날 전쟁이 아니고.’

메피아가 정말로 전쟁을 바란다면 무슨 수를 써도 일어나는 게 전쟁이다. 명분이라면 억지로 만들면 되니까.

그때였다. 고대 유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들어섰다.

바람 소리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뚜벅거리며 걷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곳에 있던 모든 시선이 고대 유적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한 명의 청년이 있었다. 검은색 재킷을 입고 후드를 뒤집어쓰고서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

메피아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붉은색의 눈동자는 맹렬하게 흔들리며 그녀가 동요하고 있음을 알렸다.

후드 속에있는 루비처럼 빛나는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뚝 하고 멈추는 기분이었다. 메피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테드의 모습이 ‘하늘의 눈’을 통해 본 미래의 영상과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는 이미 완성되었고, 자신이 늦어버렸음을.

“테드 크루시안…!”

하늘에 떠있는 마법진에 향해 있던 테드의 눈동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메피아에게 향했다.

이번이 3번째 만남이었던가. 모두 썩 좋지 않은 만남이었다.

“대역죄인! 테드 크루시안! 순순히 투항해라! 그렇지 않다면 황태자 살해범으로 이곳에서 즉결 처형하겠다!”

메피아가 두려움을 떨쳐 내듯 큰소리로 외쳤다. 몸안에서 마력을 끌어 올린다. 생각 같아서는 곧바로 메테오를 사용하고 싶었다. 대마수를 토벌하느라 지친 상태이니 단시간에 메테오를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테드는 담담히 메피아를 쳐다봤다. 사람을 분석하는 듯한 차가운 눈동자였다. 메피아가 이를 악물고 손을 들었다. 십이각의 일원인 마운과 테리가 각각 대검과 세검을 뽑아들며 대지를 박찼다.

지금껏 단련해온 육체를 이용해 군더더기 없는 자세로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전력으로 달렸다.

주시하고 있던 사이나가 움직였다. 백색의 검을 이용해 그들을 동시에 베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테리가 양손에 든 두 개의 세검이 사이나의 검을 막았다. 굉음이 울린다. 뒤늦게 브렌이 움직이지만 허공으로 점프한 마운을 잡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사이나가 마운에게 시선을 파는 순간, 그녀에게 강풍을 담은 두 개의 세검이 휘몰아쳤다.

“예쁜 아가씨. 저 친구는 내버려두고 나랑 놀자고!”

“…….”

사이나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피어난다.

마운은 허공에 생성된 하얀색 마법진을 밟으며 허공을 질주했다. 그가 신고 있는 판금 부츠의 마법효과다.

테드의 코앞까지 다가온 마운이 검은색 대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수 천명의 피를 먹은 검신에서 검붉은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굉천마검(轟天魔劍)! 죽어라, 테드 크루시안!!”

검붉은 검이 테드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진다. 마운은 그의 몸이 정수리에서 갈라져 정확하게 일도 양분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껏 이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 살아 남은 자는 없었다.

테드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무감정하게 살의를 내뿜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쳐다봤다.

검붉은 대검이 테드의 후드에 닿는다. 그리고 튕겨나갔다.

마운은 자신의 시선이 붉은 마법진이 그려진 하늘에 가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동시에 붕떠 있는 기분이 들면서 몸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음을 알았다.

검이 닿는 순간 엄청난 힘에 의해 육체에 충격이 가해 튕겨나갔다. 그의 대검은 반쪽이 났고, 검은색 갑옷은 여기저기 금이 갔다.

마운이 바닥에 철푸덕 떨어졌다. 무거운 판금 갑옷을 입고서도 죽지 않은 것은 단련된 육체와 마나로 전신을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운은 피를 토했다. 낙하 충격때문이 아니라 공격이 튕겨나갔을 때의 충격으로 인한 상처다.

“무슨…. 마법인가…?”

마운은 자신이 튕겨나간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기색은 없었다. 마력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검이 닿는 순간 튕겨나갔다. 그래. 반사됐다.

“…….”

테드는 마운의 중얼거림을 듣고서도 무시했다. 그에게 일반적인 물리공격을 반사시키는 ‘위광’의 효과를 설명해 줄 의리는 없었다. 그가 위광의 효과를 뚫고 데미지를 줄려면 조금 특별한 힘, 예를 들면 정령력이나 마력 등을 복합시킨 힘 등을 담거나 격이 다른 힘의 양을 담은 공격이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마운의 공격은 위광을 뚫지 못했다.

“네놈이 그렇게 나오겠다면… 마법을 발동시키겠다.”

메피아의 말을 들은 테드가 어이없는 헛웃음을 띄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나와.

메피아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와 마운과 테리는 메테오에서 몸을 지켜줄 물건을 소지하고 있다. 그녀가 오른손에 끼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가 바로 그것이다. 마법을 발동시키면 고대 유적을 날아갈 것이고 모험가 길드에게 질타 받겠지. 허나 테드 크루시안을 이곳에서 죽일 수 있다면 그것도 싼 편이다.

“발동해.”

너무나도 담담히 내뱉는 그 말은 그녀가 예상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이건 메테오다. 이 일대를 단숨에 날려버릴 것이다. 마법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네놈이 마법으로 막아낼 시간은 없다. 설령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이곳을 포위하고 있는 4,000의 병사들이 움직일 것이다.”

“뭘 그리 묻지도 않은 걸 설명하나.”

테드가 메피아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딛었다.

느껴지는 위압감에 메피아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가 흠칫한다. 자신이 물러섰다고? 말도 안 된다. 적은 대마수 토벌로 인해 지쳐 있는 상태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날 죽이기 위해 준비했을 터다. 여기까지 와서 뭘 망설이지? 아니면 단순히 허세에 불과했나.”

한 발자국 더 걸어온다. 메피아는 정신을 다잡고 메테오를 발동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이유는 없지. 죽어라.”

붉은색의 마법진이 진동한다.

마법진 아래에 있던 모험가들은 주위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간 것을 느꼈다. 마치 사막 한 복판에 있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마법진의 표면에서 붉은색의 마력 전류가 일어나며, 그 중심에서 천천히 불타는 운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에 테드가 사용한 메테오 스트라이크와는 조금 다르다. 테드의 메테오가 우주에서 소환하는 것이라면, 메피아의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소환이 아니라 제작이다. 운석을 만들어내고 있다.

파괴력 면에서는 비슷할 것이다. 단지 범위의 차이가 있을 뿐.

“프로즌 프로스트(Frozen Frost)”

운석이 반쯤 모습을 드러냈을 때, 테드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세상이 얼어붙었다.

흙바닥이 딱딱한 동토가 되었으며, 잡초의 풀잎과 나뭇잎이 단단하게 얼어붙어 날카롭게 변했다. 경악스러운 것은 하늘에 떠있는 붉은색의 마법진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마법진이 얼어붙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그것이 마나채로 얼어붙었다. 반쯤 완성된 불타던 운석 또한 파랗게 얼어붙었다.

이곳에서 얼어붙지 않은 것은 테드의 의도에 의해 효과를 비껴간 생물들 뿐이다.

“…이건… 불가능… 하다. 마법 자체를 얼려 버리다니….”

메피아가 나오지 않는 말을 쥐어짜냈다. 메피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두 눈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프로즌 프로스트라는 마법은 그녀도 알고 있는 마법이다. 그러나 마나를 얼릴 수 없다. 세계가 얼어붙지 않는다.

테드가 오른손을 위로 뻗었다. 얼어붙은 마법진을 향해 주먹을 쥐는 시늉을 하자 운석과 마법진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잔해가 입자가 되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치 눈처럼 천천히 내리는 얼음 입자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환상적인 모습이었으나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이 그들의 몸을 지배했다.

테드가 메피아를 향해 한 발자국 걸음을 내딛었다.

찡- 하는 소리와 함께 메피아의 오른손에 있던 팔찌가 산산 조각났다. 《매직 카운터(Magic Counter)》의 효과가 발동되며 팔찌가 박살난 것이다.

‘…무슨 마법을 사용한 거지?’

메피아가 자신의 몸을 살폈다. 매직 카운터의 효능 덕분에 마법의 효과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이변을 눈치 챈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얼음 입자가 허공에 멈춰있다. 이곳에서 움직이는 자가 한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숨을 쉬지도 않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설마… 시간을… 멈춘 건가….”

그것이야 말로 진짜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말로 시간을 멈췄다면 테드의 경지는 이미 스승인 메티스를 뛰어넘었다. 더 이상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테드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토를 밟으며 다가오는 무표정한 모습에 희미한 공포를 느낀 메피아가 마력을 움직이려했다. 마력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그녀가 테드를 쳐다봤다. 테드는 멈추지 않았다.

단 15초 만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착한 테드가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가. 넌 날 막지 못해.”

============================ 작품 후기 ============================

사람인생님 말씀대로 메피아가 테드를 증오할 마땅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서 설명했듯이 대외적으로는 메피아가 테드를 증오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피아의 행적을 알고 있는 애쉬도 당연히 메피아가 테드를 증오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메피아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증오보다는 불안에 가깝습니다.

제가 원래 후기에 이런 거 잘 안 쓰는 스타일인데 독자님들을 위해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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