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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마수.
대마수가 뛰었다.
모험가들은 대마수와 3KM이상 떨어져 있다고 방심할 수 없었다. 대마수가 달리는 속도는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속도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어느새 거리가 2KM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브리핑때에도 말했지만, 니플헤임의 유효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100M입니다. 대마수한테 치여서 날아갈 바에 바닥에 엎어져 밟히는 걸 추천합니다.”
왼손으로는 마나 포션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오른손으로는 마법을 발동한다. 파이어볼이 대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대마수는 날아오는 화염구를 피하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다. 대마수의 머리에 화염구가 부딪히며 폭발한다. 검은 연기를 뚫고 대마수가 내달렸다.
파이어볼은 조금의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하다못해 그 다리를 멈칫거리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허공에 나타난 검은 쇠사슬이 대마수를 향해 쇄도한다. 그러나 이미 최고속도에 도달해있는 대마수를 묶을 수는 없었다. 사슬이 대마수의 몸에 닿는 순간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흠. 본인이 나서겠소. 물소 사냥은 본인의 주특기지.”
브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대마수가 뛰어오는 정면에 서서 몸 안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브렌의 신체에서 하얀색 오오라가 피어오른다. 그의 몸이 팽창하다 못해 증폭한다. 안 그래도 위협적이전 근육이 울퉁불퉁 커다래진다. 그가 딛고 있는 지면이 쩌적 금이 간다.
《백호의 기세》
마나를 사용해 신체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스킬이다. 브렌의 아이덴티티 같은 스킬로 그가 백의 모험왕이라 불리게 해주는 스킬이기도 했다. 브렌은 이 상태에서 오우거를 단 한 주먹에 처리한 적이 있었다.
“흡!”
브렌이 양 다리를 벌리고 주먹을 들었다. 하반신을 안정시키고 주먹을 뒤로 뺀다. 노리는 것은 대마수의 머리다. 압도적인 힘으로 머리를 박살내버리면 제아무리 대마수라고 해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대마수는 브렌의 모습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달려온 대마수가 브렌을 향해 머리를 들이 밀었다. 브렌이 지금껏 수 만, 수 십만 번을 휘둘러 단련한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이 대마수의 이마에 닿는 순간 브렌은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실패했다고.
그를 몇 번이나 구해주었던 날카로운 직감이 여지없이 발휘되고, 무의식속에 녹아들어가 있던 모험의 경험이 움직였다.
주먹이 대마수의 옆얼굴을 비껴나간다. 대마수가 머리가 돌려졌다. 브렌이 왼발을 움직여 대마수의 배를 찼다. 대마수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브렌의 신체의 절반, 우반신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피와 내장이 바닥으로 쏟아지며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러나 곧이어 브렌의 몸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흩어진 피와 내장이 사라진다.
“얼음 기둥(Ice wall)!”
테드가 외쳤다. 대마수의 아래와 위에서 각각의 푸른색 마법진이 나타난다. 마법진에서 얼음기둥이 솟구쳤다.
쾅! 대마수가 두 개의 얼음기둥 사이에 끼였다.
“뭐하냐! 정신 차려!”
테드가 주위에 모험가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대마수가 아니라 브렌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험왕 브렌이 허망하게 죽은 꼴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나 보다.
푸른색 얼음 기둥이 금이 가며 대마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핏방울이 바닥으로 뚜둑하고 떨어졌지만, 테드와 모험가들의 눈에는 지나치게 멀쩡해보였다.
“제길! 그냥 돌아갈걸!”
브루노가 짜증을 한껏 담아 외쳤다. 주위에 있던 모험가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나 브루노의 말에 공감하는 기색이었다. 그들은 대마수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악명이 자자한 대마수라 해도 자신들과 모험왕 브렌이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오만이었다는 것을 브렌이 죽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씨발! 난 불사신이라고!”
브루노가 시미터를 들고 돌격한다. 다른 모험가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의 뒤를 따랐다.
대책 없이 달려드는 무대포 같은 돌격이다. 만약 이곳에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이 있다면 입가를 비틀며 한껏 비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미 니플헤임이라는 공략이 끝나 있었다. 그들은 브루노가 말했던 것처럼 불사신이다. 이 돌격이야 말로 가장 쉽고 위협적인 대마수 공략방법이다.
대마수 레스가릭 자신을 향해 돌격해오는 모험가들을 보며 힘차게 콧김을 뿜었다.
머리에 달린 뿔에서 백색의 전기 파지직 튀었다. 대마수가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한껏 흔들었다. 모험가들 사이로 거대한 번개가 떨어졌다.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었다. 몸의 체모가 삐죽 솟아오르며 살가죽이 타오른다. 백색 전기는 이내 그들의 내부를 능욕한다. 모험가들이 쓰레기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땅바닥에서는 아직도 뇌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헬 프로즌(Hell Frozen)!”
대마수와 모험가들이 있는 바닥에서 거대한 얼음 가시들이 솟구쳤다. 얼음 가시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이전에 있던 얼음 가시를 밀어내며 새로운 가시가 계속해서 솟구쳤다. 부서진 얼음 조각이 우박처럼 주위에 내렸다.
모험가들의 육체가 꿰뚫리고 얼어붙었다. 반면 대마수의 육체는 꿰뚫리지 않았다. 다만 가죽에 묻은 피가 얼어붙었으나 그것도 곧이어 해동된다.
얼음이 대마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마수가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얼음이 유리처럼 깨져간다.
“썬더 볼트(Thunderbolt).”
번개가 대마수에게 떨어졌다. 대마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냈다. 속성 마법 중에서 파괴력만 놓고 보면 최고라 할 수 있는 뇌전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예상은 했다만… 전혀 통하지 않는 건가.”
테드는 힐끗 바닥에 엎어져 있는 얼어붙은 모험가들을 쳐다봤다. 그들도 브렌처럼 문제 없이 재생하고 있었다.
“사이나.”
“예. 주인님.”
“부탁하지.”
말이 끝나는 순간 사이나가 도약했다. 대마수를 향해 푸른색 빛을 내는 백색의 검이 닿는다. 이마에서 오른쪽 목까지. 하나의 검상이 생겼다. 깊은 상처는 아니나, 그 검은 가죽을 뚫었다.
대마수가 급발진한다. 사이나가 투우사처럼 현란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펑! 공기를 때리는 충격음이 떨어져 있는 테드에게도 들렸다.
사이나가 다시금 세검을 휘둘렀다. 몸통 쪽에 검흔이 생긴다. 피가 새어나왔지만, 피부를 긁는 수준이었다.
그녀가 고운 미간을 찡그리며 마력을 움직였다.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검기가 더욱더 진해진다. 백색의 검신이 파랗게 변해버릴 정도다.
대마수가 머리를 흔들었다. 대마수의 몸에서 대량의 전기가 솟구친다. 채찍보다 더 요사스럽게 움직인 전기가 사방을 찢으며 사이나를 노렸다.
전기는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 마냥 사이나의 좌우로 비껴나갔다. 그러나 딱 한 줄기.
딱 한 줄기의 전기가 그녀의 검을 타고 올라가 팔을 건드렸다.
“이건…….”
사이나가 대마수에게서 떨어져 자신의 오른팔을 쳐다봤다. 따끔거리는 감촉은 남아 있으나 전기는 없다. 그녀는 대마수가 전기를 내뿜는 순간에 권능을 발동했다. 전기를 지배해 자신의 몸에 닿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줄기의 전기가 그녀의 지배에 저항했다.
“권능이군요.”
그녀의 지배를 저항할 수 있는 건 강력한 힘 혹은 특별한 힘일 경우다. 대마수의 전기는 후자에 속했다. 저건 특성이 아니라 권능이다.
“비키시오, 메이드!”
브렌이 사이나의 뒤에서 달려왔다. 그의 양손에는 하얀색의 오러가 이글거리며 맺혀있었다.
브렌의 자랑인 백열권이 대마수의 몸을 공격했다. 하얀 전기가 브렌의 팔을 타고 몸속으로 흘렀다. 브렌이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일어난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면 된다. 그러다 죽으면 다시 일어나서 주먹을 휘두른다.
대마수의 뿔이 브렌의 복부를 관통했다.
“크읏…! 이 놈!”
대마수가 브렌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브렌은 한 손으로 대마수의 머리를 붙잡으며, 다른 한손으로 주먹을 내리쳤다.
사이나가 움직였다. 그가 시선을 끌고 있는 틈에 옆에서 검을 휘둘렀다. 준비된 일격은 대마수의 가죽을 뚫고 깊숙한 상처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대마수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사이나가 피를 흘리며 튕겨나가고 브렌이 바닥에 처박혔다.
재생을 끝마친 모험가들이 좀비처럼 일어났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대마수를 향해 덤벼들었다. 눈에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대마수의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4명을 죽이면 다른 4명이 달려든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테드가 오른손을 하늘로 뻗었다. 허공에 얼음창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중 가속(Triple Excel). 충격 강화(Power Strike).”
처음에는 투박한 얼음창이었다. 그러나 버프 마법을 걸면 걸수록 얼음 창이 깎여나가고 다듬어졌다.
“……삼중 부스터(Triple Booster). 마법 강화(Magic Upgrade).”
이미 15개의 마법을 얼음창 하나에 걸었다. 적은 마력으로 최고의 위력의 마법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테드의 이마에 땀이 주르륵 흘렸다. 얼음창을 포함한 총합 16개의 마법은 테드의 집중력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짙푸른 얼음창은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았다. 싸늘한 냉기를 흘리고, 창날은 더 없이 날카롭다.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려서 내구도가 약한 얼음창에 마법을 인첸트 시켰다. 조금만 밸런스가 무너져도 얼음창은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처럼 산산 조각날 것이다. 마법사가 보았다면 경악해서 까무러칠만한 광경이었지만, 다행히도 이곳에 테드를 보고 있는 마법사는 없었다. 주위에는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애쉬뿐이다.
테드의 시선이 대마수에게 꽂힌다. 대마수는 모험가에게 둘러싸여 분투하고 있다. 전격를 내뿜어보지만, 사이나의 권능에 의해 대부분이 허공 속에서 사라질 뿐이다.
대마수가 상대하고 있는 A등급의 모험가는 전원 검기를 사용할 줄 안다. 비록 대마수에겐 종이에 베인 상처 정도밖에 주지 못한다고 해도 피해가 누적되면 큰상처가 된다.
처음부터 상대했더라면 모험가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궁니르를 맞은 대마수는 분명하게 지쳐 있었다.
“타겟 온.”
17번째 마법을 얼음창에 건다. 타겟은 몇 번을 짓밟아도 좀비처럼 꾸역꾸역 일어나는 모험가를 상대하고 있는 대마수다.
궁그닐을 던지는 옥좌에 앉은 오딘처럼.
“그만 죽어라.”
얼음창을 던졌다.
짙푸른 얼음창이 허공에서 살짝 흔들리는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대마수 레스갈릭의 몸을 관통했다.
뒤늦게 공기를 찟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리고, 얼음창의 경로에 있던 땅이 허공으로 비산하며 경로에 있던 재수 없는 모험가들의 몸이 찢겨 나갔다.
대마수가 비틀거렸다. 몸을 꿰뚫은 얼음창은 이내 화려한 꽃을 피웠다. 대마수가 바닥에 쓰러졌다.
푸른색의 짙푸른 얼음으로 된 얼음꽃이 대마수의 몸위에서 피어났다. 얼음꽃에는 붉은색의 피가 흘렀다.
“뭐해! 죽여버려!! 숨통을 끊어!!”
브루노가 외치며 반쪽 난 시미터를 들고 모험가 들과 함께 쓰러진 대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온갖 병기가 대마수의 몸을 헤집었다. 정전기 같은 미약한 백색 전기가 반짝였으나, 그 뿐이었다.
“죽었어! 이 빌어먹을 소 새끼가! 드디어! 뒈졌다고오오!!”
브루노가 대마수의 머리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기다란 혀를 빼물고 죽은 대마수의 머리가 모든 모험가들의 눈에 새겨진다.
대마수 토벌은 끝났다.
모험가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십 몇 번의 죽음을 반복한 끝에 승리를 얻어냈다.
============================ 작품 후기 ============================
브루노는 13번 죽었는데 테드가 2번 정도 죽였습니다. 물론 고의가 아니라 마법에 휘말린겁니다.
참고로 브렌은 4번 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