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71화 (17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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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마수.

주위는 침묵만이 떠돌았다.

테드는 기꺼이 침묵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당연했다. 테드의 말은 다르게 죽으면서 싸우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언데드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이번 토벌에 불참을 표한다면 구차하게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질문이 있소. 그런 어마어마한 고대 마법이라면 필시 부작용이 있을 법 하오만, 어떤 부작용이요?”

테드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단테의 최후가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을 떠올렸다. 그것은 부작용이지만 부작용이 아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동안 니플헤임에 묶여있었다. 니플헤임이 아니었다면 그의 수명은 이미 옛날 옛적에 다했을 것이다. 그의 몸은 니플헤임이 해제되는 순간 무시하고 있던 시간을 그 육체는 한 번에 받았다.

“……부작용은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여러분의 정신이군요. 이번 토벌의 대상인 대마수는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몇 번을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육체는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정신은 아닙니다. 반복된 죽음을 겪으면서 마모될 정신이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군요.”

“……대마수를 상대하면 몇 번 죽을지 알고 있나?”

테드가 고개를 저었다. 대마수가 얼마나 강할지 모른다. 혹은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다.

“죄송하지만 모릅니다. 한 번도 안 죽을 수도 있고 십 수 번을 죽을 수도 있습니다.”

브렌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우리를 고용한 이유를 대충이나마 알겠소. 우리는 당신을 위한 살아 있는 좀비로군.”

“……꺼림칙하다면 여기서 돌아가셔도 상관없습니다. 계약에 의한 불이익은 없을 거라 약속드리죠.”

부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니르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다. 차선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궁니를 맞은 대마수가 기절한 상태에서 모험가들의 공격을 맞고 토벌을 완료하는 것이다.

“나는… 참가하겠소. 고작 몇 십번 죽는다고 무너질 정신이라면 처음부터 모험에 발을 내딛지 않았소.”

모험왕 브렌이 참가의사를 표했다. 그를 시작으로 침묵속에서 망설이던 모험가들이 하나 둘씩 참가의사를 표명했다.

“최초의 대마수 사냥의 명성! 포기하기엔 내겐 너무 매력적이야.”

“모험왕 브렌은 실패할 모험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

모험가들은 저마다 호기롭게 외쳤다. 테드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브렌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토벌에 참가하는 모험가는 5명이 될까말까한 숫자이리라.

“나는 참가하지 않겠어. 난 황태자를 암살한 너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여마법사를 필두로 불참을 표명한 모험가는 3명이다. 테드는 굳이 그들을 멀득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모험가들이 토벌에 참가해주었다.

“그래. 방금 내가 말했던 것처럼 불이득은 없어. 떠나려면 떠나도 좋아. 다만 계약서에 적힌 대로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발설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군.”

“그럴 일은 없어. 우리는 모험가 길드와 한 계약을 어길 만큼 멍청하지 않아.”

여마법사는 오두막집을 나서기 직전 아쉬움을 담아 브렌을 쳐다봤다.

“브렌님. 잠시나마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음. 인연이 된다면 언제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것이오.”

그들이 오두막집을 떠났다. 남은 것은 테드 일행을 포함한 30명의 대마수 토벌대 뿐이다.

한 차례 목을 가다듬은 테드가 자신을 바라보는 모험가들의 안색을 살폈다. 그들은 잠시 뒤에 대마수를 상대하게 된다. 과연 모험가 길드가 선별한 베테랑들이라고 할까. 브루노처럼 살짝 흥분되어 있는 모험가는 있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럼 본격적인 토벌에 앞서 브리핑을 시작하죠. 뭐, 이미 대략적인 공략 방법에 대해선 알고 게시겠지만.”

⁂ ⁂ ⁂

디는 길쭉한 원통형의 망원경을 꺼내 오른쪽 눈에 가져다 댔다. 특수 제작된 이 단망경은 나무나 벽을 투시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정찰병들이 군침을 흘리며 탐낼 것 같은 이 물건은 아쉽게도 투시 마법의 희귀함 덕분에 양산이 불가능하다.

‘테드…… 크루시안…!’

디가 오두막집을 나서는 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속으로 뇌까렸다. 큰소리로 중얼거려도 들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는 임무에 나서는 순간부터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분명 오두막에 들어갈때는 다른 모습이었을 터인데…. 마법이었나.’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부지런히 테드의 뒤를 쫓으면서, 한 손으로는 품안에 통신용 수정구를 꺼낸다. 마나를 불어 넣자 곧바로 상대방과 연결이 된다.

“…폐하. 경계의 땅, 초입 부근에서 테드 크루시안을 확인했습니다.”

“…….”

대답대신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메피아는 기뻐하고 있었다.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최대의 적이 자신의 구역 안에 있음에.

“과연, 과연. 모험가 놈들이 대마수를 처리하겠다고 한 이유가 놈이 있어서였나. 놈이랑 모험왕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보이는 군. 디, 현재 상황은 어떻지?”

“3명의 모험가가 이탈했습니다. 테드와 사이나를 포함한 인원은 총 30명입니다. 그 중 의뢰자인 애쉬로 보이는 인물과 모험왕 브렌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산맥에 들어가지 않고 초입에 서있습니다.”

“3명의 모험가는 대마수 공략을 포기 한 건가. 그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너는 놈의 동태를 신경 쓰도록 해라. 짐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겠다.”

디는 메피아가 테드에게 집착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림자에게 주기적으로 내려지는 명령이 바로 테드 크루시안의 정보를 캐는 명령이었다. 디는 집착의 이유를 모른다. 그림자로서 그저 따를 뿐이다. 하지만 지금 디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모험가들이 있습니다. 모험가 길드와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대륙에서 활동하는 모험가 길드는 국가도 함부로 나설 수 없다. 그들이 작정하고 국가를 적대시 한다면 모험가 길드와 국가 간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딥크스가 모험가 길드 따위에 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험가 길드는 어디까지나 모험가들이 편의를 위해 모여든 곳이다. 전쟁이 일어나도 모험가들 태반이 무시할 것이며, 모험가 길드를 탈퇴하는 모험가도 부지기수로 생길 것이다.

“하, 짐이 아무 생각 없이 병력을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나? 놈은 황태자를 암살한 최악의 범죄자다. 이미 수배령도 내려져 있지. 오히려 모험가 길드가 짐에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디. 너의 역할은 짐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묵묵히 그림자의 역할을 다하라.”

“네. 죄송합니다.”

메피아와의 연락이 끊겼다. 디는 수정구를 품안으로 갈무리하고서 다시금 망원경을 들었다.

병력을 소집하고 워프게이트를 통해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진군한다고 해도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 족히 2시간은 걸릴 것이다.

디는 내심 대마수 토벌이 실패해 모두가 죽기를 원했다. 모두가 안 된다면 적어도 테드만이라도.

⁂ ⁂ ⁂

대마수 레스가릭.

네메스 대륙에서 대마수는 유명하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로 알려진 대마수는 대미궁섬 바빌로니아와 더불어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이름 유명한 모험왕들이 지금껏 감히 시도도 하지 못한 사냥.

대마수가 지키고 있는 고대 유적 던전에는 온갖 소문이 나돈다.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은 기본이고 하늘을 베는 전설의 검과 모든 것을 막는 전설의 방패가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네메스 대륙에 나돌았다.

대마수 레스가릭의 외견은 커다란 검은 물소, 버팔로를 닮았다. 그러나 그 스펙은 일반 버팔로와는 말도 되지 않게 뛰어나다.

우선 크기. 높이만 5M에 달하는 거구이며 다리가 상당히 빠르다. 검은 가죽은 일반 도검은 흠집하나 내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에서는 전격을 뿜어내고, 몸통 또한 전기가 흐르고 있다. 섣불리 날붙이로 건들었다간 감전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레스가릭의 돌진이다. 방패병 200명을 가볍게 날려버릴 정도의 돌진력을 가지고 있다. 스피드는 군마를 탑승한 기사보다 빠르며, 힘은 방패병 300명을 손쉽게 날려버릴 정도로 강하다. 체력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

“산맥의 절반을 날리는 건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는 건 더 위험하지.”

산맥의 앞에서 테드가 중얼거렸다. 이미 그의 몸에는 온갖 버프가 걸려 있었고, 저궤도에는 은빛의 마법진이 폭격지점을 수정하고 있다.

테드의 뒤에선 모험가들은 저마다 긴장한 표정으로 테드를 보고 있었다.

“앱솔루트 배리어.”

하얀색의 반투명한 막이 테드를 비롯한 모험가들을 감쌌다. 방어마법 중 손에 꼽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궁니르를 통해 발생한 여파는 확실하게 막아 줄 것이다.

테드의 붉은 눈동자가 산맥의 한 곳을 쳐다봤다. 유난히 커다란 나무가 우거지고 낙엽이 깔려 있는 곳에 검은 소, 레스가릭이 옆으로 누워서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후각과 청각, 시각마저 뛰어난 레스가릭이라도 3KM 이상 떨어져 있는 테드와 모험가를 감지할 순 없었다.

“궁니르 한 방에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만….”

저궤도에서 은빛의 마법진이 움직인다. 미세한 각도 조정을 끝낸 마법진의 중심에서 빛이 모여든다. 한곳에 뭉친 빛은 이윽고 한계용량에 다다르고 조용히 폭격 명령을 기다렸다.

“발사해라, 《궁니르(Gungnir)》”

망설일 이유는 없었기에 테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저궤도에서 대기 중이던 은빛의 창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산맥은 빛에 잠겼다.

수 초간 산맥에 머무르던 빛이 점차 사그라 들어 사라졌다.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산맥의 모습은 모험가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거대한 크레이터. 그리고 중심에 쓰러져 있는 대마수.

정말로 산맥에 절반이 사라졌다.

“이런 미친! 이게 마법이라고…?!”

“만약 이게 도시에 떨어진다면…!”

테드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모험가들의 웅성거림을 무시한 채로, 굳어진 얼굴로 대마수를 응시했다. 대마수는 멀쩡하지 않았다. 온몸은 붉은 피로 흠뻑 젖어 있으며 오른쪽 뿔은 박살나 있다.

대마수는 쓰러진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리고 테드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눈동자는 확실하게 테드를 포착했다. 대마수가 투레질을 시작하며 오른쪽 앞발로 땅을 비볐다.

“진짜 그걸 맞고 살아 남냐! 전원 전투 준비!”

테드가 외치며 아공간에서 사자의 서를 꺼냈다. 이미 모험가들의 피는 먹여 놓았다. 생명력도 충분하다.

“니플헤임 전개!”

사자의 서를 중심으로 검보라색 파동이 퍼져나간다. 파동에 닿은 모험가들이 등골을 달리는 오한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모험가들이 제각각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들도 마나를 사용해 신체능력을 강화할 줄 알았다. 그들의 눈에도 크레이터의 중심에 있는 대마수가 똑똑히 보였다. 대마수의 모습만 보자면 중상이 확실한데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에 경상으로 착각할 정도다.

대마수가 뛰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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