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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대마수.
“산맥 절반이 증발한다고?”
믿을 수 없다고 되물은 것은 브루노가 아니라 입구 근처에 있던 모험가였다. 입고 있는 활동성을 추구한 개조로브와 손에든 흑색 스태프는 전형적인 모험가 일을 하는 마법사의 차림이었다.
“그런 마법이 가능하다고 어떻게 믿지? 내가 알기론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후드로 푹 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고대 마법이라 말했을 텐데요. 거기다 전 대마도사입니다. 당신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고요.”
“…….”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테드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그러나 반박은 없다. 실제로 모험가 일을 하는 마법사는 어중이떠중이들이다. 모험가 등급이 아무리 최고 등급인 A라고 모험가라는 점이 마법계에선 짐이 된다. 대부분의 귀족들과 마도협회의 마법사들이 돈이나 능력이 없으니까 모험 질이나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한다.
모험가이면서 마법사로 인정을 받는 건 아주 극소수다. 대표적으로 꼽자면 마도사의 경지에 이른 자들.
“……아무리 고대마법이라 해도 산맥의 절반이라면 대도시 수준의 크기야. 그걸 한번에 증발시킨다고? 내 눈에는 네가 사기꾼으로 보여.”
대마수가 있는 경계의 땅이라 불리는 산맥이 다른 산맥에 비해 훨씬작다고 해도 산맥은 산맥이다. 그 절반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는 마법? 모험가로서 구르며 온갖 마법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녀도 모르는 마법이다. 아! 고대 마법이구나! 하면서 어물쩍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다.
모험가들의 시선이 테드에게 꽂힌다. 한순간 압도 되어 그렇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댁이 말한 고대 마법에 관해서 설명해줘야겠군. 자칭 대마도사씨.”
테드에 가까이 있던 한 모험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야수 같았다.
“안 그래도 설명하려 했어. 내가 사용하려는 고대 마법은 궁니르…. 아, 이 중에 혹시 사도가 있나?”
어지간해서는 존중의 의미를 담아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험가들이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굳이 존중해줄 필요는 없었다. 반항하면 찍어 누른다. 지금 상황에선 그게 편했다.
테드의 질문에 4명이 손을 들었다. 사도 중 많은 수가 모험가의 길을 택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지구에서 온 사람도 있겠지?”
2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궤도 폭격이란 단어도 알겠지. 궁니르는 궤도 폭격 마법이야. 궤도 폭격이란 뜻을 알면 위력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
2명의 모험가가 놀란 얼굴을 하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궤도 폭격이란건 무엇이오?”
물어온 것은 브레인었다. 무심코 반말로 대답하려는 테드였으나 이내 그가 브렌임을 알아보고 존댓말로 바꿨다.
“이름 그대로 궤도에서 폭격하는 것입니다. 궤도란 것은 대충 하늘 보다 높은 하늘이라 할 수 있겠죠. 간단히 말해서 궁니르는 더럽게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해도 잘 모르실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저 둘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두 명의 사도를 가리킨 테드는 이내 자신의 앞에 환상 마법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띄웠다. 몇몇 모험가들이 뒤로 물러나 전투 태세를 잡다가, 뻘줌한 모양인지 괜히 뺨을 문지르며 마법을 쳐다봤다.
시뮬레이션 마법은 지구와 닮은 푸른 행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건… 네메스 대륙이군. 어렸을 적 아카데미에서 배운 적이 있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둥글다고 하며 선생이 그림을 그려 가르쳐 주었지.”
몇몇 모험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메스 대륙에 사도가 유입하면서 기본 지식등의 수준이 올라간 덕분에 설명을 할 수고가 덜었다.
“제가 쓸 궁니르는 이렇습니다. 대충 거리로 표현하자면 상공 1,000KM, 저궤도죠.”
손가락을 튕기자 행성 한 부분에 은빛의 마법진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마법진은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고 이내 빛줄기를 대륙으로 발사한다. 대륙에 발사된 빛줄기가 대륙에 닿는 순간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난다.
“……이런 마법이 정말 존재한다고?”
여자 마법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어왔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고대 마법에 상식을 바라지 마라. 그것들은 하나같이 괴랄한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까. 뭐, 고대 마법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네가 알겠냐마는.”
“…….”
테드가 이죽였다. 여자 마법사는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테드가 환상마법을 사용할 때부터 격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환상마법이 사용되기 전까지 그 낌새 조차 느끼지 못했다.
“마법의 위대함은 잘 알았소. 그대에게 능력이 있음을 믿겠소. 하지만 이렇게 범위가 크면 우리도 위험하지 않겠소?”
브렌이 범위 마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위력과 범위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옆에 있는 저도 죽겠지요. 그래도 여파는 있을테니 앱솔루트 배리어로 막아드리죠.”
“음. 그런데 말이오. 그 궁니르라는 고대 마법의 위력을 생각하면 당신 혼자서도 충분하리라 생각하오만, 왜 우리를 부른 것이오?”
테드가 허공에 손을 저었다. 환상마법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2년 전에 대마수 토벌을 시도한 클랜이 있었죠. 확실히 이름이 브레이버즈… 였었나. 하여튼 그 클랜은 절반이상이 마법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마법사의 마법 폭격이라면 대마수를 토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그런데 그들은 실패 했습니다.”
“과연… 대마수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한 것인가.”
브렌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 세계에는 이해불능의 희귀 몬스터가 많습니다. 마법을 사용했더니 도리어 마법을 포식하는 몬스터, 물리 공격에 완전한 면역을 가진 몬스터, 마법 저항력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높은 몬스터 등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도 부지기수죠. 그리고 대마수는 미지에 쌓여 있습니다. 전기를 부린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그 이상으로 위험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테드는 대마수가 높은 마법저항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크루시안이 가르쳐준 정보에 의하면 확실하게 높은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궁니르 한 방으로 죽지 않을 가능성이 생긴다.
“저는 궁니르를 맞은 대마수가 빈사 혹은 중상 상태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궁니르 한 방에 죽는다면 여기 있는 모험가들에겐 아주 좋은 일이겠죠. 이번 궁니르는 제 마력의 대부분을 소모합니다. 곧장 마력 포션으로 회복하고 뛰어들어도 잠깐의 틈이 발생하고, 마법사로서 정면대결은 피하고 싶고요.”
“당신의 작전은 알겠소. 이해도 가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작전이오. 당신의 마법이 실패했을 때의 방안은 없소?”
“물론, 준비했습니다.”
궁니르 하나 믿고 대마수를 퇴치하러 위험한 딥크스에 온 게 아니다. 대마수의 대책으로 가지고 온 작전은 오히려 궁니르를 사용하고 난 뒤의 상황이다. 아공간에서 검은색 표지를 가진 책을 꺼내든다. 보기에도 불길한 이게 없었다면 이곳에 있는 A등급 모험가의 숫자는 3~4배 정도 더 많았을 것이다.
“…불길해 보이는 책이군.”
브렌이 미간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는 저 책의 정체가 사자의 서임을 모른다. 단지 갈고닦은 직감이 불길함을 토로하고 있다.
“브렌님. 호수 아래에 있는 던전을 아시나요?”
“……알고 있소.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이었지. 본인이 도중에 포기한 던전이오. 무녀님에게 들었소. 당신이 그 던전을 공략했다지? 그 책은 그곳에서 얻은 것이오?”
모험왕이 이 토벌대에 참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무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던전을 혼자서 공략한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인물이 궁금했다.
“이건 사자의 서라고 불리는 마도서죠. 이걸 이용해 고대 마법인 니플헤임을 사용할 수 있지요.”
“또 고대 마법인가. 평생 동안 한 번 보기 힘들다는 고대 마법을 오늘만 두 번 보는 것 같군.”
옆에 있던 모험가가 질린 듯한 어조로 말했다. 테드는 그를 힐끗 봤다가 다시 브렌을 쳐다봤다. 이곳에서 신경써야 하는 모험가는 단 한 명, 백의 모험왕 브렌 뿐이다.
“니플헤임은 일종의 결계 마법입니다. 한정된 공간에 한해서 불멸자로 만들어주죠.”
“……불멸자라는 것은?”
브렌이 물었다.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다는 어조다.
“불사신. 머리가 박살나도, 심장이 꿰뚫려도, 온몸이 불에 타도 죽지 않습니다.”
“그런 병신 같은! 사기도 작작 쳐라! 열 살 먹은 애새끼도 아니고 그걸 우리가 믿을 것 같냐?!”
브루노가 외쳤다. 좋은 타이밍에 끼어들어줬다.
“확실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 언데드도 몸이 불타면 죽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에도 말했을 텐데. 고대 마법에 상식을 바라지 말라고. …이렇게 말해도 브렌님도 믿지 못하시겠죠. 그러니 직접 증명해드리죠.”
사자의 서가 허공에 뜨더니 이내 활짝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곳까지 오면서 사냥한 몬스터로 이미 생명력은 흡수해 놓았다. 니플헤임을 2~3번 펼칠 수 있는 양이다.
설마 이 마법을 이렇게나 빨리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주인님. 제가 하겠습니다.”
사이나가 앞으로 나섰다. 테드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네가 가지고 있는 반지가 발동할지도 몰라.”
테드가 눈짓으로 그녀가 왼손 약지에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3개월 전, 그녀는 흔쾌히 반지를 받아주었다. 테드는 직접 그녀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어주었다. 그때,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짓던 사이나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럼 반지를 빼고….”
“나랑 약속했잖아. 그 반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빼지 않겠다고.”
“…….”
아주 잠깐 사이나가 불만스럽게 쳐다봤다. 그러다 시선을 돌려 애쉬를 쳐다봤다.
“애쉬님이 있지 않습니까. 애쉬님이 나서고 싶어하시는 것 같군요.”
“어? …어, 어. 맞아요. 이런 일은 제 삼자인 제가 나서야죠. 테드님이 직접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거겠죠.”
무지막지하게 노려보는 사이나에 애쉬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솔직히 나서고 싶은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나서지 않으면 사이나와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는 좋든 싫든 사이나와 함께 행동해야 한다. 사이나가 아무런 힘도 없다면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시했겠지만, 그녀는 테드의 소중한 여인이다.
그녀의 한 마디에 자신의 평온한 인생이 나락으로 쳐박힐 수 있다. 베갯머리송사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특히 지금껏 보아온 테드라면 그녀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기세다.
“정말 괜찮겠어요?”
“무, 물론이죠.”
테드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작은 단검하나를 꺼냈다. 애쉬는 이미 니플헤임에 대해서 알고 있다. 니플헤임의 효과를 받기 위한 방법도 테드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매일매일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단검의 날은 조금의 흠집도 없이 깨끗하다. 단검의 날을 왼손 엄지에 가져다 댄다. 별다른 힘없이 연약한 피부가 베이며 핏방울이 맺혔다.
애쉬가 허공에 떠있는 사자의 서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신기하게도 피는 얼룩지지 않고 책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니플헤임 전개.”
테드의 말과 함께 사자의 서에서 나온 검보라색 파동이 지면을 훑고 사라졌다. 애쉬는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단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 검날은 자신의 가슴, 정확하게는 그 안에 있는 심장을 겨눈다.
“믿습니다. 테드님!”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단검을 찔렸다. 푹, 소리와 함께 애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테드가 그의 복부를 잡아 쓰러지는 것을 막았다.
“미친.”
브루노가 눈앞에 벌어진 쇼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어이없는 음성은 이곳에 있는 모든 모험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답로 브루노의 얼굴이 경악으로 커진다. 입이 벌려지고 두 눈동자가 튀어나올만큼 부릅떠진다.
단검이 바닥에 챙그랑 떨어진다. 옷을 타고 흐르던 피는 어느새 멎었다. 애쉬가 다리에 힘을 주어 테드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찢어진 앞섬 사이로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가슴팍이 보였다.
“뭐…. 이게 무슨….”
브루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증명종료. 이게 고대 마법입니다.”
테드는 굳어진 얼굴로 애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브렌을 향해 말했다.
“니플헤임의 유효거리는 이 책을 중심으로 약 100M. 지면이 심하게 파괴되면 마법이 풀립니다만, 마법이 유지되는 동안은 확실하게 불멸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몸이 조각나고, 뇌수가 땅바닥을 기어도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불사신이 되어 대마수를 상대해주세요.”
“…….”
주위는 침묵만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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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언제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