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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회.
테드는 파랗게 빛나는 동굴 안쪽에서 뒤로 돌아 동굴 밖을 쳐다봤다. 동굴밖에는 호수의 물이 가득 차있다. 호수의 밑바닥에 있는 이 동굴은 시스템의 의해 동굴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테드는 유유히 호수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전생에 한 번 가본 적 있는 아쿠아리움을 떠올렸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누구랑, 왜 갔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아쿠아리움의 펭귄과 상어가 전부다.
테드가 다시 뒤로 돌아 동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호수에 뛰어들어 던전속으로 들어온 테드는 마법으로 인해 조금도 젖지 않았다. 다만, 동굴의 안은 습기가 상당히 높아서 피부가 젖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이나를 소환할 필요는 없겠지.”
던전의 입장 제한 인원이 한 명이지만, 사이나는 제한 인원에 상관없이 일종의 소환수로서 취급 될 것이다. 그녀를 부른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지만, 테드는 사이나에게 도움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던전을 공략할 준비는 새벽 일찍 일어나 준비해서 완벽하게 끝났고, 사이나와 애쉬에게는 나름의 일을 맡겨났다.
“상대가 언데드 인건 좋은데. 진짜 좁네.”
테드가 투덜투덜 거리며 파랗게 빛나는 동굴을 걸었다. 너무 좁아서 파이어볼 하나를 사용할 때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괜히 범위 공격 마법이나 뛰어난 위력의 마법을 사용했다가 동굴이 무너지면 낭패를 보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무리 던전이라도 동굴이 무너지면 던전 밖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무녀에게 직접 들은 것보다 좋지 않은 환경을 고려하며 동굴을 뚜벅뚜벅 걸었다. 습기로 인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테드의 걸음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녀가 말하기를 먼저 던전을 다녀간 모험왕이 함정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테드는 무녀의 말을 믿었다. 무녀니까 거짓말 하지 않을 테고 믿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가 아니라 통계적으로 언데드 던전은 함정이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아. 진짜 무녀 말대로네.”
처음 조우한 언데드 앞에서 테드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검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기사가 수문장 마냥 길 중안에 서있었다. 그것은 테드를 보는 순간 투구속의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천천히 허리춤의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들었다.
스르릉, 언데드의 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 뽑아진다. 아무리 말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데스 나이트다. 그 검은 바위마저 가르고, 움직임은 평범한 기사보다 잽싸다. 거기에 언데드의 특성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체력에 한계가 없다.
“다크 체인.”
테드가 손을 들었다. 허공에 마법진 3개가 그려지며 검은 쇠사슬이 나타나 데스 나이트의 몸을 칭칭 감았다. 그걸로 충분하리라 생각한 테드였으나, 죽음의 기사는 순수한 완력만으로 쇠사슬을 끊어냈다. 그리고 단숨에 테드에게 뛰어가 검을 휘두른다. 일반적인 데스나이트 보다 훨씬 더 쌔다.
캉!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동굴 벽에 반사되어 울러 퍼졌다.
데스나이트의 검은색 검을 막은 것은 그에 상반되는 하얀색의 검이었다. 아니, 검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입고 있는 판금 갑옷까지 데스나이트의 정반대에 위치한 것 같이 새하얗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언데드도, 사람도 아니다.
하얀색의 기사는 데스 나이트와 검을 나눈다. 허공에서 몇 번이나 흑검과 백검이 맞부딪힌다. 물러서는 것은 데스 나이트 쪽이다. 파워, 스피드, 속성 모든 것에서 데스 나이트가 밀리고 있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팔라딘 골렘.”
스펙은 제법 만족스럽다. 두 기의 팔라딘 골렘을 더 꺼낸다. 총 3기의 팔라딘 골렘은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 만든 급조한 골렘이다. 내구도 면에서 불안하고, 1회용으로 급하게 마법을 떡칠해서 만든 골렘이라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그 성능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대충 5시간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붙잡아.”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두 기의 팔라딘 골렘이 데스나이트에게 달려들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데스나이트가 1대1로 붙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2마리나 더 추가되었다. 검은 뒤로 날아가 동굴벽에 처박히고 양팔과 어깨를 제압당해 강제로 테드의 앞에 무릎 꿇려졌다.
데스나이트는 그저 조용히 벗어나기 위해 몸을 움찔거렸다. 붉은 빛의 안광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테드의 오른손이 데스나이트의 검은 투구를 붙잡았다.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주인 없는 야생의 데스나이트다. 지성이 거의 없는 몬스터를 지배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쉽게 지배할 수 있었다.
팔라딘 골렘이 데스나이트의 구속을 풀었다. 죽음의 기사는 테드를 향해 한 쪽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숙였다.
“데스나이트! 넌 내꺼야!”
테드가 씩 웃었다. 적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인다. 이만큼 뛰어난 전략이 어디에 있으랴.
테드는 백의 기사와 흑의 기사를 앞으로 내밀며 천천히 동굴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데스나이트 다음으로 나온 언데드는 맥 빠지게도 스켈레톤 3기였다. 적을 발견하자마자 불나방마냥 달려든 스켈레톤은 팔라딘 골렘의 신성검에 베여 그대로 영원한 안식을 취했다.
“끼아아아아아악!”
동굴 벽에 숨어 있던 밴시가 섬뜩한 비명을 내지르며 덤벼왔다.
“곡소리 좀 안 나게 해라.”
팔라딘 골렘이 밴시에게 달려들었다. 신성검이 밴시의 목을 가른다. 밴시는 그대로 영멸했다. 밴시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헤아려 봤는데 칼침 맞아 사라질 때까지 딱 5초 걸렸다.
“키에에에엑!”
겁도 없이 기어 나온 구울은 데스나이트의 발에 차여 지옥으로 돌아갔다.
“구울은 왜 이렇게 냄새 나냐. 저건 보이면 바로 처리해. 가뜩이나 환기도 안 되는 곳인데.”
나오는 언데드 대부분이 스켈레톤, 구울, 밴시였다. 간혹가다 머리 없는 전사, 듀라한이 나왔지만 위험은 조금도 없었다.
“기사들이여, 저 어리석은 놈의 머리를 내게 바쳐라.”
정확히 10초 후에 테드의 손에 듀라한의 머리가 놓여 있었다. 데스나이트 보다는 못하지만 듀라한은 뛰어난 언데드다. 결국 테드의 노예가 되었다.
동굴은 상당히 길었고, 목적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나오는 데스나이트나 듀라한은 마인드 컨트롤로 자신의 노예로 만들면서 동굴의 안으로 걸어가는 게 전부다. 그러다 테드는 새하얀 백골의 스켈레톤을 보았다.
보통 스켈레톤은 흙이 묻어 있거나 뼈 곳곳에 금이 쩍쩍 가있는데 이 스켈레톤의 뼈는 눈처럼 새하얗다.
“자식, 마음에 드는데. 재롱 좀 부려봐.”
테드의 명령에 스켈레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앙상한 다리로 현란한 스텝을 밟고 관절을 사정없이 꺾는다. 그럼에도 특유의 박자와 규칙성이 있었다. 보고 있는 테드는 들리지 않는 비트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제 점수는요. 90점 드릴게요.”
테드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어떻게 된게 스켈레톤이 인간보다 춤을 더 잘 췄다. 특히나 삐걱 거리는 관절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언데드를 처리하며 동굴 속을 2시간을 내리 걸었다. 깨달은 것은 이 던전은 호수의 지하에 있지만, 네메스 대륙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로 넓은 동굴이 수도 근처 지하에 있으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다.
“과연, 저게 그 문인가.”
동굴의 끝에는 무녀에게 들은 검은색의 철문이 있었다. 과거 모험왕은 이 문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이 동굴의 끝까지 도달한 뒤에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모험왕은 무엇 때문에 포기했는가. 철문을 지키고 있는 5마리의 데스나이트 때문에? 아니다. 그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데스나이트 5기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다. 그가 공략을 포기한 이유는 불길함이다.
모험왕은 무수히 많은 던전과 미궁을 공략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며 달인 중의 달인이다. 그는 이 검은 철문을 보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모험왕으로 있게 한 직감을 신뢰해왔고, 이번에도 직감에 의지해 공략을 포기했다.
“나를 보고서도 덤비지 않네.”
철문 앞에서 굳건히 서있는 다섯의 죽음의 기사를 보며 테드가 중얼거렸다. 이전까지의 언데드는 적을 보는 순간 닥치고 덤볐다. 절제라는 걸 모르는 놈들이었다.
지금까지 뒤에서 껄렁거리고 있던 테드가 앞으로 나섰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전력은 팔라딘 골렘 3기, 데스 나이트 6기, 듀라한 12기, 스켈레톤 백댄서 5기다. 이미 데스나이트의 수에서부터 앞서고 있지만, 상대가 평범한 데스 나이트라고 할 수 없다. 1~2기 정도는 손실할 가능성도 있었다. 괜히 여기서 전력을 잃고 싶지도 않고, 적의 데스 나이트 5기를 온전히 얻고 싶었기에 자신이 나서기로 한다.
테드가 힐끗 철문을 쳐다봤다.
“불길하긴 개뿔. 그냥 데스나이트에 쫄은거 아니야?”
앞으로 다가갔다. 10M에 이르렀을 때, 5기의 데스나이트가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거리가 8M 되었을 땐, 검을 뽑았다. 검은색의 검에서 검보라색의 오오라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테드가 걸음을 멈추자 데스나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춤춰라. 백댄서들.”
테드의 뒤에 있던 스켈레톤 5기가 춤추기 시작한다. 오면서 심심풀이로 기억에 남아 있는 셔플댄스를 가르쳤더니 무서울 정도로 잘 췄다. 조금의 틀림도 없는 칼군무였다.
테드가 손을 들었다. 동굴 내부에 수 백 개에 달하는 검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 속에서 쇠사슬이 뻗어 나와 데스나이트를 노린다. 죽음의 기사들은 몸을 비틀고, 뒤로 물러서는 등의 회피 동작을 선보였지만, 쇠사슬은 동굴 내부를 전부 채워버릴 정도로 많았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무력화 된 데스나이트를 보며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마인드 컨트롤로 지배하에 둔다. 다만 이전과 달리 조금의 저항감이 느껴졌다.
“예상한대로 이미 지배를 받고 있었나.”
그래도 뺐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배자와의 거리가 상당히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배자가 허약한 탓인지 지배력이 약했다.
데스나이트 5기를 추가로 노예화 시킨 테드가 철문에 손을 대었다. 마법적 처리는 없었다. 그저 크고 무거운 검은색의 철문이다.
테드는 5기의 데스나이트를 시켜 철문을 열었다. 무거운 철문이 조금씩 열리며 틈새로부터 눈부신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몰아치는 통증에 팔목으로 눈을 가렸다.
어느정도 빛에 익숙해졌을 때, 팔목을 내린 테드는 활짝 열린 철문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색 하늘과 태양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하늘 아래는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황량하다. 바닥에는 풀은 없고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검게 변색되어 썩어 있다.
문밖으로 나간 테드는 갑자기 느껴지는 추위에 양팔을 붙잡고 마법을 사용했다. 하늘은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여름이다. 온도는 한겨울이다. 무언가 이상했다.
“저 하늘 진짜가 아니군.”
마법이 아니라 공간의 비틀림으로 인해 보이는 하늘이다. 시각적으로는 하늘이지만 실제로는 천장이 있을 것이다.
“깔, 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썩은 나무 뒤편에서 울렸다. 테드의 시선이 썩은 나무가 밀집되어 있는 쪽으로 향한다. 거기엔 7명에 달하는 창백하다 못해 푸른색 피부의 여자가 있었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눈두덩이는 텅 비어있고 입술을 시커멓게 죽어있다. 치렁치렁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입고 있는 것은 옷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천조가리다. 봉긋한 유방을 그대로 노출하는데 파란색 피부와 시커먼 유두 때문인지 성적 매력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털 없이 매끈한 음부도 마찬가지다. 성기는 멀쩡한 것 같지만 색이 시커멓게 죽어 있다.
“깔깔깔깔깔!”
여자들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어딘가 고장 난 인형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으로 비척비척 걸으면서 테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테드는 처음 보는 언데드지만 저것들의 특징을 가진 몬스터를 알고 있었다.
“…유령 마녀(Specter Witch).”
남자를 제압하고 강제로 성행위를 가져 남자가 말라 죽을 때 까지 정기를 빨아먹는다고 한다. 서큐버스와 비슷하지만 유령 마녀는 어디까지나 언데드이며, 그 웃음소리는 밴시의 비명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하급 마법을 사용한다.
유령 마녀들이 갈퀴를 연상케 하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마력이 유동하며 마법진이 그려진다.
테드가 단숨에 마법을 파악했다. 얼음 손톱. 아이스 애로우와 비슷한 마법이다. 테드가 손을 휘저어 마법이 발동되기 일보직전에 디스펠을 발동해 없앤다.
“마법을 사용할 정도면 정신 지배는 힘들겠네. 그냥 죽여 버려.”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데스나이트와 팔라딘 골렘이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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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이 던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