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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회.
퍼질러 자는 도적들은 길 한쪽에 내버려두고 테드 일행을 받아들인 모나의 상단은 다시 움직였다.
모나는 도적들을 도시로 끌고 가서 돈으로 바꾸는 지극히 상인적인 의견을 제시했으나, 그들은 짐 덩어리에 불과했으며 도적이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아 현상금도 걸리지 않았다. 결국 정리하게 된 것은 테드의 마법이다. 잠에서 일어나면 알아서 도시로가 경비병들에게 자수하는 최면마법을 걸어두었다. 숙면마법에 조금의 저항도 못하고 골아 떨어 진 도적들이다. 그들이 반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용병 쪽이다. 그들은 테드의 모습을 보았다. 반응을 보아하니 테드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 했지만, 주점에서 가십거리라도 얘기한다면 곤란해진다. 이 부분에서 테드는 애쉬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테드는 모나의 권유에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원래는 짐마차였으나 짐을 치워 자리를 마련하니 그럭저럭 탈만했다.
“설마 그 꼬맹이가 정말로 마도사가 될 줄이야! 그때 싹수가 보이긴 했었지!”
모나가 정말 놀랐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설마 10년이 지나도 모습이 똑같을 줄 이야! 혹시 불멸자세요?!”
테드가 놀리듯 대꾸했다. 놀란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테드가 기억하는 10년 전의 모습이나 판박이다. 바뀐 점이라곤 걸치고 있는 옷 정도가 전부다. 사실 그녀는 악마나 천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뭐, 내가 좀 동안이긴 해.”
“…….”
테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외견은 잘 쳐줘도 십대 후반. 실제 나이는 31살. 아무리 동안이라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날 보면 까무러칠 정도로 놀랄 줄 알았는데. 별로 안 놀라더라?”
테드가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사실은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운 기분이다.
“놀라긴 놀랐어! 내 눈앞의 고액의 현상금이 걸린 지명수배범이 나타났으니까!”
“……알고 있었어?”
테드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상인이니까. 정보에 민감하게 움직이면 헛된 소문이라도 놓칠 수 없어. 네 소문은 한동안 엄청났었어. 거기에 고객을 가려 받기 위해 지명수배도 꾸준히 확인하고 있어.”
그녀가 똑 부러진 상인으로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놀랐다.
“모나가 상인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역시 미래는 겪어봐야 하는 건가.”
“뭘 새삼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거야. 상인 정도야 성실히 움직이면 누구나가 될 수 있어. 마도사인 네가 말하면 빈정거리는 걸로 밖에 안 들려서 재수 없어.”
“그거 참 미안하네. 그런데 어머니는 잘 계시고?”
테드가 물었다. 모나의 어머니는 만나 본적도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그저 10년 전,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네 덕분에 잘 계셔. 아, 그러고 보니 은혜를 갚기로 했지. 뭘 원해?”
모나가 등을 세우고 빈약한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거만하게 물어왔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마차에 태워준 것 만 해도 고맙다고 생각해. 은혜는 그걸로 됐어.”
조금의 생각도 거치지 않고 즉답했다. 그녀에게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녀는 주술을 할 줄 알지만 현재 상인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수준을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다.
돈? 테드가 가진 돈이라면 모나의 작은 상단 정도는 활인 없이 즉시구매 할 수 있을 정도다.
몸? 빈약한 몸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그에겐 사이나라는 끝내주게 아름다운 메이드가 붙어 있었다.
“안 돼, 그거로는 수지가 안 맞아.”
모니가 고개를 저었다. 테드로선 기가 차는 대답이었다.
“수지가 안 맞다니? 빚을 단지 마차를 태워주는 것만으로 갚게 해준다니까. 너도 네미슈로 향하는 길이니 시간적 손해도 없는 완전 수지 맞은 일이잖아.”
“그러니까 계산이 안 맞아. 나는 네가 엘프들을 상대해준 덕분에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어. 내 소중한 가족을 구해준 목숨 빚이야. 고작 마차를 태워주는 걸로 갚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목숨 빚이라고 할 정도로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나 위급한 상태였던가? 그리고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서 빚을 스스로 늘리는 건 뭐지. 그녀가 상인으로서 심히 걱정된다.
“아아. 그 눈빛 알아. 지금 날 걱정하는 거지? 동료 상인들도 날 그렇게 보더라.”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상인은 너랑 맞지 않는 것 같아. 도적들한테 바득바득 대들 때부터 알아 봤어야 했는데….”
아무리 그녀가 비장의 수단으로 ‘주술’을 남겨두었다고 해도 도적들에게 고함치며 심리를 건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상인보다는 모험가 쪽이 훨씬 더 어울렸다.
모나의 뺨이 공기에 의해 볼록 튀어나왔다. 어린애처럼 볼을 부풀리는 게 퍽 귀여웠으나 잠자코 보기만 했다.
“이래보여도 상단이야. 한 달에 이천 골드 이상은 벌어. 20년 아니, 10년만 있어봐. 모나 상단이란 이름이 나라 전역에 울리게 해 줄 테니까!”
그녀의 포부를 들으며 테드가 조금 감탄했다. 이천 골드 이상을 번다면 작은 상단 치고는 상당한 수익이다. 아니, 위험성이 큰 무역상이면 적절한 수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도 또 빚을 져버렸지. 정말 진지하게 묻는 거야. 원하는 거 없어? 지명 수배 중이니까 은신처라도 마련해줘?”
“상인이 왜 그렇게 줄려고 하는데?”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합당한 거야. 나는 너와 동등한 관계에서 친구가 되고 싶어.”
“만난 시간도 짧고 하루도 되지 않은 시간에 헤어졌지만, 이미 우린 친구야. 안 그래?”
“안 그래.”
모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듀라 스승은 절대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우정이 싹 툴 수 없다고 말했어. 만약 우정이 생긴다면 가식이고, 연기야. 그리고 설령 절실한 친구라고 해도 채무 관계가 되면 보이지 않는 독이 되어 퍼져서 파탄내지.”
“……듀라 라는 사람이 누군데?”
마차에 올라타고 나서 모나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애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네미슈에서 유명한 대상인입니다. 돈도 많고 덕도 많기로 유명하죠. 왕이나 귀족이 없는 네미슈에선 대귀족이나 다름없지요.”
수인들의 국가인 네미슈는 민주 공화국이다. 원래 수인들은 제각각 종족마다 나뉘어졌다. 묘인족은 묘인족끼리, 토인족은 토인족끼리, 견인족은 견인족끼리 살았다. 수인족들은 부족단위로 흩어져 있는 그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뭉쳤다. 국가가 만들어졌다.
문제라고 한다면 수인족 중에서 특출나게 뛰어난 자가 없었다. 부족장들은 제각각 스스로가 대표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 같이 나라를 다스리기로 정했다. 수인족들이 나라를 만들자 외부로부터 침략도 없고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문제없이 돌아가나 싶었으나, 수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부로 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표자들은 나라를 이루었음에도 제각각 부족들의 이득을 챙기기에만 바빴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라 부족 연합에 가까웠다. 그때 나선 것이 호인족(狐人族)의 무녀다. 그녀는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처 방안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단 한명의 무녀가 네미슈를 흔들리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 라는 이야기는 네메스 대륙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다.
“내 스승님이야. 그 분 아래에서 일하면서 상인에 대해서 배웠어. 현재의 내가 있는 건 너와 듀라 선생님 덕분이야. 그분은 쓸개는 팔아도 양심만큼은 팔지 말라 그러셨어. 양심이 없는 상인은 상인이 아니라 사기꾼이지!”
테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모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말에는 자신감이 느껴졌으며 자부심이 담겨있었다. 그건 일종의 신념이다.
“……그래. 알았어. 그럼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주던가.”
모나의 옹고집에 왠지 모를 심술이 난 테드가 입술을 삐죽이며 되는대로 지껄였다.
“……가장 소중한 것? 으음. 상단은 밥줄이라 좀 그런데….”
갸늠한 턱을 매만지며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농담조로 한 말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그 모습에 당황한 쪽은 테드였다.
“아, 아니. 농담이야. 상단을 받아 봤자 곤란해.”
“나도 농담이야. 상대가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팔아넘기는 짓 따윈 안 해.”
모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앉아 있는 상태라 주머니에 손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몸을 몇 번 비틀었다.
“사실 내 몸을 원하면 줘버리려고 했는데.”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요염한 미소를 짓는 걸 본 테드가 곧바로 옆의 사이나를 끌어안았다.
“그것도 농담이야. 자, 네가 원하는 내 소중한 걸 줄게.”
모나가 한 손에 들고 내민 것은 파랑색의 낡은 천 조각이었다. 파랑색의 천은 무언가를 감싸고 있으며 표면에는 뜻 모를 하얀색 문양이 그려져 있다. 테드는 문양이 주술에 사용하는 것임을 알아보았다. 다만 무엇을 뜻하는 문양인지는 알 수 없다.
“…부적?”
천조각의 용도를 짐작하며 말하자 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에서 어머니에게, 어머니에게서 내게로 대대려 내려오는 부적이야. 일종의 가보 같은 거라서 감정해봤는데 행운을 작게 상승시켜줘. 원래 널 만나면 이걸 줄려고 했어.”
“가보라며.”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는 주술이 걸려 있는 부적일 뿐이야. 상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물건을 구하거나 돈을 주는 것 정도인데 마도사인 넌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잖아. 주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는 게 많으니 그 부적이면 충분히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고 있을 거야.”
“……좋아. 받을게. 울고 떼써도 안돌려 줄 테니까.”
테드는 고민하다가 부적을 받았다. 그녀의 성격을 보자면 거절한다고 해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빠르게 받는게 낫다. 더군다나 이 부적 묘하게 시선을 끈다.
기왕 받은 물건 감정하기 위해 신안을 발동했다.
부적이 은은하게 빛났다.
엊그제 본 공간수의 나무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엄지로 부적을 더듬었다. 부드러운 천의 감촉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모나. 혹시 이 부적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
“응? 아무것도 없어. 뭔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이 겹쳐져 있는 것에 불과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 행운의 부적
주술적 처리가 되어 있는 부적입니다.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아주 약간 상승합니다. 》
부적을 지긋이 바라본다. 평범한 부적이라면 결코 빛날 리가 없다.
테드가 30초 가량 노려보고 있자 돌연 감정의 내용이 바뀌었다.
《 행운의 부적
주술적 처리가 되어 있는 부적입니다.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아주 약간 상승합니다.
오래된 세월과 염원에 의해 미약한 영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
영력.
파란색의 부적은 단숨에 테드의 흥미를 잡아끌었다. 오랜만에 마법사의 연구 의욕이 동했다. 당장 해부해서 그 속을 파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뭐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렇게 마음에 들어?”
“응? 아아. 부적을 받는 건 처음이라서. 어떤 원리인지 궁금해졌어.”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모나가 낄낄 웃었다. 그녀는 이제 진 빚은 없는 거라며 몇 번이나 확인하더니 시답잖은 잡담으로 넘어갔다. 잠담의 내용은 대부분이 그녀의 스승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칭찬일색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그럭저럭 흥미를 유발했으나 쉽게 질레가 만들었다.
가깝다는 이유로 용병들을 득달해 저녁무렵에는 국경을 넘었다. 아우티리아에서 네미슈로 이동한 것이다. 국경 바로 근처에 있는 네미슈의 마을 까지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저녁은 마을 식당에서 먹기로 하고 무얼 먹느라 토론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마차가 멈춰섰다.
“고용주! 좀 나와 보셔야 겠소!”
마차 밖에서 곤란함이 섞인 용병의 목소리가 울렸다.
“뭔가요. 또 도적이라도 나타났어요?”
모나가 짜증스레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궁금증이 도진 테드 일행이 환상마법을 사용해 모습을 속이며 밖으로 나왔다.
주제 파악 못하는 불쌍한 도적은 없었다. 대신 30명에 달하는 네미슈의 무사가 온갖 무게를 잡으며 열을 맞춰 서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얀 백의를 입은 한 명의 여인이 있다. 바닥까지 내려오는 하얀 치마와 소매가 없는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뒤로 한데 묶은 금발은 깔끔히 정리되어 있고 살짝 처진 눈은 그녀의 상냥함을 나타낸다.
그녀의 금발 머리 위에 두 개의 삼각형 귀가 쫑긋거렸다. 꼬리는 풍성한 금색 털로 뒤덮여 있다. 호인족, 여우 수인이다.
그녀는 테드를 보자마자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길거리의 누런 흙이 백의를 더럽혔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변의 수인족 무사들이 그녀를 따라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네미슈의 7대 무녀는 어디까지나 청초하게 말했다.
“네미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테드 크루시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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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