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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58화 (158/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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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광기가 춤추는 숲.

[신의 조건 중 하나를 달성했습니다.]

테드는 신의 조건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마와 천사가 있는 이 세계에는 당연히 신이란 자들도 존재한다. 테드가 이곳에 오게된 계기도 어떻게 보면 신 때문이다.

다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무관심이다. 설령 한 종족이 멸종한다 하더라도, 설령 자신을 믿는 신도가 죽는다하더라도 그들이 간섭하는 일은 없다. 세계밖에 있고, 관심도 없는 이들.

‘그래서 이 세계의 대부분 사람들은 신 대신에 천사를 믿지.’

천사라 해도 이 세계의 생물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사 보다 악마 쪽이 더  중간계에 호의적이다.

테드가 보기엔 이 세계에서 신이라 할 수 있는건 ‘시스템’ 뿐이었다.

『신의 조건

당신은 창조신이 정한 신의 조건 중 하나, 권능의 발현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권능은 아주 미약하며 불안정합니다. 완전한 권능을 얻기 위해선 인간을 초월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여 초월하십시오. 』

‘초월이라… 신이 된다는 건가?’

테드에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자신의 성격상 신같은건 절대로 할 수 없다. 딱히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신경 쓰이는 것은 권능이다.

악마나 천사가 가지고 있는 권능은 마나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기술이다. 마나를 사용한다면 더욱더 큰 위력을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신력을 소모한다. 권능을 가지고 있는 악마나 천사는 신인가? 그 물음에 대해서는 테드로서도 잘 모르기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어쩌면 정말 신일지도 모른다.

‘내가 권능을 발현했나? 그저 정령력으로 마법을 사용한 것 뿐인데.’

오히려 《시간정지》쪽이 권능에 가깝다. 타임 슬로우 마법을 살짝 개선해 만든 마법이다. 시험과정에서 실패했어야 하는 마법인데 성공해버린 마법이다. 실패를 상정하고 실행한 마법이 왜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그저 발동한 순간 몸의 피로가 엄청나다는 것이 전부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짜증나는군.’

알림창을 꺼버리고 성쪽을 쳐다본다. 소란이 가라앉고 있다. 다행히도 하이랜더들이 잘해준 모양이다. 그들의 목적인 2공주도 무사하다. 다른 공주나 여왕이 무사한 것이 확인 된다면 이번 사건은 막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하이랜더들의 희생이 컸지만.

테드는 자신의 육체를 관찰했다. 정령화가 된 반투명한 몸은 신기한 기분이었다.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쥔다. 감각은 없다. 주먹을 핀다. 마찬가지로 감각은 없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다면 주먹을 줬는지, 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혹시 싶어 손목을 뒤로 꺾었다.

손목이 완전히 접혀져 손등과 팔목이 맞닿았다.

“……꿈꾸는 기분이군.”

테드가 본래의 손모양을 떠올리자 신기하게도 손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혹시나 싶어 손이 없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자 손이 사라졌다. 온전한 손을 생각하면 손은 다시 생겨나 있었다.

“내 의지가 반영되는 건가.”

허공에 떠있는 몸을 상상한다. 그러자 테드의 몸이 허공에 둥실 뜨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하늘을 부유하는 감각을 떠올리자 그의 몸이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왕도가 한 눈에 보이는 곳까지 날아가고서 몸을 멈춘다. 하늘을 날고 있으나, 감각이 없어 실감하지 못한다. 단지 아래에 펼쳐진 왕도의 풍경에 탄성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영안이라는 것도 얻었지.”

신안을 사용한다. 테드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왕도 곳곳에 있는 실체화 하지 않은 정령들이 모두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정령이 아닌 무언가도 보였다. 동그란 구체 같은 것. 푸르게 빛나는 것도 있었고, 노랗게 빛나는 것도 있었다.

테드는 하이랜더 시체 주위에 있는 그것들을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영혼이다.

관찰을 하듯 영혼을 지긋이 바라봤다. 정령과 달리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허공에 둥둥 떠 있을 분이다. 의지를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영혼은 허공에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사라지는 시기는 제각각 달랐다. 30초도 걸리지 않아 사라지는 영혼이 있는 반면에 5분이 지나 사라지는 영혼도 있었다.

색깔도, 모양도 조금씩 다른 영혼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

천천히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테드는 사이나를 떠올리고 그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스피릿 우드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나무인 공간수의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나뭇가지를.

너무 찬란하게 빛나서 밤인 지금에선 발견하기 싫어도 발견할 수밖에 없는 나뭇가지였다.

‘이런 나뭇가지가 있다곤 듣지 못했는데. 영안의 효과인가?’

빛나는 나뭇가지로 날아간 테드는 툭하고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뭇가지가 부서지며 떨어졌다. 테드는 나뭇가지를 받아 들였다. 나뭇잎이 붙어 있는 작은 나뭇가지는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혹시나 싶어 신안을 해제하자 나뭇가지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 쓰는 사용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있으면 좋은거겠지.’

좋게 생각하기로 하고 나뭇가지를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서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특별한 의미는 없고 단순한 호기심에 발동한 행동이었다.

대충 살펴본 결과 정령화가 된 신체에는 일반 물리력은 통하지 않는다. 열기나 추위가 느껴지지 않고, 팔이 기괴하게 비틀어져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정령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에든 있다는 말이 있다.

만약 정말로 어디로든 갈 수 있다면, 시스템에 의해 보호 혹은 제한되어 있는 하늘도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테드는 어느새 손바닥처럼 작아진 왕도를 힐끗 바라 봤다. 여기까지는 마법으로도 가능한 범위다. 다만 문제는 더 위, 대류권의 끝이다. 이 세계에선 성층권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마법으로도 올라 가는게 불가능하다.

기대감을 담아 테드가 날아갔다. 그리고 실망감이 덮쳤다.

‘……막혔군.’

벽 같은게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사슬이다. 정령의 몸인데도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말라고 몸을 옭아매는 무언가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근데 좀 약한데.’

첫 번째 삶 때 전쟁을 위해 마법으로 실험한적 있었다. 마법이나 물건은 하늘위로 문제없이 올라가는 게 가능했지만, 생물은 무언가에 막힌 듯 대류권 이상 올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대류권만 해도 충분한 높이라 성층권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때는 거대한 벽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테드는 거슬리는 압박에 정령력을 한 순간 방출했다. 단숨에 풀어지는 보이지 않는 사슬에 그 위로 올라간다. 성층권으로 들어서자 몸의 제한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의 반투명한 몸이 더욱더 위로 올라간다.

‘어쩌면 달까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판타지 세계라면 달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달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거리가 엄청났다.

몇 십 분이 지났을까. 테드는 드디어 대기권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는 네메스 대륙은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푸른색의 바다와 초록색의 대륙, 하얀색의 구름이 조화되어 환상적인 광경을 만들어냈다. 지구와 거의 똑같은 행성.

멍하니 행성을 쳐다보고 있던 테드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정령화가 언제 풀리는지 알 수 없다. 마법이 있으니 죽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혹시 모를 이유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사이나.’

이 광경을 자랑이라도 해줄 겸 사이나를 불렀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테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이 아니라 스킬이기에 설령 결계로 인해 공간이 차단되어 있어도 시스템에 의해 연락이 불가능해질 리는 없다.

혹시나 싶어 상태창을 열어본다.

열리지 않았다.

성가신 알림창도 보이지 않는다.

“…….”

너무 갑작스러운 현상에 뒤늦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중간계의 절대자라고 할 수 있는, 악마나 천사마저도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의 힘이 미치지 않았다.

테드는 곧장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사이나가 자신을 걱정하며 찾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와의 계약도 끊어져서 마계로 역소환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약간의 조급함을 느끼며 빠르게 내려갔다.

그러는 와중 위치를 자세히 파악해 아우티리아 왕도에 정확히 내려서기 위해 발동한 테드의 신안에 대륙의 한 곳에서 뿜어지는 빛의 기둥이 포착됐다.

공간수의 나뭇가지와 똑같은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는 기둥에 절로 시선이 갔다. 그러나 빛의 기둥이 어디에서 뿜어지는 지 확인한 순간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빛의 기둥은 딥크스의 대마수가 서식하는 곳에서 뿜어졌다. 네메스 대륙에서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테드는 이윽고 아우티리아 왕성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올라갈때와 달리 대류권을 가로막는 벽 같은 것은 없었다. 시스템도 아무런 문제 없이 발현되었다.

⁂ ⁂ ⁂

애쉬는 아우티리아 왕도를 벗어나 제단이 있는 장소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그는 왕도에 출몰한 악마를 사이나에게 맡기고 이곳으로 왔다. 전투가 없어서 아니라 사탄교의 목적이 테드가 말한대로라면 이곳에 사탄교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쉬가 숨을 삼키고 기척을 완전히 죽였다. 움직이지 않고 숨어 있는 동안에는 펠릭스의 12집행관 중 누구도 애쉬를 찾을 수 없었다.

나뭇잎을 밟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울리며 제단에 나타난 것은 가죽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바론이었다. 그는 웃음이 아니라 짜증이 묻어나는 얼굴로 제단에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발로 찼다.

“돌덩어리에 화풀이라니. 추하네.”

그와 조금 떨어진 뒤에 있던 마녀가 비웃음을 날렸다. 바론은 세르미나의 조롱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발로 제단을 차기 시작했다. 쾅쾅, 마나를 담아 발로 차자 돌은 이내 산산히 부서지기 시작한다. 몇 십초가 지났을까. 완전히 산산조각 난 돌멩이에 그는 퉷하고 침을 뱉었다.

바론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마나를 흘러 보내자 수정구 속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상대방의 모습도 볼 수 없는 하급의 일회용 수정구다.

“임무 실패. 기분 더러우니까 사탄교에서 탈퇴할래.”

“뭐?! 잠깐. 기다려라. 바론! 좀 더 자세히 말해라!”

“임무 실패했다고. 아, 댁이 붙여준 악마 두 놈은 뒈졌어.”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수정구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계획이 실패했다는 건 알겠다. 그럼 탈퇴는 왜지? 이제와서 겁이 났나?”

바론이 씨익 웃었다. 겁이 났냐고? 웃기는 소리다.

“그럴 리가. 단지 댁들 보다 더 흥미로운 걸 발견했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설마 날 막겠다는 건 아니겠지? 뭐, 그것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한데.”

“지금 현재 네놈까지 상대할 여력은 없다. 다만, 탈퇴는 미뤄줬음 좋겠군. 최선책이 실패한 이상 차선책 밖에 없고, 거기엔 네놈과 마녀의 도움이 필요하니.”

“안 한다니까.”

바론이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에 그는 사탄교가 아니다. 그저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탄교에 협력했다. 그리고 지금 사탄교보다 더 재밌는, 시간을 멈추는 놈을 발견했다.

“주권 결정전. 거기에 참가하고 싶다고 넌 말했었지. 계획을 성공시켜 준다면 참가시켜 주겠다.”

“…오? 그거 참 마음에 드는 제안이야. 그런데 정말로 가능한 일이지?”

“물론이다. 그 정도 능력은 있다.”

“좋아. 좋아. 탈퇴는 미뤄 줄게. 이제 뭘 하면 돼?”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우선은 3개월 안에 드래프리온으로 와라.”

“드라칸의 왕국인가. 더럽게 머네.”

바론은 불평과 함께 상대방의 인사따윈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수정구를 깨뜨렸다. 산산조각난 수정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후, 바론은 이마에 세 번째 눈을 개안하고서 제단이 있던 자리를 발로 퍽퍽 차내며 파내기 시작했다. 3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는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검은색의 심장이었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땅을 벗어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바론의 손위에서 두근두근 움직이며 정신 오염 파동을 내뿜었다. 그러나 세 번째 눈을 발동한 바론에겐 통하지 않는 파동이었다.

검은 심장에서 수 십 개의 촉수가 뿜어져 나왔다. 바론의 손목에 들러붙은 촉수는 몸속으로 파고들려고 했으나 마나로 보호되어 있는 바론의 피부를 꿰뚫지 못했다.

“언제 봐도 귀여운 녀석이야. 그치 세나.”

세르미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힐끗 보고 시선을 돌렸다.

“그딴 징그러운 악마의 심장은 볼 때 마다 토가 나와. 부탁이니까 좀 버리지 그래?”

“후하하하. 징그럽기는. 자세히 보면 귀엽다고 이 녀석. 특히 촉수를 뻗어오는게 애교를 부리는 것 같잖아!”

바론이 기분 좋다는 듯 후하하 웃어댔다.

세르미나는 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순식간에 바뀌는 그의 기분에 혀를 찼다.

앞으로 부탁 하나. 하나만 들어주면 지긋지긋한 바론과 떨어질 수 있다. 그녀는 그와 떨어질 날만을 간절히 바랬다.

바론은 어느 한 나무를 힐끗 쳐다보고서 숲을 벗어났다.

============================ 작품 후기 ============================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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