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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57화 (15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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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광기가 춤추는 숲.

멈춰진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 나타난 테드의 모습에 당황한 세르미나가 마법을 사용하려하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서 테드의 손이 그녀의 목과 양팔을 제압한다. 마력을 주입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 불꽃 화살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리고 아까 검이 날아온 성 쪽을 노려봤다.

“…큭!”

테드는 머리가 핑도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앞으로 《시간 정지》를 2~3초만 사용하더라도 정신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잃는다면 목숨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슨 마법을 사용한 거야?”

양팔에 힘을 주어 벗어나기 위해 바둥 거리면서 세르미나가 물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법을 발동할 때부터 코피를 흘린 테드가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 나타나 자신을 제압할 때까지.

안티 블링크 마법은 여전히 유효하고, 다른 공간계 마법을 썼다면 마력의 유동이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그가 사용한 것은 마법인가?

“네가 모르는 마법.”

“…내가 모르는 마법이라고?!”

테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는 세르미나를 무시하고 한 곳을 노려봤다. 3층 성의 창문에서 한 명의 사내가 뒤뜰로 뛰어내렸다.

가죽 옷을 입은 스킨헤드의 남자였다. 빡빡민 머리가 어색한지 한 손으로 매끈한 머리를 매만지며 한 손으로는 축 늘어진 2공주 제아를 허리를 감싸 옆구리에 끼고 있다.

남자는 멀쩡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상이라 할 수 있다. 가죽 옷은 찢어지거나 타들어가서 온전하지 않았고, 핏방울을 바닥에 뚝뚝흘리고 있다. 무엇보다 주의를 끄는 것은 이마에 있는 3번째 눈이다.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테드를 한 번 훑어보더니 입가를 비틀어 웃어보였다.

“오랜만이네?”

“…….”

그 말을 듣고 곧바로 떠올렸다. 대륙의 중심이라 불리는 네메스의 눈에서 그와 만난 적 있다. 시간이 제법 흘렀고, 그때는 머리를 밀지 않아서 떠올리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 인상 깊던 사내다.

“……사탄교냐?”

질문을 던지면서 테드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를 정도로 정신이나 육체는 피로하지만 마력은 문제없다. 싸우는 것이 힘들어도 못 싸우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길 수 있냐는 것이다. 상대는 《시간 정지》상태에서 검을 날렸다.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테드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하하하, 그래. 사탄교야. 임시적이지만.”

바론은 웃음소리를 숨기지 않고 휘적휘적 걸으며 테드에게 다가갔다. 그 거침 없는 행동에 테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움직이지 마라.”

“싫은데.”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듣고 목을 쥐고 있는 여인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테드의 악력이 가해짐에 따라 커컥, 하며 입가에 침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바론이 걸음을 멈췄다.

“아, 세나가 지금 죽으면 곤란한데. 아직 부탁이 한 개 남았거든.”

“……너희들의 목적은 2공주냐?”

테드의 붉은 눈이 기절해 있는 제아에게 향했다. 다행히 아직 죽지 않았다.

“그래. 보다 싶이 목적을 달성했지. 근데 변수가 생겼어.”

바론이 턱을 쓰다듬으며 테드가 세르미나를 잡고 있는 것처럼 공주의 목을 붙잡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세 번째 눈은 은밀히 움직이는 마력을 포착했다.

“허튼짓 하지마.”

바론이 말하는 순간 쾅! 하고 성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하이랜더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테드가 신안을 발동해 시선을 그쪽으로 옮겼다. 성이 투시되어 전부 보였다.

수 십 명의 하이랜더가 싸우고 있는 것은 거구의 사내였다. 그가 악마임을 단숨에 파악한다. 유리한 쪽은 수적으로 유리한 하이랜더 쪽이다. 반면에 악마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죽어가고 있다. 아무리 악마라도 하이랜더가 너무 많았다.

만약 시간을 끈다면 하이랜더가 지원을 올 것이다. 문제는 그 만큼 시간을 끌 수 있냐는 것이다.

바론의 손이 제아의 목덜미에 강하게 파고드는 것을 보고 마력을 해체했다.

“이 상황에서는 거래를 할 수 밖에 없겠네?”

“거래라…. 이 여자가 그렇게 중요하나?”

“응? 아니, 원래는 적당한 시기에 죽이려고 했었어. 내 목숨을 노리는 여자거든. 근데 널 보고 마음을 바꿨어. 거기에 인질 교환이란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바론이 히죽 웃었다. 테드로선 허세인가 싶었지만, 짜증이 가득 담긴 세르미나의 표정을 보고서 사실임을 알았다. 그와 그녀의 사이는 상당히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여왕과 공주는 무사한가?”

“아쉽게도 하이랜더가 너무 많아서 목적인 이 여자가 고작이었어. 원래는 행진때 죽이려 했는데 너 때문에 습격하게 됐지 뭐야. 미끼로 하이랜더를 뺐는데 그 정도 숫자라니… 원래 엘프가 인해전술로 싸우는 타입이었던가?”

바론은 긴장감도 느끼지 않는지 주절주절 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질교환은 할거야, 말거야?”

“…….”

재촉하는 목소리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인질을 내주면 적은 2명으로 바뀐다. 그 반면에 자신은 지켜야 하는 짐덩어리가 늘어나는 꼴이다. 상대방의 힘을 알지 못하는 지금은… 질수도 있다.

‘사이나 처리는 끝났나?’

사이나에게 연락해 물었다. 그녀가 온다면 이 상황을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죄송합니다. 의외로 저항이 거세서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당장에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혼자서 얼마나 둘을 상대하고 버틸 수 있을까?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리는데. 후하하하.”

바론이 웃었다. 그러다 돌연 입가에 맺힌 미소를 지웠다.

“그냥 죽이고 한 판 뜰까.”

“……아니, 인질을 교환하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바론이 곧바로 제아를 테드에게 던졌다. 허공에 붕뜬 그녀에게 시선이 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론이 밑으로 도약한다. 테드는 그에게 세르미나를 집어 던지고 허공에 뜬 2공주를 받아 들였다.

“쩝. 반응속도 좋네.”

세르미나를 받은 바론이 입맛을 다셨다. 경로를 방해하는 세르미나만 아니었다면, 그의 단련된 손이 세르미나의 가슴과 함께 테드의 가슴을 꿰뚫었을 것이다. 사이좋은 길동무 작전이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이쪽이 훨씬 유리해… 응?”

바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주를 안아든 테드에게서 엄청난 정령력이 내뿜어졌다. 최상급 정령이라도 소환하는가 싶었지만, 어디에도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테드로써도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안는 순간, 정확하게는 그녀의 목걸이가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정령력이 폭발하듯 주위로 뿜어졌다.

‘이게 무슨….’

목걸이에서 나온 정령력은 공주가 아닌 테드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정령력은 테드의 몸에 침투해 멋대로 폭주하듯 몸속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테드의 몸이 아주 약간씩 투명해졌다.

“세나. 저게 뭔지 알아? 내 눈으로 보기엔 정령으로 변하는 것 같은데.”

“하, 난 정령사가 아니라 마법사야.”

세르미나는 자신의 몸에 닿고 있는 바론의 손을 더랍다는 듯 탁 치고선 거리를 벌렸다. 그의 손이 닿았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하면서도 호기심이 동한 눈으로 테드를 쳐다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반투명해지는 몸은 확실히 정령으로 변하고 있었다.

바론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자신의 검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모든 마법을 먹어 버리는 마검, ‘루나틱 블레이드’를 손에 쥐었다. 이 검은 마법사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은 물건이다. 갑자기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여 적들의 목을 베어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검의 덕분이다. 이 검이 있는 한 마법사인 테드에게 질 것이라곤 조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어디 한 번 놀아 볼까.”

테드 쪽으로 몸을 돌렸다.

테드는 정령화가 완료되어 반투명한 육체로 제아를 품에 안고 있었다. 자신의 몸상태를 확인한 테드의 얼굴은 더 없을 정도로 굳어져 있었다.

마력이 사라졌다.

대신이라고 할까. 내부에 정령력이라는 생소한 힘이 생겼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테드는 몰려오는 짜증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약간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령이 되면서 육체의 감각이 사라졌다.

‘…설마 이 목걸이가 정령으로 만들어주는 보물이었을 줄이야.’

바론 쪽을 바라봤다. 다행히도 여마도사 쪽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지 도도한 표정을 지은체 팔짱을 끼고 방관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론이다. 그는 살의를 일으키며 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테드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더니 도약해 검을 휘둘렀다.

“내 검을 받아보라고!”

정령이 아닌 테드는 정령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마도사의 본능이, 숨쉬는 것처럼 익숙해진 마법을 발동할 때의 감각이 정령력을 움직였다.

다크 체인(Dark Chain). 3개의 검은 쇠사슬이 바론에게 날아간다.

바론이 픽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다크 체인이라면 그도 세르미나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마법이다. 닿는 것만으로도 마나를 봉인하는 마법 사슬. 당한다면 성가시기 그지없지만, 마법이라는 점에서 루나틱 블레이드가 있는 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3개의 쇠사슬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신에 닿는 순간 사슬은 맥없이 소멸해 자신에게 힘을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바론을 배신했다.

사슬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

어이없는 상황에 당황한 숨을 들이킨 바론이었지만, 이내 강제로 힘을 휘둘러 쇠사슬을 박살내고 뒤로 물러선다.

“세르미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헤에.”

세르미나는 바론의 말을 무시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테드를 바라봤다. 테드 또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르미나!”

“쯧. 시끄러워. 그 검으로 못 베어서 그렇게 당황했어?”

그녀가 한껏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일그러지는 바론의 얼굴을 보는 게 몇 년 만인가.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설명해!”

“그 검은 마법이라면 뭐든 베어버리잖아? 달리 말하면 마법이 아니면 벨 수 없어. 정확하게는 ‘마력’이 아니면 말이야. 그리고 저건 순수한 정령력으로 발동된 마법이고. …설마 정령력으로 마법을 발동할 수 있을 줄이야.”

푸른색의 얼음창이 허공에서 바론을 노리고 떨어졌다. 검으로 쳐낸 바론은 혀를 차고 뒤로 물러났다.

“도와줄 수 있는데. 물론 마지막 부탁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

“하이랜더랑 논다고 몸도 정상이 아니잖아?”

“……하. 흥이 식었어.”

바론이 밤하늘을 쓰윽 쳐다보고서 몸을 돌렸다. 검을 허공에 휙휙 내저으며 왕성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네? 허세가 먹혀서.”

세르미나가 바론이 사라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덤비지 않나?”

“네가 그년의 제자라는 건 짜증나지만, 바론에게 무료봉사하는 건 더 싫어.”

세르미나가 허늘을 날아 사라졌다. 테드는 그와 그녀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힐끗 하늘에 그려진 투명한 마법진을 쳐다봤다.

바론은 이 투명한 마법진을 꿰뚫어 보고 물러났다. 냉정히 자신의 몸상태와 쓸모 없어진 루나틱 블레이드를 계산하고 선택한 행동이었다. 이 마법진이 단순히 빛을 내는 라이트 마법인 허세인 것도 모르고.

“쯧. 정령화만 되지 않았어도….”

테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마력이 사라졌다. 졍령력으로 변한 게 아니라 정령이 되면서 사라진 것이다.

육체가 정령으로 변하면서 생긴 정령력도 마법 몇 번 쓰니 바닥을 드러냈다. 만약 싸웠다면 마법이 아니라 맨몸으로 싸워야 했다. 그리고 졌겠지. 그의 몸놀림은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흙바닥에 공주를 내려 놓고 자신의 몸을 살핀다.

뭐라고 할까. 꿈속에 있는 기분이다. 분명 자신의 육체인데 감각이 없어 자신의 육체가 아닌 기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자신이 정령으로 변한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영안을 개안합니다. 신안의 효과가 늘어나며,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 ‘나는 자연인이다.’를 획득합니다.]

[업적 점수 20,000을 획득합니다.]

[신의 조건 중 하나를 달성했습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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