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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메피아가 입술을 깨물며 방도를 궁리하고 있을 때, 밤하늘이 쨍그랑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테드가 쳐놓았던 결계가 부서지고 있었다. 밤하늘이 깨진 유리마냥 여기저기 금이 가고 그 파편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소멸했다. 환상적인 광경이었지만, 테드는 당황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그려지던 은색의 마법진도 멈추었다.
결계의 유지시간은 아직 남았고, 테드가 일부러 결계를 거둬들이지도 않았다.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부서지는 결계를 살폈다. 그리고 부서진 틈, 새파란 하늘에서 팔랑거리며 날고 있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오셨나.”
메피아가 흥분한 자신을 애써 진정시키며 중얼거렸다. 방금전 자신은 너무 흥분했다. 품위가 없었다. 그녀는 흐트러진 진홍색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도저히 전투 중에 행할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검은 나비…….”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테드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결계는 완전히 부서져 파란 하늘로 돌아왔다. 또한 어느새 수백이 넘는 검은 날비가 테드의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비 중 하나가 하늘에 그려져 있는 은빛 마법진으로 움직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마법진과 검은 날비가 부딪혔고, 둘 모두 소리없이 소멸했다.
“주인님…?”
사이나가 테드의 반응에 당황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테드의 귀에 닿지 못했다.
“화, 황녀님. 이건….”
“모두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마라. 그분이 오신다.”
메피아의 말에 뒤에 있던 정예병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그분이 누군지 짐작도 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그때, 정예병들의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금 빠른 발걸음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정예병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코끝을 건드리는 불쾌한 담배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정예병들은 고개를 들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앞에 있는 메피아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오랜만이다. 메피아.”
메피아와 메티스가 인사를 나눌 때, 테드는 너무 놀라 풀려버린 다리를 애써 일으켰다. 그리고 사이나의 왼손을 붙잡았다.
“도망치자. 도망쳐야 돼.”
“……저 여인이 문제입니까?”
사이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은 코트를 입은 여마족을 바라봤다. 그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그래. 엄청 문제니까, 지금 당장 도망을….”
식은땀을 흘리며 도주 경로를 찾던 테드는 말을 잊지 못했다. 어느새 그의 코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키 차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메티스의 하얀 블라우스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테드는 목을 들어 올려 메티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기억 속에 있는 스승님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입에 물고 있는 담배는 물론이고 무료해 보이는 표정까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테드 크루시안이지? 물어볼게 있다.”
테드는 주위에 날아다니는 검은 나비를 보며 반항을 포기했다.
“너는 누구에게 마법을 배웠지?”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아서 대답할 수 없습니다.”
테드가 노골적으로 메피아 쪽을 가리켰다. 메티스는 메피아 쪽을 한번 보더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었기에 될 수 있으면 비밀을 지키고 싶었다. 또한 방금 전 하늘에 그려진 은빛의 마법진까지. 새어나가서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좋다. 그럼 장소를 옮기자. 메피아.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간다.”
“스승님! 안됩니다! 그는 황태자를 죽인 대역죄인입니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처단해야 합니다!”
메피아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메티스가 미간을 좁히자 그녀는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메피아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나는 이 녀석에 들어야 할 게 있다. 일이 끝나면 너에게 주마.”
“……그럼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안 된다.”
메피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스승, 메티스는 황제가 명령한다고 해도 코웃음칠 인물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녀를 강제할 수 없다.
“……좋습니다. 대신 그의 메이드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이 악마 계집 말인가.”
테드는 사이나의 왼손을 꽉 쥐어 잠자코 있으라고 무언의 뜻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주인님의 뜻을 충실히 헤아렸다.
메티스는 단번에 사이나의 정체를 파악해 중얼거렸다. 메피아가 악마 계집이란 말에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내가 볼일이 있는 건 이 녀석 뿐이다.”
테드가 사이나의 왼손을 놓았다. 메피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사슬 7개로 그녀의 몸을 묶었다. 그녀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이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평소의 여유를 되찾은 그가 메티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빨리 가죠. 안개속의 저택으로.”
“……그것 까지 알고 있나.”
메티스가 테드의 손을 잡았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진다.
“스승님. 일이 끝나면 꼭 그 놈을 황궁으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그리고 테드 크루시안. 메이드가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황궁으로 와야 할 거다.”
자신을 노려보는 메피아를 완전히 무시한 테드는 사이나를 바라봤다. 사이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테드가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메피아는 그녀의 무표정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만 버텨.”
그리고 메피아를 바라봤다. 메피아는 테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의가 담긴 시선으로 마주보았다.
“그녀를 건들지 마. 내일 바로 황궁으로 갈 테니까.”
“……내일 오지 않는다면… 네 소중한 메이드는 개먹이가 되어 있을 거다.”
기다리고 있던 메티스가 메피아를 바라봤다.
“걱정마라. 일찍 끝난다면 오늘 밤에 황궁으로 보낼 테니.”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피아는 텔레포트 마법으로 사라지는 테드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이 침체함에 따라 보이지 않던 사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하늘의 눈이 비춘 미래의 마법사라는 확신은 없다. 단지 우연히 눈이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8년이다. 아무리 천재라 해도 8년만에 그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냉정을 되찾은 메피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메피아는 테드의 붉은색의 두 눈을 보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공포를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무시했다.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다.
“……아직 부족하군.”
나직이 중얼거린 메피아는 사슬에 묶인 메이드를 바라봤다. 그녀를 보자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진 것을 떠올렸다. 당장 심문을 시작하고 싶지만, 황제의 자리에 올라 편하게 정치하려면 지금 당장 물밑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병사 몇은 여기에 남고 나머지는 돌아간다.”
“……괜찮으십니까? 한 명을 놓쳤는데….”
정예병 통솔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메피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범인을 한 명 놓쳐 그 화풀이를 자신들에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것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분은 나의 스승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메피아의 말에 정예병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자신들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
“……과연. 시간 회귀인가. 그거라면 너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림말하며 메티스는 탁자위에 놓인 재떨이 위로 담배를 비볐다. 처음에 아무것도 없던 은색의 재떨이는 담뱃재와 30개피가 넘어가는 꽁초로 가득했다.
테드는 그녀에게 모두 말했다. 그녀의 입이 땅만큼 무거운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훗날, 마왕으로 불리게 되는 올린버크를 처단한 이유까지.
“예. 스승님. 저는 모두 숨김없이 말했어요.”
“……신선하군. 미래의 제자를 마주하는 건.”
테드는 대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살핀 방안을 혹시 몰라 다시금 살폈다. 안개 속에 위치한 저택은 그리 크지 않았고, 이곳의 응접실용 방도 크지 않았다. 벽 한쪽에 달려 있는 창문과 중앙에 있는 탁자와 의자가 전부다.
말하자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휑하다. 다만 이 방안에는 결계갸 쳐져 있어 주인인 메티스의 허락이 아니면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하다. 테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혹시 몰라 도주 경로를 찾고 있었다.
“정말 제가 제자라는 걸 믿어요?”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그래도 너무 간단히 믿으시는데….”
“네가 방금 보여준 검은 나비, 그 마법만 봐도 알 수 있다.”
테드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마법을 선보였다. 메티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의미로 이 마법 덕분이다.
“그건 이 대륙에서 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이다. 네 마법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다만…. 나는 누구에게도 이 마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금기로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나는 널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었나 보군.”
메티스의 말에 테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검은 나비는 메티스 몰래 훔쳐 배운 것이다. 그녀는 금기라는 이유로 테드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훔쳐 배운 것이기에 완벽하지 않았다. 검은 나비는 수 십 개의 마법을 나비라는 모형에 축적시켜 놓은 것 같은 비전 마법이면서 고대 마법같은 마법이다.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스승님은 정확히 몇 살 이시죠? 30년 후 쯤에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때랑 지금이랑 모습이 완전 똑같네요.”
메티스는 테드가 만났을 때처럼 똑같았다.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모와 담배를 좋아하는 점. 기억속에 있는 스승, 테드의 기억속에 있는 30년 후의 그녀의 모습과 변함이 없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그럼 널 황궁으로 보내주겠다.”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테드는 그녀의 비밀이 궁금했지만 지금은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사제간의 정으로 그냥 절 놓아주시면 안 되나요?”
“그 정이란게 있었다면 생각해 봤을지도 모르지. 거기에 메피아도 제자다. 나는 그 녀석에게 널 황궁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고대 마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다른 마법사라면 몰라도 내겐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은빛의 마법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너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만… 시간이라면 썩어날 정도
로 넘쳐난다. 네 도움 따윈 필요도 없다.”
테드의 의자아래 마법진이 그려진다. 텔레포트 마법진과 비슷하지만, 살짝 변형되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황궁에는 일반적인 텔레포트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테드는 몸상태를 점검했다. 암브로시아의 지속효과는 끝났지만, 엘릭서를 먹어 마법의 후유증을 고쳤다. 이제 남은 엘릭서는 없다.
“……스승님은 미래의 일이 궁금하지 않나요?”
메티스는 테드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 테드가 알고 있는 미래에 관해서 조금도 묻지 않았다.
“삶은 무료하다.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다면 더 무료해지겠지. 그나마 미래를 모르기에 삶이란 게 재밌는 거다. 너와 만난 지금처럼 말이다.”
메티스는 이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미 네가 알고 있는 미래는 바뀌었을 테지.”
테드는 황태자 암살에 성공했다. 작은 미래는 변하지 않겠지만, 그가 죽음으로서 커다란 미래는 변했다. 메피아가 황제가 될 것이며, 딥크스는 전쟁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는 이미 박살났다.
“제가 황궁에 가면 그대로 사형 당하는데요?”
“나는 너에 대해서 모르지만, 어처구니없이 죽을 것 같지는 않군.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라.”
메티스는 그가 조금도 저항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황궁으로 가기 싫었다면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부셨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붙잡힌 공주님을 구하러 가는 용사님이라… 뭔가 동화 같지 않나요?”
“네가 황태자를 암살한 대역죄인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마법진이 한층 더 밝은 빛을 냈다.
테드는 그를 바라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메티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작스런 인사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피식 웃었다.
“그 인사는 너무 빠르다.”
마법진이 발동했고 테드의 몸이 사라졌다.
메티스는 조용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마법으로 작은 불꽃을 일으켜 담배의 끝에 붙였다. 이후 하얀 연기를 뱉어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메피아에게 보냈다는 말을 하지 않았군.”
뭐, 알아서 잘 받겠지. 그리 생각하며 그녀는 조용히 담배를 태웠다.
미래의 제자는 미래를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정말 미래가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미래의 올린버크는 마왕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을 떨친다 하더라도 지금의 올린버크는 막 시골에서 벗어난 촌놈일 뿐이다. 어쩌면 그를 대신해 누군가가 마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사이나는 감옥이 아니라 메피아의 방안에 감금되어 있었다. 넓은 방안에 중심에서 몸이 검은 사슬에 구속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메피아는 오자마자 사이나를 자신의 방안에 집어넣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암살을 대비하기 위해 수 십 가지에 달하는 마법을 걸어 놓았다. 마나를 억제하는 마법밖에 없는 감옥보다 자신의 방이 훨씬 믿음성 있었다.
혹시 몰라 정예병 몇을 방안에 집어넣어 감시하게 두었다. 심문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심문은 직접 자신이 하기로 했다. 평의회의 늙은이들이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이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감시를 하던 정예병들이 밖으로 나가고 진홍색의 머리카락의 황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방안의 불을 껐다. 테라스에서 들어오는 달빛만이 방안을 비추었다. 메피아는 침대에 앉아 다리를 꼬고서 사슬에 묶여 구속되어 있는 사이나를 바라봤다.
“26시간 남았다. 26시간이 지나면 난 네 주인에게 널 개먹이로 주겠다고 했지. 나는 황녀로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편이지.”
메피아는 피곤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그녀는 오늘 황제와 평의회에 상황을 설명하고 평의회의 손이 닿지 않는 귀족들에게 물밑작업을 하느라 모든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엄청나게 바쁠 것이다.
“제 주인님도…… 내뱉은 말은 되도록 지키려고 하는 편입니다.”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테드를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입은 아직 살아 있군. 너는 어느 정도의 고문과 능욕을 버틸 수 있을까.”
“고문을 하기에는 이 사슬이 너무 거추장스러운 것 같군요.”
7개의 검은 사슬을 그녀의 몸의 대부분을 사슬로 휘감고 있다. 사슬사이에 드러난 부위는 얼굴을 제외하면 별로 없었다.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미 대책이라면 전부 세워뒀으니.”
메피아는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오늘 하루 많은 일이 있었고, 메이드를 구속한다고 계속 마력을 소모하고 있는 탓이다.
“내 생각엔, 네 주인을 너를 버린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메피아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테드를 데려간 것은 메티스다. 메티스는 했던 말은 반드시 지킨다. 그러니 늦는다 하더라도 테드를 황궁으로 보낼 것이다.
“아뇨.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이나가 확답했다. 자정이 지나면 ‘악마 계약’이라는 스킬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즉, 테드가 사이나를 자신의 곁으로 소환할 것이다.
“……부러울 정도의 믿음이군. 내가 알고 있는 악마와 달라. 요즘 악마는 다 그런가?”
메피아는 마안으로 사이나의 정체를 파악했다. 스승의 악마계집이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악마 중에서 제가 조금 특이한 편입니다.”
메피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머리를 살폈다. 그러나 마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뿔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렸을 적 메피아는 악마를 위대한 존재라고 배웠다. 마족이 바로 악마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천족이 교단을 세워 천사를 신취급 하듯, 마족은 악마를 신성시했다. 거의 세뇌수준으로 말이다.
만약 평의회가 사이나가 악마라는 것을 안다면 당장 메피아의 방으로 쳐들어와서 메피아에게 시끄러운 고함을 내지를 것이다. 그들은 악마를 광신도 수준으로 따르고 있으니까.
메피아가 병사들에게 그녀의 심문을 맡기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가 악마라는 게 들키면 그녀의 대우가 정반대로 바뀔 테니까.
메피아는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녀의 지금 태도를 보자면 웬만한 고문은 하나마나 인 것 같았다.
그러다 사이나의 눈이 커다랗게 변한게 보였다. 무표정의 메이드가 놀람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메피아는 사이나가 자신이 아니라 뒤쪽을 바라보고 있는걸 알았
다. 뒤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메피아가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테라스의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눈동자로 말문이 막힌 사이나와 메피아를 확인하고서 유쾌하게 말했다.
“미안, 하루만 버티라고 했는데 하루도 안 걸렸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만….”
“개먹이로 준다고 하는 어디의 황녀님의 협박이 무서워서 말이지.”
메피아가 얼굴을 와그작 구기며 마력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이전에 검은 사슬 5개가 그녀의 몸을 붙잡았다. 마력이 봉인되고 사이나를 속박하던 사슬이 사라졌다.
“솔직히… 지금 당장 여기서 죽여 버리고 싶지만…. 댁을 죽이면 일이 더 복잡해
져.”
황제의 자리를 이을 인물이 없어지면 딥크스에 내전이 일어날게 뻔하다. 그리고 내전을 기회라고 생각한 주변 국가는 딥크스에게 전쟁을 걸테고. 기껏 올린버크를 죽여서 막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를 쫓던지, 수배를 내리던지 마음대로 해. 다만 지금 죽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
어.”
“네놈의 목적은…….”
메피아의 말을 끊으며 테드가 사이나의 손을 잡았다.
“믿을지 안 믿을지 알 수 없지만, 내 목적은 올린버크를 죽이는 것으로 끝났어. 댁이 걱정하는 배후도 없어.”
그리고 망설임 없이 테라스에서 뛰었다. 메피아가 움직이려 했으나, 검은 사슬은 그녀의 몸에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메피아는 입을 굳게 다물고 달빛만이 비추는 테라스를 하염없이 노려봤다.
============================ 작품 후기 ============================
150회를 끝으로 1부, 테드의 소년기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소년기와 청년기를 나눠서 쓸 생각이었습니다.
소년기에서 떡밥을 뿌리고 청년기에서 떡밥을 줍는 형식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떡밥이 너무 많이 뿌린것 같군요.
올린버크를 죽여 네메스 대륙의 전쟁을 막은 것 같지만… 사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은 없습니다.
사탄교는 건재하고, 메피아가 본 미래에 대한 떡밥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바론과 제대로 부딪히지도 않았죠. 거기에 너구리 수인 모나에 대한 떡밥도 회수하지 않은 체 입니다.
신경쓰이는 떡밥을 수십개나 던지고 일시적으로 연중하게 되어 여러분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 역량이 부족해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날지는 저도 알 수 없으나, 이미 시작한 일이니 돌아와서 확실하게 완결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