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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메피아는 진홍색의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서 정면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길이 보였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위로 올려 하늘도 확인한다. 평범했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뒤에는 데리고 온 무거운 갑옷을 몸에 걸친 정예병들이 절도 있는 자세로 조용히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정예병의 통솔자가 심각한 얼굴의 메피아에게 물었다. 방금 전 돌연 길을 멈추더니 가만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메피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라. 수도로 돌아가고 싶나?”
“죄송합니다만, 질문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저희는 끝까지 황녀님을 따를 것입니다.”
“깊은 의미는 없다. 쉽게 말하자면 이 앞으로 가고 싶은지, 아니면 뒤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 것이다.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해라.”
“…….”
그는 눈앞의 길을 바라봤다. 평범한 길이다. 맑은 하늘을 보면 비가 올 가능성도 없다. 더군다나 도시와 가까워 주위에는 위험한 몬스터도 없다. 혼자서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다.
“……무언가 불길합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길로 가고 싶지 않군요.”
“역시 그런가.”
“……역시?”
그가 의문을 표했다. 메피아는 정면으로 팔을 뻗었다. 그녀의 고운 팔이 완전히 퍼지기 직전 무언가에 막힌 듯 멈췄다. 메피아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매만졌다. 매끄러운 유리같은 촉감이지만,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건 결계다. 그것도 내가 모르는 결계. 아마 결계를 해석하려면 몇 개월은 걸리겠
지.”
메피아는 이 길을 오는 동안 3번 정도 다시 돌아 갈까하고 생각했었다. 단순한 변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일종의 최면이었다. 무의식을 건드리는 약한 최면이다. 확고한 목적과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 혹은 최면이란 것을 눈치 채면 효과는 무용지물이 된다. 병사들의 경우엔 확고한 충성심으로 최면을 이겨냈다. 꼭 충성심이 아니어도 멋대로 돌아가는 것은 탈영을 의미했고, 탈영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라도 참는다.
“……올린버크 황태자님을 마중하러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위험한 일이 아닌지요…?”
“위험한 일이지.”
말과 달리 메피아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초조함이나 불안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포커페이스로 본심을 숨기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지 알 수 없었다.
“……병사 한 명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올린버크 태자 전하의 곁에는 모리스 경과 그 부하들이 호위를 지키고 있다. 거기에 올린버크 태자 전하도 만만치 않다.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지원군은 우리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내심으로는 올린버크가 죽어주었으면 했다. 도착했는데 이미 늦어서 죽어버린 상황이 최고라 할 수 있다. 옆의 목격자도 있으니 금상첨화다.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빚이란 걸 만들어 둘 수 있다.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의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
“결계를 해석하는데 몇 개월이 걸리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결계를 해석해서 완전히 해체할 때의 이야기다. 편범을 이용하면 결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편법 말입니까?”
메피아는 힐끗 그를 바라봤다. 정예병 통솔자인 그는 귀족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남작이었던가. 그는 단승 귀족이었다.
“귀족인 너는 들어보았을 지도 모르겠군. 바로크 황족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마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태어 날 때부터 타고나는 능력이지.”
“…시스템의 축복이군요.”
바로크 황족은 태어날 때부터 희귀한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걸 시스템의 축복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이 시스템의 축복은 꼭 황족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아우티리아의 엘프 왕족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정령소통(Spirit Communication)》이란 스킬을 태어날 때부터 가진다. 뿐만이 아니라 특별한 가문이나 소수 민족의 경우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레어 스킬이 있다. 그것을 통 들어 시스템의 축복이라 한다. 보통은 일족마다 똑같은 스킬을 가지지만, 특이하게도 바로크 황족의 경우 개개인이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 지배(Magic Domination)》.”
그녀가 타고난 스킬이었다. 자신의 마법이든, 타인의 마법이든, 고대 마법이든 그것이 마법이라면 지배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스킬 랭크가 낮아서 상위 마법의 경우 전부를 지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그녀로선 이 결계를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 결계 일부분의 지배가 전부다.
메피아는 이 특이한 스킬 덕분에 스승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스킬은 그녀가 마법사가 된 계기라 할 수 있었다.
메피아가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결계안으로 들어갔다. 무심코 결계 내부를 살핀 메피아는 숨을 삼켰다. 푸른 하늘이 검은 밤하늘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결계가 아니군.”
메피아가 짧은 소감과 함께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병사들이 재빨리 뒤따랐다.
“황녀님.”
메피아가 뒤로 돌아봤다. 정예병 통솔자가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결심과 함께 입을 열었다.
“태자 전하께서도 시스템의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황족의 능력은 극비다. 나는 너희들을 믿고 선보였지. 어디에 가서 떠벌리는 것은 물론이고 깊이 관여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알겠나?”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마저 조아리며 사죄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주제를 망각했습니다!”
“됐다. 급한 상황이니 일어나라.”
메피아가 다시 움직였다. 그녀는 현재 남아 있는 3명의 황족의 스킬을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셋 중에서 가장 위험한 스킬은 올린버크가 가진 스킬이었다.
⁂⁂⁂
“그 모습은 네 진짜 모습이 아니구나.”
병장기 소리와 비명과 기합의 소리가 울리는 전투의 한복판에서 올린버크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했다.
테드는 인상을 와그작 구겼다. 올린버크가 생각이상으로 강했다. 느닷없이 허공에 나타나 쇄도하는 마법도, 순식간에 다가가 휘두르는 주먹과 에너지 블레이드도 모조리 피해냈다. 경악스러운 것은 올린버크가 실전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시킨 테드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싸우지 않는 거냐.”
테드가 불쾌함을 담아 말했다. 환상마법을 어떻게 꿰뚫어 보았냐고 진부하게 묻지 않았다. 그의 실력이라면 어설픈 환상마법은 손쉽게 꿰뚫어 볼 것이라 생각했다.
“제대로 싸우고 있느라. 아무래도 나는 경험이란 것이 부족해서 말이다. 섣불리 공격하면 내가 당할 것이 뻔하니 기회를 엿보고 있느라.”
“아, 그런가. 그럼 기회는 평생 오지 않을테니, 평생 피해라.”
“무례하구나.”
테드가 블링크를 사용해 올린버크의 코앞에 나타났다. 푸른빛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두른다. 상체를 노리고 오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피하기에는 짧은 대화 탓에 올린버크가 조금 늦게 반응했다.
올린버크의 몸이 사라졌다. 30M넘게 떨어진 곳에 그가 있었다.
“방금 그 공격은 위험했다.”
그건 분명 단거리 이동 마법인 블링크였다.
“……어떻게.”
테드의 눈동자에 불신이 서렸다. 그가 알고 있기로 지금의 올린버크는 블링크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가 마법에 숙련되는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어떻게 네놈이 블링크를 사용한 거지? 그 캐스팅 속도는 비정상이다. 아티펙트라도 가지고 있었나?”
“너는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구나.”
그 말에 테드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올린버크가 가지고 있는 스킬,《스킬 복제(Fake Skill)》이다. 상대방의 스킬 중 하나를 복제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래. 내 스킬을 복제했나.”
테드의 말에 올린버크가 흠칫했다. 여유롭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가진 스킬을 알고 있는 건 극소수다. 그가 이 스킬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극소수 중 한 명이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아바마마는 아닐 테고 야망을 가지고 있는 누이일 가능성이 높다.
“……너에 대대 알고 싶은 게 생겼다. 왜 나를 죽이러하지?”
“너는 위험하다.”
다시 올린버크가 입을 열기전에 테드의 몸이 사라졌다. 블링크로 순식간에 다가가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두른다. 테드의 움직임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던 올린버크는 몸을 비틀어 피했다.
허공에서 검은 마법진이 그려지며 쇠사슬이 나타났다. 올린버크의 몸이 사라졌다. 테드가 블링크로 뒤쫓았다. 다시 올린버크가 도망쳤다.
“아무리 내 스킬, 《마법의 대가(The Grand Archmage)》를 복제했다고 해도 네 마력에는 한계가 있다.”
올린버크는 테드의 말대로 마법의 대가라는 스킬을 복제했다. 다른 스킬을 복제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스킬 복제’에는 조건이 있다. 우선 대상이 시야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킬 목록을 볼 수 있었다.
복제할 수 있는 스킬은 하나가 최대이며, 다른 스킬을 복제하면 이전에 복제한 스킬은 사라진다. 또한 스킬의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복제할 수 없다.
마법의 대가는 올린버크가 마법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결한 눈’이나 ‘악마계약’ 스킬은 복제할 수 없었다. ‘마성’은 복제할 수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올린버크는 마력의 상태를 확인했다. 남은 마력의 양은 7할 정도다. 블링크를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에는 반드시 죽는다. 그전에 공격해서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 문제는 공격 수단이 없었다.
마법의 대가라는 스킬을 복제한 결과 어려운 마법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시스템의 도움 덕분이다. 그러나 마법으로 그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결국은 복제한 것이다. 마법에 대한 숙련도는 물론이고 경험까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검술? 제대로 된 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움? 모리스는 위험해 보였고 호위들은 골렘을 상대하고 있다. 골렘을 압도하고 있으나, 골렘 중 한 기가 유난히 강했다. 무려 호위 4명과 동시에 싸우면서도 전혀 밀
리지 않았다.
마법과 검술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무리다. 공격은 더더욱 매서워 질것이고 지금처럼 완벽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네게 죽겠지. 그러니 이름 모를 습격자여. 왜 나를 죽이는지 가르쳐주지 않겠나?”
“어차피 죽을거. 알 필요가 있나?”
“어차피 죽을 테니 알아도 상관없지 않나? 설마 너는 고작 몇 마디를 하는 게 힘든 일인가?”
테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확실하게 그 목숨을 빼앗기 위해 올린버크에게 걸어갔다.
“……네 생각과 사상이 위험해서다.”
올린버크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마주 걸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2가지. 자포자기로 인한 행동과 숨기고 있는 비장의 한수.
테드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최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만… 아니, 그 전에 내 생각과 사상은 어떻게 알았지?”
올린버크는 자신에 대한 것을 최대한 숨겼다. 알려지는 정보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생각을 내보인 것은 마차에 있을 때다. 마차에 도청 장치가 있었다고 해도 곧바로 습격해온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알고 있었다. 결계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확실했다.
테드는 올린버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올린버크의 주위에 수 많은 마법진이 그려진다. 헬 플레임, 헬 프로스트, 블레이드 스톰, 라이트닝 스톰, 블레이즈를 비롯한 상급 마법진과 파이어볼, 아이스 스피어, 윈드 커터 등의 하급의 마법진까지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그럼 만약 내가 생각과 사상을 이념을 버린다면, 너는 나를 살려 줄 것이냐?”
올린버크는 테드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했다. 소년의 모습이다. 환영마법으로 속인 모습이다. 진짜는 나이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의 진짜 나이가 환상마법과 같은 소년이라면?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지만, 올린버크는 상상의 결론을 내렸다. 먼 훗날 그는 터무니없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이번엔 테드가 대답했다.
“너는 변하지 않는다. 절대로.”
올린버크가 피식 웃었다.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린버크는 책으로 세상을 배웠다. 책에선 웬만한 것들은 모두 있었다. 직접 경험이 아니라 간접 경험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생물이 느닷없이 죽는 것은 이해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서 죽는다. 지나가는 강도에게 죽는다. 독이 들어간 요리를 먹어 죽는다.
마차에 치여 죽는다. 독벌레에게 물려 죽는다. 식사 중 목에 음식이 끼여 죽는다. 불치병에 걸려 죽는다.
온갖 죽음이 책속에 있었다.
올린버크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단지 오늘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삶에 대한 집착은 없었다.
올린버크는 도망이란 선택지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구나. 어쩌면 나보다 더.”
디스펠 마법진이 나타났다. 다섯 개의 마법진은 올린버크가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발동되어 방해할 것이다.
올린버크가 테드에게 달렸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해서 쉽게 죽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비장의 한수를 발동한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마력을 한 순간에 폭발시켜 믿을 수 없는 신체능력을 발휘했다. 10M의 거리를 단숨에 돌파한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타임 슬로우(Time Slow)》.”
그러다 갑자기 올린버크의 몸이 느려졌다. 정신은 멀쩡했기에 그는 자신의 상황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타임 슬로우. 중얼거린 그 단어의 뜻을 생각하면 올린버크의 비장의 한수는 조금도 의미가 없었다.
타임 슬로우는 이름 그대로 시간을 느리게 한다. 단, 마법 시전자를 중심으로 5M의 공간을 한해서다. 마법이 발동 되는 짧은 시간 동안은 시간축이 다른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달리 생각하면 앱솔루트 배리어 이상의 방어 마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시전자는 타임 슬로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거의 정지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며 테드는 걸어서 올린버크의 등뒤로 이동했다.
“나는 5초가 한계지만…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지.”
오로지 대마도사만이 발동할 수 있다고 알려진 마법은 결계를 발동시키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오늘 일어나자마자 준비한 비장의 한수로서 옷 아래 가슴팍에 특수한 재료를 사용한 마법진을 그려 놓았다.
5초가 흘렀다. 시간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올린버크는 애꿎은 허공을 때렸다.
올린버크의 팔과 다리, 몸통의 핏줄이 터져나갔다. 모든 마력을 폭발 시킨 영향이었다. 몸속도 진탕이지만 그는 신음하나 흘리지 않았다.
블링크로 올린버크에게서 거리를 벌린 테드가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전부 사용했다. 위력도, 속성도 다른 마법들이 동시에 발동했다.
불꽃이 타오르고 번개가 꿈틀거리며 바람이 비명을 지르고 얼음이 치솟았다.
마법이 서로 부딪히며 상쇄되어 사라졌지만, 테드는 개의치 않았다. 그 중간에 끼인 올린버크는 온전히 그 위력을 겪어야 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법의 향연이 끝났을 때, 올린버크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금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고결한 눈을 복제하지 않아 다행이군. 투시를 했으면 분명 알아봤을 테니.”
타임 슬로우 마법은 유명하다. 마도협회가 가지고 있는 마법중 하나기 때문이다. 일급 마법사는 타임 슬로우에 대한 마법을 알 수 있다. 친절하게도 마법진까지 가르쳐 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마도사가 아니면 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발동했다고 해도.
“…쿨럭! 아, 젠장.”
테드가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피를 토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오른손을 움직이려고 했는데 왼발이 옆으로 움직였다. 몸의 감각이 엉망이었다. 붉은색의 눈동자는 어느새 본래의 칠흙같은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 진짜 대마도사의 경지엔 이르지 못했나.”
당연한 말이었다. 마도사라면 몰라도 대마도사는 정말로 어려운 길이니까. 거기에 대마도사라 하기엔 ‘마법의 대가’스킬의 숙련도는 고작 B랭크에 불과했다. 원래는 C랭크였으나 힐데가르트의 결계를 연구하면서 대폭적으로 숙련도가 상승하는 쾌거를 얻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적어도 A나 S랭크는 되어야지 대마도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스킬로 경지를 표현할 수는 없는 거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몸상태가 좋아졌다. 마력은 바닥이었지만, 일어설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다 문득 사이나가 떠올렸다. 전투가 발생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골렘의 대부분은 파괴되었고, 호위들 대부분이 죽었다.
지금은 전투 상황이었다.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완벽하다.
테드는 사이나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사이나는 처음 보는 여자와 병사들을 혼자서 상대하고 있었다.
“저 여자는 또 뭐야. 원래 결계 안에 있었나?”
여자는 사이나와 벌어진 곳에서 상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력이 요동치며 진홍색의 머리카락이 격렬하게 흩날렸다.
“……진홍색 머리?”
진홍색 머리는 딥크스 황족의 특징이었다. 테드의 기억 속에서 올린버크의 누이, 메피아 바로크에 대한 정보가 떠올렸다. 직접 본적은 없었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황궁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 중에 그녀는 처형당했다. 마왕 올린버크에 의해서. 참수 당했다고 듣긴 했는데, 그 정보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우연히 머리카락 색이 닮은 것일 수도 있으나, 마법을 사용하는 것까지 닮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 거기에 병사를 이끌 수 있는 신분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빌어먹을. 일이 잘 풀리나 싶었는데…….”
황급히 벨트에 매달아 놓은 포션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때 메피아가 마법을 발동했다. 사용한 마법은 블레이드 스톰.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이 사이나를 노렸다.
테드가 멈칫했다.
저 마법의 방식, 굉장히 익숙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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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