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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막 해가 떠올렸을 무렵에 짙은 안개가 낀 산을 내려오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열린 코트 속에서 굴곡진 몸매가 드러났다. 상의는 무늬 없는 새하얀 블라우스고 하의는 피부에 착 달라붙는 가죽바지다. 신고 있는 신발은 5cm 정도 되는 검은색의 하이힐이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그녀는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검다. 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양쪽머리에 달려 있는 산양처럼 구부러진 뿔 또한 검은색이다. 그녀는 나른함이 느껴지는 황금색 눈동자로 정면을 쳐다보며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나무와 덤불이 저절로 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고 있었다.
그녀, 메티스는 검은 코트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하얀색 둥근 막대를 꺼냈다. 자연스럽게 입에 가져다 대고 막대 끝을 툭 건들이자 작은 불이 붙었다. 담배 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메티스는 담배를 한껏 들이마셨다. 몇 년 전에 생필품을 구하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건이었다.
상인은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파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하나 구입해 피었고, 단숨에 빠져들었다. 상인이 가지고 있는 담배를 구입하려고 했지만, 법으로 판매 수량이 정해져 있어 불가능했다. 생각 같아서는 매번 마을에 내려와 정기적으로 담배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입장상 그건 불가능했다.
담배라는 놈은 이상하게도 한 번 피우고 나니 계속해서 피우고 싶었다. 결국 담배의 재료를 알아내 남아도는 시간동안 수 천개에 달하는 수제 담배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메티스는 폐 속에 들어온 담배 연기를 후하고 내뱉었다. 담배의 구성 성분은 생물에게 상당히 해롭다. 그러나 마력이 충만한 그녀에겐 별달리 위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담배 성분이 몸에 흡수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여차하면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메티스는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내려갔다. 나른한 황금색의 눈동자는 정면에 향해 있지만, 오른쪽 눈동자에 보이는 시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곳은 산이 아닌 길이 있는 평지였다. 나무 몇 그루가 있긴 했지만, 숲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 길과 조금 떨어져 있는 유난히 커다란 나무 아래에 캠핑 도구가 늘어져 있고, 거기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은발의 메이드가 보였다.
오른쪽 눈의 시야가 흔들리며 넓고 안락해 보이는 텐트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살짝 열린 텐트의 입구 틈으로 내부가 보였다. 넓고 푹신해보이는 고급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 보였다.
테드 크루시안.
메티스가 산을 내려가는 이유였다. 그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그저께 마을에 내려갔다가 상인들이 심심치 않게 대화 주제로 사용하는 파이로크 마을에서 벌어진 마법 대회에 관한 것을 들었다. 레이저 페스티벌이라는 마법에 흥미가 생겨 마도협회 지부에
들어가 비싼 돈을 지불하고 대회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짜인 마법진의 수식, 마법진을 전개 하는 방식이 자신과 쏙 빼닮은 것이다. 그 방식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결코 사용하지 못한다. 우연히 방식을 발견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건 굉장히 낮은 가능성이다. 또한 설령 우연이라고 해서 그녀는 테드에게 가서 진상을 파악해야 했다. 그것이 그녀의 의무였다.
어제 수 백 마리에 달하는 패밀리어를 풀어 테드의 위치를 찾은 그녀는 이른 새벽인 지금 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메티스가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하얀 뺨이 살짝 홀쭉해지고 담배끝이 빠르게 타들어갔다. 담배를 입에서 떼고 입술을 벌려 연기를 후우 내뱉었다. 담배 끝을 툭 쳐서 재를 떨어뜨린 그녀는 잠시 손에 쥔 담배의 길이를 확인했다.
3분의 1정도 남은 담배를 허공에 던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불이 담배를 태워 재로 만들었다. 불은 사라졌고, 그녀는 새로운 담배를 꺼냈다.
⁂⁂⁂
“스승님이 움직였다고…?”
침대 끝에 앉은 메피아는 미간을 좁히며 자신의 앞에 부복해 있는 에이를 향해 물었다. 복면을 뒤집어 쓰고 있는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에이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의 입에서 내용은 졸음을 한순간에 몰아냈다. 아무리 그래도 부수수한 붉은 머리와 눈에 낀 눈곱까지 떼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렇습니다. 오늘 새벽에 그분이 산 아래로 향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가
까운 도시인 ‘후론’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을이 아니라 도시라… 워프게이트를 이용할 생각이군.”
조금 뻗친 진홍색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정리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최근 그녀는 굉장히 바빴다. 이복동생이 오늘 오후에 워프게이트를 타고 황가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이 가장 중요했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스승님이 도시로 발걸음을 향하신 것은 언제만이지?”
“약 5년 정도입니다.”
그녀의 스승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가까운 마을에 가끔씩 내려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도시로 향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필 지금… 아니, 설마 지금이니까 움직이는 건가.”
메피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만약에 스승님이 이복동생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라면? 그녀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한없이 낮은 가능성이라 생각하지만 인생사 세웅지마라 하지 않던가. 메피아는 불길함이란 소름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녀는 잠옷이로 팔목을 슥슥 문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되겠다. 미리 가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겠군.”
곧 황제가 될 이복 동생, 올린버크 바로크에게 마중 나왔다는 면목으로 찾아가 스승님과 올린버크가 만나는 것을 제지할 생각이었다.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스승님이 중립을 버리고 올린버크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스승님이 올린버크에게 가는 순간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 너는 스승님의 동태를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내게 보고해라.”
“예.”
복면인이 모습을 감췄다. 메피아는 곧장 방 옆에 달린 세면실로 움직였다. 아무리 급해도 황녀로서 부스스한 꼴로 밖으로 외출 할 수는 없었다.
⁂⁂⁂
캠핑 장비를 모두 아공간에 집어 넣어 정리한 테드는 꼼꼼하게 장비를 확인하고 있었다. 벨트에 위급상황 때 사용할 포션까지 달아 놓고, 완드 대용인 오른쪽 장갑인 글로리아까지 확인한다.
미궁에 밥 먹듯이 들어갔던 루크에이스에서도 지금처럼 꼼꼼하게 장비를 확인하지 않았다. 테드는 마지막으로 아공간에서 2M 크기의 골렘 17기를 꺼냈다.
골렘은 기사처럼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생김새도 완전무장한 기사와 비슷했다. 다만, 검을 든 골렘은 중간에 있는 골렘 한 기 뿐이다. 그 한 기는 특별히 테드가 공을 들여 만든 골렘이다. 생김새 또한 다른 골렘에 비해 날렵해보였다.
다른 골렘은 이름은 물론이고 번호도 붙이지 않았지만, 특별히 이 골렘에게는 이름을 하사했다.
“……완성하셨군요.”
사이나가 날렵한 골렘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골렘으로 테드는 어제밤에서야 겨우 완성시킬 수 있었다. 평소에 게으름을 부린 탓에 완성하는데 시간
이 걸리고 말았다. 마감에 코앞에 둔 작가의 심정을 느꼈다.
“그래. 특별히 드래온이란 이름을 붙였어.”
드래온의 몸통에는 대회 우승 상품으로 받은 인공 드래곤 하트가 들어가 있다. 아직 실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이론만으로는 2시간 정도는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충전을 해주어야 한다.
“주인님에게 죄송한 말입니다만, 그다지 강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겉모습이 기사 같아서 그래. 그렇지만 안에는 수 십 개의 마법진을 그렸어. 마법공격에서부터 물리공격까지… 웬만한 공격으론 흠집도 낼 수 없을걸.”
이어서 테드가 말을 이었다.
“공격능력은 떨어지지만.”
테드는 골렘을 방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면 골렘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격은 별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현재의 마법사들은 골렘은 전투용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놈의 호위를 조금이라도 더 묶어두는 게 목적이니까. 아마 골렘의 대부분은 파괴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깝군요.”
테드는 사이나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 또한 골렘에 들어간 비용을 알고 있었다. 이 골렘 하나를 가격으로 치자면 평민들의 집보다 비싸다. 재료값이 아니라 들어간 마법의 값이다.
“아까워도 어쩔 수 없어. 혹시 말하는데 골렘을 구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 돈이
그렇게 부족한것도 아니니 네가 재산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번 전투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골렘을 구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미안. 실언이었어.”
테드는 뒤늦게 사이나의 성격을 떠올렸다. 그녀라면 골렘이 아니라 어린아이라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사람을 구하는 모습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골렘의 성능까지 전부 확인한 결과 문제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되었을 무렵에 테드는 강화 마법을 사용해 신체 능력을 강화시켰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사이나에게도 걸어 주었다. 마나 포션이 남아돌지 않았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호화로운 마차가 보였다. 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는 굉장히 크고 화려했다. 주위에는 말을 타고 있는 갑옷을 입은 호위들이 보였다. 그들만이 아니라 마차 뒤에도 존재감이 느껴졌다.
호위는 어림잡아 30명. 테드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예상했던 범위 안이었다. 17기의 골렘 기사단이면 충분히 그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 기껏해야 5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면 시간이면 사이나와 함께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원한 밤(Eternal Night)》.”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발동한다. 힐데가르트의 결계를 연구하면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만든 결계 마법이다.
푸른색의 하늘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되었다. 순식간에 지상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 결계의 내부에 있는 인묻 들은 아주 조금씩 마나를 잃는다. 잃은 마나는 시전자인 테드에게 주어진다. 또한 결계가 펼쳐져 있는 동안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반대로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
“결계 유지 시간은 30분. 그 안에 끝장을 내야해.”
말을 마친 테드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속도를 높여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당황한 모양인지 호위자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테드를 발견하고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테드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마법을 발동시켜 놓았기에 그들의 눈에는 테드와 사이나의 본모습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볼 것이다.
“《암브로시아(Ambrosia)》.”
고대 마법을 발동 시킨다.
테드는 부동자세로 서있는 골렘 기사들을 바라봤다. 마차는 어느새 30M까지 다가와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 마차를 세우는 것에는 성공했다. 남은 건 전투 뿐이다.
“움직여라.”
17기의 골렘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리는 것은 마차 주위에 있는 호위자들이다. 테드와 사이나는 한 박자 뒤에 움직였다.
블링크를 이용해 단숨에 마차의 앞에 도착한 테드는 다짜고짜 마차의 문을 발로 차 열었다.
“지옥에 갈 시간이다. 《헬 플레임(Hell Flame》.”
시뻘건 불꽃이 마차안을 가득 메웠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