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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45화 (14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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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테드는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해 걸어가면서 전투 흔적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여기저기 베이고 부서져 있는 나무와 바위등을 보면 야스 피지르가 싸운 상대는 래비가 아니었다. 그녀와 싸웠다면 주변의 지형이 부서진 게 아니라 베인 흔적밖에 없어야 한다. 야스와 래비 둘의 마법은 부수는 게 아니라 베는 것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지누크인가 주니크인가 하는 놈이랑 싸웠겠지.”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일반 마법사들은 마력 낭비라는 이유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테드는 숲길을 걸어 움직이다가 멈칫했다. 작게 느껴지던 소란스러움이 어느새 커졌기 때문이다. 쿵쾅거리는 소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테드는 일부러 기척을 죽이며 살금살금 걸었다. 2명이 탈락했으니 나머지 2명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인데 잘하면 어부지리로 간단히 우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대회를 재밌게 보고 있는 시민들에겐 미안한 감정도 없잖아 있지만, 쉽고 빠른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갈 이유는 없다.

‘거기에 보는 쪽이라면 몰라도 직접 참가하고 있는 쪽은 재미도 없고.’

다른 참가자는 몰라도 테드는 시시함을 느끼고 있었다.

우승 상품에 관심이 없었다면 참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테드는 나뭇잎을 밟는 것을 조심하면서 숲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남녀를 발견했다.

비쩍 마른 해골같은 사내와 분홍색 단발머리의 여자가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엉망인 주변은 전투가 얼마나 격렬한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주니크와 래비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마법사인 그들이 접근해서 싸울 일은 없었다. 대신 언데드가 된 나무와 바위가 래비를 포위하고 있었다. 래비의 몸 주위에는 5개의 빛의 고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언데드를 위협하고 있다.

‘고착상태인가.’

몰래 숨어서 그들을 살폈다. 주니크의 마법인 ‘데스 인첸트’는 일시적으로 언데드를 만든다. 말 그대로 일시적이라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그가 될 것이다.

주니크는 당장 래비를 공격하고 싶지만, 래비의 ‘빛의 고리’ 때문에 힘들었다. 빛의 고리는 나무와 바위 정도는 손쉽게 베어내 버리기 때문이다. 빛의 고리를 잘 사용한다면 주니크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래비는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다.

“험한 꼴 보기 싫으면 항복하시죠? 지금 이 상황은 제 승리나 다름없다는걸 알고 있지 않나요?”

슬금슬금 벌레처럼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눈동자로 스치듯 확인하며 주니크에게 말했다.

주니크는 퉷하고 침을 뱉었다.

“웃기는 소리도 다하는군. 쫄았나?”

래비가 미간을 좁혔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당신은 굉장히 천박하군요.”

“존댓말을 갖다 붙인다고 교양이 생기는 것도 아니지.”

주니크가 대꾸했다.

“당신은 절 이길 수 없어요.”

“말로만 지껄이지 말고 덤벼봐. 그 순간 내 나무 언데드들이 널 덮칠 테니까.”

주니크는 또 다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건 습관이었다. 무언가를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주니크는 자주 침을 뱉었고, 어느 샌가 습관이 되었다. 침 뱉는 행위 때문에 어렸을 적에는 마을 경비병에게 잡혀 설교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고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정말 천박해요.”

래비가 빛의 고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주위에 있던 빛의 고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포위하고 있던 나무와 바위로 된 언데드가 베어져 평범한 나무와 돌로 변한다. 언데드 였던 커다란 나무가 그대로 래비 쪽으로 기울어졌다.

래비가 황급히 뛰어 나무를 피했다. 나무가 바닥에 떨어진 뒤, 서둘러 주니크의 모습을 찾은 그녀는 저 멀리서 등을 보이며 도망가는 주니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저 남자는 말로는 정면승부를 할 것 같았지만, 실상은 언데드를 방패로 삼아 도망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수 십 마리의 언데드를 끌고와 포위한다. 그 언데드가 빛의 고리에 의해 재기불능에 빠지면 다시 도망친다.

“교활한……!”

래비가 치를 떨었다. 주니크는 래비의 사정거리를 파악하고 일정한 거리 이상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잡지 못하는 이유였다.

래비는 덤벼오는 언데드들을 5개의 빛의 고리로 손식간에 토막 내며 주니크를 뒤쫓았다. 그녀는 독이 바짝 오른 고양이 같았다.

테드는 멀어지는 래비의 등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이대로 기다린다면 어부지리는 확실하겠지만, 보아하니 결판이 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편한길로 갈려고 하면 안 되겠지.”

작게 중얼거리며 래비의 뒤를 쫓았다. 길에는 두 동강난 바위나 나무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10분 정도 조심히 걸었을까. 테드는 대치하고 있는 주니크와 래비를 발견했다.

“질리지도 않나요? 이 장면을 보고 있을 시민들이 당신을 욕하고 있을 거에요.”

주니크는 래비의 상태를 살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그녀는 확실하게 지쳐 있었다. 빛의 고리는 유지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

반면 주니크는 조금 힘들긴 하지만 래비 만큼 지치지는 않았다. 언데드를 만들 때 마력이 소모되긴 하나, 유지하기 위해 마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기에 래비 보다 많이 마력이 남아 있다.

“이것도 전부 작전이지. 그리고 이번엔 정말로 끝을 볼 생각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그녀의 몸을 돌고 있던 5개의 고리가 다시 사방으로 퍼져 포위하고 있는 언데드를 베어냈다. 일반적인 언데드는 팔이나 몸통이 날아가도 멈추지 않지만, 나무와 바위로 된 일시적인 언데드는 평범한 자연으로 돌아갔다.

래비는 주니크를 향해 달렸다. 빛의 고리의 사정거리에 그가 들어오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그 팔과 다리를 끊어 탈락시킬 것이다.

어차피 마도 협회 마법사들이 팔과 다리를 다시 붙여 줄 테니 상관없었다.

주니크가 도망치지 않을까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말대로 도망가지 않았

다.

“이걸로 끝이에요.”

래비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빛의 고리를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그 보다 한발 앞서 주니크가 양손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기운은 땅바닥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네년이 말이지.”

땅이 2M가까이 솟아오르며 형태를 취했다. 다리와 팔이 있는 인간에 가까운 형태. 흙으로 만들어진 언데드다. 문제가 있다면 그게 30마리에 달한다는 점이다.

주니크가 땅바닥에 침을 뱉었다. 갈색의 언데드들은 곧장 래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래비가 이를 꽉 물며 빛의 고리를 조작하려는 순간이었다.

허공에 수 십 개에 달하는 형형색색의 마법진이 나타나 래비와 주니크의 시선을 빼앗았다. 더군다나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몸이 찌릿찌릿했다.

전투 중에 한눈을 파는 것은 멍청이들의 짓이었지만, 마법사인 그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마법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순간 지금의 상황을 잊을 정도로 말이다.

“이건….”

“난해한 마법이군 분명 본적이 있는데…. 그래. 어제 그놈의 마법…!”

주니크는 바로 마법진의 정체를 간파했다. 래비는 그의 말을 듣고 뒤늦게 떠올렸다.

“난 평화를 사랑하니까. 기회를 줄게.”

래비와 주니크의 시선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테드에게 꽂혔다. 그들은 경계어린 눈동자로 테드를 노려봤다. 그들이 무언가 말을 열기 전에 테드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항복을 선언하던가, 아니면 내 마법을 경험해보던가.”

씩 웃으며 말하자 래비와 주니크는 생각에 잠겼다. 그 와중에도 허공에는 마법진이 늘어나고 있었다.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법진의 수는 60이 넘어간다.

“……당신의 마법은 이상하군요.”

약간의 침묵 끝에 래비가 테드를 향해 말했다. 테드와 반대로 그녀에겐 웃음기가 조금도 없었다.

“뭐가?”

“대회의 규정으론 ‘자신만의 마법’이라는 조건이 붙어요. 레이저 마법은 알려져 있는 마법이죠. 자신만의 마법, 즉 비전 마법이 아니죠.”

“아니, 비전 마법이야. 원래 레이저 마법은 마력 소모가 크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

에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리는게 불가능하지.”

“테드 크루시안. 당신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했어요. 마도사인 당신이라면 충분히

레이저 마법을 다중으로 발동하는 게 가능해요.”

그녀는 눈앞의 테드가 아니라 현재 이 상황을 보고 있을 시민과 마도협회 소속의 마법

사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 자는 대회 규칙을 어겼다고.

“그래. 네 말대로야. 마도사라면 4~5개 정도면 레이저 마법이라도 멀티 캐스팅이 가능해.”

테드의 말에 래비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 마도협회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그를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70개에 달하는 레이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

70개라는 말에 래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하위 마법도 동시에 70개를 캐스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뒤에서 주니크가 킥킥 웃었다. 래비는 십중팔구 그가 자신을 비웃는 것임을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졌다.

“너의 빛의 고리 마법처럼 내 레이저 페스티벌도 하나의 마법이야.”

출력을 낮추는 대신 레이저의 숫자를 대폭 늘렸다. 질보다 양인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마법, 비전 마법은 꼭 특이해야 한다는 법은 없어. 아주 약간, 예를들면 파이어 볼의 위력이 증가하는 방법을 자신만 알고 있다면 그건 비전마법이야.”

“…….”

“꼴좋군. 네년은 잔머리를 너무 굴려.”

주니크가 유쾌하고 웃었다. 그와는 반대로 래비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테드는 그들을 보며 어이없음을 느꼈다. 잡담을 할 시간에 일초라도 빨리 자신을 공격해 마법 발동을 저지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놈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야, 안 덤비는 거야? 이 대로면 마법이 발동한다고?”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래비가 빛의 고리를 움직이려 했다. 갑자기 끼어들어 말한 주니크가 없었다면 말이다.

“나는 포기다. 상대가 마도사인데 이길 리가 없지. 내 목적은 저 년을 이기는 것 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저와 협력하는 게 정답이 아닌가요?”

“협려어어억!? 웃기는 소리. 네 년과 협력할 바에야 땅에 머리 박고 죽는 걸 택하지. 애초에 내 목적은 네년이었어.”

“……무슨 목적이죠?”

“네년은 평소에 사령술을 무시했지. 그래서 이번에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참가했

다. 네년이 무시하는 사령술에 지면은 다시는 사령술을 무시하지 못 할테니까.”

“고작 그런 이유인가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시시한 목적이네요. 그리고 저는 사

령술을 무시한 적 없어요. 사령술을 사용하는 당신 같은 이들을 경멸했죠.

“여전히 입만 살아서는. 뭐, 지금 여기서 대놓고 사령술을 무시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테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은 일찌감치 완성되었다. 발동만 하면 된다.

“너희들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법은 완성됐어. 그냥 좋게 항복해.”

“저년보다 빨리 항복할 순 없지.”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당신보다 빨리 포기하는 건 일생일대의 수치에요.”

래비가 빛의 고리를 움직였다. 테드가 아니라 주니크를 향해서다. 그리고 주니크의 언데드가 래비를 향해 달려들었다. 테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완전히 무시 당한 테드는 말없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수 십개의 마법진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휩쓸었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언데느는 형형색색의 레이저를 받아 순식간에 바스라지고, 래비가 자랑하는 빛의 고리 또한 레이저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성인 남성 주먹 굵기의 레이저가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레이저는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나무든 바위든 지면이든 관계없이 평등하게 소멸했다.

테드는 일부러 그들을 맞추지 않았다. 그들이 다시 마법을 발동하기 전에 가까이에 있

는 래비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테드의 주먹이 래비의 복부에 작렬한다. 그녀가 충격에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며 기절했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테드가 주니크를 바라보자 그는 양팔을 들어 올렸다.

“항복. 저년처럼 기절하고 싶진 않아.”

“…….”

우승한 테드는 이유모를 찝찝함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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