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44화 (144/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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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이 마법 대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간단하다. 사람의 시선을 확 사로잡고 뇌리에 순식간에 각인시킬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면서도 화려한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테드가 사용한 마법은 시민들을 만족시키기에 딱 좋은 마법이었다. 레이저는 상위의 마법이라 흔히 볼 수 없으며, 7개의 알록달록한 빛의 광선은 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을 정도다.

“……정체가 뭐죠?”

래비는 점수판을 확인한 뒤 경계심을 담아 테드에게 물었다.

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경계심이 서려있는 그녀의 눈동자를 한차례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인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래비는 테드의 등을 쏘아보았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테드는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무시하고 주니크 처럼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중에 주니크와 눈이 마주쳤지만, 상대가 먼저 침을 내뱉으며 눈을 돌렸다.

이후, 테드의 점수는 물론이고 주니크의 점수를 뛰어넘는 참가자는 나오지 않았다. 주니크의 점수는 그렇다 쳐도 테드의 9,000점대의 점수는 역대 마법대회를 통들어도 쉬이 볼 수 없는 높은 점수였다.

40번째 참가자가 얼음 마법을 선보이며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래비가 움직였다. 그녀는 참가자가 모여 있는 곳이 아닌 새로이 나타난 허수아비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 참가자인 래비 모스후입니다.”

그녀의 선언과 같은 소개에 주위의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그녀의 갑작스런 참가 소식은 괜찮은 서프라이즈 였지만, 참가자들은 좋은 의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잠깐.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방금전 자신의 마법을 선보인 40번째 참가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래비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죠. 저도 이번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이 대회는 중복 참가도 인정되거든요. 물론 마도협회의 확인은 받았어요. 1분전에 말이죠.”

래비는 마도협회와 이어져 있는 모종의 연락수단으로 대회에 참가의사를 밝혔다. 아직 예선전이 끝나지 않았기에 마도협회는 시원스럽게 받아 들였다.

“그건 직권남용 아닙니까? 마도협회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도 됩니까?”

“예선전이 끝나지 않았고, 제가 이 장소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시민 여러분들이 절 떨어뜨리겠죠.”

“…….”

입을 다문 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마도협회 소속이 아닌 그가 뭐

라할 수는 없다. 괜히 나섰다가 마도협회에 찍히면 앞으로의 인생이 꼬일 수도 있다. 거기에 시민들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다. 갑작스레 난입한 참가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테고 자연스럽게 점수는 낮아질 것이다. 그녀가 예선에 탈락하면 그대로 비웃어 주면 된다.

“제가 선보일 마법은 ‘빛의 고리(Ring of Light)’에요.”

그녀가 하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하얀색 빛이 모여들어 고리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빛의 고리다.

고리는 오른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고 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2개의 고리가 추가로 더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그녀가 손을 움직였다. 손을 위로 움직이자 그에 반응하듯 3개의 고리가 위로 움직였고, 손이 아래로 움직이면 3개의 고리가 아래로 움직였다.

회전하는 고리는 작은 소음도 흘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을 때도 물론이고 허공에서 움직일 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 고리는 단지 빛나기만 할 뿐이라고 그곳에 있던 대회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그 생각은 완전히 박살난다. 3개의 고리가 허공을 날아 허수아비를 두부 베듯이 손쉽게 베어냈기 때문이다. 흠잡데 없는 깔끔한 절삭이었다.

3개의 고리는 그대로 만족하지 못하는 듯 각각 사방으로 뻗어나가 바위를 무차별적으로 베어내기 시작했다.

테드는 빛의 고리를 보며 눈을 빛냈다. 효율적인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마법에 비해 물리력이 약한 빛의 마법에 회전력을 부여해 강력한 흉기로 만들어냈다. 바위를 가볍게 절단하는 것을 보아 웬만한 철검은 간단히 싹둑 잘라버릴 것이다.

그녀가 마법 시전을 끝냈다.

점수는 8,520으로 단숨에 테드의 바로 아래인 2위를 꿰찼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래비가 발동한 빛의 고리는 테드의 레이저 정도는 아니었지만 반짝이는 것이 화려했고 그 효과까지 증명했다. 거기에 그녀의 예쁜 외모 또한 점

수를 받는데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참가자들의 반발은 없었다. 마법사들인 그들이 뛰어난 마법을 보고 억지를 부릴 리가 없었다. 마법사는 마법으로 실력을 내보인다. 그녀는 확실하게 자신의 범상치 않은 실력을 내보였다.

“본선 진출자가 정해졌군요. 본선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다시피 내일 이루어지니 대회 시작 시간을 유의해주세요. 늦으면 곧 바로 탈락이니까요.”

래비가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예선 참가자들을 가차 없이 내보내고서 본선 진출자에게 약간의 설명한 뒤, 해산 시켰다.

1. 테드 크루시안. 9375점.

2. 래비 모스후.  8520점.

3. 주니크 스텀프. 8170점.

4. 야스 피지르. 7522점.

5. 린 아콜로. 7311점.

이 5명은 예선전에 선보인 마법만으로 전투를 벌인다. 최종적으로 단 한 명만이 우승자라는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

사이나는 평소에는 찾아오지 않는 주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간 주점은 ‘좋은 이슬’이라는 이름의 파이로크 도시 최대의 주점이다. 3층짜리 건물인 이곳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그 이유는 중심에 있는 마법 스크린 때문이다. 스크린에 나온 마도협회 소속의 마법사가 마법대회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메이드 아가씨. 혼자 왔어?”

빨간 머리를 삐죽이 세운 젊은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사이나에게 접근했다. 사이나는 그를 힐끗 보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말 걸지 마십시오.”

살기가 담긴 싸늘한 목소리에 빨간 머리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살기에 부들부들 떠는 빨간 머리를 무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 테이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뭐야, 메이드가 여기에 오다니 별일인걸. 어이쿠. 외모가 범상치 않구만. 고생 좀 많이 하겠어.”

키가 작은 중년남성이었다. 약간 뚱뚱한 그는 기름기로 번질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돈주머니가 가득했고, 본선 대회 참가자 5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가 있었다.

“잡설은 됐습니다. 바로 본론에 들어가죠. 돈을 걸고 싶습니다.”

“댁의 주인님인 테드 크루시안에게 말이지?”

“예. 안됩니까?”

“아니, 가능해. 설마 그의 메이드가 당당하게 들어와서 돈을 걸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조금 놀랐을 뿐이야. 주인님이 시킨 일인가?”

사이나는 고개를 저었다. 테드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찾아온 것뿐이다. 최근 테드가 골렘을 만든다고 제법 많은 지출이 있었다.

“참고로 댁의 주인님은 두 번째로 배율이 낮아. 첫 번째는 래비 모스후로 한 번 우승한 전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돈을 마구 걸었지.”

“관심 없습니다. 어차피 주인님이 승리하실 테니까요.”

“거참. 쌀쌀한 메이드구만. 조금 정도는 어울려 줄 것이지…. 그래서 얼마를 걸 거야?”

“5,000골드 입니다.”

“……축하해. 댁의 주인님의 배율이 가장 낮아졌어.”

⁂⁂⁂

황무지에서 실행되었던 예선과 달리 본선은 마도협회가 특별히 준비한 거대한 무대에서 시작된다. 무대는 파이로크 도시 뒤편에 있는 직경 1km의 작은 숲에서 일어난다. 숲의 주위에는 결계가 쳐져 있기에 함부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본선의 방식은 배틀 로얄이라 할 수 있다. 5명 중에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전투를 하면 된다. 단,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의적으로 살해할 경우 그 즉시 대기하고 있던 마도협회 소속의 마법사들에게 구속당할 것이다.

탈락 조건은 스스로 항복하는 것과 전투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다. 예를 들면 정신을 잃거나 팔이나 다리 한쪽을 잃는 중상을 입는 경우가 포함된다.

또 예선전에서 사용한 마법 외의 마법을 사용했을 경우에 탈락된다.

“날 가장 먼저 노리는 건, 패기는 인정하지만 정말 멍청한 생각이야.”

테드는 자신의 앞에 있는 20대 중반의 여자를 보며 말했다. 테드처럼 모험가 출신인 그녀는 마법사가 애용하는 복장인 로브가 아니라 탄탄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너의 레이저 마법이 위력적인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테드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있었던 일인지라 인상이 옅은 그녀여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린 아콜로. 사용하는 마법은 ‘라이트닝 스톤’. 돌멩이에 번개를 쑤셔 넣어 상대와 부딪히는 순간 감전시키는 마법이다. 이 마법의 장점은 돌멩이라는 것에 있다.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라 갑옷을 입은 기사나 검사는 피할 가치도 못 느낄 것이다. 작은 돌멩이 정도는 가죽 갑옷으로도 일부러 맞아 줄 수 있으니까. 쉽게 말해 상대방의 방심을 이끌어내는 마법이다.

“그리고 레이저 마법은 마력 소모가 심하지. 거기에 지나치게 위력적이야.”

린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등허리에 달린 단검을 꺼냈다. 마법대회지만 규칙 중에서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었다. 예선에서 사용한 마법이외의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되지만.

“내 마법의 위력을 알면서도 덤비겠다고?”

“설마 대회의 규칙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살해하는 순간 곧바로 탈락이야. 마도협회의 마법사들이 널 구속하고 재판장으로 끌고 가겠지.”

“아.”

테드는 뒤늦게 자신의 마법의 결함을 깨달았다. 속도가 너무 빨라 피하는 것도 어려운 레이저는 너무나 살상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살인을 일으키는 순간, 그녀가 말하는 대로 구속되어 재판대로 끌려 갈 것이다.

“그래도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

테드의 좌우에 각각 적, 청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기겁한 린이 다급하게 다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은 완성되고 굵은 레이저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마법진의 위치를 보며 레이저의 궤도를 확인한 린은 결국 바닥에 바싹 엎드리는 것으로 정했다.

결국 레이저는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린의 위를 스쳐지나가 애꿎은 나무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지, 진짜 죽이려고…!”

“아니, 피할 줄 알았어. 피하기 쉽도록 일부러 캐스팅도 늦게 했거든.”

흠칫하고 떨었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이겨내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테드와 눈이 마주쳤다.

“아, 나도 모험가 출신이야.”

오른발을 뒤로 빼서 그대로 엎드려 있는 그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슬쩍 마력을 실어 공격했기에 린은 두 눈을 위로 뒤집고서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테드는 잠시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3명이 나타났다. 마도협회 소속의 마법사인 그들은 테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린을 둘러메고 사라졌다.

한 명이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고 탈락했다.

테드가 어디로 움직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쓰러지고 있었다.

“길게 볼 것 없이 빨리 끝내자.”

이 대회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 보다 도시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레이저를 폭격해 당장 끝내고 싶었다.

테드가 욕구를 참으며 소리가 난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엔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마도협회의 마법사가 기절한 인물을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워터 블레이드라는 마법을 선보이며 예선전에서 4위를 한 야스 피지르라는 인물이었다. 격렬한 전투 흔적이 남아 있는 주위를 스윽 훑어본 테드가 상대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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