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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위험한 전투,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투를 앞두고 아무리 테드라도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완벽한 승리를 추구해야 하는 만큼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마법사가 전투를 준비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마법 함정을 설치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테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이지만, 상대는 전투 반면에서 왕국최고라 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중에는 물론 뛰어난 마법사와 레인저가 있을 것이고 마법 함정이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섣불리 함정을 설치했다가 도리어 상대의 경각심을 높여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테드는 다른 방법을 준비하기로 했다. 현재 테드에게 가장 불리한 점, 자신과 사이나 단 둘 뿐이라는 수적인 열세를 보완하는 것이다.
모험가나 용병을 고용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테드가 하려는 짓은 몬스터 퇴치같은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평생을 딥스크의 병사들에게 쫓길 수 있는 극악한 범죄다. 유명한 암살 길드라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것 또한 불가능한 일인 것 같지만, 마법사에겐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병사가 있다. 바로 골렘이라는 인공병사가 말이다.
마법으로 일시적인 골렘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있다. 《클레이 골렘(Clay Golem)》이라는 마법이다. 다만 마력소모도 심하고 진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인 만큼 내구도도 낮다. 쉽게 말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다른 골렘은 마법 재료로 만들어낸 골렘이 있다. 아티펙트 골렘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일종의 마법 병기다. 어떤 재료로, 어떤 마법으로 제작했는가에 따라 성능이 천지차이로 바뀐다. 굉장히 많은 돈이 소모되는 점과 마법사의 실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 단점이 있다.
그리고 그 단점은 테드에겐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돈이라면 모아둔 것들이 놀랄 만큼 많이 있고 과거 대마도사에 이른 테드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다.
“때마침 마도협회가 있는 딥크스라서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이 참에 골렘 기사단이나 만들어 버릴까.”
농담 같은 어조로 테드가 중얼거렸다. 물론 골렘을 만드는 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골렘이라면 황태자를 암살하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님이 골렘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상대가 강합니까?”
사이나가 물어왔다. 그녀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껏 테드는 어떤 전투에서도 골렘이나 함정을 준비해 철저하게 전투에 나선 적이 없다. 몸뚱이 하나 믿고 전투에 나서서 언제나 이겨왔다. 마법사 치곤 굉장히 이례적이지만, 테드의 강함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번일은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되니까. 거기다 상대도 강해.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해.”
“알겠습니다. 저도 진지하게 임하겠습니다.”
“넌 언제나 진지하니까 괜찮은데… 이참에 장비라도 바꾸지 않을래? 메이드 복은 조금 불편하니까. 대신 가벼운 갑옷을 입자.”
“주인님 죄송합니다만, 제게 있어 메이드 옷보다 좋은 갑옷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갑옷이라니. 툭 뜯으면 찢어질 것 같은데.”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이 옷을 입고 있는 지금이 전투에 있어 가장 좋은 컨디션이라 할 수 있지요.”
그녀의 붉은 두 눈동자엔 아무리 테드라도 양보할 수 없다는 의지가 철철 흘러나왔다. 테드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암살이야. 호위 전부를 죽일 수 없을 거고, 인상착의가 알려져 수배범이 될 수도 있어. 적당히 변장을 할 생각인데… 메이드 복은 눈에 너무 띄지 않을까.”
“환상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그거라면 충분히 제 모습도 감출 수 있습니다.”
강제로 명령한다면 듣겠지만 관계가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 잠시 생각하던 테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는 게 좋겠지. 그 메이드복 벗어줄 수 없을까?”
테드가 말하는 순간 사이나는 곧바로 메이드복을 벗으려고 했다. 일단 앞치마를 푼 다음 블라우스를 벗으려는 사이나를 테드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녀의 행동력에 깜짝 놀랐다.
“일단 지금은 밖에 나가야 하니까. 나중에 부탁할게….”
“여벌의 메이드복이라면 준비해두어서 괜찮습니다만.”
테드는 그녀의 메이드복에 마법을 새겨 철갑옷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방어력을 부여할 생각이었다. 제법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므로 지금 그녀에게서 메이드복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여벌이 있다면 미리 받아 두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다시 그녀에게 부탁하는 상황을 생략할 수 있으니까.
“그, 그럼 부탁할게.”
그녀가 당당히 여벌의 메이드로 갈아입을 때까지 테드는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뗼 수 없었다.
⁂⁂⁂
올해 17살이 되는 마족 소녀인 비우는 아버지의 가게를 맡고 있었다. 물론 공짜로 맡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다. 시급은 낮지만 작은 가게라 손님도 별로 없어 한가하기에 용돈 벌이로 제격이라 아버지가 가게를 부탁할 때마다 거절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가게와 조금 떨어진 술집에 가있다. 그녀가 듣기론 친구의 어머니가 타계해 위로한다는 명목이었다. 그 말의 진위여부는 그녀는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작은 용돈을 받았다.
그녀는 대낮부터 술을 퍼먹는 아버지의 불성실함에 감탄하면서도 부디 개가 되어 집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정말로 화가 난 어머니에게 집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우의 어머니는 유명한 모험가 출신의 ‘신의 사도’였다.
비우는 카운터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창 외모에 관심있는 그녀는 시간이 날때마다 거울을 보는게 일상이 되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또래보다 조금 성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친구들에겐 우스갯소리로
노안이란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자신의 외모를 질투하며 하는 말이기에 조금도 나쁘지 않았다.
거울속의 그녀는 새까만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머리 양쪽에는 엄지손가락의 앙증맞은 뿔이 달려 있었다. 진홍빛을 띠는 작은 뿔은 그녀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검지와 중지로 뿔의 매끈한 표면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딸랑하고 문 위에 걸어 놓은 방울이 청아한 소리를 알렸다.
비우는 재빨리 거울을 내려다 놓고 영업용 미소를 활짝 만개시켰다.
“진달래 마도 상점에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활기차게 정해진 말을 잇던 비우는 들어오는 손님을 보며 한 순간 미소가 사라질뻔했다. 그간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귀종한 고객에게 추태를 보였을 지도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도련님과 메이드였다. 자신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의 도련님은 들어오자마자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은 채 거만하게 내부를 스윽 훑어보는 게 상당히 건방져 보였다.
뒤이어 들어온 은발의 메이드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질투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내부에 장식되어 있는 상품에 조금의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비우가 놀란 것은 그들의 머리에 있는 뿔 때문이다.
우선 건방진 도련님… 테드의 이마 중앙에는 30cm나 되는, 성인 팔뚝만한 두께의 검은 뿔이 솟아나 있다. 나이 치고는 뿔이 너무 크지만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이마 중앙에 붙어 있는 것도 드물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게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풀이라도 붙여 놓은 어색함만큼은 넘어갈 수 없었다.
‘메이드는 풀도 아니야!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은발의 메이드에게도 뿔이 있었다. 머리 양쪽에 5cm 정도 되는 원뿔 모양의 검은색 뿔이 나있다. 뿔의 아래에는 검은색의 머리띠가 있고. 누가 봐도 뿔이 머리띠의 장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서 들어온 소년보다 훨씬 어울리긴 했지만, 명백한 가짜였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마족이 다른 종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가짜 뿔을 붙여 마족처럼 보이게 하면 괜한 시비를 피할 수 있기에 딥크스에 관광온 다른 종족이 종종 써먹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래도 그녀가 보기엔 너무 엉성한 변장이었기에 지적해야 하나 모른척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 알바.”
소년의 입으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하대에 카운터 아래에 보이지 않는 비우의 주먹
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인가요.”
접객일을 하다보면 가끔가다 개떡같은 손님을 만날 때가 있다. 상품에 문제가 있다며 억지를 부려 가격을 깎아내는 손님이나, 혹은 자신의 외모에 반해 추파를 던지는 손님 등 흔히 말하는 진상 손님이다.
눈앞의 어린 손님은 태도가 불량하긴 했지만 진상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거만한 행동
이나 말투도 그가 귀족이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마법 재료를 구입하고 싶은데… 추천할건 없어?”
“그럼 적어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실지 말씀 해주셔야…….”
“아, 골렘이야. 골렘. 골렘을 만들 재료가 필요해.”
“그거라면 좋은 마법 금속이 있어요.”
카운터에서 나온 비우는 바로 옆, 값비싼 마법재로를 모아 놓은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손바닥만 한 사각형의 금속판을 가리켰다. 푸르스름함이 감도는 금속판은 누가보더라도 최상의 품질이었다.
“마법 금속인 ‘아이언 브레이커’죠.”
“……강철 파괴자? 금속 치곤 굉장히 불길해 보이는 이름인데.”
테드가 미심쩍은 눈으로 비우를 쳐다봤다. 비우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타고난 접객의 재능이었다.
“처음 금속이 만들어지고 강도를 시험할 때 강철을 손쉽게 파괴해버렸죠. 그 유래 때문에 이름이 ‘아이언 브레이커’가 된 거에요.”
테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이언 브레이커를 바라봤다. 고결한 눈이 발동하며 자동적으로 감정된다.
≪아이언 브레이커.
강철보다 뛰어난 강도와 마나 전도율을 가지고 있는 마법 금속. ≫
그 옆에도 마법 금속이 있었지만, 아이언 브레이커 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마법 금속이 아이언 브레이커였다.
골렘을 만드는데 굳이 꼭 마법 금속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비교적 저렴한 철을 이용해 만들어도 된다. 테드가 마법 금속으로 골렘을 만드려는 것은 이왕 만드는 거 최고 품질로 만들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강철이 못미덥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그럼 이걸로. 재고는 어느 정도 있어?”
“요즘 골렘을 만드려는 마법사가 없어서… 제법 많이 남아있어요. 2톤 정도요. 어느 정도 필요하세요?”
“전부.”
테드는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빼냈다. 손에는 하나의 종이가 팔랑거리고 있었다.
종이를 무심코 바라본 비우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월드 뱅크의 수표로 0이 너무 많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의 테드의 첫인상이 건방진 귀족 도련님에서 거물 귀족 고객님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었다.
“창고에서 물건을 가지고 올 테니 자, 잠시 기다려 주세요!”
비우가 허둥지둥 움직이며 창고 안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테드에게 물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저택까지 배달해드릴게요.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 직접 가지고 갈 테니까.”
테드는 긴말 할 필요 없이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 보였다. 비우는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마법 도구로 2톤에 달하는 아이언 브레이커를 가지고 왔을 때, 테드는 벽에 붙여 놓은 포스터를 흥미롭게 읽고 있었다.
“이 마법대회라는 거 마법사라면 누구나가 참가할 수 있어?”
비우는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바라봤다. 그건 매년 마도협회에서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마법대회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4일 뒤에 시작하는 마법대회는 자신만의 마법을 선보이는 대회다.
‘자신만의 마법’. 쉽게 말해 알려지지 않은 마법을 말한다. 비전 마법 같은 것 말
이다.
“아, 네. 외지인들도 참가하니까요. 그래도 의외로 참가자는 적어요.”
“그렇겠지. 자신만의 마법을 선뜻 선보일 수 있는 마법사는 거의 없을 테니까.”
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남들 앞에서 비전 마법을 펼치는 것은 껄끄러웠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공 드래곤 하트라는 건 복용해도 상관없어?”
“그, 글쎄요. 인공 드래곤 하트는 저도 처음 들어보는 지라…….”
테드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눈은 포스터에 적혀 있는 우승 상품이 인공 드래곤 하트라는 문자를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다음달 제가 입대를 하게 되며 연재가 불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 챕터를 마지막으로 1부인 테드의 ‘소년기’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군대에서 연재를 할 수 있다고 친구에게 듣긴 했는데 솔직히 어떻게 될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재를 중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고결한 영혼은 시간을 걸린다 하더라도 완결을 낼 생각입니다.
고결한 영혼의 경우 이후 2부인 ‘청년기’를 끝으로 완결이 날 예정입니다.
이후 공지를 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