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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41화 (14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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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마도사의 시작.

20. 대마도사의 시작.

“아바마마가 무슨 생각이신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메피아는 테라스에 앉아 딥크스의 수도인 ‘드레이스’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방에 달린 테라스에서 수도를 내려다보는 것은 그녀가 가진 취미 중의 하나였다. 테라스의 거대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홍차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테라스 난간에서 수도를 내려다보아도 조금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홍차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메피아의 황제인 크록스가

몇 년 전 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지금에 와서 후계자를 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지목한 후계자는 메피아가 아니었다.

크록스가 차기 딥크스의 황제로 지목한 것은 황궁에도 없이 별장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의 이복 남매다.

메피아는 크록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실의 딸로서 정통성 있는 자신이 아니라 첩의 아들을 불러들인 크록스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단지, 짐작이 가는 것은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딥크스의 역사를 대충 살펴보아도 여성이 황제가 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며 제위기간도 짧은 편이었다.

“……빌어먹을 노친네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기는.”

그녀가 이를 뿌득 갈았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슬금슬금 위로 떠오른다.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마력이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것이다. 진홍색의 머리카락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녀는 냉정하게 감정을 조정했다. 여기서 화를 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괜한 마력 낭비인 것이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다. 늙은이들에겐 예전의 힘이 없다. 잘만 움직이면 황제

의 자리에 앉지 못해도 황제의 권력을 얻을 수 있다.”

테라스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메피아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앞으로 한 달 뒤면, 이복동생이 황궁에 도착해 황제가 될 것이다.

늙은이들, 평의회에 속한 5명의 귀족들이 이미 손을 썼기에 암살 등의 극단적인 방법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자신이 후계자가 되지 못한 이유는 평의희의 입김이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뭐가 딥크스를 위한 평의회냐. 단지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단체임을 누가 모르는 줄 알고……!”

쾅! 앞에 놓인 고급스러운 하얀색 원형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마력을 사용하

지 않았기에 테이블 멀쩡했고 자신의 오른 주먹만이 아파왔다. 욱씬거리는 고통에 정신을 차린 메피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진정하자. 여기서 화를 낸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다독인 그녀는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복동생을 회유할 방법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아서 실행해야 한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번쩍 눈을 뜨더니 짜증스레 말했다.

“디.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급히 보고 할 것이 생겨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테라스의 구석, 유난히 그림자가 짙은 곳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피아는 짜증을 가라앉혔다. 디는 우수한 자다. 쓸데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말하라.”

“테드 크루시안. 힐데가르트의 마도사가 딥크스로 들어왔습니다.”

테레사 힐데가르트는 테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숨겼다. 그러나 그건 최대한일 뿐이다. 정보력이 뛰어난 자는 이미 테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그가 자유기사이면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도사라는 정보를.

“……목적은?”

기왕이면 얻고 싶은 인재였다. 마도사가 자신의 아래에 있으면 상당히 든든하니까. 거기에 테드 크루시안은 힐데가르트의 ‘영원한 밤’을 고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어린 나이에 마도사라면 훗날에 대마도사가 될지도 모른다.

“관광입니다. 약 2개월간 관광을 목적으로 찾아왔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딥크스는 마법의 나라이기도 하니까… 마도협회가 목적인가….”

딥크스에는 5개의 마탑이 연합해 만든 마도협회의 본거지가 있다. 목적이 관광이라면 아마도 마법사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마도협회와 마탑이 목적이리라.

“지금 당장 만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군.”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만나다고 한다면 한 달 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내고 난 뒤다.

“그림자를 붙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평소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너희들이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디의 대답에 메피아는 흡족하게 웃었다.

⁂⁂⁂

딥크스는 다른 나라에 비해 통행이 어렵다. 순수하게 관광목적으로 찾아왔다고 해도 몇가지 조건을 만족해야지 딥크스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딥크스가 유난히 폐쇄

적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적이 많기 때문이다.

마족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 사고 등을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이 마족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우 많이 사리고 있지만, 옛날의 경우엔 말도 못할 정도로 사나운 종족이 마족이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종족을 무시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물론 마족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 중에도 악인과 선인이 있는 것처럼 마족 또한 악과 선을 나눌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마족의 대부분이 가진 생각 중 가장 마족이 가장 우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마족은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일종의 세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딥크스는 방문자를 반기지 않는다. 나라의 유지를 위해 무역은 활발히 하는 편이지만, 상인들도 검증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설령 같은 마족이라도 신분증을 확인 받아야 한다.

테드가 자유기사라는 직위를 얻은 것은 여행의 편안함도 이유긴 하지만, 딥크스에 들어가기 위해서기도 했다. 자유기사라는 확신한 신분증이 테드의 신원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허가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테드는 모종의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아 딥크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 또한 상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책은 밀입국이다. 아무리 군대를 이용한다 해도 국경전체를 경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마법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들켰을 경우 딥크스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그리고 현재, 테드는 사이나와 함께 작은 방안에 앉아 장교과 면담을 하고 있었다.

“테드 크루시안. 펠리스 왕국의 자유기사군. 어떤 목적으로 딥크스에 찾아왔지?”

듬성듬성한 수염이 특징인 장교가 물었다. 목소리에는 귀찮음과 피로함이 섞여 있다.

“관광이에요. 제가 여행을 좋아해서요. 이번에 딥크스까지 오게 됐지요.”

장교는 서류에 테드의 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보통 입국 관련 면담은 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처리한다. 장교인 그가 직접 하는 것은 테드가 자유 기사 직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목적은 관광이고… 체류기간은 어떻게 되지?”

“2개월이요.”

“그럼 넉넉하게 3개월을 주지.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싶으면 시청에 가면 된다.”

“이걸로 끝난 건가요? 면담이라기에 조금 긴장했는데 의외로 별거 없네요.”

“너는 관광이 목적이고 자유기사의 직위를 가지고 있기에 이 정도다.”

상인의 경우에는 어떤 물품을 팔려 왔는지 혹은 사려고 하는지 세세하게 캐묻는다.

“알고는 있겠지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장교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더니 으르렁거리듯 말하며 작성한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조용히 지낼거에요. 딥크스는 무서우니까.”

장교는 콧방귀를 뀌더니 문을 열고 나갔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테드는 사이나를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것으로 기본적인 절차는 끝났다. 출국할 때 비슷한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다.

“주인님. 어디로 가실 겁니까?”

사이나가 물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도시나 마을이 아니라 국경 방어를 위한 요새

다. 지나가는 관문이었다. 테드는 지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최종 목적지는 수도 보다 더 안쪽에 있는 마을이야. 워프게이트를 이용한다고 해도

3~4일은 걸리는 거리야. 빠르게 도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조금 늦게… 한달 정도 관

광하다가 그곳으로 갈거야.”

“주인님의 목적이 거기에 있는 거군요?”

사이나가 말했다. 테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상, 자세히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가면서 말해줄게.”

근처에는 병사들이 있기에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 가까운 도시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하기에 가면서 말하면 된다.

테드와 사이나는 제법 정리가 되어 있는 도로를 걸었다. 군대의 효율적인 이동과 상인

의 무역을 위해 다듬어진 도로였기에 걷는 것에 불편함은 없었다. 테드는 입을 열기전 고개를 두리번거려 혹여 듣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지나가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서치 마법을 사용해 주변

을 확인한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어나가는 순간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내 목적은 마왕… 아니, 예비 마왕을 죽이는 거야.”

“……마왕. 처음 보는 이름이군요. 마족과 연관이 있습니까?”

마왕은 악마와 연관이 없다. 마계의 악마들은 왕국 사회가 아니었다. 왕과 비슷한 존재라 한다면 대악마를 손에 꼽을 수 있다.

“올해 즉위하는 딥크스의 황제에게 미래의 네메스 대륙인들이 부르는 호칭이야. 공포

를 담아 부르지.”

“그렇군요.”

사이나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테드는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다.

“……궁금하지 않아? 어떻게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만, 제가 알아야 하는 정보입니까?”

“아니,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난 말하고 싶어.”

테드는 사이나에게 모두 말했다. 창조주 제울과 만나서 얻은 것과 회귀전의 자신에 관해서. 또한 자신의 마법실력의 대한 이유를. 그녀는 조금의 반론도 하지 않고 담담히 들어주었다. 간혹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물어보는 것이 전부였다.

“예비 마왕은 전쟁을 일으킬거야. 네메스 대륙의 전체를 휩쓰는 거대한 전쟁을. 다르게 말해 그가 없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 그가 내가 알고 있는 전쟁의 시작이었으며 원흉이니까.”

“주인님은 그를 죽여 전쟁을 막는 것이군요. 의외로 간단한 일이군요.”

“아니,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 내가 이 시기에 찾아온 것은 유일하게 그를 죽일 틈이 발생하기 때문이야. 나는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도 황제로 즉위하기 위

해 지나치는 마을을 알고 있어. 이 기회를 놓치면 황궁을 쳐들어가는 수밖에 없는데… 괴물들이 넘쳐나는 황궁에서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해.”

궁니르를 황궁에 떨어뜨리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황궁에 있는 자들이 일찌감치 눈치채고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주인님과 저라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주위에는 호위자들이 있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력도 만만치 않고. 차기 황제의 호위이니 만큼 수도 적지 않을 테고 실력도 무시할 수 없어. 내가 널 소환한 진짜 이유이기도 해. 나 혼자서 호위를 박살내고 예비 마왕을 죽일 수 없으니까.”

그래도 여러 기연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졌다.

“아쉽게도 난 호위가 누구인지, 어느 정도 있는지 까지는 몰라. 네 도움이 절실해.”

“전 주인님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거 참 든든한걸.”

테드는 사이나에게 웃어보였다.

마왕을 죽이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본적도 있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방법 말이다. 그러나 그건 망상에 불과했다. 마왕을 만난 적이 있기에 알고 있다. 어떤 말을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을 것임을.

테드로선 전쟁의 원흉인 그를 죽이는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죽이는 이유는 네메스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죽이는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딥크스엔 스승님도 있는데.”

“주인님의 스승 말입니까?”

“그래. 내게 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님. 뭐, 회귀전의 일이니까. 그분은 내 이름도 모를 테고 만날 생각도 없어.”

“그분은 주인님만큼 강합니까?”

“진심으로 싸우는 걸 본적 없지만… 강해. 현재 네메스 대륙에 존재하는 마법사 중에서 정점이라 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 만날 일은 없을 거야.”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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