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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식혈귀.
크기가 다른 주먹이 서로 맞부딪혔다.
그로 인해 발생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테드의 몸을 뒤로 날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사크 또한 마찬가지지만, 그는 양발에 힘을 주어 충격파를 견뎌냈다.
테드는 욱씬거리는 주먹을 바라봤다. 피부가 터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빨갛게 달아 올라있었다. 마법으로 강화시킨 주먹이 욱씬거릴 정도로 상대방의 주먹이 강했다.
“…….”
테드는 힐끗 사크를 바라봤다. 사크는 놀란 눈으로 테드를 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테드의 주먹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의 상식으로는 테드의 주먹은 물론이고 그 몸까지 박살나야 했다. 자신이 내지른 주먹을 정면으로 맞부딪히고서도 멀쩡하다는 것은 그 만큼 강하다는 뜻이리라.
“과연 저승사자라 칭할 정도의 실력은 있는 건가.”
주먹의 충격파로 인해 너덜거리는 문에서 걸어나오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굽혀 언제든지 뛰쳐나갈 자세를 잡는다.
제 딴에는 전투자세랍시고 취하는 듯 했지만, 테드의 눈에는 엉성하기 그지없는 자세였다.
“무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군.”
더군다나 사크가 보유하고 있는 마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일반인 수준이었다. 몸은 건장하지만 단련으로 생긴 근육 같은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진 강함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 말대로다. 그리고 내겐 그럴 필요가 없다.”
사크가 오만하게 말했다. 테드는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확실히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어지간한 기사는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능숙한 기술과 오랜 시간 단련 끝에 얻은 강철 같은 육체를 가진 기사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의 피를 먹는 것으로 강해진다고 들었다. 네 강함의 이유는 아마 그것이겠지.”
“역시 전부 알고서 찾아왔군.”
사크는 작게 혀를 찼다. 아마도 마을 하나를 몰살시킨 메시아의 흔적을 쫓아 온 것이리라. 지금껏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 아들의 돌발 행동 때문에 평온한 일상도 이제 끝났다.
“거짓말! 뱀파이어가 뱀파이어의 피를 먹고 강해질 리가 없어!”
귓가에 스며드는 날카로운 고음에 사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로브를 뒤집어쓴 시온을 바라봤다. 사크의 무감정한 눈동자가 그녀에게 향했다. 시온은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몸을 흠칫 떨었다.
“뱀파이어인 내가 잘 알아.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의 피를 먹고 강해지지 않아. 절대로!”
“뱀파이어인가. 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군. 그러나 내 강함의 비밀은 뱀파이어의 피다. 나는 동족의 피를 먹고 지금의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테드는 시온의 말을 가르듯 사크를 향해 움직였다. 주먹진 양손등 위에 마법진이 나타난다. 상대를 때려죽일 생각으로 가득해보였다.
“스킬이면 가능하다.”
시온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경우를 말한다. 시온은 스킬이란 말에 모조리 이해했다. 스킬이라면 분명히 가능하다. 흔히 말하는 레어 스킬, 뱀파이어의 피를 먹으면서 강해지는 스킬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 스킬이다.”
사크가 오른 주먹을 들어 다가오는 테드를 겨누며 말했다.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순간 곧바로 주먹을 내지를 것이다.
“10명의 뱀파이어 피를 먹으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다.”
사크는 집에 있는 오래된 책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책에 스킬 《식혈(Vampire Eater)》을 얻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뱀파이어의 피를 먹을수록 스킬의 숙련도는 상승하고 그에 비례하듯 강해진다.
“한가지 가르쳐주지. 내 아들, 메시아는 나보다 스킬 레벨이 높다. 그 메이드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메시아의 상대는 되지 않을 것이다.”
테드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댁 아들이나 걱정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 모르니까.”
테드의 몸이 순식간에 사크의 앞에 나타났다. 마법을 사용한 게 아니라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오른 주먹을 내지른다. 깔끔한 정권이 사크의 복부를 노렸다.
사크는 숨을 들이마시고 복부에 힘을 콱 주었다. 동시에 테드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테드의 주먹이 사크의 복부에 작렬했다. 쾅! 요란한 소리와 달리 사크의 몸이 뒤로 살짝 밀쳐진 것이 전부였다. 허나 복부에 어린아이 주먹만한 하얀색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사크의 주먹이 테드를 머리를 노렸다. 테드는 침착하게 왼손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풀고서 손바닥을 펼쳐 비스듬한 각도를 유지해 사크의 주먹을 받아들인다. 사크의 주먹이 테드의 손바닥에 의해 옆으로 미끄러졌다.
힘의 대부분을 흘러 보내는 마법도 뭣도 아닌 단순한 기술이었다. 웬만한 기사들은 금세 대응했겠지만, 사크는 아니었다. 당황한 나머지 몸의 중심마저 잃고 비틀거렸다.
“뭔 짓을 한 거냐?!”
발을 지면에 힘껏 받는 것으로 중심을 되찾은 사크가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머리를 노리는 주먹이었다. 테드는 간단히 목을 옆으로 꺾는 것으로 피해냈다. 초보자들 대부분이 머리를 노린다.
사크의 신체 능력은 확실히 감탄스러울 정도였지만 전투가 몸에 익지 않아보였다. 파공성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힘과 속도를 가진 주먹도 정직하기 그지없어 주먹이 눈에 보이는 테드는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사크는 양팔을 빠르게 움직였다. 양 주먹을 교차시켜 내질러 보기도 하고, 팔을 칼처럼 휘둘러도 보았다. 그러나 테드에게 닿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오른발을 돌려 찼다. 그리고 이 회심의 공격마저 테드는 간단히 피해냈다. 그 직후, 한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된 사크에게 왼쪽 주먹을 내질렀다. 왼쪽 허벅지에 적중하고 사크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사크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사크가 황급히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그의 복부에 그려져 있던 하얀색 마법진이 반짝였다.
그의 몸이 그곳에서 사라지며 테드의 바로 앞, 허공에서 나타나 떨어졌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테드가 사크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핏방울과 함께 하얀색 송곳니와 앞니 대여섯 개가 허공을 비산했다. 사크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져 지면을 굴렀다.
3M를 구른 사크는 머리가 멍해진 것을 느꼈으나,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코뼈가 부러졌는지 콧대가 찌그러져 있었고, 입속이 찢어져 입안에는 피가 계속 고였다.
부들거리는 양팔로 지탱해 상체를 반쯤 일으키자, 양팔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랄 틈도 없이 사크가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팔의 깔끔한 단면을 보고서 날카로운 무언가에 잘려나간 것임을 알았다. 의문이 먼저 찾아왔고, 뒤늦게 고통
이 방문했다.
“농부치고 비명을 지르지 않은 건 칭찬해주지.”
테드는 오른손에 쥐고 있는 푸른빛으로 이루어진 검날을 휘둘렀다. 에너지 블레이드가 어두운 주위를 밝히며 사크의 양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으윽…!”
비집고 나오는 신음을 애써 참아낸 사크는 테드를 올려다보았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붉은색의 눈동자는 일말의 자비도 허용하지 않았다. 사크는 메시아보다 어린 테드에게 공포를 느꼈다. 팔과 다리를 잃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갈색 눈동자에 두려움이 번졌다.
“솔직히 실망이군. 나는 어느 정도 고전할거라 예상했다.”
“……네가 이상한 거다. 내 몸은 검도 통하지 않고, 지금까지 내 주먹을 피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이름 있는 모험가에겐 몇 번 고전하긴 했지만, 결국 그들도 사크의 무지막지한 신체 능력에 굴복했다. 그들은 자신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고, 버티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약한 놈들만 만났군. 넌 제대로 된 몬스터 사냥도 겪어보지 못했겠지.”
사크는 반박할 수 없었다. 테드의 말대로 제대로 된 전투는 겪어보지 못했다. 주된 먹잇감은 평범한 일반 뱀파이어와 모험가였다. 평범한 뱀파이어는 닭모가지 비트는 것처럼 손쉬웠고, 모험가는 방심한 틈을 타 기습을 하면 번번한 저항도 못하고 죽었다.
“……날 어떻게 할 거지?”
“죽일 거다. 다만, 그전에 조금 이야기를 듣고 싶군.”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고문이라도 할 건가?”
“아니, 바로 죽일 거다. 그리고 곧장 네 아들을 쫓을 거다. 사이나가 처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을 경우엔 멀리는 못 갔을 테니 마법을 사용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겠지. 시간을 끌 작정이지 않았나. 난 그 기회를 주는 거다.”
어차피 자신은 죽는다. 그렇다면 아들을 위해서 이 괴물 같은 놈을 여기서 붙잡아 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사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에서는 익숙한 비릿한 피냄새가 풀풀 풍겼다.
“……나이트 워커가 되고 싶었다.”
쉰 목소리로 사크가 말했다. 테드는 지하에 있는 거머리 누에에 관해들을 생각이었으나, 뜻밖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 이내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이트 워커가 되고 싶어서 뱀파이어를 먹었다는 건가?”
테드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펠리스 왕국으로 치자면 나이트 워커는 집행자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시민들의 동경과 존경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이트 워커는 브리드론의 시민을 지키는 자다. 나이트 워커가 되고 싶다는 자가 브리드론의 국민인 뱀파이어를 먹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나이트 워커가 되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평범한 농가 출신의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같은 뱀파이어의 피를 먹은건가. 스킬이 없던 처음에는 힘들었을 것 같은
데.”
“……우리집은 대대로 한 상인과 손을 잡고 거머리 누에에게 피를 먹였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시체를 보내주었기에 수월하게 거머리 누에를 기를 수 있었다. 나는 뱀파이
어 시체의 피를 몇 번 빼돌려 마셔서 스킬을 터득했다.”
테드가 원하는 정보였다.
대대로 거래를 계속해왔다면 그 상인은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국가의 눈을 속이고 지속적으로 시체를 지원한다는 것은 그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까.
테드는 슬쩍 시온을 바라봤다. 시온은 사크의 말을 집중하며 듣고 있었다. 상인에 대한 추적은 브리드론의 귀족인 그녀의 일이 될 것이다.
“아들에게도 먹였나?”
“……메시아는 소년이 되어서 나와 같이 나이트 워커의 꿈을 가졌다. 지금도… 그 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닮은 아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식혈귀로 만들었다는 거군. 대충은 알겠다. 그러나 네가 말한 상인이 누군지 궁금하다.”
“그건 말 할 수 없다. 그들이 알면 메시아를 죽일 테니까.”
“…….”
테드는 위협적으로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나 메시아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는 시간을 충분히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말을 천천히 했고, 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끌었다. 메이드를 신뢰하는 모양이지만, 메시아의 신체 능력이라면 메이드를 충분히 따돌렸을 것이다. 반대로 메이드를 죽였거나.
사크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 테드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 바로 죽여 버린 거야?”
아직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상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테드가 손을 놓자 에너지 블레이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동자도 붉은색이 아닌 본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어. 부정이란 건 굉장히 성가시거든. 차라리 사이나가 쫓는 메시아라는 놈을 붙잡는 게 더 빨라. 뭐, 살아 있을 경우의 얘기다만.”
테드가 말이 끝마치는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여성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러퍼졌다. 테드와 시온의 고개가 옆으로 향했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경악한 얼굴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테드는 짧게 혀를 차며 시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자애가 넘쳐나는 미소를 지었다.
“제자야. 네가 저 아주머니를 설득하렴. 나는 너의 능력을 믿어.”
“자, 잠깐!”
시온이 무어라 하기전에 테드의 신형이 사라졌다. 시온은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비명을 지르는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놀란 그녀를 달래는 것 정도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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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