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37화 (13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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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식혈귀.

대지의 기억이라는 마법은 사용자마다 약간씩 다르게 발현된다. 마법사마다 조금씩 다르게 마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마법사의 실력이 효과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대지의 기억은 TV를 생각하면 쉽다. 상황을 비추는 거울을 소환해 영상을 보는 것이다.

테드의 경우엔 마을 전체를 범위로, 환상을 이용해 있었던 일을 재현한 것이다. 당연히 보통의 마도사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온이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반면 테드와 사이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마을 내부를 훑고 있었다.

대지의 기억으로 그날을 재현하고 있는 마을은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면 대충 자정 무렵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인간의 마을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이 마을은 밤에 활동하는 뱀파이어들의 마을이었다.

“스승. 이건 전부 환상이지…?”

“마을에는 우리밖에 없으니까. 마을 전체에 마법을 걸었어. 내구도 면에서 형편없으니 식혈귀와 마주쳤다고 해서 파이어볼같은 마법은 쓰지 마라? 어차피 환상이라 식혈귀를 잡는 것도, 식혈귀에게서 마을 주민을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나도 그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 단지 너무 리얼해서 확인 차 물어본 것뿐이야.”

“알고 있으면 다행이고.”

간단히 대답한 테드는 가까운 위치에 있는 주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의 주택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별거 없는 주택이었다. 나무문을 낡아 빠져서 보안이 의심스럽고 내부는 좁은 편이었다. 그러나 곳곳에 장식되어 있는 물건과 생필품들은 행복한 가정을 떠올리게 했다.

거실에 쓰러져 있는 뱀파이어 시체를 빼면 말이다. 3구의 시체였다. 중년의 여인과 남성, 그리고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목이 물어뜯긴 채 인형처럼 쓰러져 있었다. 다만 중년 남성의 경우 팔다리가 끊겨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바닥과 벽에는 끈적한 붉은 피가 묻어져 있었다.

테드는 거실 주위를 살폈다. 거실에 장식되어 있는 물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저항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중년 남성의 팔 다리가 끊겨 있는 것을 보면 가장 성가신 그를 먼저 처리하고 중년 여인, 남자 아이 순으로 해치웠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노에 찬 중년 남성의 얼굴을 보자면 그가 가장 마지막에 목이 뜯겨 죽었을 것이다.

“식혈귀는… 보이지 않아.”

시온이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마법의 목적은 식혈귀의 외모를 확인하는 것이다. 일단 누구인지 신원만 확인하면 나머지는 베이키리아 후작이 알아서 할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식혈귀는 이 마을 어딘가에 있어. 이 시체의 경우 죽은 지 1시간 정도 경과된 것 같아.”

“지금 상황을 되돌려 식혈귀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 한 거야?”

“가능하긴 한데 처음부터 다시 마법을 발동해야 해서 효율이 별로야. 그리고 대지의

기억을 한 장소에 특정하면 놓치는 게 있을 수 있어.”

마을 전체에 마법을 건 이유는 혹시 모를 단서가 마을 곳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선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차라리 시온의 말대로 대충 범인의 모습만 확인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스승은 귀찮아하면서도 할 땐 제대로 하는 구나.”

테드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남자아이의 시체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손은 그대로 남자아이의 몸을 투과해 바닥을 만졌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 살짝 혀를 찼다.

“일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야.”

주택을 나온 테드는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옆집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저항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베이키리아 후작이 말한 대로 저항의 흔적은 거의 없네. 그래도 조금 이상한데.”

“……뭐가 이상해?”

시온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어왔다. 주위의 음산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긴장한 것이다. 시온에게 어떻게 설명해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사이나가 대신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테드가 대답하기 귀찮아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말문을 연 것이다.

“집안에서 죽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목이 뜯겨도 식혈귀를 본 순간 비명을 내지르는 게 보통입니다. 방금 전의 집은 3인 가족이었고 비명을 지르기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비명이 울러 퍼졌다면 이웃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밖으로 나왔을 테니까.”

차가운 도시의 경우엔 밤에 비명을 지르든 말든 잠을 퍼자겠지만, 작은 마을의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이웃의 비명이 들렸다면 사고가 일어난게 뻔하니 확인이 아니라 도움을 주기 위해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런데 밖에서 발견된 시체는 없었습니다. 베이키리아 후작의 정보에 의하면 마을 거리에서 발견된 시체는 소녀의 시체 한 구 뿐이었습니다.”

“밖에서 죽이고 집안으로 시체를 놓아둔 것 일수도 있잖아.”

“시온 님. 그 주장은 억지라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이나가 코웃음치며 말했다. 마을 주민을 집밖에서 죽였더라면 흔적이 남는다. 식혈귀가 흔적까지 전부 없앴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기엔 거리에 있는 소녀의 시체가 이상한 것이다.

“너희 둘은 왜 항상 끝에 싸우는 거냐.”

테드가 시온과 사이나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는다.

“비명을 듣지 못 한 것 일거야. 모종의 수단, 예를 들면 사일런트 마법으로 비명을 없앤 거겠지. 식혈귀라도 마법상점에서 마법도구를 구입할 수 있을 테니까.”

테드 일행은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마을 안의 다른 집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안타깝게도 주민들은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식혈귀의 모습도,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소득이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며 이제는 익숙해지는 어두운 마을의 거리를 걷던 중, 땅을 때리는 발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들렸다. 다급함이 느껴지는 발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시선을 돌리자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달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테드는 소녀를 보고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 소녀는 베이키리아 후작이 보여준 거리에서 죽어 있는 시체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입고 있는 옷 또한 똑같았다.

이 마을에서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소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었다. 땀으로 범벅인 얼굴은 너무나 애처로워 무심코 다가가 말을 걸 뻔했다.

테드는 다시금 지금 상황이 환상임을 떠올리며 천천히 소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소녀와의 약 15M 정도 되었을 때였다.

소녀의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소녀의 등뒤에 도착한 공포는 손을 뻗어 가녀린 목을 부여잡았다. 소녀를 무자비하게 들어올렸다. 손톱이 목에 파고들어 붉은 피를 노출시켰다.

소녀가 발버둥을 쳤지만 손의 주인인 남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남자가 소녀의 복부를 다른 손으로 끌어 안고, 목을 쥔 손을 놓았을 때 소녀가 입을 열어 무언가 말했다. 속삭일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떨어져 감각에 집중하고 있

는 테드에겐 똑똑히 들렸다. 소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시온이 분홍색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튀어나가려는 것을 테드가 어깨를 잡아 만류했다. 흥분한 그녀가 소녀에게 집중하고 있는 테드의 얼굴을 한 차례 보더니 몸에 힘을 뺐다.

머리채를 잡아 목을 드러내게 만든 남자는 망설임 없이 실금하는 소녀의 목을 물어뜯었다. 살점을 뱉어내고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는 것처럼 소녀의 피를 마셔댔다.

몇 십초 후, 남자는 소녀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버렸다. 이미 가까이 다가온 테드는 남자의 외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뱀파이어였다. 검은색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감정을 알 수 없는 눈동자는 썩은 동태 눈깔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테드가 주목한 것은 그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옷은 일종의 직업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검은색 망토를 입고 있긴 했지만, 검은색 망토 사이로 상당히 낡은 갈색 튜닉이 보였다. 테드가 주목한 것은 낡았다는 점이다. 귀족은 물론이고 도시의 시민들은 낡은 튜닉을 잘 입지 않는다. 거기에 옷 곳곳에 실같은 게 붙어 있었다. 처음엔 머리카락인 줄 알았지만, 하얀색의 그것은 결코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그는 뒤돌아 천천히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테드 일행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거리의 끝에는 마을 출구가 보였다. 다르게 보자면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남자는 마을 밖으로 나갔고, 테드가 마을 밖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어두웠던 마을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환상이 풀린 것이다.

테드는 남자가 사라진 마을 밖을 쳐다보며 시온에게 물었다.

“저쪽엔 뭐가 있어?”

“농장마을이야. 누에를 전문적으로 기르는….”

“누에 농장인가…….”

작게 중얼거리는 테드를 시온이 바라봤다. 테드는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결단을 내렸는지 조심히 입을 열었다.

“거기로 가자.”

“……의외인데. 스승이라면 베이키리아 후작에게 뒷일을 맡길 줄 알았어.”

“만에 하나. 내가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잖아. 그럴 가능성을 남겨둘 바에는 차라리 내가 일을 끝내는 게 나아.”

흐음, 하고 시온이 묘한 표정으로 테드를 바라봤다. 테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길안내나 하라는 듯 턱으로 마을 밖을 가리켰다.

⁂⁂⁂

끊임없이 펼쳐진 뽕밭을 거닐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해는 붉은 노을이 되어 사방을 붉게 비추고 있었다.

테드는 양옆에 뽕밭이 이어진 길을 걷던 중, 문득 호기심이 생겨 뽕밭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마침 기다렸다는 듯 뽕잎을 갈아먹고 있는 누에가 보였다. 거머리 누에라고 했던가. 과연 그 이름 그대로 거머리처럼 시커먼 몸을 가지고 있었다.

테드는 조심스럽게 거머리 누에가 있는 뽕잎을 땄다.

“……뭐하는 거야?”

테드의 기행을 지켜보고 있던 시온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테드는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마법사로서 실험을 할 거야. 누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마법사에게 걸린 이 누에

가 불쌍한 거지.”

시온은 미심쩍은 눈으로 테드를 보았으나 뭐라 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실험이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물을 가지고 실험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부분 마법 실험이고, 생물을 이용하는 경우엔 대부분 쥐를 이용했다.

네크로맨서는 사람을 가지고 실험하기도 하는데, 테드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니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무슨 실험인데?”

“내 피를 먹이면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대한 실험.”

“…….”

시온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건 실험이라고 뭐라할 것도 없었다. 거머리 누에의 입장에선 단순히 피라는 먹이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시온이 테드의 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곁에 있던 사이나는 은근히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테드는 길바닥에 뽕잎을 내려놓고 마법을 이용해 검지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베인 피부에 핏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누에의 머리를 향해 떨어뜨렸다. 그리고 테드의 피에 닿은 누에가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우로 떼굴떼굴 구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며 테크노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분홍색의 실을 뿜더니 그대로 고치를 만든 것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고치의 구멍에서 붉은색 날개를 가진 나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온은 흡혈 나방이 모습을 드러내자말자 발로 밟아 죽여 버렸다. 흡혈 나방의 경우 모기 이상의 해충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즉시 바로바로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스승의 피… 어떻게 된 거야?”

“어… 음. 나도 그게 궁금해.”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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