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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32화 (13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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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힐데가르트의 드래곤

그곳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채린의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에게 집중 되었다. 고양이, 우라크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데스타에게 적대심을 숨기지 않고 내보이고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얌전히 있던 우라크였기에 채린은 조금 당황하며 진정하라는 듯 우라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채린의 노력 덕분일까. 우라크는 진정하기 시작했다. 드러냈던 이를 감추고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황금색의 두 눈동자만은 데스타를 향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뭐니?”

테레사가 채린에게 물었다.

채린은 잠시 침을 삼켰다. 어머니에게 사실은 이 고양이가 창고 앞에 있던 키메라 드

래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행히도 변명이라면 이곳에 오면서 이미 생각해두었다.

“복도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성안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은 듯 합니다.”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테레사는 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럼 시녀들에게 맡기면 될 일이지 않니.”

“아뇨. 할 일도 없고 해서 발견한 제가 직접 밖에다 풀어줄 생각입니다.”

테레사는 별달리 생각하지 않고 수긍했다. 고양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다.

채린은 이번에 다시 테드에게 시선을 주었다.

“드래곤을 처리해주셔서 감사해요.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하셨군요. 정찰을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테드는 떠나기 직전 정찰을 목적으로 간다고 말했었다. 우선 드래곤의 정체를 알아내 대처법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려고 했는데 드래곤이 잠을 자고 있더군요. 그래서 해치웠습니다.”

테드가 산뜻하게 말했다.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테레사가 물어왔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묻는 것이 남자의 자신감을 건드리게 만들었다. 정보길드의 입 무거운 남자라도 그녀의 앞에선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지 않을까.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우선 드래곤의 정체는 키메라 드래곤이었죠.”

테드는 테레사와 데스타의 반응을 살폈다. 테레사는 키메라 드래곤이란 이름을 처음 듣는 듯 했고 데스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테드는 남몰래 데스타를 주의하고 있었다. 우라크가 보인 날선 반응때문이었다. 그 반응을 보자면 우라크는 데스타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키메라 드래곤? 처음 듣는 드래곤 종이군요. 키메라라고 불리는 만큼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은데…….”

키메라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연히 네크로맨서들이다. 두 종류 이상의 생물을 합성해 만들어낸 생명체. 그게 바로 키메라다. 다르게 인공 생명체에게 키메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키메라 드래곤은 과거 악마가 만들어낸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드래곤입니다. 그게 번식해서 지금은 마계에 있는 드래곤이라 할 수 있죠.”

“악마의 드래곤이 왜 보물 창고의 앞에 있는 거죠?”

테레사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목소리도 덩달아 날카로워졌다. 악마라는 말이 좋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 악마가 이 일에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다른 경로를 통해 우연히 들어온 것 같은데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건 아니니까요. 악마라면 걱정하지마세요. 아무리 악마라도 키메라 드래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건 아닐테고, 악마가 조종하는 키메라 드래곤이었다면 유용한 흉기를 창고 앞에 몇 년이나 썩혀 둘리는 없으니까요.”

테레사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불안감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반면 데스타의 경우엔 표정을 알 수 없다. 처음 봤던 표정 그대로 가만히 서있다.

“드래곤은 확실하게 처리한 건 맞겠죠?”

그녀가가 재차 확인했다. 테드는 채린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어머니.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키메라 드래곤은 더 이상 지하통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테드는 내심 혀를 찼다. 그녀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드래곤이 살아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통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예를 들면 지금 여기, 테레사의 집무실이라던가. 그냥 확실하게 거짓말을 하면 좋을 것을.

그러나 다행히도 테레사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테드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버스트 플레어》란 마법으로 제가 시체까지 완벽하게 재로 만들었으니 안심하세요.”

“버, 버스트 플레어…?”

“화염계 최상위 마법 중 하나죠. 위력만으로는 화룡의 브레스 이상이죠. 키메라 드래곤이 잠들어 있던 덕분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죠. 뭐, 시체를 건지진 못했지만…. 아, 키메라 드래곤이 불타면서 발버둥 치며 창고의 입구가 좀 파손되었어요. 그건 죄송합니다.”

“드래곤을 무사히 처치했다면 괜찮아요. 아, 보수라면 준비해두었어요.”

테레사는 서랍에서 하나의 종이를 꺼냈다. 당연히 평범한 종이는 아니고 네메스 대륙의 유일한 은행이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은행인 ‘월드 뱅크’의 수표다. 적혀 있는 숫자는  10,000 골드. 보통 드래곤 사냥의 의뢰의 경우 종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5,000 골드 정도 한다.

테레사의 의뢰의 경우엔 사람의 수도 적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기에 1만 골드의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테드는 그녀가 건네는 수표를 받는 것에 조금 망설였다. 수표를 확인하자 숨어 있던 양심이 불쑥 튀어나와 사정없이 테드를 질타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의뢰한 것은 드래곤의 처리였고, 테드는 의뢰를 완수하지 못했다.

“무언가 문제 있나요?”

그녀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도저히 애 하나 딸린 중년 여인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순진한 목소리였다. 테드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수표를 받았다.

“아뇨. 다시 생각해보니 보수가 좀 많은 것 같네요.”

“제 생각과 다르군요. 그대는 원래 드래곤의 시체를 가지기로 했지요. 그런데 드래곤이 재가 되어버려 얻지 못하셨다지요. 오히려 전 보수가 부족하지 않을지 걱정이군요.”

“…….”

테드의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수표를 보고 각성한 양심이란 놈이 기승을 부렸다. 테레사의 푸른색의 눈동자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군요. 얼른 쉬는 게 좋겠어요.”

“저, 전투로 인해 좀 지친 것 같네요.”

테드가 어떻게든 말했다. 그의 머릿속에선 보물 창고 안을 돌아다니던 자신이 생각났다. 채린과의 거래였지만, 따지고 보면 보물을 훔친 것이 아닌가. 그리고 피해자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오히려 범인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테드가 꾸벅 인사하고 집무실에서 나가려고 할 때, 테레사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테드의 몸이 한 순간 움찔 떨렸다.

“아, 오늘 새벽, 연회를 준비했어요. 대외적으로는 힐데가르트의 성으로 찾아온 손님, 그대들의 환영회지만, 실은 성공적으로 드래곤을 퇴치한 기념이지요. 시간대는 비록 새벽이지만 그대가 참석해주리라 믿고 있어요.”

“아, 예. 참석하겠습니다.”

황송한 대접에 양심이 이젠 미쳐 날뛰고 있었다. 테드는 서둘러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테레사가 눈앞에 보이지 않자 양심도 급속도로 진정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어디 편찮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평소 같지 않으시군요.”

사이나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테드는 태연자약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작게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악마다. 양심이란게 없지 않을까.

“내가 나쁜 놈 등쳐먹는 건 잘해도 착한 놈 등쳐먹진 못하거든.”

뒤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풉! 그거 새로운 식의 농담이야? 스승에게 양심이라니… 엄청 웃기는 걸.”

“…….”

테드는 초인적인 인내로 시온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는 오른손 주먹을 말렸다.

생각해보면 양심이란 걸 의식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회귀 전, 전장터에 있을 때만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테드는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은 느낌이 들었다.

또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자신이 죽인 자들의 모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아니, 그건 회귀 전의 일. 내가 죽인 그들은 이 세계 어딘가에 살아 있어.’

다시금 목적을 상기시키며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음을 깨닫는다. 충분한 시간이다. 자신은 예상보다 더 강해졌고, 사이나도 있다. 틀림없이 놈을 죽일 수 있다.

“뭐하고 있나.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생각에 잠긴 테드를 깨운 것은 채린이었다.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는 주의가 신기한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래. 아직 일은 남아 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을 밖으로 풀어주는 일이.

⁂⁂⁂

키메라 드래곤 우라크를 풀어 줄 장소는 힐데가르트의 영역 끝에 있는 커다란 산맥이다. ‘브리언트 산맥’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드리브론의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산맥 너머에는 바다가 있으며 온갖 몬스터가 있기 때문에 근처에 인구도 적다.

채린은 이곳에 우라크를 풀 것이라고 말했다. 산맥에는 위험한 몬스터들이 있지만, 키메라 드래곤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는 없다. 먹이 사슬로만 따지자면 키메라 드래곤은 최상위에 속한 놈이다.

그러한 이유로 테드 일행은 검은 망토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브리언트 산맥 근처에 있는 도시로 워프한 뒤, 마차를 타고 산맥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말없이 달리는 마법 마차로 2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야 산맥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어요.”

마차를 조종하던 테드가 마차의 시동을 완전히 끄고서 말했다. 시온과 사이나가 내릴 준비를 했지만, 채린은 조용히 우라크를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마차가 달리는 2시간 내내 우라크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마지막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테드는 주위를 살폈다. 혹시 모를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산맥의 초입은 뻥뚫린 초원이라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금방 눈에 띠였다. 다행이 사람은 없었다.

“공녀님은 제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겠죠.”

테드가 말했고, 채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라크를 보았다. 좁고 습한 지하 통로에서 나고 자란 우라크는 처음 보는 풍경이다. 새파란 하늘도, 녹음이 우거진 산과 드넓은 초원도 전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음…. 우라크는 밖이 처음이다. 당연히 사냥을 할 줄도 모르지. 위험한 몬스터에게 당하지 않겠나?”

“키메라 드래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드래곤이에요. 어떤 미친 몬스터가  최상위 포식자인 드래곤에게 덤벼들겠어요.”

오히려 산맥에 살고 있는 몬스터 들이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 것이다.

“……그렇겠지.”

채린이 조심스레 우라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라크는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채린을 올려다보았다. 우라크는 냐옹하고 울었다.

테드는 저 놈이 진짜 키메라 드래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누가 바꿔치기 한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데스타 경인가. 엄청 싫어하던데요. 혹시 이유를 알아요?”

“데스타 경은 우라크를 본적 있다. 정확하게는 사냥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가 간신히 목숨만 지키고 돌아왔지.”

“뭐, 그럴거라 생각했어요. 이 녀석의 소환자가 아닐까라고 한 순간 생각하기도 했지만… 부화하기도 전이었는데 소환자를 알아볼 리가 없죠.”

테드가 자신의 마력을 움직였다. 그의 앞에 마법진이 나타나며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는게 좋아요.”

“…….”

그녀는 우라크의 노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침묵을 고수했다.

《디스펠(Dispel)》마법이 완성되었다. 검은 고양이의 몸이 하얀 빛으로 감싸이더니 커다랗게 변했다. 빛이 사라지고 우라크의 거대한 본모습이 드러났다.

지하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거대한 검은색의 몸통과 날개, 그리고 위협적인 꼬리. 황금색의 눈동자 크기만 해도 테드의 머리통보다 컸으며 이빨과 손톱은 그 무엇보다 날카로웠다. 이마에는 날카로운 뿔이 하나 달려 있다.

우라크는 고개를 숙여 채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테드는 칠흑 같은 드래곤이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드래곤은 머리가 좋은 생물이다. 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키메라 드래곤은 명령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드래곤인 만큼 어느 정도의 지능은 필수였다.

“우라크.”

채린이 나직이 드래곤의 이름을 불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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