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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25화 (12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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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브리드론의 밤.

테드가 무릎을 살짝 굽혀 도약했다. 단지 그 뿐인데 그는 어느새 메타엘의 바로 앞에 있었다. 그의 등뒤에 있는 반투명한 황금빛 날개의 효과다. 날개를 사용해 하늘을 날게 해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능력을 극대화 시켜준다.

“……어떻게.”

메타엘의 은색 눈동자는 테드가 들고 있는 브류나크에게서 떨어질줄을 몰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할 것 같은 그가 보일 반응이 아니었다.

테드가 황금빛의 창을 휘둘렀다. 허공에 빛가루를 흩뿌리며 궤적에 흔적을 남긴다.

메타엘은 필사적으로 세 쌍의 날개를 움직여 피해냈다. 브류나크를 알고 있는 그는 창을 막아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당신이 그 마법을 알고 있는 겁니까?!”

메타엘이 격정적으로 외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듯.

그는 테드를 만나고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책에서 배웠다.”

테드는 귀찮다는 어투로 대답해주었다. 두서없는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이 고대 마법을 마법도서관의 금서구역에 있는 책에서 발견했으니까. 그 발견한 걸 연구하고 연습해서 재현해냈다. 다행히도 브류나크는 마력으로 충분히 발동 가능한 고대 마법이었다.

“…….”

아이러니하게도 메타엘은 테드의 장난같은 말에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분노가 치솟았고 분노를 다스리려던 습관이 그에게 냉정함을 찾아 주었다.

“말하기 싫다면 좋습니다.”

메타엘이 성력을 끌어 올렸다. 성력을 모두 소모하면 천계로 역소환 될 것이기 최소한의 성력을 남아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인물은 반드시 여기서 처리해야 한다.

“당신을 여기서 제거하겠습니다.”

메타엘은 그가 어디까지나 잠재적 위험이라고 생각했었다. 처리할 수 있을 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힘을 온전히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단지 위험하다는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반드시 여기서 제거되어야 한다.

테드가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데미지를 입은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날개가 익숙하

지 않아 움직이려다 실수를 한 것뿐이었다.

테드의 반투명한 황금 날개가 힘차게 날갯짓했다. 테드는 메타엘을 향해 날았다.

메타엘의 주위에 5개의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테드를 조준한다. 메타엘이 손을 흔들자 구체가 쏘아졌다.

테드는 브류나크를 앞으로 뻗었다.

“세컨드(Second).”

브류나크의 창날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던 4개의 빛의 창날이 가로로 기울어지면서 방어막을 펄쳤다. 마치 황금빛의 우산같은 모양이었다.

메타엘의 빛의 구체가 브류나크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무거운 중력이 담겨 있었지만 테드의 방어막을 뚫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방어막에 부딪혀 옆으로 튕겨 나가 소멸했다.

방어가 끝나자 4개의 창날은 다시 세로로 일어서 브류나크의 창 주위를 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메타엘이 자신의 중력을 최소한으로 낮추고 허공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퍼스트(First).”

4개의 빛의 창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늘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창날은 모두 메타엘을 노리고 있었다.

메타엘이 하늘로 달아나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위로 올라가다가 아래로 급하강하고, 옆으로 움직이다가 수직으로 꺾었다. 놀랄 정도의 곡예를 보여주었지만, 브류나크의 4개의 창날은 멈추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창날이 지나가면서 생긴 궤적이다. 아스타로트가 만들어낸 공간이 찢어지면서 바깥의 밤하늘이 보인 것이다. 그러나 공간은 빠르게 수복되어 밤하늘을 감추었다.

테드는 한손에 브류나크를 든채 멀거니 하늘에서 메타엘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기세좋게 전투 날개를 꺼내긴 했지만, 그를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숙련도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영원히 피할 것 같았지만, 메타엘에도 체력적 한계가 찾아왔다. 체력 부족은 그에게 실수를 만들었고, 결국 4개의 창날은 메타엘을 상처입히는 것에 성공했다. 2장의 날개가 무참하게 찢기며 어깨를 관통하고 허벅지를 스쳤다.

메타엘이 이를 악물고 권능을 발동했다. 창날이 중력을 받아 땅바닥으로 쳐박혔다. 4개의 창날은 움직이려고 했지만, 중력에 붙잡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브류나크에 저항력이 있어 보통의 권능은 통하지도 않았다. 거의 전력을 다하고나서야 겨우 창날을 짓누르는 것에 성공했다.

메타엘은 테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테드는 수문장처럼 창을 들고 하늘에 당당히 서있었다.

“끝내지 못했나.”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브류나크의 관통력과 절삭력은 절대적이다. 4개 중 하나라도 급소에 적중했다면 바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테드가 바닥에 떨어져 중력에 의해 움직이지 못하는 4개의 창날을 바라봤다. 그러자 창날은 빛으로 화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창대에 힘을 주어 쥐자 4개의 날이 다시 나타나 빙글빙글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성력을 모아 빛의 창을 만들어내는 메타엘이 보였다.

“서드(Third).”

4개의 창날이 브류나크의 안으로 하나씩 흡수되기 시작했다.

테드는 하나의 창이 된 브류나크를 메타엘을 향해 투창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때, 테드와 조금 멀어져 있는 곳에서 거대한 화염으로 이루어진 길쭉한 용이 지상에서 솟아올랐다.

새빨간 화룡은 곧바로 허공에 흡수되듯 사방으로 사라지고 한 명의 인영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너덜너덜한 푸른색의 드레스와 엉망이 된 은색 머리카락을 본 순간 테드는 반사적으로 황금색의 날개를 움직였다. 테드의 신형이 쏜살같이 날아가 떨어지는 그녀를 받아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기지 못했습니다.”

“…….”

테드의 품에 안긴 사이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테드는 그녀의 몸에 남아 있는 상처를 확인했다. 드레스는 여기저기 불타 사라져 있었다.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고 얼굴과 어깨, 팔, 다리 등 곳곳에 화상이 보였다. 테드의 붉은 눈동자에서 싸늘한 안광이 흘려 나왔다.

“고위 회복(High Recovery).”

테드의 몸에서 나온 황금빛 기운이 사이나에게 스며들었다. 성력을 이용한 최상급 회복 성법이다. 그녀의 몸에 남은 자잘한 상처까지 완벽히 사라진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드레스와 피부에 남은 흔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초점이 흔들리는 사이나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테드가 나직이 말했다.

“수고 했다.”

테드의 등 뒤에서 작은 불꽃의 씨앗이 나타나더니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화염은 거인의 모습을 나타냈다. 5M크기의 거인은 불타는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인은 그 거대한 양 주먹으로 테드를 공격한다. 테드의 황금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단지 그 충격파 만으로 화염의 거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메타엘. 네가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군.”

아스타로트는 메타엘의 옆에 나타나며 말했다. 하늘에 떠있는 그의 몸은 성치 않았다. 귀족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가슴께까지 이르는 치명적인 검상이 있었다. 상처 부위가 시퍼렇게 얼어붙어 있었다. 악마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였다.

“이렇게 보니 저놈이 더 천사같군.”

황금빛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사이나를 한 손에 품에 끌어안고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 광채를 흘리는 모습이 딱 천사였다. 그는 혹시 몰라 사이나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

메타엘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테드의 빈틈을 찾으려고 했었다. 그 목숨을 빼앗을 아주 작은 틈을.

그러나 틈은 보이지 않았다. 테드의 감각은 아스타로트와 메타엘에게 집중 되어 있었다. 두 명이 무언가 움직이려는 순간 당장 반응할 것이다.

“메타엘. 여기서 물러나지. 솔직히 나도 한계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의 제한이 풀려 있었어. 까딱 잘못하면 죽을 뻔 했지. 일단 물러나서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

아스타로트가 말했다. 그는 메타엘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타엘의 상처 또한 그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으니까. 전투를 속행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메타엘은 아스타로트의 말을 부정했다.

“안됩니다.”

아스타로트는 단호하게 말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대로 싸워봤자 죽을 뿐이다. 저 인간의 힘이 위험하다고? 내가 볼 땐 우리 목숨이 더 위험한 것 같은데?”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저는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당신만이라도 도망치십시오.”

“……하?”

아스타로트는 뒤늦게 메타엘의 뚫린 어깨에 묻어 있는 성력을 발견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성력, 처음에는 메타엘의 성력인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메타엘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브류나크의 창날에 한 번 상처를 입으면, 브류나크의 소유자가 포기하기 전까지 절대로 달아날 수 없습니다.”

“그럼 일단 성력을 전부 소모해서 천계로 가있지 그래? 조만간 다시 내가 소환해주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절대로 달아날 수 없다고. 그게 설령 다른 세계라 할지라도 브류나크는 끝까지 쫓을 것입니다.”

“……세계를 넘는 창이 있다고?”

“정확하게는 과거에 존재했었던 레칸의 마법입니다. 이전에 그 마법을 사용한 악마에게 라파엘이 당했습니다.”

“저 창을 사용한 악마가 있었다고?”

“메피스토펠레스. 그가 브류나크를 사용했습니다.”

“…….”

아스타로트는 순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메타엘은 아마도 천사와 악마가 네메스 대륙을 두고 전쟁을 치를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지금의 대악마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그때의 전쟁을 겪었으니까.

메피스토가 대천사인 라파엘을 죽인 것은 의외였다. 그는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라서 전혀 몰랐다.

“유예 시간이 끝나가는군요.”

메타엘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테드는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중에 떠있는 그의 앞에 황금색의 마법진이 펄쳐 졌다. 총 5장의 마법진은 복잡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테드의 앞에 있는 마법진이 가장 컸고, 그 이후의 마법진은 거리에 비례하듯 테드와 멀어질수록 작아졌다. 최종적으로 5번째 마법진은 손바닥만큼 작았다. 마법진은 메타엘을 노리고 있었다.

“브류나크를 한 번 사용한 뒤에는 다시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발생합니다. 그 틈을

노려서 도망치십시오. 브류나크의 창날에 상처를 입지 않은 당신이라면 문제없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치 그 말이 끝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테드가 황금빛의 창을 던졌다. 5개의 황금색 마법진을 꿰뚫으며 노란 번개처럼 빠르게 메타엘을 향해 쇄도했다.

아스타로트가 메타엘의 앞으로 움직였다. 메타엘을 여기서 잃는 것은 막대한 손해다. 그는 양손을 포기할 작정으로 양손을 내밀어 쏟아지는 창을 잡으려고 했다.

결론적으로 불가능했다. 창의 속도가 그가 반응하는 것보다 더 빨랐다. 아스타로트의 몸에 황금색 창이 닿으려는 찰나, 황금빛의 창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푸욱. 살이 꿰뚫리는 섬뜩한 소리에 아스타로트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엔 복부에 황금빛의 창에 꿰뚫린 메타엘이 있었다. 피가 창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메타엘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분홍빛 입술의 틈에서 흘러나온 한줄기 피가 가는 턱에 맺혔다.

아스타로트는 안심했다. 천사나 악마는 그 생명력이 남달랐다. 심장이 파괴당해도 재빨리 조치만 취하면 문제없이 살아날 정도다. 복부를 꿰뚫은 정도면 당장 메타엘을 데리고 가서 응급 치료를 하면 될 일이다.

아스타로트는 메타엘이 말한 ‘절대로’라는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메타엘의 오른쪽 어깨 대각선 위, 조금 떨어진 허공에 황금색의 마법진이 소리없이 나타났다. 황금빛의 마법진은 천천히 회전하며 마법을 발동한다.

마법진의 중심에서 나타난 황금빛의 창이 메타엘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해 심장을 꿰뚫었다. 옆구리를 통해 그 창날이 삐죽 튀어나왔다.

멈추지 않고 등 뒤에서 황금색의 마법진이 나타났고, 황금빛의 창이 메타엘의 등을 꿰뚫었다. 하얀 날개가 새빨간 피로 물든다.

메타엘의 왼쪽에서 마법진이 나타났다. 브류나크는 메타엘의 목을 꿰뚫었다.

메타엘의 몸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찰나, 마지막으로 마법진이 상공에서 황금색 마법진이 나타났다. 브류나크는 자비 없이 메타엘의 정수리를 꿰뚫고 몸안으로 파고들었다.

피묻은 새하얀 깃털이 주위로 흩날렸고, 5개의 브류나크에 꿰뚫린 메타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아스타로트는 떨어지는 그의 시체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테드를 한 번 보았다. 아스타로트는 입술을 달싹거렸다가 관두고 허공중에 모습을 감췄다.

테드는 아스타로트를 붙잡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슬슬 한계였다.

아스타로트의 공간, 연옥이 천천히 부서지는 것을 확인하고 테드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사이나는 눈을 감고 기절해 있다. 아니, 잠들어 있었다. 테드의 명령에 따라 서열 17위의 악마인 아스타로트를 최대한 막은 것이다.

사이나는 충분히 제몫을 해주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둘을 동시에 상대했다면 당하는 쪽은 오히려 테드였을테니까.

“또 덤벼 오겠지.”

갈라진 붉은색 하늘 틈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을 두 눈에 담으며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메타엘은 사탄교의 3명의 교주중 한 명일 뿐이다. 다른 2명이 남아 있는 한 사탄교는 멀쩡히 활동할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일로 사탄교에 경각심만을 불러 일으켰을 수도 있다.

테드의 앞으로 황금빛의 창이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자 자동으로 회수된 것이다. 허

공에 부유하고 있는 빛의 창은 처음에 봤던 것보다 그 빛이 약했다.

테드가 브류나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빛의 창은 모래처럼 분산되어 마치 눈처럼 사방에 떨어졌다. 동시에 아스타로트의 연옥이 완벽히 박살나며 그들은 회담 장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메타엘을 막기 위해 희생한, 아스타로트의 불꽃에 휘말려 죽은 뱀파이어가 적지 않았다. 귀족들 중 3분지 1이 시체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시온을 완벽히 무시한 테드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테드는 품안의 사이나를 보았다. 그는 지쳐 잠든 사이나를 처음 보았다. 이 정도로 무방비한 그녀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테드는 그녀의 뺨에 달라붙은 은색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떼어주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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