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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20화 (12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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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브리드론의 밤.

“……메타엘.”

자신의 이름을 들은 천사는 행동을 멈췄다. 처음 보는 생물을 관찰하듯 테드의 몸을 아래  위로 살펴보았다. 얼굴은 복면에 가려져 있어 볼 수 없다. 흔하지 않은 붉은 눈이 유일한 단서다. 체격의 경우 기억 속에서 비슷한 체격의 몇 명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앞에서 모습을 숨겨야 하는 이유는 없다.

“누구십니까?”

메타엘이 테드를 향해 물었다. 조금의 감정도 들어가지 않은 기계 같은 목소리는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모호했다. 다만, 듣기 좋은 미성인 것은 확실했다.

“…….”

테드는 대답하는 대신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선수필승이라는 말을 실천하듯 덤벼들었다. 메타엘의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내질렀다.

“대답해주시지 않는 겁니까.”

메타엘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반투명한 하얀색 방어막이 메타엘의 몸 주위에 나타나 모든 공격을 막아낸다. 테드의 주먹은 이 성스러운 방어막을 막지 못했다.

사탄교에서도 ‘메타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메타엘은 3명의 교주 중 한 명이지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가명을 쓰기 때문이다. 체페쉬의 인물들 또한 메타엘이란 이름을 몰랐다.

메타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천사와 악마들뿐이다. 어쩌면 눈앞의 인물이 악마일지도 모른다고 메타엘은 생각했다. 악마의 눈은 붉은색이 많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메타엘은 강제로 자신의 사고를 끊었다.

상대가 자신을 공격한 순간부터 적이다. 자신을 알고 있든, 없든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적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메타엘의 등뒤에 있던 여섯 장의 날개가 움찔거렸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좁은 복도였다. 날개를 펼치기엔 지나치게 공간적 제한이 심했다.

그러나 메타엘은 아랑곳 않고 여섯 장의 날개를 활짝 펼쳤다.

하얀색의 날개가 벽과 부딪힌다. 작은 소음과 함께 벽이 물먹은 휴지마냥 부서져 내렸다. 호텔이 부서지면 사람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메타엘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메타엘은 악마들처럼 은밀하게 움직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친. 이 호텔을 날릴 셈이냐?!”

테드가 거칠게 말하면서 재빨리 메타엘과 거리를 벌렸다.

천사의 힘은 새하얀 날개에서 나온다. 날개가 클수록, 날개가 많을수록 그 힘을 점점 강하다. 일반 천사는 한 쌍의 날개를 가지지만, 메타엘처럼 상위의 천사는 여섯 장의 날개를 가진다. 대천사라고 불리는 것들은 열장 이상의 날개를 가지고.

메타엘이 양손바닥을 포개어 테드를 향해 뻗었다. 손바닥의 앞에는 작고 새하얀 빛의 구체가 생성되었다.

저 작은 구체에 내포된 힘을 느낀 테드가 식은땀을 흘렸다. 메타엘이 조금의 자비도 없이 진지하게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빛과 함께 정화되십시오.”

형식적인 말을 내뱉는 안내원처럼 메타엘이 말했다. 그리고 빛의 구체가 테드에게 빠르게 쏘아졌다.

구체가 섬광이 되어 복도를 질주했다. 구체가 지나갈때마다 복도가 비명을 질렀다. 복도의 벽에 장식되어 있던 타일이 여파로 인해 후두둑 떨어지고, 복도의 내부를 환하게 밝히던 마광등이 깨져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테드는 자신의 몸에 구체가 도달하기 직전, 정면에 마법진을 하나 펼쳤다. 구체는 푸른  빛의 마법진의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메타엘의 뒤에 푸른 빛의 마법진이 나타나며 그 속에서 빛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타엘이 피하기도 전에 구체가 그와 부딪힌다.

메타엘의 몸을 보호하던 하얀색의 방어막은 유리조각마냥 찢어지고 메타엘의 활짝 퍼진 날개와 구체가 부딪힌다. 콰앙!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테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블링크를 사용해 호텔의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지체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블링크를 이용한다.

메타엘이 머물고 있는 호텔의 건물로부터 100M이상 벗어난 뒤에서야 겨우 한숨 돌린 테드였다.

테드는 호텔의 위층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복면속의 표정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거대한 폭발에 의한 충격파를 호텔이 견딜 리가 없었다. 호텔의 밑바닥에는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존재했다. 그들이 빠르게 대처한다면 피해는 최소한으로 끝날 것이다.

“빌어먹을. 천사라는 놈이 어째 악마보다 경우가 없어.”

메타엘은 테드가 알고 있는 사탄교의 3명의 교주 중 유일한 한명이다. 회귀 전에는 멀찍이서 본 것이 전부였고, 직접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테드는 솔직히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다. 회귀 전의 그를 처치한 것은 테드가 아니라 각 국가에서 파견된 실력자들이었다.

테드는 그때 마법사로서 후방지원을 맡았다. 메타엘과 직접 대면한 것이 아니기에 메타엘의 기술이라던가 전투의 버릇 등을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곱상한 외모와 달리 행동이 과격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과격하다해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겠지. 아직 사탄교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니까.”

테드는 더 이상 메타엘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호텔이 박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끌었다. 사탄교의 정체를 폭로할 생각이 없는 이상 메타엘은 모습을 감출 것이다.

“문제는 체페쉬가 머무는 호텔 건물이 폭발했다는 것인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귀족들과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십중팔구 체페쉬가 습격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상황이 하스트의 성에서 회담중인 귀족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지만 내전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괜히 벌집을 건드린 꼴인가…….”

테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움직이지 않았을 텐데.

테드가 뒷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란이 일어났다. 브리드론의 시민들이 어느 한 곳을 보며 경악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는 흥분한 얼굴로 환희를 질렀다. 그 각양각색의 반응에 테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이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민들의 시선을 집중 시킨 곳은 폭발이 일어났던 호텔이었다.

“……맙소사.”

테드가 경악했다.

부서진 호텔의 건물 위에 새하얀 날개를 펼친 천사가 고고히 하늘에 떠있었다. 등에 달린 여섯 장의 날개가 우아하게 움직이며 천천히 허공을 부유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섣불리 확신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천사는 아래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벌레 보듯 쳐다보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어느 건물 옥상위에 있던 테드의 붉은 눈동자가 그의 은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여섯 장의 날개가 한 차례 날개 짓 했다. 메타엘의 신형이 총알처럼 변해 테드를 향

해 날아왔다.

“미친 새끼! 시선 따윈 신경도 안 쓰냐!”

테드는 도망칠 생각을 버렸다.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 눈앞의 미친 천사는 도망친 자신을 찾겠다고 날뛸게 분명했다.

마법으로 육체를 강화한다. 암브로시아는 혹시 모르는 일이니 보류한다.

복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 순간, 테드의 몸에 막대한 힘이 가해졌다. 테드는 곧바로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중력!!”

압박해오는 중력의 정체가 메타엘의 권능임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도 주술도 아니면 남은 것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테드가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옥상의 바닥에 내딛는 순간이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옥상 바닥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테드의 몸이 건물의 밑으로 떨어졌다.

빠르게 테드가 있던 건물로 날아온 메타엘이 허공에 멈췄다. 그는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뱀파이어와 황급히 출동한 병사들을 무시하고서 오른손에 빛의 창을 만들어 냈다.

하얀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창에 권능인 중력을 담는다. 빛의 창이 압축되듯 작아졌다. 팔뚝만한 길이의 아주 짧은 창이 되었다.

메타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테드가 있는 건물을 향해 창을 내던졌다.

빛의 창은 거대한 파공성을 울리며 날아 건물과 부딪힌다. 그리고 건물과 그 주변 일대에 충격파가 덮쳤다.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파헤쳐지고 주위에 있던 뱀파이어의 몸이 터져나갔다.

메타엘은 건물이 있었던 크레이터를 바라봤다. 테드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힘은 시체마저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일을 끝낸 메타엘은 몸을 돌려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촤르륵 거리는 쇠사슬이 굴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뻗어나온 무수한 검은 쇠사슬이 메타엘의 몸과 날개를 붙잡았다.

“…….”

몸이 완전히 속박되었음에도 메타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위를 올려다보았다.

복면을 쓴 테드가 붉은 안광을 빛내며 거대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테드의 앞에 커다란 백색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메타엘은 본능적으로 그 마법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쇠사슬을 당겨보지만 끊기지 않았다. 몸안의 성력이 움직이지 않았다.

메타엘은 권능을 발휘했다. 성력이 봉인되어 권능이 약해졌지만, 쇠사슬을 끊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메타엘이 여섯 장의 날개를 펼쳤다. 테드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메타엘이 빠르게 테드를 향해 쇄도했고, 마법진에서 시퍼런 불꽃이 일렁이며 나타났다. 푸른색 불의 기둥이 메타엘을 향해 떨어졌다.

메타엘은 4장의 거대한 날개를 앞으로 오므려 스스로를 방어했다. 푸른색 불의 기둥과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불도저마냥 앞으로 밀고 나갔다.

“무식한 놈!”

테드가 치를 떨며 말했다. 테드의 마법은 사라지고 메타엘은 테드의 앞에 도달한 상태였다. 메타엘이 테드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테드의 몸이 하스트의 성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메타엘은 곧 바로 따라가는 대신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푸른색의 불을 막은 4장의 날개는 화상을 입은채 일부분이 시커멓게 타있었다. 메타엘이 성력을 움직이자 날개가 순식간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순백의 날개로 돌아온 날개를 확인한 메타엘이 테드를 끝장내기 위해 하스트 성으로 날았다.

⁂ ⁂ ⁂

“일단 스승 때문에 널 데려가긴 하는데… 거기서 문제를 일이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네가 문제를 일으키면 그 문제를 수습 하고, 명성에 흠집이 가는 건 스승이 아니라 우리 잔메이든 가문이야. 그건 알고 있겠지?”

하스트 성의 한 방에서 시온이 말했다. 그녀는 사이나에게 거의 3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반면 사이나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루퉁한 얼굴로 시온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메이드 복이 아닌 푸른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긴 머리 또한 뒤로 묶어 곱게 틀어 올렸고, 커다란 보석이 박힌 목걸이와 귀걸이로 몸을 치장했다.

“왜 메이드복을 입으면 안 되는 겁니까.”

사이나는 시온의 잔소리를 그대로 무시하고 자신의 불만을 표출했다.

“회담에 메이드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곳엔 귀족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해. 나는 특별히 회담 장소에 초대한 펠리스의 귀족으로 널 지목할 생각이야. 이것도 억지이긴 한데… 그 외모면 그냥 넘어갈거야. 귀족들 대부분이 남자니까.”

시온은 사이나가 드레스를 입기 전에 했던 질문의 대답을 그대로 다시 해주었다. 회담의 증인으로서 데려왔다고 하면 된다. 사이나 정도의 미모면 멍청한 남자 귀족들은 그저 좋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시온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으론 귀족들이 트집을 잡아주길 원했다. 이건 브리드론의 일이라고 누군가가 의견을 제시해주면 못이긴 척 사이나를 회담 장소의 밖으로 내보낼 것이다. 테드에게는 자신의 권한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잘 어울리는데 그렇게 싫어할 필요는 없지 않니?”

시온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에도 사이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 모습은 메이드로서 굴욕입니다. 주인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당장 벗어 던졌을 텐데!”

“나는 널 조금도 이해할 수 없어.”

시온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억지로 눌렀다. 제발 무사히 회담이 끝나기를.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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