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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15화 (11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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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이리스 우크사이어.

신트론은 최근 잠을 설치고 있었다. 아니, 잠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 생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식사를 할 때도, 수련을 할 때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우크사이어 가문에서 발견한 은발의 메이드가 도저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신트론은 자신의 상태가 흔히 말하는 상사병에 걸린 것임을 알았다.

“……끄으.”

그리고 오늘 새벽, 신트론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땀범벅인 얼굴로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코에서 거친 숨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빌어먹을…. 꿈을 꿔도 하필 그딴 꿈을…!”

신트론의 꿈에서 그토록 그리던 은발의 여인, 사이나가 나타났다. 그것 뿐이었다면 충분히 기쁜 일이었겠지만, 꿈속의 그녀의 옆에는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자유기사가 떡 하니 있었다. 그리고 재수 없게 그 들은 자신의 앞에서 입을 맞추었다.

신트론은 당장 자신의 여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려고 했으나, 꿈속에서 그는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그들의 애정행각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고문이었다.

신트론은 어차피 꿈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잠에 들려고 했었다. 그러나 몇 번 뒤척이다가 포기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잠을 취할 수 없었다.

신트론은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에 달린 마광등은 껴져 있고,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밝은 달빛이 들어와 주위를 비추었다. 신트론은 목이 타는 것을 느끼며 이불을 밀고 침대의 아래로 내려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잠옷의 불쾌감을 느끼며 방의 문 쪽으로 움직였다.

문의 차가운 금속 손잡이를 잡는 순간 신트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한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질주했다. 신트론은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사용인을 찾아 외친다.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신트론은 뒤늦게 복도의 불이 전부 꺼져있는 것을 깨달았다. 새벽에 일하는 사용인도 있기에 복도의 불은 항상 켜놓는다. 신트론은 지금처럼 어두컴컴한 복도를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

‘이거에 대해서 듣지 못했는데.’

신트론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어쩌면 저택 내부에 마광등을 점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고장이 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버지는 물론이고 사용인들이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봐라!”

신트론은 크게 외치고 잠시 기다렸다. 평소라면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이 대답하며 헐레벌떡 뛰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인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이 꺼졌다고 사용인들까지 전부 잠을 자는 것인가.

신트론은 터벅터벅 복도를 걸었다. 목적지는 1층의 식당 쪽이다. 그는 새벽에 사용인들이 자주 식당에 모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용인들에게 한 마디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쿵!

뒤쪽에서 들린 문이 닫히는 소리에 신트론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으며,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알 수 없었다.

“…….”

신트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몸을 긴장시켰다. 저 커다란 소리가 머리를 냉정하게 만들어 주었고,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신트론은 1층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문소리가 들린 쪽으로 방향을 옮길지 고민했다.

그러다 몸을 돌려 다시 1층으로 움직였다. 1층에는 사용인들뿐만이 아니라 야간 경비를 서는 하이리스 소속의 기사들이 있을 것이다.

기분 탓인지 한층 스산해진 분위기를 느끼며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저택의 1층에도 아무도 없었다.

불은 꺼져 있었으며,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자 불안감이 급습했다.

신트론은 오른손을 들어 토실토실한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아픔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꿈이었다는 상황은 아니었다.

신트론은 신중함을 가하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식당의 앞에 도착한다. 신트론은 혹시 무언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심하며 커다란 식당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살짝 열린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신트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매를 날카롭게 바꿨다. 자신 겪은 정신적 피해를 생각하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 단단히 벼르며 식당 문을 열어 젖혔다.

가장 먼저 뜨거운 열기가 신트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음으로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마비시켰다.

신트론은 몸을 비틀거렸다. 새하얀 식당이 피칠이 되어 있는 광경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식탁의 의자에는 하이리스 가문의 방계들이 앉아 있으며, 탁자위에는 음식과 피, 머리통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그 옷차림과 머리통의 얼굴을 보며 그들이 하이리스의 신하들임을 한 눈에 파악했다. 절반은 방계이며 그의 어린 사촌동생도 있었다.

“……이 상황을 설명해라!!”

신트론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최대한 감추며 식탁 앞에 당당히 서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피범벅인 식당과 달리 그의 옷에는 피 한 방울도 튀어 있지 않아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소가주님이시군요. 설명이라고 해야 하나… 보시는 대로입니다만?”

올크린스가 언제나처럼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신트론이 이를 빠득 갈았다.

“올크린스. 네놈 짓이냐?!”

신트론의 다른 한 손은 언제든지 열수 있도록 식당 문을 열고 있었다. 올크린스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 정면으로 덤비면 승산은 조금도 없다. 무엇보다 올크린스의 허리춤에는 검이 있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전에 이곳에 와서 확인했습니다. 사용인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기사들 대부분이 죽어 있더군요.”

신트론의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그럼… 누구의 짓이지? 감히 누가 본가를….”

겉으로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신트론의 목소리를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필사적으로 방법을 모색했다.

“소가주님. 혹시 네크로시스를 아십니까?”

“네크로시스…? 아니, 처음 듣는다. 그걸 왜 묻는 거지?”

올크린스는 식탁위에 있는 시체들을 한 차례 바라봤다. 얼굴을 보면 모두 눈을 감고 있다.

평온한 얼굴에는 조금의 고통도 없었다. 잠들어 있는 상태로 목을 베어 죽였다는 뜻이리라. 식당에서 처리했는지, 아니면 따로 처리하고 시체만 식당에 모아뒀는지는 알 수 없다.

“암살자 집단입니다. 소가주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법 유명한 암살 길드입니다. 그들의 힘이면 지금 상황도 충분히 가능하죠.”

“그 암살자 놈들이 왜 우릴 습격한 것이냐!”

답답한 나머지 신트론이 버럭 소리 질렀다.

올크린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신트론과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다. 신트론은 그가 당황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적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도 평소와 같으니 꺼림칙했다.

“글쎄요. 멋대로 추측해보자면 복수가 아닐까요.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그들의 계약을 위반하고, 그들은 보복을 나선 것이죠.”

“계약 위반이라고…?”

신트론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크린스는 아차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때렸다.

“소가주님은 모르시는 일입니다. 사실, 가주님은 네크로시스에게 우크사이어의 몰락을 의뢰했습니다. 소가주님이 우크사이어의 가주와 결혼하는 것으로 쉽게 우크사이어를 흡수하기 위해서죠.”

처음 아는 사실에 신트론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그다지 알려져서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알고 있는 건 가주님과 저, 그리고 입이 무거운 신하들 몇 명뿐 이었습니다.”

“계약 위반이란 건 뭐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네크로시스와는 작년 여름부터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거죠.”

“……아버지는 어디에 있나?”

죽었다는 소식만은 아니길 바라며 신트론이 그의 입을 주목했다.

“4층의 집무실에 있으시겠죠. 가주님이 3년 전부터 집무실에서 잘 나오지 않는 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신트론의 아버지이자 하이리스의 가주인 기지노 하이리스는 3년 전, 부인을 잃고서 침실이 아닌 집무실에서 잠과 식사를 해결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일은 적었으며, 집무실에서 나오는 것은 수련과 특별한 일이 있을 때로 한 정 되었다.

신트론은 식당에 앉아 있는 방계와 신하들을 한 차례 보았다.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슬픔 따윈 느끼지 않았다. 신트론은 그들이 뒤에서 자신을 욕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치며 들은 것 중 하나는 가주자리에 자신이 아닌 방계의 사촌동생을 앉힌다는 말이었다.

직계인 자신이 가주자리를 받는게 마땅한 도리임에도 말이다.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간다. 올크린스, 너도 따라와라.”

더 이상 이 피비린내 나는 곳에 있기 싫다는 기색을 한껏 내보이며 식당의 밖으로 움직였다. 시원한 공기가 폐 속 깊이 느껴졌다.

신트론은 자신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올크린스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짜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사용인들을 발견하면 식사는 내방에서 하겠다고 해라. 저기서 식사를 할 생각이 들지 않는군.”

“……예. 알겠습니다.

신트론과 올크린스를 4층의 집무실로 움직였다. 신트론은 굳게 닫힌 집무실을 열어 젖혔다. 집무실의 의자엔 밧줄에 묶여 있는 기지노가 있었다. 팔걸이와 의자 다리에 팔과 다리가 속박되어 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다. 근육질의 몸은 땀범벅이었다. 짧은 잔디같은 머리에는 붉은 피가 얼굴을 타고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기지노는 신트론과 올크린스를 발견하자마자 거칠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웁웁거리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흰자에 핏발에 가득차고 잔뜩 구겨진 표정은 악귀같은 모습이었다.

“아, 아버지!”

신트론이 허둥거리며 기지노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선 가장 먼저 제갈을 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분노의 외침이 터졌다.

“올크린스으으으으!!!”

살의가 가득 담긴 그 외침에 신트론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올크린스 쪽을 바라봤다. 기지노는 신하들 중에서 올크린스를 가장 신뢰한다. 그가 가진 재능과, 어렸을 적부터 보인 충의 때문이다.

신트론의 몸이 흠칫 굳었다. 서글서글하게 웃던 올크린스가 거짓말처럼 웃음을 지었다. 눈꼬리가 날카롭게 변한 것이 살모사같은 인상이었다.

올크린스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오, 올크린스…?!”

그의 돌발행동에 신트론이 당황하고 있을 때, 기지노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의자가 덜컹덜컹거렸다.

“중독되어 마나도 사용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냥 포기하시지요. 가주님.”

“네놈…! 네놈이…!!! 이 은혜도 모르는 놈!!”

올크린스가 검을 휘둘렀다.

“끄아악!!

신트론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며 오른쪽 허벅지를 붙잡았다. 생전 처음 보는 고통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혔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최대한 올크린스의 곁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올크린스는 지체하지 않고 기지노의 옆구리를 찔렀다. 뜨뜻한 피가 의자를 타고 바닥으로 고인다.

“한번만 말하겠습니다. 잘 들으시지요. 우선 이 문서에 서명을 하는 겁니다.”

올크린스가 보란 듯이 한 장의 종이를 들어 기지노의 앞에 내밀었다. 직위 양위서였다. 직위를 양위받는 건 올크린스가 아닌 아들인 신트론이다. 기지노는 그것을 보는

순간 눈치 챘다. 올크린스는 신트론을 허수아비로 내세울 생각이다.

“웃기지마라! 내가 협박에 굴하리라 생각하나?! 위대한 하이리스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다!”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올크린스는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위대한 하이리스가 암살 길드를 고용했지요. 그리고 딱히 서명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하이리스 가문을 이을 후계자는 저 돼지새끼 밖에 없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하이리스는 이미 끝났다는 겁니다.”

올크린스는 검에 베인 허벅지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는 신트론을 보며 혀를 찼다. 평소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앞뒤 구분안하고 행동하더니, 지금 상황에서는 벌레만도 못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호랑이 새끼는 호랑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틀린 말인 것 같았다.

“그렇게 노려보셔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걸 아시지 않습니까. 대충 여기다 서명하시면 됩니다. 암살자의 습격을 받은 하이리스 가주는 죽음을 앞두고 자식에게 정식으로 직위를 양위했다. 그냥 하이리스 가문이 암살자에게 전멸했다는 소식 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누구냐! 네놈은 확실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 성격임을 알고 있다. 누가 네놈

뒤에 있지?”

올크린스는 부들부들 떠는 신트론을 봤다. 통통한 육체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소가주님의 평소 행실을 생각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숨기라는 말도 듣지 않았고요. 그 대신, 양위서에 서명해주지 않겠습니까?”

기지노는 신트론을 바라봤다. 그리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신트론! 똑똑히 들어라! 네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다!”

기지노는 올크린스가 신트론을 한동안 살려둘 것임을 알았다. 적어도 몇 년은 허수아비로 사용할 것이다. 의심을 피하려면 그게 가장 좋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시간이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을 찾아 올 것이다.

기지노의 고함에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신트론이 떨리는 머리를 간신히 끄덕였다.

올크린스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신트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가장 곁에서 보아왔기에 기지노 보다 잘 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사흘 전 네크로시스의 마스터라는 자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올크린스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둑한 방에서 달빛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그가 바랐던 것은 철없는 소가주의 보모 노릇이 아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기사단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을 때, 깨닫고 보니 정면에 시커먼 복면과 옷으로 몸을 가린 사내가 있었다. 유일하게 뚫린 눈구멍을 통해서 붉은색의 섬뜩한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제안했다. 하이리스 가문을 조종하고 싶지 않냐고. 야망이 있는 올크린스는 그의 말을 우선 들어보자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2종류의 마법약을 꺼내서 주었다. 그는 마법을 약형태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마법약에 관해선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기에 들킬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말하지 않았지만, 마나를 봉인하는 약과 자정이 되면 강제로 수면에 들게 하는 약의 효과를 들은 올크린스는 제안을 받아 들였다.

올크린스는 그에게 물었다. 대가가 뭐냐고.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계약위반에 대한 보복이라고.

그 이후로 식량창고의 식재료에 수면약을 뿌리고, 가주의 식사에 마나를 봉인하는 약을 넣었다. 신하와 방계를 식당에 모으는 것은 쉬웠다. 가문 내에서 신뢰도가 높은 올크린스가 가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자정에 맞춰 모두 식당으로 불러내면 되는 일이니까.

“소가주님의 식사엔 약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특별히 준비했죠.”

공포심을 심어 넣기 위해서라고, 뒷말을 말하지 않았다.

“……신트론, 지금 일을… 잘 기억해라. 반드시 기억해라…!!”

기지노가 씹어 뱉듯 말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는 신트론을 바라보고서 피가 묻어진 손가락으로 양위서에 서명했다.

“좋습니다. 이제부터 신트론님이 하이리스의 가주입니다.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백작이시군요.”

그는 서명된 양위서를 확인하고 책상위에 올려 두고서 집무실을 나왔다. 사용인들과 기사들은 해가 뜨면 일어날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장을 만들기 위해 얼굴도 모르는 시체를 암살자처럼 꾸며 치장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전투의 흔적도 어느 정도 만들어내고 말이다. 덤으로 네크로시스에 대한 것도 은은히 흘릴 생각이다.

바쁘게 되었지만 올크린스의 입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트론을 허수아비로 내세우며 하이리스 가문의 세력과 힘을 야금야금 빼앗는다. 그리고 후에는 올크린스 가문이 탄생할 것이다.

하이리스 가문은 이미 몰락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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