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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11화 (11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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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축제.

테드와 라이거는 먹거리릍 탐방하고 볼 것을 관람하며 축제를 즐겼다. 도중에 라이거를 찾는 신하들과 스쳐지나갔으나, 테드의 마법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명색의 마법 아카데미인데 마법으로 변장한 테드와 라이거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라이거로서 안심이 되면서도 무언가 찝찝했다.

“마지막은 마법 도서관이 좋겠다.”

라이거가 테드에게 말했다. 레이나가 계속 마법 도서관 앞에서 진을 치고 있을리도 없거니와, 이 모습이라면 레이나 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다.

“의외로 볼 건 없어요. 책의 종류가 많고, 마법서가 있는 게 특징일 뿐이죠.”

최근 테드는 마법 도서관에 간 기억이 없었다. 원래 책을 잘 읽지 않고,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는 마법서도 테드 정도의 실력이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법사가 아닌 라이거가 마법서를 볼 이유는 없었다.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법 도서관에는 금서 구역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긴 한데. 거긴 왕의 허락이…….”

테드가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눈앞의 인물이 바로 왕이었다. 그가 허락하면 금서 구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금서 구역에 들어가려면 일단 신분을 알릴 필요가 있겠네요.”

테드는 공식적으로 라이거가 방문하는 축제 3일 째에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의 국왕인 그가 금서구역에 들어간다고 하면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라이거는 고개를 저었다. 라이거가 품에서 하나의 열쇠를 꺼내든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열쇠였다. 번쩍번쩍 빛나는 열쇠의 손잡이 부분은 사자의 얼굴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왼쪽 눈에는 안대를 끼고 있고, 오른쪽 눈 부위엔 붉은색 루비가 박혀 있었다.

안대를 낀 붉은색 독안의 사자. 라이오넬 가문의 상징, 즉 펠리스 왕가의 상징이다.

라이거는 자신이 들고 있는 열쇠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건 대대로 국왕에게만 내려오는 보물이다. 인식 마법이 걸려 있어 왕가의 핏줄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만능키다.

이 열쇠는 성에 있는 모든 문을 열 수 있었다. 숨겨져 있는 비밀 문까지 예외 없이 말이다. 또한 라이거가 전대 국왕에게 듣기론 마법 도서관의 금서 구역으로 통하는 문을 열 수 있다고 들었다. 금서 구역의 문을 따로 여는 열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금서라는 것도 궁금하고, 이 열쇠를 한 번 사용해보고 싶었다.”

라이거는 이 열쇠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국왕으로서 즉위 된지 얼마 안 되기도 했지만, 그의 아버지, 전왕의 경우에도 사용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성의 잠긴 문은 거의 없었으며, 창고같은 것에도 제각각 맞는 열쇠가 존재했다. 비밀문의 경우엔 사용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 ‘황금 사자의 열쇠’는 있으면 편리하나 그다지 쓸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우선은 도서관에 들어가야겠네요.”

테드가 사람이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서 마법을 풀었다. 테드의 모습이 원래의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의 출입하기 위해선 교사인 테드가 있어야 했다. 라이거는 마법에 걸린 모습 그대로였다.

테드는 라이거를 데리고 마법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서관의 입구에서 아직 가시지 않은 여기사와 딱하니 마주쳤다.

짧은 금발의 여기사는 환하게 웃으며 테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테드 공이 아닌가!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었다고 듣긴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새삼 반갑군! 정말 오랜만이네!”

도서관 내부 문 근처에 있었기에 밖에서 확인하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랜만이네요. 건강해 보이는군요.”

테드는 그녀가 내미는 오른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했다. 레이나는 테드의 옆에 있는 인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라이거는 순간 들키는 것이 아닐까하고 내심 긴장했다. 집행관인 그녀라면 충분히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테드 공의 동료 교사인가?”

레이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라이거가 대답하기 전 테드가 입을 열었다.

“교사는 아니고 축제에 놀러온 아는 친구죠. 마법 도서관을 구경 시켜 주려고요.”

“테드 공의 친구였군. 나는 레이나 델톤이네.”

“……레글리입니다.”

라이거가 무뚝뚝하게 가명을 말했다. 레이나는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생각 같아서는 테드 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만… 여긴 도서관이고 나 또한 일이

있어서 지금은 불가능하네. 미안하군.”

“아뇨. 괜찮습니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테드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연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을 보지 못했나?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는 정도이고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네.”

“그 정보만으로는 누굴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밖에도 그런 인물은 많아서.”

“그것도 그렇군. 음….”

레이나가 입을 다물고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잠시 후 그녀는 마음에 드는 말을 찾은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지! 남자다움은 없는 여자 같은 인상이네!”

테드는 라이거의 몸이 흠칫 떨린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그 기생오라비가 바로 옆에 있단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보지 못 했어요.”

“그런가. 아쉽군.”

“그는 왜 찾나요? 혹시….”

테드가 말끝을 흐리자 그 뒷말을 예상한 레이나가 고개를 저었다.

“범죄자는 아니니 걱정 말게. 단지 조금 중요한 사람이네. 굳이 말해주자면 가출한

귀족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요? 그런데 왜 도서관에 있으신가요. 중요한 인물인데 직접 찾으러가지 않아도 되나요?”

“그를 찾는 인물은 나 외에도 제법 많이 있네. 나는 그가 책을 좋아하기에 도서관에 올것이라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 예상이 틀린 모양이야. 사서에게도 특징을 말해 놓았고, 발견하면 알려준다고 했으니 이제 밖으로 나갈 찾아볼 생각이네.”

이후 레이나는 테드와 라이거에게 인사를 하고 도서관의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되면 만나자는 말을 테드에게 남기고서. 물론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집행관이면서 국왕의 호위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너무 우직한 것이 문제지.”

레이나가 마법 도서관에서 떠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라이거가 말했다.

“우직한 것 같진 않은데요. 강직하다면 모를까.”

“네가 몰라서 그렇다. 융통성이란 걸 찾아보기 힘들고 머리 쓰는 일은 서툴지. 그런 주제에 사람은 쉽게 믿고, ‘전통’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

“……그래도 그녀는 강하잖아요.”

“그게 문제다. 교활한 녀석들은 그녀를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하지. 내가 그녀를 호위자리에 올려 곁에 두고 있는 이유가 그런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라이거가 거침없이 말했다. 만약 레이나가 이 자리에 있엇다면 풀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을까.

“신하인데 신랄하게 말하시네요.”

“지극히 객관적인 평가 일뿐이다.”

“그럼 디커드는 어떤데요?”

테드가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학원장이자 12집행관 중 한 명

인 디커드에 대해서 물었다. 현자라고 불리는 그다. 라이거라면 좋은 평가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라이거의 평가는 테드의 예상을 뒤엎었다.

“잔소리 많은 늙은이.”

세 마디로 디커드에 대해서 정의했다. 테드는 잠시 디커드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와 마주칠 때면 대부분 잔소리를 들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보아왔다. 그리고 아바… 아버지보다 더 많은 잔소리를 내게 퍼부었지. 너는 모르겠지만, 그는 양치질 하나까지 간섭해댔지.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군.”

졸졸 쫓아다니며 잔소리 하는 디커드와 질린다는 표정의 라이거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었다. 테드가 피식 웃었다.

라이거는 테드의 반응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는 현명하다. 속사포처럼 쏟아 내는 말에는 틀린 말이 거의 없었지. 내

게 있어선 조부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라이거의 두 눈이 그윽해졌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보고 있었다.

“그럼 저는 어떤데요?”

테드가 웃음기를 담아 물었다.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라이거는 그를 바라보며 잠시 음, 하고 뜸을 들였다.

“모르겠군.”

“……그게 뭐에요.”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너와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그래서 첫인상으로 판단한 것을 말했다.”

“첫인상이 모르겠다고요?”

“보통 사람의 첫인상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소심한 자, 간사한 자, 우둔한 자, 고직식한 자, 저돌적인 자, 신중한 자. 등으로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첫인상을 단어로서 표현할 수 있지. 그런데 너는 모르겠다. 소심하지 않은 것 같고, 간사해보이지도 않지. 시간이 지나면 적당한 단어를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이상하다는 것이 첫인상이다.”

“제가 이상하다고요?”

테드로선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그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라이거는 담담한 표정으로 질문에 긍정했다.

“이상하다. 보통 내 정체를 알게 된 자들은 태도를 바꾸기 마련이지. 왕이란 국가에

서 가장 고귀한 자니까. 아무리 편하게 대한다 해도 무의식적으로 조심하길 마련이지. 그런데 너에겐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겁이 없는 것인지 다른 무언가를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외에도 강력한 힘을 보유했으면서 겨우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교사를 하고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은 숨기기보다는 내보인다. 내보여서 대우를 받기 원한다.

라이거가 보기에 테드가 가진 힘은 교사에 머물러 만족할만한 힘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긴 하네요. 뭐, 그래도 그게 저니까요.”

테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라이거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후 테드는 라이거를 데리고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도서관을 투시해서 본 결과, 지하에는 헌책과 신간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였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에서 금서 구역이 있을만한 자리는 꼭대기 밖에 없었다.

사서의 눈을 신경 쓰며 몰래 올라온 위에는 하나의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왕가의 상징 동물인 사자가 조각되어 있으며, 중간에 열쇠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었다. 테드는 이 철문에 마법이 걸려있음을 파악했다. 철문을 억지로 열려거나, 맞지 않는 열쇠가 들어가는 순간 경종을 울릴 것이다.

“여기선 과인이 하겠다.”

라이거가 본래의 말투로 말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테드는 신경쓰지 않았다.

라이거는 열쇠 구멍을 천천히 집어넣었다. 열쇠는 조금의 거슬림도 없이 들어갔다. 마치 원래부터 그것인 듯 했다.

라이거는 열쇠를 잡아 돌리기 전, 조각된 사자의 오른쪽 눈에 밝힌 붉은 보석이 반짝인 기분이 들었다.

찰칵. 잠금쇠가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라이거는 열쇠를 빼고 철문을 열었다.

천장에 박힌 마법등이 문이 열리는 것에 반응하며 번쩍하고 불빛을 내며 사방을 밝혔다.

수많은 갈색 책장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바닥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엉켜 있었다.

“흠. 듣던 대로군.”

한 차례 금서 구역을 둘러본 라이거가 중얼거렸다.

“……어. 저기 저도 들어가도 되나요?”

입구에서 테드가 물었다. 라이거가 그를 바라봤다.

“그렇군. 원래는 안 된다만…. 과인은 오늘 그대에게 빚을 졌지. 빚은 빠르게 갚는 것이 좋지. 과인이 특별히 허락하지. 그대가 들어와도 상관없다.”

테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금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을 만큼 귀한 책들이 이곳에 있었다. 사람으로서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즈어어어어언하아아아!!”

“……그렇게 날 부르는 것이 유행인가. 요새 신하들이 그렇게 날 부르더군.”

라이거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테드는 그가 말을 바꾸기 전에 얼른 서재의 안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즈어어어언하아아아. 라는 말이 너무 입에 착 달라 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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