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03화 (10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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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크로시스

결론적으로 아카데미의 방학이 시작될 때 까지 네크로시스는 습격해오지 않았다. 거울속의 인물, 사우스가 한 조만간 죽여준다는 말이 무색하게 굉장히 평화로웠다. 아니면 그의 조만간의 기준이 테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거나.

그리고 마릭은 여전히 저택의 3층 방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생활하고 있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모두 들었고, 그중에선 쓸만 한 정보도 있었다. 무엇보다 테드는 그를 이용해 그의 몸속에 있는 마법진에 관해서 알 수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문제없이 마법진을 해독해 제거할 수 있었다. 암살 길드는 물론이고 어떠한 조직이라도 배신자는 쉽게 용서하지 못하니까.

마릭을 미끼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테드는 그를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네크로시스의 입장에서 자신 또한 충분히 성가신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릭은 더 이상 사슬에 묶인 채 생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네크로시스는 그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마릭은 방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네크로시스가 살아 있다면 마릭을 노릴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용인들은 인크론의 명령에 따라 마릭에 대해서 함구한 상태이다. 그들은 마릭이 아직 저택에 있는지 모른다. 마릭이 첩자라는 것이 은밀히 알려졌기에 사용인들은 마릭이 처형되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최근 레미와 마릭 사이에 핑크빛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아이리스는 원래 마릭을 직접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레미의 간절한 부탁, 하루에 몇 번씩이나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는 레미의 정성에 마음이 바뀐 듯 하다. 아이리스 또래의 여성들에겐 사랑이란 것은 특별하다.

레미와 마릭의 사랑에 감동받은 아이리스가 마릭의 죄를 용서해준 것이다. 물론 감정때문만이 아니었다. 거기엔 마릭이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 것이 더 컸다. 그가 말한 정보에 따라 사우스가 있는 곳을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릭이 정체를 들키고 감금되기 반 년 전, 사우스와 거울로 통신 했을 때 마릭은 그의 책상위에 놓여 있는 하나의 빈 포션병을 확인했다. 포션을 제작하는 곳은 많다. 굳이 마법사가 아니어도 약초의 배합만으로 포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포션마다 병의 일부에 상표가 붙는다. 그것이 일반적이다. 상표가 없다면 제대로 된 포션이 맞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사우스의 책상위에 놓여 있던 포션은 펠리스 왕국에서 제약 도시라 불리는 ‘도드’ 출신의 한정판 포션 중 하나다. 이 한정판 포션이라는 것이 인기가 너무 좋다 보니 도시 내에서만 일주일에 한 번씩 딱 50개씩 한정 판매된다. 구입하기 위해서는 직접 도시에 가서 줄을 설 필요가 있다. 대량 구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개인을 거쳐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막대한 돈이 필요하고.

그 한정되는 포션의 정체는 정력제다. 포션의 제품명은 ‘밤의 지배자’다. 노란색의 포션은 황금색이라며 칭송받기도 한다. 효과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이 정력제를 구입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사람도 찾아올 정도라 매주 순식간에 판매 완료되는 물품이다. 이 포션을 구입하고 따로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재기 하는 것이다. 없어서 못 파는 것이다 보니 가격도 3배 이상으로 껑충 뛰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기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정력제가 아닌 색깔만 노란 물일 수도 있으니. 어쩌면 오줌 일지도 모르고.

사우스의 책상위에 이 물품이 있는 이유는 그가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 그 이유면 충분하다고 테드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우스가 도드에 있을 확률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적었다. 반년도 더 된 일이라 그가 거주지를 옮겼을 가능성도 있고, 애초에 도드에서 구입한 물건이라고 확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아주 약간의 가능성, 그가 도드에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테드는 아카데미 방학 중에 제약 도시인 도드로 향했다. 베이론 못지않은 도시인 도드이기에 워프게이트를 통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점심 무렵에 테드는 제약도시에 도착했다. 주된 목적은 사우스를 찾기 위해서이며, 보조 목적은 방학 시기를 이용해 관광을 하기 위해서다. 아마 네크로시스라면 자신이 도드에 들어온 걸 눈치 챘으리라.

테드는 고급 호텔에 방을 하나 잡고서 소파에 앉아 바로 앞의 테이블 위에 놓인 노란색 액체가 들어 있는 포션을 바라봤다.

“이게 그 유명한 ‘밤의 지배자’…!”

오늘 새벽, 사이나가 공수해온 물건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판매되는 이 포션을 구매하기 위해서 사흘 전부터 진을 치고 기다리는 있기에 어제 도착한 사이나와 테드가 구입하는 것을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사이나는 새벽에 나가서 몇 분 만에 구입해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가 정력제를 구입해 돌아와 건네는 것을 받은 테드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일단 받아서 챙기긴 했으나 사이나가 곁에 있어 일종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황급히 아공간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현재, 저녁식사가 끝난 뒤, 사이나는 도드에서만 판매하는 유명한 약

초를 구입하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가 있는 상태다. 호텔의 방에는 테드 밖에 없었다.

“최근 나는 몽정이란 것을 했지.”

노란색의 정력제를 눈앞에 두고 테드가 비장하게 말했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 일주일 전에 몽정을 했다. 지구에서 몽정의 경험이 있는 테드는 조금 일찍 몽정을 경험한 것을 알아 차렸다.

거기에 대해선 별달리 걱정은 하지 않았다. 흔히 몸은 정신을 따라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신이 성숙하니 육체가 자연스레 따라가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아니면 매번 사이나가 차려주는 식사를 꾸준히 섭취해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영양소 덕분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꿈에선 사이나가 나타났다. 아주 좋은 꿈이었지만, 그날 사이나를 보는 것이 약간 거북스러웠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자뭇 진지하게 말한 테드는 흡사 어떤 의식이라도 하듯 매우 조심스럽게 아공간을 열었다. 맹세컨대 이렇게 조심스럽게 아공간을 열어 본적이 없었다.

아공간을 열고 남모르게 수집해온 물건들을 꺼내 든다.

루크에이스에서 남몰래 구입한 물건, 미궁 69층에서 나오는 파이어 미노타우르스의 고환을 건조 시킨 뒤 갈아서 만든 가루. 정식명칭은 없기에 모험가들은 ‘불타는 정력’이라고도 말한다. 이름만 들으면 정력을 불태워 연소시킬 것 같지만, 진짜 뜻은 정력을 불태워 밤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모험가들 중에선 남자가 많다보니 모험가가 모이는 술집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정보였다.

아공간에 손을 넣어 다른 물건을 꺼낸다. 이번에 꺼낸 것은 약초였다. 푸르스름한 빛을 스스로 내고 있는 깨끗한 약초. 손바닥 보다 작다. ‘즐거운 만월’이라는 약초다.

이윽고 새끼손가락만한 작은 알약이 드러난다. 마법시약 중 하나로 마탑이나 마법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비싼 약이다. ‘조이 조이’다.

“아직 부족하다.”

테드가 이번에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나뭇잎이었다. 얼핏 보면 은으로 만든 금속 나뭇잎으로 보이지만, 엘프 들의 정력제로 유명한 ‘은의 나뭇잎’이다. 엘프 들이 애용할 만큼 효과는 발군!

“……끝나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크고 많아 복잡한 뿌리를 가진 산삼을 하나 꺼내든다. 몇 십 년 동안 마나를 먹고 자라 영물에 경지에 이른 산삼이다. 아카데미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얻었다. 정확하게는 아카데미 교사의 권한으로 유명한 상회에 의뢰해 구입한 물건이다. 이름 붙이자면 ‘팔십년 산삼’.

다음으로 나온 것은 검은색의 맨들 맨들한 어린아이 손바닥만 크기의 한 해삼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해삼은 아니다. 심해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해삼으로 ‘심삼’이라고 불린다. 네메스 대륙에서 심해 깊은 곳 까지 갈려면 뛰어난 마도구나 마도사가 필요하다.

정력뿐만이 아니라 마력 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이것은 마탑에서 비싸가 판매한다. 공급이 빌어먹을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일반인은 돈이 있어도 사지 못한다. 테드는 코스모스 아카데미 교사와 A등급 모험가란 점을 이용해서 구입할 수 있었다. 코스모스 아카데미 교사라는 직업은 의외로 쓸 만 했다.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루크에이스의 과실’이다. 검은색 바탕에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상자를 열어 귀중히 보관되어 있는 은은한 하얀 빛을 내는 구슬을 황홀하게 바라봤다. 너무 영롱해서 눈이 부셨다.

루크에이스의 과실은 이 중에서 가장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이름 높은 귀족과 왕이라도 바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바로 이것이었다.

“……자.”

책상위에 7개의 보물을 늘여놓고 테드가 입을 열었다. 긴장감과 희열이 섞인 목소리가 흘

러나왔다. 테드는 기대감에 의해 자신의 몸이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좋은 감각이었다.

“시작하자.”

테드의 눈동자가 붉은 빛을 냈다.

우선은 마법이다. 테드를 중심으로 바닥에 밝은 하얀색의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약 30초 정도 빙글빙글 돌면서 마법을 발동시킨다. 마법진이 빛을 내뿜고 사라진다. 하얀색의 반

투명한 둥근 막이 은은하게 빛나면서 테드를 보호했다.

《절대 방어(Absolute Barrier)》다. 만약에. 정말 가능성은 적지만 네크로시스가 습격해서 테이블 위에 놓인 보물들이 파괴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혹은 갑작스레 건물에 화재가 나거나, 지진이 일어나거나, 번개가 떨어지거나 등의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일반 마도사라면 몇 분이나 걸쳐서 발동시키는 최상위 방어 마법을 테드는 30초 만에 발

동시켰다. 강력한 일격, 예를 들면 마을 하나는 날릴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 아니면 앱솔루트 배리어는 끄덕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단점은 3분이 지나면 마법이 풀리고 배리어는 그 자리에 고정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앱솔루트 배리어의 최대 장점은 미세한 공기마저 차단한다는 것에 있다.

“《정화(purification)》.”

배리어의 내부가 마법으로 인해 정화된다. 배리어의 내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생적인 공간이 되었다.

테드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테이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장 먼저 손에 든 것은 노란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포션병이다. 오늘 사이나가 구해온 ‘밤의 지배자’다. 밀봉되어 있는 뚜껑을 열고 흘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신다. 약간 레몬맛이 느껴졌다. 이후, 병 내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액체까지 마법을 이용해 위장으로 집어넣는다.

기분 탓인지 신체가 아주 약간 뜨거워진 것 같았다.

다음으로 종이에 들어 있는 가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미노타우르스의 고환을 갈아서 만든 ‘불타는 정력’이다. 맛은 없었다. 입안에 가루가 달라붙어서 조금 찝찝했다. 침을 이용해 입안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가루까지 먹은 테드가 다음으로 손을 뻗었다.

푸른 빛을 스스로 내고 있는 약초. ‘즐거운 만월’이다. 겉모습은 쑥인데 푸른 빛을 내고 있다. 범상치 않았다. ‘즐거운 만월’은 조금 질겼으며 썼다.

알약인 ‘조이 조이’는 그냥 바로 삼켰기에 맛을 느끼지 못했다.

금속 맛이 날 것 같은 ‘은의 나뭇잎’은 의외로 비스킷 맛이었다. 달고 고소했다.

‘팔십년 산삼’은 의외로 달았다. 먹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크기가 좀 커서 먹고 나니 배가 찼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저녁식사 후였다.

다음은 먹기가 꺼려지는 해삼이었다. 해삼을 슬쩍 손에 쥐자 미끌 했다.

진짜 먹기 싫었다. 하다못해 요리해서 먹으면 좋으려만. 그가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하면 온전하 효능을 위해선 내장까지 생으로 씹어 먹어야 했다.

테드는 절대로 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혹시나 토한다 해도 그 토사물까지 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가 긴장한 손으로 ‘심삼’을 쥐고 입에 넣었다. 한입 크게 베어 문다. 테드의 두 눈이 커졌다. 의외로 맛이 고소했다. 나쁘지 않았다.

심해의 해삼까지 전부 먹어 치우자 그제서야 마력이 상승했다는 시야 한구석에 있는 시스템 알림창을 발견했다. 테드는 신경질적으로 시스템 알림창을 껐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마력따위가 아닌 다른 힘이었다.

“…….”

테드는 홀로 남아 있는 마지막 보물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마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만지는 것처럼 신중했다.

테드가 ‘루크에이스의 과실’을 만졌다.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다이아몬드 보다 더 영롱한 빛을 내는 그것을 천천히 들어 입술을 맞추고 안으로 넣는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테드는 입안의 그것을 굴러 입안쪽의 어금니로 밀어 넣었다. 약간 망설임 후에 어금니를 씹었다. 구슬이 입안에서 갈라졌다.

거대한 생명력의 파도가 테드의 몸을 덮쳤다. 전율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테드는 양팔로 몸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테드는 감동했다.

그의 두 눈에는 호화로운 방풍경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 붉은 눈동자는 생명력이 가득 넘치는 대지를 담고 있었다.

그곳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 초원이었다. 거기서 테드는 알몸으로 대지를 내달리며 생명력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하하하하하!”

맨발로 대지를 짓밟으며 달리는 테드는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구름 한점 없이 깨끗한 푸른 하늘!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 모든게 마음에 들었다.

대지의 앞에 금발의 자애로운 여신이 있었다. 하얀색의 옷을 입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테드를 향해 웃으며 부드럽게 손짓했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

테드가 그녀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멱살을 잡아 집어 던졌다. 여신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테드는 그녀를 보며 여전히 환하게 웃었다.

“……핫!”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테드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사이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사이나는 테드의 붉은색 눈동자를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테드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몸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약효가 발휘하는 것에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잠시 네크로시스에 대해서 생각했어.”

테드가 둘러댔다. 붉은색 눈동자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약효가 발휘 된 시각은 어두운 새벽이었다. 테드는 신체의 뜨거움을 느끼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눈을 맞아서 그런지 감기 기운이 있는것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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