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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크로시스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얼마안가 통로를 막는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인 어른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철문이었다. 몰크는 철문의 앞에서 주먹을 쥐고 서너 번 문을 두들겼다. 쾅쾅, 거대한 소리가 지하계단을 울렸다. 어찌나 쌔게 문을 때리는지 테드는 그가 화난 줄 알았다. 그러나 몰크의 얼굴은 평온했다.
문을 두드린 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몰크를 향해 테드가 물었다.
“왜 그리 난폭하게 두들겨요?”
“안에 있는 놈이 자고 있을 수 있다. 하염없이 여기에 서있을 생각이 아니라면 큰소리를 내서 깨우는 게 낫지.”
몰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문이니 방음하나는 끝내 줄테니 안에 있는 인물이 잠들어 있다면 문을 두들겨 깨우는 수밖에 없다. 잠시 뒤, 철문이 열렸다.
철문을 당겨지며 약간의 문 틈새로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너저분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옷은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고 운동화 대신 편한 슬리퍼를 신고 있다. 턱과 뺨에는 검은 수염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으며, 검은 머리카락은 중력을 무시하듯 옆으로 뻗쳐 있었다. 그의 탁한 갈색 눈동자가 몰크와 테드를 한 번 훑어보았다.
손님을 확인한 그는 두 눈을 왼쪽 손등으로 비비며 오른손으로 철문을 활짝 열었다. 눈 아래에 다크서클은 너무 진해서 그의 건강상태가 의심될 정도였다.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늦어 잖나, 몰크.”
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몰크는 그의 형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히센, 넌 여전히 더럽군. 분명히 샤워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번씩 세수 정도는 하라
고 말했을 텐데.”
“여기 일 장난 아니게 바쁜 거 알잖아? 씻을 시간에 잠을 자는 게 더 이득이지.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목욕하고 있고.”
히센이 엄마의 귀찮은 잔소리를 듣는 사춘기 아들처럼 투덜거리듯 말했다.
몰크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닫았다.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포기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단 들어와, 몰크. 거기 뒤에 있는 테드 크루시안. 너도.”
히센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몰크와 테드가 뒤따랐다. 테드는 히센을 보며 그가 괴짜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 겉모습과 몰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내부는 큰 공간이었다. 책상과 서재 등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이었는데 히센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너저분한 외모와 달리 사무실은 지나치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가 사무실의 오른쪽 벽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테이블과 넓은 소파가 있었다. 소파의 옆에는 간이침대가 하나 있다. 침대위의 이불은 흐트러져 있었다.
히센은 소파에 앉았고, 테드와 몰크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이야기는 미리 들었지만, 우선은 형식적인 확인 작업이야.”
몰크가 로브의 안에서 하나의 종이를 꺼냈다. 하얀색의 손바닥만 한 종이였다.
종이를 받아든 히센이 그곳으로 마나를 흘려 넣었다. 하얀 종이가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진이 하나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종이가 반으로 찢어졌다. 히센이 주먹을 쥐어 종이를 구겼다.
“디커드님의 표식이 확실해. 원하는 정보가 뭐야?”
그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크가 입을 열었다.
“네크로시스. 놈들의 정보를 원한다.”
“거 참. 위험한 정보를 쉽게 묻네. 놈들의 정보는 펠리스 정보 길드에서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지?”
“그건 처음 듣는군. 정보 길드가 모르는 정보도 있었나?”
몰크가 되물었다. 그러자 히센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몰크 네가 내게 물으면 안 되지. 너도 일단은 나와 같이 일했잖아.”
“나는 손이었고, 너는 머리였지. 머리가 하는 일을 손이 알아야 하나?”
히센이 몰크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혀를 찼다.
“알 필요 없지. 반대로 머리인 나는 손이 하는 걸 알아야 하고.”
히센과 몰크는 과거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히센과 몰크는 동기였지만, 하는 일이 달랐다. 몰크는 현장 요원으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일이였고, 히센은 요원들이 모으는 정보를 합치고 계산하고 버리고 추리하는 것이 일이었다.
“네크로시스는 위험한 놈들이야. 정보 길드가 그들의 정보를 다루는 것을 꺼려할 정도지. 정보 길드에서 놈들의 정보를 원하려면 다른 나라의 정보 길드로 찾아 가야해.”
“그래서 너는 놈들이 무서워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건가?”
몰크의 물음에 히센이 시시한 농담은 집어치우라는 듯 손을 획획 내저었다.
“설마. 놈들은 결국 암살 길드에 불과해. 내가 놈들을 두려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단지 이 정보는 우리도 어렵게 구한 거라서 말이야. 그 고생을 알아줬으면 하고 말한 거야.”
“그렇다면 그들의 정보를 말해라. 우린 오늘 안에 베이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 저녁밖에 되지 않았는데 뭘.”
조금도 급할 것 없다는 듯 히센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졸린 듯 눈을 반쯤 감았다.
“넌 옛날부터 그랬지. 대화를 너무 질질 끈다.”
몰크가 히센을 보며 말했다.
“예전에도 누누이 말했지만, 대화가 길수록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
“…….”
몰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히 그의 말을 대꾸하면 생각보다 더 길어질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몰크는 조용히 히센을 쳐다봤다. 히센이 졸음을 내쫓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고 등받이에서 등을 뗐다.
“재미없긴.”
한번 투덜거린 히센은 멈추어 있는 두뇌를 가동시킨다. 키워드는 네크로시스다.
히센은 펠리스 왕국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그 혼자서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 처리하기엔 펠리스 왕국은 지나치게 넓었다. 그가 주로 담당하는 것은 펠리스 왕국의 잠재적 위험이 되는 것들의 정보다.
네크로시스는 잠재적 위험 순위로 따지면 조금 높은 편이다. 그들이 가진 무력이 상상이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수준은 아니었다.
“네크로시스. 암살 길드지. 본거지는 우리도 몰라. 정보가 없어. 놈들은 우리 펠리스 왕국에서 활동하지만, 수도인 이곳에선 아니야.”
네크로시스 뿐만이 아니라 수도인 펠론에서 활동하는 암살 길드는 없다. 수도에는 국왕이 있고, 무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집행관들이 있다. 수도에 발을 들인 순간 소탕당할 것이다.
히센은 네크로시스에 대한 정보를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 본 것은 좀처럼 잊지 않기에 번거롭게 서류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네크로시스가 주로 활동하는 도시는 수도를 제외한 대도시들이고, 타겟은 평민에서 귀족 등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 의뢰에 정당한 돈만 있으면 암살을 주저하지 않았다. 네크로시스가 의뢰를 받는 방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히센은 이후로도 네크로시스에 관해서 말했다. 입막음에 암살자들의 몸속에 폭발 마법을 새기는 것도 있었고, 역용술을 사용하는 여자 암살자 제니에 관한 정보도 있었다. 테드가 알고 있는 정보가 대부분이었지만, 모르는 정보도 확실하게 있었다.
예를 들면 네크로시스의 마스터에 관해서 라던가.
“네크로시스의 마스터로는 검은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노인이 유력하지. 정보를 조합
해서 추리한 내용이라 확신한 정보는 아니야. 다만, 나는 80% 정도의 확률로 그 노인이 마스터라고 생각하고 있지. 믿건 말건 너희들 자유야.”
“……그 노인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마릭이 말한 인물을 떠올리며 테드가 말했다. 검은 수염에 로브를 쓴 인물. 거기에 마법사. 회귀 전에 만난 기억이 있었다. 그가 먼저 덤벼왔고, 테드는 그를 죽였다. 정면에서 당당히 나타나서 마법을 사용했기에 그가 암살자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원한을 가진 마법사라고 생각하며 대충 넘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날 뒤로 네크로시스와의 마찰이 사라졌었다.
“관심이 있나보네. 좋아. 알려주지. 그의 이름은 포굴 미르스. 딥크스에서 제법 유명했
던 사령술사로 저주계 마법도 사용하지. 그가 암살자의 몸속에 폭발하는 마법을 새겼을 거야. 나이는 올해로 60세 정도인가. 그 경지는 마도사. 어쩌면 훗날에 대마도사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르기에 처리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위치가 전혀 파악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게 반년 전,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인 ‘델리리코’에서였지.”
“…….”
테드는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정확하게는 머릿속으로 회귀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검은 수염을 가진 마법사, 포굴이라고 했나. 그와 분명히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투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어떤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테드는 전투를 너무 많이 치루었고, 적이 너무 많았기에 강력한 적이 아니면 기억하지 못했다.
포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도사가 뭐 때문에 암살 길드의 마스터를 하는 거지?”
몰크가 그를 향해 물었다. 히센은 자신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돈이 필요한가 보지. 아니면 취미라던가. 알다시피 딥크스 출신 중에서 또라이가 많잖아. 포굴도 그중 하나겠지.”
“그 외에 네크로시스에 대한 정보는 없나?”
“아쉽게도 내가 아는 정보는 이게 전부야. 요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가져오면 알 수 있겠지만, 지금 요원들은 정말 바쁘거든. 따로 빼서 움직일 인력이 없어.”
“……고맙군.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몰크가 생각에 잠긴 테드의 옆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 그런데 왜 네크로시스에 대해 조사하는 거야? 이 정돈 가르쳐줘도 상관없잖아.”
“…….”
히센의 물음에 몰크는 잠시 침묵을 고수했다. 히센은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정보를 다루기에 정보의 값어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국왕 전하와 12 집행관이 아니면 쉽사리 입을 여는 인물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교사가 아카데미 안에서 네크로시스의 암살자에게 습격 받았다.”
“……그건 처음 드는 정보인데. 네크로시스가 그런 무모한 놈들이었나?”
“그분이 없으실 때 학생으로 변장해서 침입해왔다.”
“그리고 폭발해서 죽었죠. 솔직히 육체가 갑자기 폭발할 줄은 예상도 못했어요. 그땐 진짜 위험했다니까요.”
테드가 끼어들었다.
포굴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아쉽게도 떠오르지 않았다. 괜히 머리만 아프므로 일찌감치 그에 대해 떠올리는 것을 포기했다.
“과연 천재 마법사! 네크로시스의 암살자로선 감당이 되지 않는 건가! 새로운 정보를 얻었어.”
“사실 네크로시스 전체가 덤벼도 절 어떻게 할 순 없지요.”
“엄청난 자신감이야. 패기가 보기 좋은데!”
테드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테드의 말을 패기의 표현으로 받아 들였다. 젊은이의 패기. 그는 싫어하지 않았다. 뭐, 젊은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렸지만.
“그 패기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다른 정보도 가르쳐주지. 뭐, 궁금한 것이라도 있나?”
“궁금한 것이라….”
테드가 턱을 쓰다듬었다. 네크로시스에 관해 물어봤자 별다른 정보는 없을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던 테드의 머릿속에 불현 듯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영력. 영력에 대해서 알아요?”
“영력? 처음 듣는 단언인데. 이름만 봤을 땐 마력이나 성력 같은 힘의 종류인가.”
히센은 뻣뻣한 머리를 긁적였다. 테드는 기겁했다. 비듬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기 때문이다.
“음.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모르겠네. 몰크. 넌 알고 있지 않아?”
“처음 들어 보는 단어다. 모른다. 학원장 님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테드는 별기대 하지 않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정보라기보다는 지식에 가까웠다. 학원장인 디커드라면 알지도 모른다. 그는 펠리스 왕국의 현자라고 불릴 정도이니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엄청날 것이다.
그 후, 테드와 몰크는 히센과 잡담을 나누고 워프게이트를 타고 베이론으로 돌아왔다. 잡담이라기보다는 히센의 일방적인 푸념이었다.
테드는 베이론의 거리를 걸으며 우크사이어 저택으로 움직였다. 원래는 편하고 빠른 마차를 탔지만, 거울을 통해 네크로시스에게 선전포고를 한 날부터 마차가 아닌 자신의 발을 이용했다. 그건 일종의 자신을 미끼로 내모는 것이었다. 혼자 움직이고 있으니 덤벼오라는 미끼.
미끼가 너무 노골적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 네크로시스의 습격은 없었다. 미행을 하는 기척도 없었고. 굳이 아카데미에서 암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아 우크사이어 저택을 습격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테드는 저택에서도 모종의 준비를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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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