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01화 (10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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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크로시스

계단을 밟고 오른 뒤 3층의 복도로 나왔다. 몰크는 익숙한 듯 거침없이 발걸음을 내밀며 복도를 걸었다. 테드는 아기 오리처럼 그의 뒤만 종종 따라 걸었다. 몰크가 멈춘 것은 회의실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는 문의 앞이었다.

몰크가 두어 번 노크를 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몰크가 문을 열자 창문을 통해 밝은 햇빛이 들어와 넓은 내부를 밝히고 있는 회의실이 나왔다. 회의실의 중앙에는 원탁이 하나 있으며 의자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원탁의 중심에 한 명이 유일하게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몰크 씨. 1년 만인가요. 별일은 없으셨는지.”

비대한 몸을 가진 사내가 말했다. 검은색의 옷을 걸치고 있는 그는 머리숱이 별로 없었다. 깃이 빠진 빗자루같은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나이는 대략 3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땀으로 반들반들한 이마를 오른손에 쥔 손수건으로 습관적으로 닦아냈다.

두툼한 눈꺼풀 밑에 있는 푸른색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동그란 머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가르틴 회주, 오랜만이오. 나야 작년과 같소. 당신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으면 하오. 우린 시간이 별로 없소.”

몰크가 말하자 가르틴이 옆에 있는 테드를 발견했다. 가르틴은 습관적으로 미소 지으며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우선 앉으시지요. 그렇게 오래걸리진 않을 겁니다. 원래는 일어서서 인사하고 싶었습니다만, 몸이 이렇다보니 일어나는 것도 힘들더군요.”

가르틴이 한 손으로 자신의 다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대한 몸과 원탁에 가려져 있었기에 테드는 뒤늦게 그의 상태를 파악했다. 허벅지 아래가 없었다. 반바지가 헐렁하게 축 늘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그가 앉고 있는 의자도 바퀴가 달린 휠체어임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하오.”

몰크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바로 옆에 테드가 앉았다.

“옆에 계신 분은 A등급 모험가인 테드 크루시안 씨이시지요? ‘포 트리’의 네 명의 회주 중 한 명인 가르틴이라 합니다.”

그가 친근하게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테드를 보자마자 정체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정보가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테드 또한 포 트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들어봤다. 펠리스 왕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상회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포 트리’는 이름 그대로 네 개의 상단이 모여서 만든 상회다. 상단의 대표자인 4명의 상단주가 포 트리의 회주들이다. 그들은 협력 체계를 구축하며 상행을 했다.

“테드 크루시안입니다. 지금은 아카데미에서 교사 일을 하고 있죠.”

“혹시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여기로 오십시오. 이 명함을 직원에게 보여드리면 곧바로 저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테드 씨에겐 특별히 싼 가격에 팔겠습니다.”

“그거 참 반가운 소리네요.”

그가 한손으로 손바닥만 한 종이의 모퉁이를 쥐고서 길게 뻗었다. 테드 또한 팔을 길게 뻗어야 했다. 원탁이라 어쩔 수 없었다. 겨우 명함을 손에 넣은 테드가 종이를 바라봤다. 그의 이름과 상회의 이름 등등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가르틴은 원탁의 아래로 손을 넣었다. 테이블 바로 밑에 서랍부분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내든다. 총 2개. 그 중 한 개를 자신의 앞에 두고 다른 한 개를 몰크에게 건넸다. 종이 뭉치를 받아든 몰크는 빠르게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물건과 가격에 대한 것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몰크는 꼼꼼하게 서류를 훑어보았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종이 뭉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에 테드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를 제외하면 회의실은 어떤 소리도 없이 조용했으며, 회의실에 달린 마법 장치로 인해 딱 좋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품이 저절로 나왔다.

몰크와 가르틴, 둘 모두 테드에 관해선 신경쓰지 않았다.

“작년 보다 적게 주문했는데 비용은 더 나왔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움직이면서 물가가 미세하게 올라갔습니다. 물건을 개인 수량으로 보면 깨닫지도 못할 만큼 미세하지만, 대량으로 묶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요.”

가르틴이 말하는 것은 현재 펠리스의 국왕이 하고 있는 숙청을 말하는 것이다. 숙청 치고는 지나치게 평화롭고, 그것마저도 올 여름에 끝날 거라는 소리가 나돌았다. 무지한 평민들 중에선 숙청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작년에 쓰다 남은 것이 있으니 목자재를 이 정도로 많이는 필요 없소. 반 정도로 줄였으면 하오.”

“그렇군요. 조정하겠습니다.”

가르틴이 재빠르게 자신의 앞에 있는 서류를 들어 올렸다. 익숙하게 목자재에 관해 적혀 있는 서류를 찾아 펜을 들고 무언가를 적는다.

“그러고 보니 이번 코스모스 축제에 라이거 전하께서 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지요?”

“……역시 회주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소.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듣는 것이오?”

“제가 비록 다리는 없지만 귀를 무지하게 밝습니다.”

그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몰크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고, 테드는 몰크를 보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코스모스 축제에 국왕이 온다는 소식은 지금 여기서 처음 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학원장이 축제 때 전투 마법과 학생들과 할 무언가를 준비하라고 말했었다. 대충할 생각이었지만, 국왕이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왕에게 트집을 잡히면 고달파질 것이 뻔하기에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몰크와 가르틴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서류를 정리하며 가르틴이 테드를 향해 말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우크사이어에 대한 소문이 다시금 떠오르고 있더군요.”

“……소문이요?”

테드가 그를 보며 반문했다. 자신이 우크사이어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을 알고서 말한 것이리라.

“귀족계에 나도는 소문입니다. 귀족계는 상계와 밀접해있기 때문에 제 귀에 까지 들려오더군요. 몰락하던 우크사이어는 이미 끝났다는 뭐든… 그다지 좋은 소문은 아니었습니다. 귀족계에 나온 소문은 대게 여론 조작 때문이니 상인인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만…. 어쩌면 테드 님에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정보겠지요.”

테드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꼿꼿이 폈다.

“혹시 그 소문의 출처를 알 수 있을 까요?”

“하이리스 백작가문입니다. 우크사이어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죠. 그런데 이번에 조금 심하더군요.”

테드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리스가 하고 있는 짓은 일종의 모독이였다. 결투 신청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분명 우크사이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거침없이 말했을 것이다.

아이리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간단히 넘어갈게 분명했다. 하이리스와 마찰이 생기면 피해 받는 건 우크사이어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우크사이어의 식객에 불과한 테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별거 아닌 일입니다.”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몰크가 서류를 로브 안으로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했소. 가르틴 회주. 청구서는 코스모스 아카데미로 보내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몰크 씨. 내년에 또 찾아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별일이 없다면 또 오겠소.”

테드는 나가기 전 가르틴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가르틴은 처음 봤을 때처럼 웃는 얼굴로 앉아서 그들을 마중했다.

테드는 몰크를 따라 수도의 이곳저곳을 따라다녀야 했다. 수도의 유명한 대장간은 물론이

고 마도구를 파는 전문 상점과 의류 가게까지. 테드는 축제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주문은 이미 완료 되어 있었고 몰크가 하는 것은 세부적인 확인 작업이었다.

“원래 축제 준비란 게 이렇게 힘들었어요?”

몰크가 저녁이 되어가면서 슬그머니 기지개를 켜는 유흥가 쪽으로 움직이며 테드의 질문에 대답했다.

“코스모스 축제는 아카데미에서 개최하지만 베이론의 명물이 되어 있지. 축제 시기엔 전 대륙에서 여행객이 몰려 올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만족을 위해야 한다. 아카데미의 위신이 걸려 있는 일이다.”

“이번에는 국왕 전하 께서 직접 행차하시고 말이죠.”

몰크가 걸음을 멈추고 테드를 바라봤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경고하듯 말한다.

“미리 말해두는데. 국왕 전하에 관한 것은 기밀이다. 괜히 떠벌리고 다니지 말도록.”

“학생들이 알면 열성적으로 축제를 준비할 것 같은데요?”

“너무 열성적이라서 문제지.”

무언가 싫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것인지 그가 혀를 차며 걸음을 옮겼다. 테드가 무언가 눈치 챈 듯 그를 쫓아가며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왜 그렇게 예민해요?”

“네가 알 일은 아니다.”

“저도 아카데미의 교사에요. 알권리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

끈질기게 달라붙는 테드가 귀찮은 것인지 그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그건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 숨겨야 하는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아카데미에서 조금만 조사해도 나오는 사건이었다.

“7년 전에도 국왕 전하께서 축제에 오신 적이 있다. 그때는 오시기 몇 달 전부터 소문이 퍼졌지. 학생들은 미친 듯이 축제를 준비했고, 사고가 터졌다.”

“사고요?”

“지나친 의욕으로 휴식을 취해야 할 기숙사에서까지 축제에 사용할 마도구를 가지고 들어와 개조한 것이다. 그 결과, 기숙사가 폭발했다. 다행히도 저녁 식사 시간이라 학생들에게 피해는 없었지만, 기숙사는 통째로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했지.”

뿌득. 몰크가 이를 갈았다. 그 때 기숙사를 담당하고 있던 교사가 바로 몰크였다. 그가 저지른 짓은 아니지만, 기숙사 담당 교사로서 시말서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해명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었다.

“과다한 의욕은 독이다. 차라리 알리지 않는 것이 나을 때도 있지. 지금이 그 상황이고.”

“학원장님도 같은 의견이에요?”

“그렇지 않았다면 학생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었겠지.”

“저희 반 학생들을 제외하고 말이죠.”

테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반 학생들이 날뛰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엘리제를 빼고서 말이다. 그리고 설령 날뛴다고 해도 테드가 그냥 날뛰게 둘 생각은 없었다. 날뛰는 순간 물은 삼도천으로 변할 것이고, 학생들은 고통에 날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죠? 수도에 마법이 걸려 있는 거리가 있다는 말은 처음든는 데요.”

인적이 아예 사라진 거리를 보며 테드가 말했다. 몰크와 테드가 있는 곳은 수도의 최외곽에 존재하는 유흥가다. 그리고 유흥가 중에서도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햇빛은 물론이고 달빛마저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거리다. 이 거리에 마법이 걸려 있다. 주로 사람들을 물리는 마법이다. 어쩌다 사람이 들어와도 괜한 불길함을 느끼게 만들어 피하게 만드는 마법.

“눈치 챘나. 감이 좋군.”

“이래 보여도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전투 마법 교사에요. 이 정도는 당연히 눈치 채야

죠.”

“그 당연한 걸 눈치 채지 못하는 교사는 생각보다 많지.”

테드는 몰크의 등을 바라보며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마법이 걸린 거리에 들어선 순간부터 자신을 여기로 이끈 그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를 신뢰하기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거기에 그와 이렇게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에 있었던 일은 어떠한 것도 비밀이다. 그 작은 입에서 여기에 관한 것이 새어나가는 순간… 왕국의 집행자와 술래잡기를 하게 될 거다. 알겠나?”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했다.

“제 입은 태산보다 무겁죠. 그러니 말 해봐요. 여기에 뭐가 있죠?”

“……‘제 3의 손’. 그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테드는 의외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정확하게는 ‘국왕의 보이지 않는 세 번 째 손’이라 불린다. 국왕의 은밀한 조직이다.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이는 귀족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12 집행관 정도면 알고 있을 것이다.

주로 하는 일은 정보 수집이다. 펠리스 왕국은 물론이고 타국에 대한 정보까지 두루 수집하는 집단이다. 참고로 이곳에 속한 사람들을 요원이라고 부른다.

“제 3의 손? 뭐죠 그게.”

테드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테드가 그 조직을 알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이상하기 때문이었다.

“국왕 전하의 비밀 기관이다. 주로 정보를 다루지. 집행관 중에서도 몇몇 분들만 사용할 수 있지. 학원장인 디커드 님이 그 몇몇 분 중 한 명이지.”

“과연. 그 제 3의 손이란 곳에 네크로시스에 대한 걸 묻는 건가요. 그런데 몰크 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요?”

약간 침묵이 흐른 뒤 몰크가 대답했다.

“나는 그곳 출신이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테드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몰크와 테드는 입김만 불어도 쓰러질것만 같은 낡은 집으로 들어갔다. 1층짜리 건물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듯한 주택이었다. 침실로 들어온 몰크는 능숙하게 침대의 아래를 툭툭 건드렸다. 4~5번 정도 각기 다른 장소를 건드리자 침대가 소리 없이 위로 떠올랐다.

침대 아래의 바닥이 자동문처럼 열리며 지하로 향하는 금속 계단이 나타났다. 몰크는 망설임 없이 아래로 내려갔고, 테드는 신기한 듯 허공에 떠있는 침대를 바라보며 그를 뒤따랐다. 몰크와 테드가 내려가자 문이 닫히며 툭하는 침대가 떨어진 소리가 들렸다.

“굳이 절 데리고 올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비밀을 지키는 확실한 방법이잖아요?”

“학원장님은 너의 실력을 탐내고 있다. 그분은 신뢰를 받기 위해선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지.”

“그리고 여긴 제 3의 손의 일부일 뿐이다. 진짜 기관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국왕 전

하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자들도 알고 있겠지요.”

몰크가 찌릿하고 테드를 노려보았다.

테드는 주위를 둘러보는 척 딴청을 피웠다.

============================ 작품 후기 ============================

테드는 12살입니다. 13살 인줄 알았습니다만… 네메스 대륙에선 만으로 나이를 계산합니다.

사이나 덕분에 잘먹고 잘살아서 영양소가 발군인지라 2차 성징이 일어나도 이상할게 없죠.

늦게 올리는 사죄의 뜻으로 현재 테드의 신체 정보, 쓰리 사이즈를 공개합니다. 어차피 제 정보도 아니기 때문에….

157/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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