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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크로시스
마릭은 우크사이어 저택의 3층 복도 끝에 위치한 방에 갇혀 있었다. 원래 지하에 있었지만, 병사들의 수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방은 전전대 가주, 아이리스의 조부가 취미 생활을 위해 만든 방이었다. 마릭이 이해하지 못하는 골동품이 방 구석구석, 심지어 천장에 매달려서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것 중에는 날개 달린 배 모양의 비공정이 있었다. 드워프의 나라, 튜논에서 만들어지는 비공정의 모형이었다. 마릭은 와이어 만을 의지해 허공에 떠있는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검은 사슬에 몸이 꽁꽁 묶인 상태인 마릭이 할 수 있는 것은 전시되어 있는 골동품을 보는 것 밖에 없었다.
“마법인건 확실한데… 너무 고등적인 마법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마릭이 중얼거렸다. 이 방에 갇힌 지는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감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몸소 깨달았다. 혼잣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혼잣말이 제법 큰 위안이 되었다. 마릭은 자신의 입을 막아놓지 않은 아이리스에게 감사했다. 노래를 부르며 조금이나마 무료함을 보낼 수 있었다.
마릭이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오른쪽으로 3M정도 떨어진 바닥에 작은 검은색 마법진을 통해 검은 쇠사슬이 뻗어 나오고 있다. 마석을 갈아 만든 가루를 이용해 마법진을 반영구적으로 유지시킨다. 시간마다 마석의 가루를 마법진에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마법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법사인 마릭이지만 이 마법진에 대해선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마법진을 유지하는 방식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사슬이 내 생명줄인 동시에 족쇄지. 아이러니한 일이야.”
테드는 친절하게도 마릭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마력을 억제하는 사슬이 없다면 몸속에 새겨진 네크로시스의 마법이 발동해 몸이 그대로 폭발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해준 것이다. 마릭은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행여 사슬이 끊어질까. 조금의 움직임도 조심했다. 마법진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마릭은 처음 네크로시스에 스카웃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어린 그는 막대한 돈을 준다는 솔깃한 제안에 스카웃에 행했다. 그리고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검은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이 예의 배신하면 육체를 폭발시키는 마법을 새겼다. 그 노인은 마법을 새기고 그냥 떠났고 마릭은 주로 정보 수집의 일을 맡았다. 그리고 얼마 뒤 우크사이어의 집사로 취직했다. 조직의 지시였다.
자신은 이제 어떻게 될까.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방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롱스커트가 아닌 숏스커트를 입은 두 명의 메이드였다. 한 명은 붉은 머리고, 다른 한 명은 깔끔한 은발이다. 붉은 머리의 메이드의 양손에는 음식이 놓인 쟁반이 있었다. 마릭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인크론 님은 오지 않았네?”
마릭이 레미를 보며 말했다. 평소에는 인크론과 레미 두 명이 들어온다. 원래는 인크론으로 충분한데 레미가 아이리스에게 부탁해서 마릭의 방을 전담하게 되었다. 주로 하는 일은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방을 청소하는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항상 인크론과 함께 왔는데 오늘은 사이나가 대신했다. 사이나는 무감정한 눈으로 마릭을 바라 봤다. 그녀는 마릭의 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서 레미의 뒤를 시선으로 쫓았다.
“인크론 님은 용무로 인해 오지 못하셨어. 사이나 언니가 대신해주고 있어.”
마릭의 앞에 내려다 쟁반을 내려다 놓은 그녀가 빵을 손에 쥐었다. 마릭은 사슬로 인해 양팔을 사용할 수 없기에 그녀의 시중을 받아야 했다. 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하체와 입뿐이었다.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사슬이 허락하는 3M 남짓한 공간뿐이었지만.
“이번에 내가 한 번 만들어본 빵이야. 맛있지?”
“달고 부드러운 빵이야. 맛있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붙잡힌 첩자 치고는 대우가 상당히 좋았다. 아이리스가 원하는 대로 네크로시스에 대한 정보를 떠벌렸기 때문이다. 고분고분한 포로에게 고문을 할 필요는 없었고, 탈출 의지가 없는 그를 굳이 인력을 낭비하며 감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모종의 방비는 확실하게 해두었다. 문과 창문에 마법적 조치가 되어있어 마릭이 나서는 순간 경보가 요란하게 저택을 내달릴 것이다.
“마릭. 가주님이 조금의 정보도 숨기지 않고 말하면 살려주신대.”
레미가 말했다.
“알고 있어. 그렇게 하고 있고.”
마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는 내용으로 직접 아이리스에게서 들었다. 밤, 저녁 식사 후에 마릭을 찾아오는 그녀는 마릭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대부분이 비슷한 질문 혹은 똑같은 질문의 반복이었다. 마릭은 성실하게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 방에 갇혀 있다 보니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다. 물론 가장 즐거운 시간은 레미가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시간이다.
마릭은 빈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 레미를 바라봤다. 그녀는 지금 현재의 마릭의 상황에서도 그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자신이 쇠사슬에 묶인 채 감금당하는 것만 봐도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경멸과 욕설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아마 다른 사용인들은 자신의 욕을 해대지 않을까.
“레미. 넌 내가 싫지 않은 거야?”
레미가 고개를 들고 마릭을 바라봤다. 그녀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곳에서 날 가장 많이 도와준 건 마릭이야. 사용인 중에서 가장 친한 것도 마릭이고.
그리고 난 마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 마릭은 절대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
레미의 눈에서 신뢰의 빛이 흘렸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마릭이 고개를 돌렸다.
레미가 양팔을 뻗어 마릭의 어깨를 잡았다. 사용인으로서 단련되어 있기 때문일까. 상당히 아팠다. 마릭이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렇지?”
압박감이 느껴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만족한 듯 레미가 어깨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용하지 않는 방이라지만 평소에도 청소를 하고 어제 인크론과 둘이서 한 번 깔끔하게 청소를 한 탓인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레미는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먼지라도 있다는 듯이 한쪽을 노려보듯 살폈다.
사이나는 불평 없이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레미와 사이나가 나가기 직전 레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릭은 굳게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길 몇 분. 마릭이 생각에 잠겼다.
마릭은 방금 전까지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살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운에 맡겼다. 그러나 레미를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의욕이 솟았다.
“생각해…. 결정 적인 정보가 어딘가 있을 거야. 분명.”
그 정보를 듣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면,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다시 집사로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거기에 자신은 마법사다. 희귀한 마법사. 최대한 능력을 어필한다면 인력이 부족한 우크사이어는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붙잡을 것이다.
마릭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재생되었다. 처음 네크로시스와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는다. 자신이 잊어 먹은 것 중에서 결정적인 것이 있을지 모르니까.
⁂ ⁂ ⁂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학생 주임인 몰크 트리센과 전투 마법 교사인 테드 크루시안은 워프 게이트를 통해 펠리스 왕국의 수도, 펠론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보았다면 경악하다 못해 비명을 내지를 조합이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악명이 자자한 ‘철의 학주’와 ‘악마 교사’가 붙어 다니고 있으니까.
테드가 파악하기론 몰크 라는 남자는 원칙에 충실한 인물이다. 아카데미의 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고지식하다는 것이다.
그런 몰크와 함께 왕국의 수도인 펠론에 오게 된 것은 네크로시스와 관련되어서다. 학원장인 디커드는 몰크에게 네크로시스에 대한 것을 말했다. 테드와 조금의 상의도 없이 말이다. 디커드가 몰크를 굉장히 신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몰크와 테드는 아카데미의 일 때문에 온 것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에 개최되는 코스모스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라는 명목이었다. 실제로는 수도에 있는 한 정보처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테드는 아쉽게도 이에 대한 것을 자세히 듣지 못했다. 디커드는 몰크만 따라가면 된다고 말했다.
테드가 굳이 몰크를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몰크 혼자서 갔다 오면 될 일이었다. 테드가 그를 따라 움직인 것은 순전히 수도인 펠론에 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펠론은 활기가 넘쳤다. 현재 테드가 머물고 있는 도시인 베이론보다 훨씬 더 인구수가 많고 복잡했다. 그러나 종종 기억 속에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 왔다. 도시의 기본 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점심부터 먹고 하지 않을래요?”
검은색 로브를 쓰며 모습을 가린 채로 앞장서서 걷고 있는 몰크에게 말했다. 몰크는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항상 로브를 쓰고 있었다. 테드가 생각하기에 그는 마법사로서 로브를 쓰는 것 같았다. 마법사니까 로브를 써야 한다. 등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신념같은게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도시 내에서 검은색 로브를 너무 눈에 띄였다. 모험가나 여행가도 도시 내에선 검은색 로브를 쓰지 않는다.
“아직 점심때가 아니지 않나. 점심은 먼저 일을 어느 정도 끝낸 뒤다.”
몰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인파를 가르며 성큼성큼 걸으면서 말했다.
“뭐, 그러시겠죠. 예상했어요.”
검은색 로브라는 눈에 학 들어오는 특징덕분에 인파에 밀려 거리에서 그를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몰크가 도착한 곳은 한 상회였다. 커다란 건물이다. 크기만 따지면 우크사이어 저택과 맞먹을 정도다. 상회의 이름은 ‘포 트리’로 4개의 나무가 그려져 있는 마크가 떡하니 있었다. 테드는 건물의 앞에서 간판을 유심히 쳐다봤다.
‘차라리 포트리스로 하지. 아니, 포트리스로 하면 상회가 아니라 요새가 되어버리나.’
몰크는 망설임 없이 상회의 안으로 들어갔다. 상회의 안은 생각외로 상당히 조용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직원들과 손님을 제외하면 한산한 편이었다. 몰크는 한 쪽에 있는 안내 테스크로 움직였다.
안내 테스크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보브컷의 시원한 인상의 미녀는 몰크를 향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코스모스 아카데미에 왔소. 예약이 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소만.”
미녀를 앞에 두어도 몰크의 행동방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무뚝뚝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예약이 되어있군요. 3층 회의실에서 알바르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맙소.”
몰크가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저 옆에 엘리베이터 있는데. 저거 타고 가죠?”
테드가 제안했다. 몰크가 눈동자만을 굴러 옆을 확인했다. 마법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위로 올라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하로 내려가기도 하는 엘리베이터다. 주된 목적은 무거운 물건을 손쉽게 옮기기 위해서다.
“타고 오던가.”
“…….”
몰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테드는 엘리베이터를 한 번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뒤를 따라 계단 쪽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이제 100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