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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제니는 암살의 틈을 보고 있었다. 아침에는 테드에게 다가갈 틈이 없었다. 눈치가 보였으며, 주변의 분위기가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있어서 교실 내에서는 암살이 불가능했다.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때, 우연히 복도에서 길을 걷다가 둘만 마주쳤을 때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암살의 가장 적기였다.
아직 아침일 뿐이라고 조급해지려는 자신을 다독였다. 테드가 우크사이어 저택으로 돌아가는 저녁까지 시간은 있었다. 여차하면 돌아가는 와중에 죽이면 되는 일이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을 받으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괜히 조직을 원망한다. 왜 아카데미에서 암살해야 하는 거지? 모두가 잠자는 시간에 저택에 침입해서 쓱삭하고 처리하면 간단한 일이 아닌가. 조직에게 임무를 들을 때는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신이나 미쳐 물어보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자신이 실패할 것이라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아카데미를 여러 곳을 떠돌아 다녔다. 심지어는 전투 마법 준비실까지 찾아갔으나, 테드를 만날 수 없었다. 점심 무렵이 되어서도 담임교사인 테드는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엘리제가 받는 오후 수업 중에 테드의 수업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테드를 죽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연기하며 아카데미 밖으로 도망치면 된다.
제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수업중에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업이 끝난 뒤, 쉬는 시간에 모르는 것이 있다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테드에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매에 숨겨놓은 나이프로 단숨에 목을 끊는다.
독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녀는 암살을 시행할 때 항상 자신의 나이프를 애용했다. 나이프로 사람의 육체를 들어갈 때는 황홀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흔히 말하는 손맛이 다른 것이다.
“엘리제. 오늘 아침에도 그렇고 뭔가 이상하던데. 괜찮아?”
빨간 모자를 쓴 테드의 목을 베어내는 상상을 하며 고기를 씹고 있자니, 갈색 머리의 청년, 브라고가 식판을 들고 그녀의 앞에 앉았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를 보며 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어젯밤에 약간 무리해서 그런 거야. 문제없어.”
담담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브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식 날에 ‘번호 끝’이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 혼나 적이 있다. 그 후로는 꼬박꼬박 번호 끝을 붙여 말하던 그녀였는데 오늘은 입학실 날 같았다.
다음 수업이 테드가 어려워하는 몰크가 맡은 마도학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말로 D반 학생들 전원 아침부터 입에서 단내를 내뿜었을 것이다.
“아, 오후의 전투 마법 수업은 인공 던전으로 바뀌었어.”
“……테드 선생을 만난거야?”
설마하는 감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 응. 방금 전 복도에서 마주쳤어.”
“…….”
자신이 그렇게 찾아다녔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이런 가까운 곳에 있었나. 지금 복도 쪽으로 나가면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만난다고 해서 당장 암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아니.”
대답과 동시에 제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직의 정보대로라면 엘리제는 친구가 없다. 그 특유의 오만한 성격 때문이다. 귀족 출신의 자부심이 평민 출신이 대부분인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 또한 밥맛이 없었다.
“먼저 가볼게.”
냉기가 눈에 보일정도로 쌀쌀맞게 행동하는 그녀를 보며 브라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의 그녀였다.
브라고는 테드가 전하라는 내용을 전했기에 점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부디 그녀가 인공 던전에서는 제대로 해주기를 바라며.
⁂ ⁂ ⁂
지하 인공 던전의 입구에는 16명의 학생들이 차렷 자세를 취하며 4열 종대를 하고 있었다. 제니는 맨 뒤쪽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테드를 바라보았다. 붉은 모자 아래에 있는 검은 눈동자가 천장에 박힌 마광등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주위에 긴장감이 느껴지는 침묵이 흐른다.
테드의 옆에는 동굴같은 뻥뚫린 벽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인공 던전의 입구다. 입구를 통해 보이는 던전의 안은 굉장히 어두웠다. 인공 던전 천장에는 희미한 빛을 내는 마광등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테드였다. 그의 입에서 어린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말이 나온다.
“4인 1조로 던전 실습을 시작합니다. 몇 번 교육했으니 여러분들만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좋지 않거나, 인공 던전에 들어가선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말하십시오.”
“…….”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앞의 붉은 모자 교사 때문인지, 아니면 인공 던전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학생들의 얼굴과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이번에는 실제 시험 같은 실습을 하려고 합니다. 본교사가 뒤에서 감시할 것입니다. 감점요인과 상점요인을 파악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방해는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테드의 말이 공간에 울린다. 그 뒤를 따르는 대답은 없었다.
테드는 조용히 그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학생들은 테드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힐 때마
다 조금의 지적도 받기 싫다는 듯이 몸을 바짝 경직 시켰다.
“감점을 가장 많이 받은 조는 따로 남아서 교육해드리겠습니다. 감점을 받지 않았어도 제 교육을 받고 싶으시면 여기에 남으시면 됩니다.”
제니는 자신의 앞에 있는 학생이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테드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파악한 제니는 그를 이해했다. 저 지랄 맞은 성격이라면 필시 제대로 된 교육은 아닐 것이다. 분명 남는 조는 지옥의 일부를 맛볼 것이다.
“그럼 1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던전으로 들어가시지요.”
맨 앞줄에 있는 4명이 뻣뻣한 움직임으로 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종의 진을 짠다. 전위에 재빠를 것 같은 날렵한 몸을 가진 사내가 1명 서고, 중위에 2명. 후위에 1명인 식이다.
마름모 형태의 진형을 보며 제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4인 파티가 주로 취하는 진형 중 하나다. 전위가 레인저, 함정 같은 것을 탐색하는 자들이다. 몸이 민첩하고 탐색능력이 뛰어난 그들은 몬스터를 먼저 발견하고 파티에 알리는 역할이다. 중위는 검사와 전사같은 근접전에 뛰어난 자들. 레인저가 몬스터를 발견하면 레인저와 위치를 바꿔 전위가 되어 몬스터를 상대한다. 후위가 마법사같은 강력한 원거리 공격이 강력하거나 성법사같은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이다.
제니는 감탄하는 한편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스 아카데미는 마법 아카데미다. 마법사들을 육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당연히 학생들은 레인저나 전사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 마법 중에선 탐색 마법이 있다곤 들었으나, 학생들이 탐색 마법을 쓸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곧 1조 4명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테드가 남은 학생들을 바라봤다.
“여기서 이탈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그 말을 남기고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제니는 슬쩍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테드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고 한 참 뒤에서야 학생들이 자세를 풀기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나 테드를 어려워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조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을 짜듯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엘리제. 일단 모여서 회의라도 하자.”
제니를 부른 것은 같은 반인 청년, 브라고였다. 그는 엘리제와 같은 조였다. 제니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인공 던전에 대해서는 정보로 알고 있다. 인공 던전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테드가 직접 설정했다면 필시 던전 또한 정상적이지 않을 것이다.
“회의를 할 필요 있나? 평소대로 하면 되지. 평소대로.”
같은 조의 일원인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말했다. 젊은 주제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버릇인 듯 콧수염을 매만지면서 말한다.
제니는 그의 콧수염을 모두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평소대로? 좋지. 그런데 평소의 엘리제가 인공 던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조직 놈들은 인공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만 해놓았지, 테드가 설정 해놓은 몬스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폐쇄적인 성향 탓에 정보를 제대로 모으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원망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필요 없는 정보까지 물어다 주더니, 이번에는 왜 이런데.
“그, 그래도 일단 감점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연습해두는 게 좋은 것 같은데요…….”
작고 자신감 없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십대 중후반의 소녀가 말했다. 갈색 보브컷의 소녀였다. 젖살도 빠지지 않은 소녀는 긴장한 듯 자신의 양손을 꽉 잡고 있었다.
“연습? 연습으로 힘을 전부 빼놓으면 정작 실전 때 힘을 전우 발휘하지 못해! 지금은 최대한 힘을 아낄 때다.”
콧수염이 공격적으로 말하자 소녀가 몸을 움츠려 들었다. 제니의 눈썹이 한 차례 움찔 거린다. 저 콧수염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듀, 크리스. 진정해. 난 둘 모두의 의견도 일리가 생각하니까.”
브라고가 끼어들 듯 메듀와 크리스의 사이에 불쑥 들어가서 말했다.
메듀는 불만스럽게 혀를 차면서도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뒤로 살짝 물러났다.
태도와 달리 순수하게 물러난다. 반면 크리스는 눈에 띄게 안심하는 느낌이었다. 움츠려 들었던 몸이 조금 퍼졌다.
“평소대로 하면서도 적당히 연습도 하는 거야. 긴장한 채로 움직이면 실수도 할 수 있으니까. 긴장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과도한 긴장은 좋지 않지.”
“그, 그래요! 긴장은 좋지 않아요! 브라고 오빠의 의견이 좋겠어요.”
“…….”
제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둘을 바라봤다. 의견을 제시할 때는 언제고 브라고가 끼어들자마자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졸졸 따르는 것인지.
“엘리제는 어떻게 생각해?”
브라고가 제니를 향해 물었다.
제니는 잠시 말을 골랐다. 그들의 성향을 보자면 크리스라는 소녀는 후위일게 틀림없다. 저 소심한 성격에 전위에 나가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메듀, 콧수염은 중위다. 세심함이 없어 보였기에 레인저 역은 무리일 것 같았다. 헷갈리는 것은 브라고다. 전위 혹은 중위. 둘 중 하나다.
다르게 엘리제의 성격으로 보자면… 전위다. 그녀가 조직에서 받은 정보를 분석한 결과 엘리제는 나서는 경향이 있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레인저의 일이다. 제크테리안은 모험가 출신의 귀족이다. 레인저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느 던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웠을 가능성이 있었다.
“네 뜻대로 하지 그래?”
메듀와 크리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브라고는 쓴웃음을 짓더니 자신들의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서 테드에게 받은 교육을 떠올리며 입을 연다.
전문 모험가가 아닌 그들은 던전에 걸맞은 작전을 짜는 법은 모른다. 그렇기에 테드의 교육을 떠올리면서 받은 교육을 하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제니는 그 과정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전문 모험가들의 대화라고 믿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흘러갔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제법 괜찮은 작전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생각은 않고 몸으로 싸울 생각을 하는 거
야….’
급소를 노려야 해요! 하면서 생기발랄하게 말하는 소녀는 어딘가 이상했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청년들도 이상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마법을 연습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전부 자세를 잡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하고 있다. 그중에는 초급 마법중 하나인 에너지 블레이드(Energy Blade)를 검처럼 휘두르는 학생도 있다.
제니는 전투 마법이라기에 파이어 볼이나 아이스 스피어같은 공격마법을 배우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은 지금 여기서 산산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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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