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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아이리스가 고개를 획획 움직이며 연무장에 나타난 두 명의 테드와 벽한 쪽에 앉아 있는 테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 순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명의 테드가 환상임을 알았다. 두 명의 몸이 살짝 투명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특별한 마법이리라.
가상 수련(Image training)은 일종의 환상마법이다. 이름 그대로 가상의 자신을 만들어내 수련을 하는 것이다. 보통 기술의 연습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마법인데, 테드는 스승에게서 배우고 몇 번 사용하지 않은 마법이다.
전쟁터에 나가서 직접 몸으로 싸우는 테드였다.
그런 그가 신체능력을 조금도 올려주지 않는 가상 수련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거기에 가상 수련은 자기 자신밖에 나타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비전 마법이지만, 그 한계가 명확했기에 딱히 애착은 가지 않았다. 돈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팔아버릴 비전 마법이 이것이었다.
아이리스는 서로 마주보며 전투 자세를 잡는 환상의 테드 2명을 보며 조용히 침을 삼켰다. 처음 보는 수련방식이었는데 굉장히 참신했다.
성공적으로 마법이 발동한 것을 보며 앉아 있는 테드가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부터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마법은 그대로 풀려 버릴 것이다. 마법 발동 내내 계속해서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마법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효율성이 영 좋지 않았다.
두 명의 테드는 서로 같은 얼굴, 무기, 옷을 입고 있기에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돌
연 한 쪽의 옷이 파란색으로 변하고, 다른 한쪽은 빨강색으로 변한다. 레드와 블루로 구분은 가능하게 되었다.
따로 시작 신호가 울리지 않았음에도 두 명의 테드는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명의 테드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두 개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히지만, 아이리스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 모습은 환상에 불과했다.
“…….”
아이리스는 중심에서 벌어지는 검투에 눈에 뗄 수 없었다. 마나는 떨리지 않고, 타격음도 없다. 눈으로만 볼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레드와 블루, 2명의 테드가 펼치는 검투는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어도, 약간의 실수만 해도 그대로 전투가 끝날 것 같이 아슬아슬하며 빠르다.
기사들처럼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는 대결 같은 미지근한 것이 아니었다. 주먹과 발은 물론이고 이마까지 활용해 상대를 죽이려 하고 있다. 노리는 것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급소뿐이다.
레드의 검이 아래에서 휘둘러진다. 블루의 검이 옆에서 휘둘러진다. 각각 다른 곳에서 출발한 검은 중간에서 만나 서로를 밀어낸다. 꼭 따로 맞춘 것 같은 절묘함이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저 둘은 같은 인물이니까. 공격 속도, 반응 속도, 힘의 세기, 기술의 종류 등등 그 전부가 같다. 쉽사리 결판이 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돌연 붉은 옷을 입은 테드, 레드가 블루의 검을 밀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허공에 마법진을 그린다. 붉은색의 마법진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파이어 볼.”
익숙한 마법진을 보며 아이리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이 커진다. 붉은색의 마법진 뒤에 새하얀 작은 마법진이 하나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이기에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마법의 종류는… 웨폰 워프다.
마법이 발동한다. 붉은색의 마법진 속에서 화염구가 나타났다가 모습을 감춘다. 아이리스가 화염구를 찾기 위해 블루 쪽을 바라봤다. 블루의 바로 등 뒤에 화염구가 나타났다.
화염구가 소리 없이 폭발한다.
아이리스는 똑똑히 보았다. 블루가 손에 쥐고 있던 검이 사라지더니 곧바로 등 뒤에 나타나 화염구를 막아내는 것을.
블루가 레드를 향해 내달렸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화염구와 부딪혔던 검이 손에 쥐여져 있었다.
달리는 와중, 블루의 몸이 두 개로 나뉜다. 비전 마법서에 적혀 있는 마법 중 하나, 분신마법이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환상이 아닌 실체를 가진 분신을 만들어 내는 우크사이어 비전 마법이다.
레드는 어떻게 대처할까. 아이리스가 기대감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레드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에 맞추어 레드가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레드의 몸에 잔상이 생긴다.
‘……《트리플 헤이스트(Triple Haste)》.’
비전서에 적힌 마법을 테드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아이리스가 단숨에 레드가 사용한 마법을 파악했다. 테드의 설명으로는 순간 속도를 최대한으로 높인다고 했다. 잔상이 생길 정도의 속도일 줄은 몰랐다.
뒤쫓던 2명의 블루가 트리플 헤이스트를 사용한다. 3명의 테드는 서로 쫓고 쫓기며 연무장 내부를 종회무진 누린다.
발정난 망아지마냥 돌아다니던 레드가 아이리스를 향해 돌진했다. 깜짝 놀란 아이리스가 몸을 옆으로 움직여 반응하기도 전에 레드의 몸이 그대로 아이리스를 뚫고 통과했다. 아이리스는 뒤늦게 그들이 환상임을 깨닫고 식은땀을 닦았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셈일까. 약간의 어이없음을 느끼며 블루 쪽을 쳐다봤다. 2명의 블루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바닥에서 뻗어 나온 보라색 빛의 줄이 그들의 몸을 묶은 것이다. 수십 개나 되는 줄에 묶인 블루 2명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명 중 한 명이 사라진다. 분신의 시간이 다된 것이다.
엎어져 있는 블루의 위에 검이 나타난다. 검극이 아래로 향해져 있는 검은 망설임 없이 블루의 심장을 노리고 떨어졌다. 떨어지는 그 검을 새로이 허공에 나타난 검이 막아낸다. 허공의 나타난 검은 스스로 움직이더니 검을 쳐내고 블루의 몸을 묶고 있는 보라색 빛의 줄을 끊어 낸다.
아이리스가 입을 벌리며 경악을 내질렀다.
“…《검의 의지(Will of the Sword)》!!”
비전 마법서 중에서 테드가 가장 흥미를 보인 비전 마법이다. 그는 비전 마법서에 적힌 마법중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마검사인 아리스는 이기어검이라는 경지를 알고 있다. 말로만 들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략 듣기로는 손이 아닌 마음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검의 의지》는 일시적으로 검에게 의지와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에고 소드(Ego Sword)로 만드는 것이다.
마법사의 의지를 알아서 받아 들어 싸우는 것이다. 마법사가 굳이 명령할 필요도 없다. 검이 마법사의 뜻을 알아채고 알아서 해줄 테니까. 간단히 말해 자율 시스템을 검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이후에 위기에서 벗어난 블루가 레드에게 반격하기 시작한다. 레드 또한 《검의 의지》를 발동해 맞선다.
마법과 검이 어지러울 정도로 난무했다. 솔직히 아이리스는 보는 것 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처음은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전투의 열기가 달아 오를 만큼 달아 오른 중간 부분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검이 허공 여기저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기를 반복하고, 화염구가 폭발하고, 얼음의 창이 산산조각난다.
전투의 결과는 마법을 유지하던 테드가 집중력을 잃는 순간 끝났다.
레드와 블루, 누가 이겼는지 모를 결과는 아쉬움을 불려왔다. 그러나 기진맥진한 테드를 보면 뭐라고 할 수도 없다.
“……대충 이정도인데. 실제로 그렇게 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바닥에 엎어진 채로 테드가 말했다. 가상 수련의 단점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과 가상은 엄연히 다르다. 가상에서는 무리 없이 마법을 성공시켰지만, 현실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로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대단해요. 마검사가 그런 식으로 싸울 수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아이리스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네메스 대륙에서 마검사는 주로 인첸트 마법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검에 속성 마법을 인첸트 시켜 싸우는 방식이라고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었다.
“마검사는 검술과 마법을 사용하는 일종의 근접 전투 마법사죠. 전 마검사는 아니지만, 근접 전투가 전문이거든요. 아, 어떻게 보면 저도 마검사네요.”
마검사나, 마투사나 포괄적으로 보면 근접 전투 마법사다.
“아, 그런데 옛날에 고양이 같은 거 길렀어요?”
뜬금없이 테드가 물었다.
아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고양이가 있었다면, 저택에서 쥐가 나오지 않았겠죠.”
인크론에게 보고 받은 것을 떠올리며 그녀가 농담하듯 말했다.
“……길고양이가 저택에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아이리스가 고개를 저으며 테드의 말을 단칼에 부정했다.
“주변에 귀족 저택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어요. 고양이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고 보니 눈매가 날카로운 사이나는 고양이를 닮은 것 같다. 아니, 그 충성심을 생각하면 개인가.
“……개보다는 좋아할지도.”
잠시 생각하던 테드가 애매하게 말했다.
⁂ ⁂ ⁂
“일이 조금 틀어졌어. 큰 문제는 없지만,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아.”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인영이 손에든 작은 거울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울 속에서 중저음의 대답이 들려왔다.
“일은 순조롭게 흘려가고 있다. 그게 지금 처리되었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 상당히 힘을 잃은 모양이군.”
“지금은 상관없지만, 내가 걱정하는 건 나중에 일이 크게 틀어질 수 있다는 거야. 우리 일이 실패할 수 있다고.”
“확실히 1년은 조금 길군. 그는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니 말이다.”
“설마, 나보고 움직이라는 것은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그런 눈에 띄는 짓은 사양이야.”
인영이 진저머릴 치듯 고개를 흔들었다. 작은 거울 속에서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스모스 아카데미라고 했나. 변수는 알아서 처리하겠다.”
“그 코스모스 아카데미야. 너무 얕봤다간 큰코다칠거야.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네 좌우
명 아니었어?”
“현재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전력은 작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다. 그 학원장은 까다롭다만, 학원장이 항상 아카데미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
“……그럼. 난 이 일에서 신경 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로브를 쓴 인영은 잠시 손에든 작은 거울을 바라보더니 혀를 찼다. 인사도 없이 일방적으로 연결을 끊어버리는 태도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상자 안에 거울을 집어넣고 로브에 마력을 흘러 넣었다. 그의 몸이 투명해지듯 사라졌다.
⁂ ⁂ ⁂
코스모스 아카데미에 오자마자 호출을 받은 테드는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원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웃는 낯으로 테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만나서 반갑네. 테드군.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학원장인 ‘디커드 제리고뉴’네.”
하얀색의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른 노인이었다. 특이하게도 오른쪽 얼굴 부위에 날카로운 모양의 붉은 문신이 그러져 있다. 테드는 마법 문신임을 한 눈에 파악했다. 아쉽게도 마법 문신 쪽에는 조예가 없기에 어떤 효과를 지닌 문신인지 알 수 없다.
디커드의 머리는 풍성한 턱과 달리 한 올의 터럭도 찾아볼 수 없었다. 등 뒤의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와 그의 머리를 비춘다. 대머리가 반짝였다. 테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테드 크루시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테드는 회귀 전에 디커드를 만난 적 있었다. 물론 친하지 않았다. 그저 통성명만 한번 한 사이일 뿐이었다. 회귀 전의 테드는 몸에 살기가 배여 있어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 그래. 우린 처음 만나는 것이지. 우크사이어 백작이 자네를 크게 칭찬하더군. 또 여러 곳에서 자네에 대한 정보를 들었네. 루크에이스의 A등급 모험가. 천재 마법사라고 불린다지? 환생자라고 해도 그 나이에 그 정도 업적은 매우 대단하네. 그런데 말일세. 입학식에는 왜 오지 않았나?”
“코스모스 아카데미에서 일한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다 보니 밤을 설쳐서… 그만 늦잠을…. 죄송합니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입학식 이라는 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늦게 온 것이다. 어차피 학생신분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
“그래서 입학식이 한창일 때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해결했나?”
“제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아서… 그래서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아침을 해결했어요.”
“…….”
디커드의 이마에 혈관이 불끈 튀어나왔다. 테드는 못 본 척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테드를 보던 디커드가 포기의 한숨을 내쉬었다. 코스모스 아카데미는 입학식 날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생각 같아서는 여기서 잔소리를 퍼붓고 싶으나, 계속 붙잡아 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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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