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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테드는 저택 2층의 손님용 방을 배정받았다. 원래 귀족을 대접하기 위해 꾸며진 이 방은 넓이는 물론이고 가구 배치까지 완벽했다. 객방이 더럽거나 수준에 미달하면 귀족들의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방의 옆에 있는 개인 욕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가벼운 잠옷을 입은 채 넓은 침대에 앉아 하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쥐가 많다고?”
테드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이나를 향해 되물었다. 그녀는 이 방에 오자마자 마력을 이용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굳이 마력을 이용해 살피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긴 테드
가 묻자, 사이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했었다.
“이방의 천장에도 쥐가 있었습니다. 일단 마력으로 쫓아냈습니다.”
천장을 바라본 테드는 무심코 투시를 사용했다. 천장의 내부가 보였다. 쫓아냈다는 말은 사실인 듯 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저택에도 쥐가 있는 건 의외인데.”
집사장이 떠올랐다. 쥐가 이 저택에 있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집사였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라. 아무리 집사라고 해도 천장이나 벽속에 있는 쥐까지 전부 처리하는 것을 불가능하니까. 그는 사이나와 달리 평범한 인간이다. 아마도 쥐가 있는 것도 모를 가능성이 있다.
“네가 많다고 할 정도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저택과 별채, 정원에 있는 쥐들은 대략 70마리 정도입니다.”
“……엄청 많잖아. 이 저택 괜찮은 거야?”
생각이상으로 많은 숫자에 테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쥐가 많으면 전염병이 생기기 쉽다. 현재 네메스 대륙은 여러 가지로 발전한 덕분에 전염병이 발생해도 금방 진압할 수 있지만, 피해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하에 따로 연무장 같은 곳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근처에 쥐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인크론님에겐 말을 해놓았습니다. 내일 제가 직접 사용인들을 이끌고 이 집의 쥐를 소탕할 것입니다.”
자신감이 가득한 그 말에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나라면 이 저택에 있는 쥐 한 마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테드가 잠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침대를 살피는 와중이었다.
“또 신경 쓰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경 쓰이는 것?”
테드가 사이나를 바라봤다. 사이나의 성격상 신경 쓰인다고 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드물었다.
사이나는 복도에 걸려 있는 사진에 대해서 말했다. 레미에게서 들은 우크사이어에 대한 이야기와 그 가족이 찍혀 있는 사진. 그리고 창문 밑에서 가족을 지켜보고 있는 황갈색의 파충류같은 눈동자.
“고양이 일수도 있겠네. 빛이 많으면 수축해서 세로로 변하니까.”
“그렇군요.”
일리가 있는 테드의 말에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 밑, 그림자 속에 검은 고양이가 숨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이나는 왠지 그 눈이 고양이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테드는 침대 옆에 작은 탁자위에 놓여 있는 막대 사탕 모양의 스탠드 조명을 확인한다.
아래에 있는 스위치를 딸깍하고 키자 동그란 구슬 같은 곳에 불이 들어왔다. 주황빛을 띄는 은은한 조명이었다. 테드는 이 침실등이 마음에 들었다. 제법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은가.
부드러운 이불 속으로 들어간 테드의 얼굴이 한 순간에 굳어졌다. 침대 옆, 사이나가 천천히 옷을 벗고 있었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어째서인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늘도 쉽게 잠들기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두 눈의 시선은 사이나를 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루크에이스의 과실. 그거 아직 복용하지 않았다. 모험가들이 하는 이야기를 몰래 들은 바로는 정기가 가장 충만할 때 먹으면 그 효과가 늘어난다는 말을 들어서 귀하게 모셔두고 있었다.
‘그런데 정기가 가장 충만할 때는 언제지? 몽정할 때인가.’
아직 몽정도 하지 않은 몸이지만, 두 눈 딱 감고 먹어버려?
테드의 내적갈등은 밤이 깊어지도록 계속되었다.
⁂ ⁂ ⁂
아침 식사가 끝난 뒤, 우크사이어의 사용인들이 사용하는 별채에 앞으로 온 사이나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사용인들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어제 인크론은 쥐를 소탕할 사이나에게 사용인을 붙여준다고 했었다. 몇 명인지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자세히 듣지 않았다. 쥐의 수가 많은 만큼 제법 많은 사용인들이 붙여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작 두 명이 전부였다.
아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이나가 진심으로 움직이면 혼자서도 이 저택에 있는 쥐를 충분히 소탕할 수 있다. 다만, 마력을 최대한으로 써야한다. 또 자신의 정보가 누군가에게 들어갈 수도 있다. 이곳이 마계였다면 상관도 하지 문제였으나, 지금은 주인님인 테드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사이나는 정보는 적게 알리면 알릴수록 좋다는 테드의 말을 떠올렸다.
“사이나씨! 이야기는 인크론 님에게 들었어요!”
잔뜩 각오를 굳힌 레미가 사이나에게 물었다. 사이나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썰미로 그녀의 치마길이가 아주 약간, 1.5cm 정도 짧아진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은 잘 부탁 드려요! 사이나씨!”
마릭이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와 같이 깔끔한 차림이다.
사이나는 그들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해주며 지체할 시간은 없다는 듯이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럼…. 곧 바로 별채부터 정리하도록 하죠.”
마릭이 앞장서서 별채 안으로 들어섰다. 저택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의 건물이었다. 마릭을 따라 복도를 걷는 와중 사이나가 천장을 한 차례 노려보았다. 소리 없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쥐의 기척이 느껴졌다.
사용인들의 별채는 별다른 것은 없었다. 건물도 별로 낡지 않았고, 저택과 비교하면 청결상태가 조금 좋지 않은 것이 흠이었다.
“창틀에 먼지가 있군요.”
주위를 둘러보던 사이나가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었다. 레미와 마릭은 어색하게 웃었다. 별채를 관리하는 사용인은 따로 없다. 굳이 꼽자면 별채에서 생활하는 사용인들이 스스로 청소를 하는 것이 전부다. 창틀 같은 곳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청소하기도 조금 귀찮기에 자주 하지 않았다.
레미와 마릭은 인크론을 떠올렸다. 집사장인 그는 저택에서 따로 생활하기 때문에 별채에 오지 않지만, 가끔씩 저택에서 마주치면 사이나처럼 말하기도 했다. 혹시 사이나는 그의 딸이 아닐까. 마릭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며 별채를 소개시켰다.
별채의 1층은 식당이 있다. 사용인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곳이다. 식당의 옆에는 휴게실이다.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2층과 3층은 사용인들이 생활하는 방들이 있다. 여기에 대략 15명 정도의 사용인들이 제각각 개인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레미는 자택 출근이고, 마릭은 2층의 방에서 생활한다.
별채의 지하에는 작은 창고가 있다. 평소의 사용하지 않는 이 창고는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이 모여 있다. 집사장이 낡거나 고장나서 버리라고 했지만, 사용인들이 보기엔 아직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을 개인적으로 모아두었다.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휴가 때 본가로 가져갈 생각인 것이다. 물론 집사장인 인크론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건 뭔가요?”
하얀 장갑을 낀 사이나의 손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며 레미가 물었다. 동그랗게 뭉쳐져 있는 누런색의 음식은 곡식을 아무렇게나 뭉친 것이다.
“쥐약입니다.”
이 음식에는 미약한 매료의 마법이 걸려 있다. 6시간 정도 발동되고, 마법저항력이 거의 없는 쥐는 홀리듯이 다가와 이 쥐약을 먹을 것이다.
“쥐약… 이요? 쥐가 먹으면 죽나요?”
“쥐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도 죽습니다. 사람도 예외 없습니다. 그러니 먹지 않게 주의해주십시오.”
사이나의 말을 들은 레미와 마릭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음식에는 바실리스크의 독이 묻혀 있다. 극히 소량이지만, 인간도 10초안에 죽게 하는 맹독이다. 쥐는 먹는 순간 절명할 것이다.
“상자가 많군요.”
별채의 지하 창고를 둘러본 사이나가 말했다. 창고는 커다란 상자안에 물건을 넣어 정리해두었다. 상자의 윗부분에는 각각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용인의 이름이다. 그중에는 마릭의 것도 있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버리려고 한 것들인데 쓸만 한 것들은 사용인들이 개인적으로 모아두고 있어요. 어차피 버릴 거라서 우리가 사용해도 상관없거든요.”
마릭의 말에 사이나가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서 바닥에 쥐약을 내려다 놓았다.
그 후로, 사이나가 마력으로 알아낸 쥐가 있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쥐약이 놓였다. 사전에 설명은 해놓았기에 정원과 저택에도 예외 없이 이루어졌다.
남은 것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쥐약을 먹은 쥐를 소각하는 것뿐이다.
⁂ ⁂ ⁂
테드와 점심식사를 하고 별채로 돌아온 사이나는 별채의 앞에 레미와 마릭의 도움을 받아 임시 소각로를 만들었다. 돌로 대충 만들어진 이 소각로는 사이나의 마법으로 발동할 예정이다.
그들은 서로 흩어져서 쥐약을 먹고 죽은 쥐들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레미와 마릭은 사이나의 지시를 받아 쥐약을 먹은 쥐를 들고 소각로로 와야 했다. 레미가 울상을 지었지만, 사이나는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쥐약을 놓았던 장소를 전부 빠짐없이 사이나가 기억하고 있었기에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사이나 씨! 이 쥐, 뭔가 이상해요!”
쥐가 담긴 봉투를 최대한 몸에서 멀게, 팔을 쭈욱 뻗어 손가락만으로 집어든 레미가 사이나에게 달려와 말했다. 간이 소각로에서 마법을 이용해 쥐의 사체를 흔적도 없이 소각 시키던 사이나가 그녀가 들고 있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하얀색 장갑을 낀 손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봉투를 열어 집어넣는다. 물컹한 쥐를 들어 올리자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회색의 쥐가 보였다.
“그 쥐의 배 부분에 뭔가 그러져 있어요!”
그녀의 말에 따라 쥐의 뒤집었다. 사이나의 눈이 커졌다. 쥐의 배에는 불로 지져 만든 듯한 마법진 형태의 흉터가 있었다.
‘패밀리어(Familiar) 마법.’
테드의 키메라 패밀리어(Chimera] Familiar)마법과 비슷한 마법이다. 다만, 테드의 마법이 효율성 등이 더 높다. 쥐의 배에 새겨진 마법진은 기초적인 패밀리어 마법이었다.
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의 신체 일부분에 마법진을 시켜 강제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 마저도 성공률이 희박하다. 10마리 중에 3마리가 성공하는 정도다.
마법진은 현재 발동되고 있지 않다.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을 역으로 추적해서 마법사를 찾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이 쥐는 어디서 발견하셨습니까?”
“그… 정원에서요.”
사이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자, 레미가 말을 더듬거렸다.
“이 사실은 제가 따로 보고할 테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심각한 일인가요?”
“제가 봤을 때는 상당히. 어쩌면 레미 님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레미가 사이나에게 외치듯 말했다.
“그, 그럼 부탁이 하나 있어요!”
무엇이냐는 듯 사이나가 그녀를 보았다.
“어, 언니라고 불러도 될 까요…?”
“…….”
레미가 조마조마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레미는 오늘 사이나가 하는 행동을 보며 동경 비스무리한 감정을 품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쿨 한 자세! 레미가 동경하는 여성상이 바로 그녀였다.
“상관없습니다.”
사이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칭호가 바뀐다고 해서 관계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레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비밀은 꼭 지킬게요!”
레미의 대답을 들으며 손에 든 쥐의 시체를 소각로에 넣었다.
우크사이어는 마검사의 가문이니 어쩌면 우크사이어의 패밀리어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가능성은 적다. 아무리 패밀리어라고 해도 자신의 저택에 쥐를 풀어 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다 우크사이어는 귀족가문이다. 귀족의 위신이 걸려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마릭이 웃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저택에 있는 쥐의 시체를 전부 가져왔어요.”
양손에는 커다란 봉투가 들려 있었다. 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봉투였다.
봉투 속에는 죽은 쥐의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있을 것이다. 봉투의 내부를 상상한 레미가 몸을 비틀 거렸다. 끔찍했다.
============================ 작품 후기 ============================
주권결정전에 관한 것은 설정에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