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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우크사이어 백작가의 집사장인 인크론이라고 합니다. 저택에는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셨습니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자신을 소개한 집사는 테드에게 목적을 물었다.
“우크사이어의 가주에게 전해줄 물건이 있어요.”
인크론은 잠시 테드를 살폈다. 검은색 긴팔 상의 위에 회색의 가죽조끼를 입고 있다. 전해줄 물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메이드가 가지고 있는 주머니에 있을 지도 모른다. 방금 주머니에 천을 넣는 것을 보며 아공간 주머니인 것을 파악했다.
“죄송하지만, 그 물건을 제가 볼 수 있을 런지요. 위험한 물건인지 파악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가주가 오면 보여드릴게요.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조금 많이 귀해서요. 그리고 이건 원래 우크사이어의 것이에요. 자세한 이야기는 가주랑 직접 할게요.”
“……알겠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잖아 있었지만, 인크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손님이다. 손님으로서 대접해야 한다.
상대는 귀족은 아니지만 A등급의 모험가다. 가주를 만날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제가 가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리고 대접이 부족했던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지금 메이드가 차를 준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인크론이 절도 있게 인사하며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기사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였다. 우크사이어의 완벽한 집사는 어딘가 사이나를 떠올리게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접견실의 문이 열렸다.
가주인가 쳐다보았지만, 들어온 것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메이드였다.
사이나의 복장 비교하면 수수하기 그지없는 복장이었다. 검은색 메이드복 위에는 하얀색 앞치마가 있고, 치마는 발목까지 내려와 있다. 갈색 머리카락을 곱게 틀어 단단히 후두부에 고정시킨 메이드는 차와 쿠기가 놓인 카트를 밀고 있었다. 교육을 잘 받은 것인지 행동이 자연스러웠고, 어수선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차의 종류에는 홍차, 녹차, 커피가 있습니다. 어떤걸 드실련지요?”
“……어, 커피로 부탁하죠. 사이나는?”
“저는 괜찮습니다.”
“……하나만 부탁할게요.”
사이나가 메이드를 빤히 쳐다보는 게 보였다. 테드는 사이나가 자신과 다른 메이드를 보는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일종의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이리라. 분명 그럴 것이다. 부디 집사 때처럼 괜한 트집은 잡지 말아줬으면 한다.
주인의 곤란함을 아는 것일까. 메이드가 준비할 때까지 사이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메이드는 우선 카트위에 있는 식기와 음식을 테이블에 올렸다. 과일, 쿠키, 케이크 등의 간식거리들이다. 테드의 시선이 한 순간 과일에 꽂혔다. 사과, 바나나, 파인애플 등이 먹기 좋게 껍질이 벗겨져 놓여 있었다.
메이드는 곧바로 커피를 준비했다. 카트의 아래쪽에서 하얀색의 고급스러운 커피 잔과 받침대를 먼저 꺼내고, 커피를 만드는 마도구를 꺼낸다.
네메스 대륙에서 커피가 유행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시기로 따지면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정도 전부터다. 그 전에도 커피는 있었지만, 티타임을 즐기는 귀족들은 홍차를 마셨다. 이 커피가 유행하게 된 계기가 지구 출신의 환생자 중 몇몇이 귀족의 직위를 얻어 커피를 유행시킨 것이다.
그 후 커피의 좋은 향기와 잠을 내쫓는 효과 때문에 귀족뿐만이 아니라 서민들에게서도 크게 유행했다. 지금에 와서는 커피를 모르는 인물이 없을 정도다. 커피 마도구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꼭 있는 물건이었다. 가격도 싸고, 효율도 좋았다.
마도구에 커피 원두와 물만 넣어주면 커피가 뚝딱 만들어진다.
“여기 있습니다. 원두는 아우티리아 출신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엘프 왕국 아우티리아의 커피 원두다. 커피가 유행했을 때 가장 열광한 게 엘프다. 우스갯소리로 커피에 환장한 엘프라는 말이 있었다. 커피와 관련되어 있는 만큼 아우티리아의 커피는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드는 떠나지 않고 이번에는 홍차를 준비한다. 이제 곧 나타날 우크사이어 백작의 것이리라. 커피를 힐끗 본 테드가 작은 포크를 들고 과일을 향해 뻗었다.
옆에 있던 사이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테드는 기본적으로 쓴 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커피라고 해도, 아니… 고급스럽기 때문에 더 쓰다. 옆에 각설탕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각설탕을 넣는다고 해서 쓴맛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주인은 각설탕을 넣는 귀찮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테드의 못된 버릇이었다.
사이나는 테드의 그런 버릇이 조금 걱정이 됐다. 해야 하는 것은 하는데,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사이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테드는 과일을 탐식하기에 바빴다. 아삭한 파인애플은 이빨에 씹힐 때마다 즙이 터져 나왔다. 새콤달콤한 맛이 딱 테드의 취향이었다.
메이드가 홍차를 완성했을 때였다. 맞춘 것처럼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뒤에는 집사인 인크론이 시립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하군요. 제가 우크사이어의 현 가주, 아이리스 우크사이어 입니다.”
밝은 하늘색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었다. 슬림한 체형의 그녀는 드레스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우아하게 인사한다. 짙은 푸른색의 단발머리가 흔들렸다. 그녀의 남청색 눈동자가 똑바로 테드를 직시했다.
테드는 뒤늦게 자리에 일어났다. 상대는 귀족이다.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A등급 모험가인 테드 크루시안입니다.”
한 차례 인사가 끝났을 때, 카트를 집사인 인크론에게 맡기고 메이드가 문의 밖으로 나갔다. 카트를 남긴 이유는 혹시 모를 리필을 위해서리라.
아이리스는 테드의 맞은편에 앉자말자 곧바로 홍차가 담긴 찻잔을 들었다. 홍차의 깔끔한 향기를 느끼고 한 모금 마셨다. 그에 테드가 자신의 앞에 있는 커피를 바라봤다.
시커멓다. 향기는 좋은데 쓸 것 같다. 안 마셔도 상관없겠지.
“명성이 자자한 루크에이스의 천재 마법사, 테드님을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하하. 소문이란 게 조금 과장되길 마련이죠.”
테드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과장되기는 개뿔. 축소를 한 4~5번 정도 했지.
“우크사이어에 돌려줄 물건이 있다고 들었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에 오기 전에 우크사이어에 대해 조금 조사했다. 2년 전에 발생한 비극과 현 가주에 대해서 들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의 특징은 현재 우크사이어 가주의 특징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다른 사람은 아니었다.
“우선 중립지대의 루크에이스 북서쪽에 초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초원에서 은밀히 숨겨
져 있는 마법사의 공방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이 우크사이어와 관련이 있었나요?”
“테리온 우크사이어. 그분의 공방이었습니다.”
테리온이라는 이름은 아이리스도 한 번 들어본 적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은 물론이고 가주로서 행했던 업적까지 달달 외우고 있는 그녀다. 그런 아이리스가 모른다는 것은 우크사이어로서 행했던 업적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이리라.
아이리스가 슬쩍 옆에 서있는 인크론을 바라봤다.
인크론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머릿속으로 다시 우크사이어의 족보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테리온 우크사이어. 300년전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우크사이어의 이름을 받은 신의 사도이자 마도사입니다.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우크사이어의 마법을 발전시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 인물이었나. 아이리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한 차례 눈을 반짝이며 테드를 바라봤다. 인크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해줄 물건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아마도 마법도구나 마법서 이리라.
“공방의 비밀방에서 그분의 유골을 발견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유서와 함께 우크사이어 가문에 전해주라는 물건은 가져왔습니다.”
테드의 바로 앞에 마법진이 나타난다. 흠칫 놀란 아이리스와 인크론이 곧장 몸을 긴장시켰으나, 마법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그들은 공격마법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힘을 풀었다.
“그 나이에 아공간 마법이라니…….”
과연 천재 마법사. 뒷말을 삼킨 아이리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테드를 바라봤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만들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스승의 도움을 받아 아공간 마법을 만들었으리라. 아공간 마법은 처음이 개설할 때가 힘들 뿐이었다. 일단 귀속된 아공간이 만들어지면 열거나 닫는 건 초보 마법사도 할 수 있다.
테드가 마법진에 손을 넣어 하나의 책과 종이를 꺼냈다.
사슬이 감겨 있는 검은색의 책이었다.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책이었다.
“그건…….”
“그분이 남긴 비전 마법서입니다. 종이는 그분의 유서고요.”
“…….”
테드가 내미는 책과 종이를 받아든 아이리스는 우선 종이를 펼쳐 읽었다. 유서를 전부 읽은 아이리스가 검은색 책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책의 안에는 편지가 있다고 유서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비전 마법서를 테드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전 마법서를 가문의 인물이 아닌 그에게 보여주기는 싫었으나, 귀족의 명예가 달린 일이다. 이것은 일종의 은혜이고 조상의 부탁이었다. 그녀로선 어쩔 수 없었다.
“인크론. 칼을.”
“여기있습니다.”
집사는 곧장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나이프를 보며 테드는 식은땀을 흘렸다. 왜 집사가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지. 설마 전투용인가.
나이프를 받아든 아이리스는 곧장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상처사이로 핏방울이 천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방울을 크게 만든 핏방울이 비전 마법서에 떨어졌다.
책을 감싸고 있던 사슬이 순식간에 부식되더니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아이리스가 그 광경을 신기하게 보고 있을 때, 테드는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는 집사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사이나야 마법 주머니가 있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저 집사의 옷 주머니는 뭔가. 마법이 걸린 것 같지는 않은데 칼이나 포션등이 나오고 있다. 사실 저 집사는 모험가가 아닐까. 테드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비전 마법서를 펼친 아이리스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법서의 안에 있는 편지는 우크사이어 가문을 걱정하는 말과 함께 비전 마법서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문제는 이 비전 마법서를 봐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마검사로서 마법을 익힌 그녀다. 그 빛나는 재능으로 중급 마법사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식만으로 따지자면 상급 마법사에 필적하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비전 마법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천히 책을 읽어봐도 알 수 없다.
“……비전 마법서를 보여 드리라는 말이 있었지요. 한 번 보시겠어요?”
가주의 일만으로 골치 아파 죽겠는데 비전 마법서까지 연구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절로 한 숨이 나올 것 같았다.
“권해주신다면야.”
테드는 사양하지 않고 비전 마법서를 받아 펼쳤다. 그리고 슬쩍 훑어보더니 호오하고 감
탄사를 낸다. 재밌다는 비전 마법서를 살펴본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테드를 보며 아이리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드를 바라봤다.
그 난해한 내용을 단번에 이해했다고? 아무리 천재 마법사지만 조금의 시간도 없고?
“……어떤 마법인지 아시겠나요?”
“아, 예. 근접 전투 마법이군요. 검술과 어울리는 마법들입니다. 대충 봤는데 굉장히 실용적이네요.”
“…….”
테드의 말에는 허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비전 마법서를 정말로 이해하고 있으리라. 그녀가 슬쩍 테드의 눈치를 살폈다. 테드는 비전 마법서에 빠져 있었다. 이 마법서에 적혀 있는 마법은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테드와 성향이 맞는 비전 마법들이었다.
몇 번 연습하면 마법서에 있는 마법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테드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테드가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제게 마법서의 마법을 가르쳐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물론 보상은 섭섭지 않게 하겠습니다.”
“……저도 부탁이 하나 있었는데 잘 됐네요. 보상으로 제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떤 부탁… 이신지?”
현재 우크사이어 가문은 몰락을 겪고 있다. 가문에 피해가 가는 보상, 예를 들면 막대한 금전 같은 것은 내줄 수 없다.
아이리스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테드의 입술을 바라봤다. 저 입에서 나오는 부탁은 어떤 것일까.
“자유 기사. 그 작위를 제게 임명해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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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vs 메이드는 조만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