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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13. 우크사이어.
우크사이어 가문은 펠리스 왕국에서 제법 유명한 귀족 가문이다. 우크사이어는 대대로 마검사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마검사는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익히는 자들을 말한다.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익힌다면 쉽게 강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검술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마법까지 익히는 것이다. 네메스 대륙에 있는 마검사 대부분의 실력이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차라리 검술과 마법, 둘 중 하나만 주구장창 파는 것이 좋다. 안 하니만 못한 것이 마법과 검술을 동시에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우크사이어는 대대로 마검사를 배출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우크사이어의 피를 잇고서도 마검사가 아니면 이단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들은 대륙에 널린 흔한 마검사처럼 약하지 않았다. 검과 마법, 동시에 익힘에도 이름이 널리 펼칠 정도로 강했다.
그 비법은 우크사이어 가문에 있는 마법에 있었다. 우크사이어의 마법은 검술과 익히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마검사의 경우 마법과 검술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그 성질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크사이어의 마검사는 달랐다. 그들의 마검술을 보면 마법과 검술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 느낌이다.
우크사이어의 마검술은 강하고 화려해서 사람들의 시선과 흥미를 단숨에 끌어 모았고, 펠리스 왕국을 비롯한 대륙 곳곳에 그 명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똑똑똑.
차분한 노크 소리가 들린 뒤, 정중한 남성 목소리가 방안으로 흘려 들어왔다.
“가주님. 집사인 인크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여유와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아이리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짙은 푸른색의 단발머리가 매끄럽게 찰랑였고, 머리색과 같은 남청색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
왔다.
아이리스는 별로 흐트러지지 않은 드레스의 옷매무새를 빠르게 확인하고 허리를 쫙 퍼서 자리를 바로 앉았다. 양손을 책상위에 올린 뒤 목소리가 새어나오지 않게 주의하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낡은 나무문이 경첩을 혹사시키며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말끔한 차림의 중년의 남성이었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이마 위로 넘겨 정리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세에는 하나의 군더더기도 발견할 수 없다. 호박 빛의 눈동자는 기백이서려 어딘가 맹수의 눈동자를 떠올리게 했다.
“오늘 처리해야 할 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
인크론이 들고 있는 엄지손가락 두께의 서류를 확인한 아이리스의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서류의 양으로 보자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 한 장을 처리하기 위해선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서류라면, 그 대책까지 생각해야 하며, 다른 귀족과의 문제가 적힌 서류는 자칫 잘못하는 순간 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집사인 인크론은 아무 말 없이 걸어와 책상 위, 아이리스의 바로 앞에 서류를 놓았다.
어떻게 첫 장을 집어든 아이리스는 대충 서류를 훑어보았다. 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내용이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마음을 가다듬고 첫 문장부터 읽으려는 순간이었다.
“그건 상업 도시 메니콘에서 온 초대장에 관한 서류입니다. 그곳의 귀족들이 파티를 열
었습니다. 제 의견을 말하자면… 가주님께서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아이리스가 보기 편하도록 초대장의 내용을 그대로 서류에 옮긴 것이다. 초대장에 적힌 필기체를 잘 읽지 못하는 아이리스를 위한 배려였으나, 미사여구가 너무 많아서 보고서 앞부분에 초대장이란 소개가 없었다면 초대장이란 것도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서류의 마지막 부분에 본론인 초대하고 싶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초대장도 두괄식으로 해주었으면 한다.
“거절할 수 있다면 거절이야. 아직 가문을 비워둘 순 없어.”
“알겠습니다. 거절의 답장을 보내겠습니다.”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크론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저택에서 일했었다. 지금 이 저택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리라.
아이리스가 서류를 뒤로 넘겼다. 여러 장의 종이가 하나로 묶여 있는 서류였다. 서류의
첫 장의 가장 위에 찍혀 있는 인장을 본 아이리스는 골치가 아파 옴을 느꼈다. 두 개의 원 중 작은 원안에 별 모양의 펜타그램이 들어 있고, 작은 원의 바깥은 코스모스 꽃잎이 유려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꽃잎을 감싸는 커다란 원이 있다.
이 문양을 사용하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우크사이어 가문이 있는 도시에 있는 왕립 마법 아카데미, ‘코스모스’다.
왕립, 펠리스의 3대 국왕이 세운 아카데미로 현재까지도 왕이 관리하고 있는 아카데미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조건만 충족하면 입학할 수 있다. 입학 조건은 25살 이하의 나이이어야 하며, 마법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 아이리스도 원래 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가주가 되어 없어진 예정이지만.
서류를 마지막 한 장까지 공들여 살펴본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서류를 보낸 인물은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원장이다. 12집행관 중 한명이자, 펠리스의 가장 뛰어난 마도사인 그는 몰락해가는 우크사이어 가문 정도는 눈감고도 해치울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칠 교사급의 실력을 가진 인원을 파견해달라고…?”
코스모스 아카데미에 줄지어 서있는 것이 교사급의 마법사들이다. 이런 공문서를 보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근 왕국의 정세가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새로 즉위한 국왕의 청소로 말이지. 그게 관련이 있다고?”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모두 국왕의 아래에 있는 자들입니다. 왕의 명령 하나
면 그들은 모두 집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국왕이 이번에 교사들을 대거 데려간 모양인지라, 교사가 부족한 듯합니다.”
“……무시하면 안 되겠지?”
아이리스는 제발 그가 상관없다고 말해 주기를 바라며 물어 보았다.
현재 가문에 남아도는 인력은 없었다. 제각각 모두 필요한 곳에서 힘쓰고 있다.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교사라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마법사야 한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자는 가문에서도 적었고, 빼낼 수도 없었다. 서류에는 1년만 파견하면 된다고 적혀 있으며, 기한은 입학시기인 5월의 1주일 전. 지금으로부터 약 3주 정도다.
“이 도시, 베이론에서 코스모스 아카데미와 척을 지고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요청을 한 번 거절한다고 해서 척을 졌다고는 할 수 없잖아? 이번 한 번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아가씨.”
가주님이 아닌 아가씨란 말에 아이리스는 몸을 긴장시켰다. 어렸을 적부터 그에게 혼날 때면, 꼭 듣는 말이 저음의 ‘아가씨’라는 말이었다. 지금도 그 말을 들을 때면 무심코 몸을 움츠리고 만다.
“늘 말해 왔지만, 귀족들은 별난 구석이 있습니다. 단 한 번의…….”
“그래. 그래.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고? 알고 있어. 이건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게.”
그의 말을 끊으며 아이리스가 말했다. 그 말은 인크론과 아버지를 포함해 어머니에게서도 들은 말이다. 지겨울 정도로 들어서 무심코 꿈에서도 중얼거릴 정도였다. 거의 세뇌수준이다. 정식 후계자였던 자신의 오라버니는 더 심했을 텐데, 어떻게 견뎠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다행히도 이 서류에는 3주라는 기한이 명시되어 있었다. 돈을 사용해 적당한 마법사를 고용하는 방법이라던가, 직접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원장을 찾아가 가문의 사정을 설명하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등의 방법밖에 없다.
귀족은 얕보이면 끝장이다. 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억지로 지워내며 다음 서류를 살폈다.
집사인 인크론은 서류 처리에 집중하는 아이리스를 잠시 보다가 조용히 방문을 나섰다.
곁눈질로 인크론이 집무실의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아이리스가 기지개를 켜듯 양손을 하늘 위로 뻗었다. 장시간 앉아 있어 굳은 몸을 풀어준다. 우드득 거리는 뼈의 소리와 함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절로 흘려 나왔다.
“……힘들어.”
한탄처럼 흘러나온 그녀의 한 마디를 들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30분 뒤, 집무실을 나섰던 인크론이 다시 집무실로 들어왔다. 아직 서류의 반도 처리하지 못한 아이리스가 설마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아이리스의 시선을 느꼈는지 괜스레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서류 한 장 없었다.
“가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행히 서류를 추가로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손님? 오늘 찾아올 예정인 손님이 있었던가?”
가문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 하고나서 부쩍 저택을 방문하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또한 귀족들의 경우 먼저 자신의 방문을 알리고 찾아온다.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라면 갑작스레 방문하지 않는다.
“자신을 모험가라고 소개했습니다만…, 메이드를 한 명 데리고 있었습니다.”
“모험가가 메이드를 데리고…? 특이한 사람이네. 귀족 출신은 아닌 거야?”
“이름은 테드 크루시안. 귀족은 아닙니다만, A등급의 모험가입니다.”
“……A등급.”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력자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이름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를 향해 인크론이 입을 열었다.
“루크에이스에서 유명한 마법사 모험가입니다. 천재 마법사로 신문에 대서특필 된적이 한번 있습니다.”
아이리스가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한 번 쳤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천재마법사 라는 별명이 신경 쓰여 주의 깊게 본 기억이 있다.
“그가 왜 찾아 온 거야?”
“가문의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주님과 해야 한다고 했기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인크론이 안광을 빛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아이리스는 흠칫했다. 투지가 느껴지는 눈빛과 호전적인 미소였다.
“메이드가 범상치 않더군요. 후후….”
⁂ ⁂ ⁂
우크사이어에 일하는 사병에게 접견실로 안내 받은 테드와 사이나는 피곤하다는 듯이 접견실 소파에 턱하니 앉았다. 사병의 말로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면 고용인의 대표인 집사장이라는 인물이 온다고 했다. 그를 통해 일을 이야기 하라고 했다.
A등급 모험가라는 신분이 이럴 때 발휘되었다. 평범한 등급이었거나, 모험가가 아니라 용병이었다면 저택의 안으로 안내 받아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택의 입구에서 경비병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소파에 편하게 앉은 테드는 접견실을 살폈다. 꽤나 넓은 공간이었으며, 벽이며 천장이며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호화스럽게 치장되어 있다. 전형적인 귀족의 접견실이었다.
테드는 우크사이어 저택에 도착하면서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회귀 전의 기억 속에서 우크사이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몇 번은 들어보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제법 유명한 백작가 인 것 같은데…….
테드가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에 옆에 있던 사이나가 테이블의 아래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게 보였다. 무언가 특이한 것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의문을 가질 때.
사이나가 마법 주머니에서 하얀 천을 꺼내 테이블의 아래를 닦았다.
테드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아니, 왜 남의 집 테이블 아래를 닦는 거지….
테드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사이나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테이블 아래에 먼지가 있기에 닦았습니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자들에겐 조금 실망이군요. 테이블 아래에 눈에 확 들어오는 먼지를 남겨 놓다니….”
테이블 아래에 있어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기 전까지 테이블 아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굳이 네가 닦을 필요는 없잖아.”
“주인님이 계신 곳입니다. 더러운 먼지를 내버려둘 순 없지요. 솔직히 이 방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없으니 주인님의 주변을 닦는 것으로 참겠습니다.”
“…….”
고지식한 메이드의 눈은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루크에이스에 있을 때도, 디스본의 호텔에 있을 때도 먼지 한 톨 보지 못했었다. 테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일이었지만, 사이나가 매일 청소한 덕분이었다. 루크에이스의 저택은 바퀴벌레도 소름 돋을 정도로 깨끗했다.
“……뭘 하고 계십니까?”
접견실의 문이 열리고 멋들러진 중년의 집사가 나타났다. 아마 사병이 말한 집사장이 눈앞의 인물이리라.
반백의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멋진 집사는 테이블 아래를 청소하는 메이드를 보고 당황한 듯 했다. 그럼에도 입가에 있는 보기 좋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통해 그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귀족인 아닌 집사라고 해도 말을 고르는 것이 좋았다. 어떻게 말해야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테드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사이나가 그를 보더니 입을 열어 거침없이 말했다.
“테이블 아래에 먼지가 있더군요. 제 주인님에게 먼지를 마시게 할 수는 없기에,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거 실례했군요. 본 저택의 메이드들이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고 다시 청소할 테니 그만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손님에게 청소를 시킬 순 없습니다.”
“청소는 거의 끝났습니다. 부디 다음에는 테이블 아래도 꼼꼼히 확인해주시길. 그리고 창문틀에도 먼지가 있더군요. 거긴 손대지 않았습니다.”
“……예. 주의 하겠습니다.”
테드는 부들부들 경련하는 그의 입가를 확인했다. 힐끗 사이나를 보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손에든 천을 정리하고 테드의 옆에 부동자세로 선다. 하지만 테드는 똑똑히 느꼈다. 집사와 메이드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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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