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70화 (7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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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메스의 눈

네메스의 눈의 중심에 있는 성은 테드가 보기에도 전혀 알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 졌는지, 왜 시스템이 굳이 이 성을 보호하는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테드는 혹시나 싶어서 하늘로 올라가 이 성을 내려다보았다. 푸른색의 아름다운 성이다. 당연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성은 어딘가 조형 같은 느낌을 풍겼다.

혹시 몰라 호수의 밑바닥에서 성을 올려다보았다. 성의 바닥은 벽과 마찬가지로 푸른색의 돌로 막혀 있었다. 아래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침입불가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테드는 깔끔하게 성에 대한 호기심을 접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시점에서 테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이나와 함께 한 차례 호수를 둘러보고 돌아갔다.

그날 저녁에는 사이나와 함께 숙박시설 내부에 있는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즐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건물 계약기간이 끝나는 날, 미련 없이 제텍스를 떠났다. 즐거운 휴가가 끝나는 기분이라 조금 아쉬운 감정을 느꼈다.

사이나는 떠나기 직전에 거대한 통에 네메스의 눈, 호수의 물을 가득 펐다. 이 제텍스의 특산물이 낚시로 잡히는 물고기와 이 호수의 물이기 때문이다. 맑고 깨끗한 물.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느끼는 물로서 요리에도 사용한다.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가끔 상인들이 찾아와 물을 마차에 담아 팔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큰 이득은 보지 못하지만 도시에 따라 제법 짭짤하게 수익을 내는 모양이다.

테드는 수상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했다. 크루즈 요트를 사고 싶었으나, 그건 생각이상으로 돈이 많이 나갔다. 가만히 있던 사이나가 걱정할 정도의 가격이었다. 하기야, 빌리는 것에도 무지막지하게 돈이 나갔는데, 구입하는 것에는 더욱더 나갈 것이다.

테드는 순순히 사이나의 말을 들었다. 구입해봤자 쓸데가 없다는 사이나의 말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물이 많은 곳이 아니다. 그다지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수상 오토바이를 하나 구입했다. 1인용의 수상 오토바이는 속도 면에서 요트를 증가하고, 비교적 크루즈 요트보다는 저렴했다.

테드가 구입한 수상 오토바이… 제트스키는 겉모습만을 따지면 매끈한 검은색의 삼각형의 샤프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효율 면에서는 다른 제트스키와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졌다. 과학이 없으니 마법으로 구현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테드가 보기에 마법의 질이 떨어졌다. 마법도 세 개 정도밖에 없었다. 바람마법과 가속 그리고 정지.

움직이는 것에는 문제없다. 속도도 제법 나오지만 썩 마음에 차는 속도는 아니었다. 효율면에서 비싼 제트스키 쪽이 훨씬 나았다. 돈값은 한다고.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며 마나 소모 효율도 좋았다. 부가적이 마법도 있어서 기능성도 뛰어났다. 솔직히 테드도 마음이 이끌렸었다. 제트스키 내에 걸려 있는 마법이 조금만 더 완벽했더라면 구입했을 것이다.

테드가 굳이 모양만 좋고 능력이 떨어지는 제트스키를 구입한 것은 스스로가 개조하기 위해서다. 기존의 마법을 지우고 자신이 직접 마법을 새긴다. 대마도사급의 실력자가 직접 새긴 마법이다. 효과는 물론이고 안정성까지 보장할 수 있었다.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하루를 통째로 사용해 매진해야 했었다. 그리고 완성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며칠은 걸렸을 일이다. 그리고 그 며칠

이 지난 뒤에도 테드의 마법과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것이다.

완성된 제트스키는 끝내줬다. 하루 종일 타고 다녀도 질리지 않을 정도였다. 어째서 지금 이걸 발견했는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후회되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호수의 물이 몸을 적시고, 막대한 바람을 몸으로 맞으며 그 속도감을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나 등 뒤에 미녀, 사이나를 태우고 호수 위를 질주하는 그 맛이란…!

테드는 제텍스를 떠나면서도 힐끔 뒤를 돌아봤다. 제트 스키가 생각났지만, 호수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제트스키를 타야지.”

아공간에 있는 자신의 멋진 검은색 제트스키를 떠올리며 굳게 다짐했다.

호수위의 푸른 성? 알게 뭔가. 그딴 건 제트스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넓고 어두컴컴한 공간이었다. 천장은 판테온 형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이 있었고, 그 가장 높은 곳 중심에는 빛을 발하는 마법의 불이 있다. 공중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붉은색의 불은 주위를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다.

아무리 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고 해도 불의 빛에는 한계가 있었다. 구석구석까지 밝히지 못하고 간신히 주변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세기 밖에 되지 않았다.

공간의 중심에서 메피아는 진홍빛의 머리칼을 한 차례 귀로 뒤로 넘겼다. 머리에 달린 검은 산양의 뿔이 마치 왕관처럼 감싸고 있다. 그녀의 차갑게 빛나는 붉은색의 눈동자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형처럼 축 늘어져 있는 시체가 그녀를 중심으로 늘어져 있다. 작은 시체의 언덕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

메피아는 시체의 썩은 내나 비릿한 혈향을 느끼지 못했다. 만 명에 달하는 시체들은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고, 피를 보일 정도로 상처를 입은 자들은 누구도 없었다. 네메스 대륙 전국에서 납치된 그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이승에서 떠났다.

죽는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고통은 느끼지 못했다. 편안한 죽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메피아가 그들에게 주는 최후의 자비 같은 것이였다. 그 편이 더 정리하는 게 편하기도 했고.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곳은 따로 마법으로 녹화하고 있으며, 보안도 철저하다. 다른 누군가에게도 방해 받을 일도 없다.

메피아는 입고 있는 검은색의 코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안주머니에서 하나의 거울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둥근 거울이었다.

“……하늘의 눈.”

붉은색의 두 눈동자에 힘이 들어간다. 묘한 열기를 띈 눈빛이 거울속의 자신을 직시한다. 거울 속의 여전히 자신이다. 바뀌지 않는다. 그녀가 미간을 찡그렸다.

발동하기 위한 조건, 10,000명의 제물은 모두 모았다. 혹시 제물이 살아 있어야 하나? 정보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라면 문제없다고 되어 있었다. 정보가 잘못 된 것일까?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끼며, 혹시나 싶어 마력을 움직여 하늘의 눈, 미래를 비추는 거울에 흘러 넣었다.

그녀의 고운 얼굴을 비추던 거울이 보라색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약한 빛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은 점점더 뿜어지기 시작한다.

‘……마나가 아니다. 무슨… 마나가 아닌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마력이나 성력, 정령력 등의 힘… 에너지들은 마나가 변형된 힘들이다. 마나가 기본이

고, 마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거울이 발하는 보라색의 빛, 그것은 분명히 마나가 아니었다.

스킬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는 스킬도 아니었다. 스킬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시스템이 개입한 느낌은 들지 않는데… 기회가 되면 연구하고 싶군.’

마법사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그녀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라색 빛을 바라봤다. 높이 천장으로 올라간 보라색 빛은 이윽고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치 눈처럼 작은 입자로 변한 그것들은 주변의 시체 언덕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른 천에 물방울이 흡수되듯이 시체의 속으로 보라색 빛이 사라진다. 그리고 수초가 지

난 뒤에 검은색의 빛이 나타났다. 보라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한 빛은 곧바로 그녀가 들고

있는 거울을 향해 모여들더니 천천히 스며들었다.

‘검은색 빛은… 시기(屍氣)로군.’

이 시기는 사령술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운이다. 시체 한 구 한 구에서 나오는 시기는 적지만, 이것들이 모여 있으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이한 것들, 언데드가 나타난다.

그녀의 사방에 있는 시체에서 검은 빛은 거울 속으로 모여들었다. 전부 모여들었을 때는 거울은 새하얀 빛을 뿜고 있었다. 검은색 빛을 삼키고 하얀 빛을 내다니…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하얀 빛은 당연히 시기가 아니었다. 시기는 흡수 했는지, 변환 시켰는지 알 수 없다.

거울에 모인 하얀 빛은 허공으로 뻗어나가며 사각형의 스크린을 형성한다.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비추고 있지 않다. 메피아는 얼른 자신이 보고 싶은 미래를 생각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10년 후에 일어나는 주권결정전에 대한 미래다. 약간의 초조함과 간절함을 담아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리고 하얀 빛의 스크린에서 영상이 나타났다.

그곳은 거대한 숲이었다. 그녀가 처음 보는 숲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복합 지형이다. 숲도 있고, 산도 있으며, 강도 있다. 네메스 대륙의 지도를 떠올리지만, 해당하는 숲을 찾을 수는 없다. 비슷한 숲은 많지만, 숲을 양분하듯 중심에 흐르는 강과 숲한쪽에 있는 산은 처음 보는 것이다. 어디인지 떠올릴 수 없다.

‘처음 보는 곳… 시스템이 마련한 주권결정전의 필드로군. 성공이다.’

그녀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번졌다.

스크린에 비친 영상은 이윽고 변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은 종족이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전투장면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지, 어떤 대화를 나누는 지는 전혀 알 수 없다.

화면은 계속해서 바뀐다. 메피아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며 화면을 직시했다.

이 거울이 보여주는 미래 영상은 거울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조건 하에 이루어진 미래 영상이다.

즉, 이 거울을 보고나서 대처한 미래가 아니라,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미래를 말한다.

‘또 천족이 이기는군.’

영상은 단편적으로 스쳐지나가듯 숲이라는 전장 내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눈가에 흉터가 있는 천족 중 한명이 지하 동굴 속에 있는 호수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무지개 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고 엘프 중 한명이 거대한 나무 덩굴 밑에서 무지개색의 구슬을 꺼냈다.

‘저 구슬이 10년 후에 벌어지는 주권결정전의 열쇠인가! 구슬은 몇 개가 있는 거지?!’

그녀는 빨리 스크린이 비추는 영상이 바뀌길 원했다. 될 수 있으면 저 구슬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이윽고 다른 3개의 구슬 위치를 알아냈다. 3개의 구슬을 찾아낸 것은 몇 번이나 주권결정전에서 승리한 천족이었다.

그녀가 본 구슬은 총 5개. 그것들이 전부일까? 또 그것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주권결정전의 승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때 였다. 이변이 일어났다.

푸른 하늘에 순백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난 것이다. 마법진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크기는 제각각 달랐지만, 대부분이 몇 미터 혹은 몇 십 미터나 될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다. 가장 큰 마법 진은 100m가 넘는다.

메피아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마법진은 처음 보는 것이다. 그녀의 기억속에도 없는 마법진이고, 단숨에 해석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다.

‘고대 마법…!’

한눈에 알아봤다. 저 정도의 고난이도는 고대마법 정도 밖에 없다. 그녀가 알고 있는 고대 마법 중 하나가 비슷하기도 했다.

하늘에 수놓아진 마법진은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이윽고 거대한 하얀색의 불을 소환한다. 하얀 불꽃은 검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 검날의 끝을 지면을 가리키고 있다. 허공에 박힌 듯이 움직이지 않는 불꽃의 검들을 보며 메피아가 식은땀을 흘렸다. 어떤 마법인지 전혀 알 수 없으나, 위력은 보통이 아닐 것이다.

‘저 마법을 일으킨 마법사를 보고 싶다!’

그녀의 염원을 알아차린 것일까. 스크린이 변했다.

그자는 높은 산의 정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울은 야속하게도 그녀에게 전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그의 등이었다. 남자는 검은색의 재킷을 입고 후드를 쓰고 있었다. 검은 재킷의 등 부분에는 새의 형상을 한듯한 황금색의 자수가 놓아져 있었다. 후드 때문에 머리카락의 색이나 종족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영상속의 그는 검은색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있었다. 앞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오만하게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손쉽게 예상되었다.

순간, 영상이 흔들렸다. 영상이 끝날 조짐이 보였다. 메피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만 더. 적어도 저자의 정체를 알 수 있게…! 간절함을 담아 영상에 온 정신을 집중 한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한 손, 오른손을 빼내어 손바닥을 펼쳐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그 행동에 반응하듯 하늘에 그려진 수십 개의 거대한 마법진이 하얀색의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메피아의 눈에는 전능한 힘을 가진 오만한 신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가 오른손을 내렸다.

동시에 마법진 아래에서 타오르던 수십 개에 달하는 하얀색의 불의 검들이 일제히 지면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멀리서 보니 느릿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속도 일 것이다.

거대한 불꽃의 검은 지면에 닿자마자 주변에 퍼지듯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얀색의 폭풍, 연기마저 태워버리는 백색의 화염이 주변을 뒤덮었다.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영상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며, 화면의 일부가 사라져서 판별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그녀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녀의 기원이 통해서 일까. 화면 속의 그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이 바싹 마를 정도로 몸을 긴장시키며 그의 머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

영상이 끊어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손에 쥐고 있던 거울, ‘하늘의 눈’이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끝냈다는 듯이 먼지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없었다. 흔들리는 영상에 제대로 된 이목구비도 확인하지 못했고, 후드를 쓰고 있어 귀나 뿔같은 종족의 특징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 차갑게 가라앉은 붉은색의 눈동자뿐이다.

“……누구지.”

참았던 숨을 몰아쉬듯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단어가 나왔다.

10년 후, 주권결정전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대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가 나타난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미래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면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수는 없다.

“……찾아서 조치를 취해야해.”

그녀가 다짐하듯 주먹을 쥐었다. 일단을 찾아낸다. 회유를 하던가, 암살을 하던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중이다.

메피아의 발아래 바닥에 푸른색의 마법진이 그려졌고, 그녀의 몸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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