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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69화 (6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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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메스의 눈

황금 물고기, 골드 익스프레스를 마법으로 목숨을 끊은 뒤에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낚시꾼들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팔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조금도 듣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여든 낚시꾼들이 한숨을 내쉬며 자신들의 자리로 가는 것을 보며 테드는 보란 듯이 바론에게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환상의 물고기 정도는 잡아줘야 진정한 낚시꾼이 아니겠어.”

“후하하하!”

바론이 웃어넘겼다. 테드의 과도한 자만을 눈살하나 찌푸리지 않고 받아든 그는 주변을 정리하는 테드를 바라보았다.

“뭐야, 벌써 가는 거야?”

“떡밥도 없고 말이지.”

테드는 소파를 아공간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거기에 골드 익스프레스를 낚았어. 후후. 돌아가서 자랑해야지.”

물론 자랑하는 대상은 사이나였다. 덤으로 그 맛이 드래곤 고기에 필적한다고 한다. 이 물고기를 요리해달라고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건 어떻게 먹어야 할까. 회를 떠서? 매운탕으로? 튀겨서? 무수히 많은 조리방법이 떠올렸다. 그렇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운다. 요리를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아,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모험가라고 했지. 목적지가 어디야?”

마지막 낚싯대까지 아공간에 집어넣는 테드를 향해 바론이 물었다.

“펠리스 왕국. 거기서 자유 기사 직위를 얻을 생각이거든.”

“호오. 기사라…. 자유 기사면 또 다른 목적이 있나봐?”

기사는 준귀족의 직위다. 이 세계에선 귀족의 권위가 중세시대처럼 강력하지는 않으나, 가지고 있으면 편리하다. 기사는 어딘가에 묶이게 되지만 자유 기사는 아니다. 말 그대로 자유, 묶이지 않은 자유로운 기사다. 다르게 떠돌이 기사라고도 불린다. 그 신분은 국가간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여행가들이 원하는 직위기도 하다.

“네메스 대륙을 여행하려고. 이 세계는 생각이상으로 신기한 게 너무 많아. 그런데 넌?”

입질이 오는 낚싯대를 움켜잡으며 바론이 말을 열었다. 그 양손은 능숙하게 물고기를 낚고 있다.

“튜논. 거기서 쓸 만한 무기를 구할 목적이지!”

튜논은 드워프 왕국이다.

온갖 종류의 무기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무기의 질은 매우 훌륭하다.

“그럼. 이만.”

“나중에 또 만나자고.”

테드의 인사의 바론이 후하하 웃으며 배웅해주었다. 점점 사라지는 테드의 등을 바라보는 바론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진다. 무표정한 얼굴로 테드의 등을 바라보다가 다시 낚싯대로 시선을 돌렸다.

“……살만하다라….”

작게 중얼거리며 입질이 오는 낚싯대를 낚아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물고기가 걸렸다.

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빼내며 시시하다는 듯 등 뒤로 던졌다. 철퍼덕 소리를 내며 물고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팔딱 거리며 존재감을 낸다. 살기 위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지만, 바론은 시선도 주지 않았다. 물고기의 꼬리가 힘없이 늘어지고 행동이 멈추었다.

바론의 낚시는 해가 저물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바론에게 잡힌 물고기는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호수 밖의 바닥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 ⁂ ⁂

다음날, 테드와 사이나는 작은 크루즈 요트를 하나 빌렸다. 마나석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이 유람선은 하루를 빌리는 것으로도 제법 많은 돈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빌린 값은 똑똑히 한다.

무려 내부에 고급 호텔같은 방이 있는 것이다. 호텔이라 치기엔 좁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작은 주방까지 구현되어있을 정도로 인테리어가 고급적이다.

테드와 사이나는 이 쿠르즈 요트를 타고 호수, ‘네메스의 눈’의 중심에 있는 성으로 가볼 생각이다. 기껏 네메스의 눈에 왔는데 그 유명한 성을 보지 못하면 손해다.

정해진 시간에 단체로 관광객을 모아 성을 구경시켜주는 배도 있었다. 티켓의 가격도 제법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나 테드로선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성을 구경하는 시간도 별로 없고, 빌린 크루즈 요트처럼 개인 방 같은 것도 없다. 거기에 크루즈 요트를 운전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그렇다고 끝까지 테드가 요트를 운전한 것은 아니다. 크루즈 요트에는 자동 운전 마법이 걸려 있다. 정해진 장소로밖에 가지 못하지만, 네메스의 눈의 중심에 있는 성의 위치는 정해져 있었다.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요트의 위에서 주변 풍경을 구경하던 테드는 등 뒤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매혹적인 수영복을 입은 사이나가 있었다.

장식이 없는 검은색의 비키니다. 비키니의 상의는 끈이 어깨가 아닌 목으로 이어져 있다. 홀터넥 비키니다. 새하얀 피부와 대조되어서 인지 굉장히 강조되어 보인다. 특히나 비키니에 감싸인 풍만한 가슴이 시선을 자꾸 끈다.

애써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탄탄한 복근이 보였다. 매끈해 보이는 복근은 무심코 손을 내뻗어 버릴 정도다. 아래로 검은색의 하의가 보인다. 테드가 보기엔 노출도 면에서 속옷 팬티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있다면, 천의 재질이 다르다는 것뿐일까.

새하얀 허벅지와 종아리는 보기에도 시원해보일 정도로 길었다. 군살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의 심플한 비키니가 그 몸매를 강조하고 있다. 심플 이즈 베스트다.

테드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사이나가 테드를 향해 다가왔다.

사이나는 테드를 향해 사과 주스가 담긴 투명한 컵을 그에게 건넸다. 테드가 얼떨결에 컵을 받아 들었다.

“……잘 어울리네. 그 수영복.”

머릿속에는 수많은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정작 입에서 나온 말은 본인 스스로가 생각할 정도로 시시하고, 상투적인 말이었다.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사이나가 살며시 웃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은색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느낌이다.

테드가 주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목은 마르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다. 몸이 성장한 탓인지, 아니면 어제 먹은 골드 익스프레스의 효과가 발휘하는 것인지, 그녀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가 자제하기 힘들어진다.

테드는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사각형의 파란색 수영복 한 장을 걸치고 있다.

작은 몸이었다. 보이는 피부도 하얗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몸이다. 그렇지만 남자라고 보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시선을 돌려 사이나를 바라본다. 자신과 달리 그녀의 몸은 컸다. 성숙한 성인의 몸이다.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사이나가 의아한 듯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테드는 문득 주위 환경을 되새긴다. 깨끗하고 거대한 호수 위에는 이 요트밖에 없고, 이 요트에는 자신과 그녀밖에 없다. 이 조용한 분위기를 방해할 인물은 아무도 없다.

영혼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는 남자의 본능이 꿈틀 거리며 기지개를 켜려는 순간이었다.

사이나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옆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크루즈 요트의 속도를 최고로 해놓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순식간에 도착할 줄은 몰랐다.

“……진짜 호수위에 있네.”

거대하고 신비한 성이었다. 거대한 성벽까지 있으며, 높은 첨탑까지 보유하고 있다. 성은 푸른색 일색이다. 호수와 비슷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한 순간에 온신경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크루즈 요트는 성의 근처에서 자동으로 엔진을 멈춘다.

성의 바로 아래, 호수를 바라본다. 당연히 단단한 지면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 다리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테드가 살펴보았다. 맑은 호수 아래에는 다리 같은 지지대가 하나도 없었다.

‘마법?’

마법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부유 마법을 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이 정도 크기의 성을 호수위에 세우려면 엄청난 양의 마나석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마나석을 꾸준히 교체해주어야 한다.

마법사로서 호기심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수상보행(Water walk).”

마법을 걸어 호수위로 점프한다. 테드의 양다리는 마치 지면을 밟는 것처럼 호수의 위로 착지한다. 잔잔한 호수라서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었다.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선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 바다위에서 뜨는 것은 가능해도 파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의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푸른색의 거대한 성문 앞에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때마침 유유히 아래로 헤엄치는 물고기가 보였다. 테드의 몸만 한 압도적인 크기였다. 가까이서 봐도 성의 아래에는 성을 바칠만한 건물은 없었다.

테드가 조심스럽게 성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테드의 손은 이윽고 푸른색의 강철로 만들어진 단단한 청문에 도착한다. 그 싸늘한 감촉을 느끼기도 전에 테드의 몸이 튕겨나갔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힘이 테드의 몸을 밀어낸 것이다.

날아가는 와중에 테드는 마력이 한 순간에 동결되는 것을 느꼈다. 수상보행 마법이 사라지고, 마력이 동결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마법을 사요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호수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테드가 호수에 빠지기 직전, 따뜻하고, 푹신하고,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 목덜미를 통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리자 사이나가 있었다. 그녀는 테드의 몸을 양팔로 단단히 붙잡고 있다.

사이나는 호수위에 서있다. 테드와 마찬가지로 수상보행 마법을 펼친 것이다. 수상보행은 하급의 마법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마법이다. 공격용 마법이 아니라 익히는 마법사가 적어서 유명하지 않을 뿐이다.

“괜찮으신가요?”

“……아. 응. 괜찮아. 미안한데 선상으로 올라가줄래?”

마력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이나의 품에서 벗어나면 그대로 호수에 빠질 것이다.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면을 박차고 가볍게 도약해 요트의 선상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아쉬움을 느끼며 푸른 성을 바라봤다.

동결된 마력은 거짓말처럼 다시 움직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약 40초 정도가 마력이 동결되었다. 40초 정도면 호수에 빠졌다고 해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테드는 수영도 할 줄 알았다.

“……마법도 정령도 아닌 힘이야. 마력은 강제로 동결 당했고… 과연 시스템이 보호하

고 있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나.”

고결한 눈을 발동해 성을 바라본다. 투시할 생각이었는데… 투시가 조금도 되지 않는다. 미궁과 마찬가지다. 테드가 약하게 혀를 찼다.

“주인님의 마법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가 보군요.”

“시스템은 이 세계의 법칙이니까.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건…….”

사이나의 말에 무심코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투시가 발동중이었다. 시스템에 의해 푸른 성을 투시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의 내장이 선명하게 전부 보였다.

황급하게 투시를 그만두고 말을 잇는다.

“세, 세계가 보호하고 있다는 거니까.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아, 아마 운석이 떨어져도 저 성은 무사할걸.”

“그렇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당황하시는지?”

“아, 아니. 속까지 예쁘구나 싶어서.”

스스로 말하고서도 아차 싶었다. 이 투시능력은 사이나도 모르는 능력이다. 아니, 스킬 ‘고결한 눈’을 모른다. 말한 적이 없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사이나의 미간이 약간 찡그러졌다. 무슨 뜻인지 다시 되물으려는 찰나, 테드가 얼버무리듯이 말을 이으며 요트의 내부로 들어간다.

“성을 한 번 둘러보고 적당히 놀다가 돌아가자.”

============================ 작품 후기 ============================

내장미인 사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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