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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메스의 눈
후하하. 바론이 호쾌하게 웃었다.
거리낌 없이 웃는 그 모습에 테드의 한 쪽 눈썹이 찡그러졌다. 그가 듣기엔 무언가 작위적인 웃음이었다.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버릇처럼 웃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오는 웃음 같았다.
“테드 크루시안! 알고 있다고! 루크에이스의 모험가지?”
바론의 말에 테드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테드는 제법 유명하고 신문만 자세히 본다면 이름 정도는 어디서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나 재작년에 있었던 실버 울프 클랜과의 클랜 워는 대륙 전체에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이젠 루크에이스는 아니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서 몰라. 용병 중에 아는 사람도 없어.”
“난 튜덕스의 용병이었지. 거기에선 제법 유명했지만… 다른 곳에선 뭐, 그럭저럭인 용병이야. 그리고 테드, 너처럼 환생자지!”
“그거 참 반갑네.”
말과 달리 테드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 와서 환생자를 보고 반가워 할 시기는 아니었다. 모험가와 용병 중에선 환생자가 심심치 않게 있기에 오히려 익숙한 편이다.
바론이 다시 후하하, 웃자 테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는 간단히 넘어가지 않고 입을 연다.
“웃지 마. 물고기가 달아나잖아.”
“초면에 너무한데! 그렇지만 그것도 그렇군. 오케이. 오케이. 낚시꾼으로서 조용히 해야지. 안 웃을게.”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바론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입에 달린 미소가 사라지진 않았으나, 시끄럽게 후하하 웃는 일은 없었다. 거기에 물고기를 잡을 생각도 있는지 목소리로 낮춰서 말한다. 테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수를 바라봤다.
“근데 말이야.”
바론이 운을 뗐다. 테드의 말 때문일까. 아까처럼 천박한 기색은 없었다.
“지구 출신이야? 의외로 환생자 중에서 전투계 직업은 지구 출신이 없단 말이지.”
“지구 출신이야. 그쪽도?”
테드가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바론이 기쁘다는 듯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뾰족한 보라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왜 저런 기괴한 머리 스타일을 하는 걸까. 어쩌면 미래 지구의 패션일지도 모른다고 테드가 실없이 생각했다.
“음음! 거기에 추가로 설명하자면 한국인이지. 아, 한국에 대해서 알려나?”
“모를 리가. 나도 한국인이었으니까.”
바론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구 출신 중에서 한국인은 적다. 가장 심심치 않게 볼 수 있
는게 미국과 유럽쪽이다. 아, 중국 쪽도 빠질 수 없다. 인구수가 깡패다.
“이거 진짜 반가운데… 고향 사람을 만난 기분이야!”
“…….”
테드는 순간적으로 바론의 말에 대응할 수 없었다. 뒤늦게 그의 말이 한국어인 걸 깨닫고서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한국어 인지라 반응하는 게 늦었다. 그저 기억 속에 있는 언어를 듣는 것 뿐일텐데… 굉장히 반갑게 느껴졌다.
“나도 여기서 한국어를 듣게 될 줄은 몰랐어.”
테드 또한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말했다. 너무 오래 돼서 잊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지만, 스스로가 말하고서 깜짝 놀랐다.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네메스어’라고 하는 공용어를 사용한다. 문명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민족을 제외하면 어디를 가도 네메스어를 사용하기에 언어 때문에 곤란할 경우는 없다. 환생자는 환생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네메스어를 알고서 시작한다. 읽고, 쓰고, 듣는 것에도 문제없다.
“한국어를 들으니 엄청나게 반가운데!”
바론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테드를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앞에 있는 낚싯대가 격렬하게 흔들 거렸다.
“오, 이런.”
바론이 재빠르게 낚싯대를 들었다. 여기선 보이지 않는 호수안의 물고기와 사투를 시작한
다. 테드가 그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자신이 먼저 낚시를 했는데 정작 뒤늦게 온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고 있다.
낚시 가게 주인이 호언장담한 떡밥이었는데…… 당장 가게에 쳐들어가 가게 주인에게 따지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바론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봤다.
바론은 능숙하게 물고기와 씨름을 하더니 순식간에 물고기를 낚아채 뜰채에 넣었다.
바론의 팔뚝만한 물고기였다. 회색빛 비늘의 물고기를 힘차게 움직여 뜰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처음 보는 물고기인데… 맛있으려나?”
바론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테드가 자신의 낚싯대를 쳐다봤다. 미동도 없다. 받침대에 낚싯대를 걸고서 몇 분 정도 지났더라?
옆에서 손쉽게 물고기를 낚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르지만 자존심이 자극 받았다. 테드가 자신의 낚싯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응? 아직 잡지 못했어? 내 미끼 좀 빌려줄까?”
바론이 후하하 웃었다. 테드가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렇게 웃지말라고 했는데도 버릇인양 시끄럽게 웃는다.
“네가 시끄럽게 웃으니까 물고기가 안 낚이는 거야.”
“실제로 낚였는데.”
바론이 자신의 뜰채를 들어올렸다.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고 있다.
“겨우 팔뚝만한 작은 물고기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대물이 뭔지 보여주지.”
테드가 자신 있게 말했다. 말하지만, 테드는 낚시가 처음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 은 아니었다. 낚시용품에 들어간 비용만 해도 얼마인가. 현질러의 자신감이다.
바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테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낚싯대를 노려봤다. 입질은 오지 않았다.
“테드.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낚시에 집중하고 있자니, 바론이 목소리를 척 깔고 물어왔다. 테드가 말하라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판타지 세계?”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지. 하지만 내가 묻는 건, 주관적인 질문이야. 주관적으로 대답하라고?”
“…….”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론을 쳐다봤다.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 쉽게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지구에 비하면 편의 시설도, 오락 문화도 뒤떨어진 세계야. 하지만 그래도 살만한
세계야.”
“…호. 역시 나랑은 좀 다르네. 나는 게임같은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이 세계는 게임과 닮아 있다. 미궁의 경우엔 가상현실게임을 그대로 구현했다 해도 믿을 정도다.
“게임같지만, 엄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야. 그야 처음에는 돌아가고 싶다고도 생각했는데…….”
“했는데?”
지금 생활이 떠오른다. 사이나와 함께 하는 생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만족하고 있었다. 지구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다르게 생각해. 이 세계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같은게 있지만, 그렇기에 평화가 소중한걸 알아. 살아가는 것에 문제는 없어. 왜 조금 더 빨리 깨닫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울 정도로.”
“아, 그래.”
바론이 대답했다. 그의 낚싯대가 흔들렸지만, 바론은 신경도 쓰지 않고서 테드를 바라봤다. 어딘가 실망한 눈초리로 테드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윽고 씩 웃었다.
“내가 볼 땐 보너스 목숨 같은 거야. 원래 우린 환생하기 전에 죽어야 했어. 죽어서 사라져야 했지. 그런데 왜 여기에 다시 환생했을까?”
“…….”
그건 테드가 대답해줄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바론 또한 대답을 바라지 않았는지 쉬지 않고 말을 잇는다. 그는 흥분해 있었다. 이마 중간에 있는 틈이 꿈틀 거리더니 제 3의 눈이 모습을 드러낸다.
“보상이야! 어이없게 죽은 우리들을 가엽게 여긴 누군가의 보상이지! 이 세계는 게임판이고, 우리는 플레이어야! 주민은 NPC! 몬스터는 경험치! 시스템은 게임의 룰! 최고로 짜릿한 게임이잖아! 안 그래?!”
“…….”
테드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진다. 검은색 보석같은 같은 눈동자가 바론의 보랏빛 눈동자 3개가 허공에서 부딪힌다. 흥분해 있던 바론이 돌연 눈꼬리를 접었다. 이마에 있던 3번째 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후하하! 농담이야. 농담. 이 세계가 게임일리 없잖아. 아, 역시 내 농담은 통하지 않네.”
바론이 넉살좋게 웃으며 재빨리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검은색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처음에 잡았던 물고기와 크기는 비슷했다.
테드가 자신의 낚싯대를 바라봤다. 조금의 미동도 없다. 처음 그대로다. 인상을 구기며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떡밥은 풀어져 있어서 정말 조금이 남아 있었다. 분명히 가게 주인이 가르쳐주는 적당량을 주물러서 달았는데 이 모양이다.
테드가 바늘을 회수했다.
“미끼 빌려줄까?”
옆에서 바론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자존심이 퍽 상했다.
“……인생은 한 방이지.”
낚시 가게에서 구입한 떡밥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조금의 낭비도 없이 전체를 주물럭
거려 둥글게 만든다. 남아 있는 떡밥을 전부 사용하니 거의 축구공만한 크기였다.
테드가 만족스럽게 웃었고, 바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바늘에서 떨어질 것 같은데.”
“평범한 바늘이라면 그렇지.”
최고급의 바늘이다. 가격만 해도 엄청나다. 이 정도의 무게는 충분히 견딘다. 문제는 떡밥의 점성이다. 호수에 던져진 순간 산산조각 나서 풀어질 위험이 있다. 떡밥을 통째로 던지는 꼴이다. 그건 피하고 싶기에 살짝 마법을 걸어 점성을 강화시킨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테드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낚싯대를 받침대를 고정시키고 떡밥을 양손으로 들어 호수 쪽으로 집어 던졌다.
풍덩, 축구공 같은 떡밥이 호수 속으로 사라졌다.
바론이 보기엔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다. 떡밥을 저렇게 뭉쳐놓으면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들어 야금야금 먹을 뿐이다. 바늘이 너무 적어서 낚는 게 불가능했다. 괜히 먹이만 준 꼴이다.
테드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도 깊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어차피 곧 있으면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론은 다시 입질이 오는 낚싯대를 잡았다. 오늘따라 운이 좋은지 빠르게 입질이 온다. 자리가 좋은 것일까.
그리고 동시에 테드의 낚싯대에도 입질이 왔다. 바론은 물고기의 몸이 떡밥과 부딪혀 생긴 충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실히 떡밥을 물었는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다.
테드가 깜짝 놀라 받침대에서 낚싯대를 집어 들었다. 낚싯대의 마법 릴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마법 낚싯대가 아니었다면 이미 훨씬 전에 놓쳤을 것이다.
‘어, 엄청난 놈이다!’
테드는 낚싯대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을 느끼고 곧바로 마력을 움직였다.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시킨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낚싯대 채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을 확인한 바론이 흔들리는 자신의 낚싯대를 잊고 입을 떡 벌리고 테드를 바라봤다. 축구공만한 떡밥이다. 그걸 한입에 삼키는 물고기가 설마 존재했나. 아니, 이 호수에는 상어도 살고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설마 하지만, 상어가 떡밥을 물었나? 이 판타지 세계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도와줄까?”
바론이 다급히 물었다. 테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혼자서도 충분해! 오버 리미트(Over Limit)!”
상급의 신체 강화 마법을 발동시킨다. 그러자 낚싯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힘이 좋은 녀석인지 쉽사리 따라오지 않는다. 테드가 연속으로 강화마법을 사용한다.
신체 강화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얼마간의 사투 끝에 테드는 놈을 호수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크기는 테드보다 약간 더 컸고, 그 몸은 황금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황금빛 물고기는 테드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팔딱거리고 있었다. 그 기세가 엄청났다. 테드는 물고기를 끌어낼 때의 반동으로 소파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행운 능력치가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것일까. 주변에 있던 낚시꾼들이 테드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이, 이것은! 환상의 물고기! 골드 익스프레스!! 말로만 들었는데… 설마 실존했을 줄이야!”
“맛만 따지자면 드래곤 고기에 버금간다는 그….”
“정기가 뛰어나, 여자가 먹으면 미용효과가 있고, 남자가 먹으면 밤이 기다려진다는 효능을 가지고 있지!”
“내, 내게 팔게. 일부라도 좋네. 돈이라면 많이 주겠네!”
바론이 어이가 없는 눈으로 테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상의 물고기? 그딴 건 처음 듣는데, 그걸 잡은 테드는 또 뭔가. 떡밥을 덩어리로 뭉쳐서 미끼로 사용하면 잡을 수 있나?
테드는 자신이잡은 황금 물고기를 보았다. 주위에 가까이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거세게 팔딱거리고 있다.
“아, 안 팔아! 골드 익스프레스! 넌, 내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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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능력치 O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