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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67화 (67/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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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네메스의 눈

11. 네메스의 눈.

루크에이스의 공략은 미궁 92층에서 허무하게 끝을 맞이했고, 테드와 사이나는 루크에이스를 떠났다. 본래 3년 동안은 루크에이스에 머물러 적당히 실력을 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이상으로 빠른 성취를 보였고, 루크에이스 공략대의 활약이 알려져 A등급의 모험가가 될 수 있었다.

루크에이스를 빠르게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여행’쪽에 의미가 컸다. 본래는 곧바로 펠리스 왕국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예정을 바꿔 중립지대의 중심인 ‘네메스의 눈’을 들린 뒤, 루크에이스와는 기후가 정반대인 중립지대에 있는 또 다른 미궁인 디스본을 들렸다가 갈 생각이다.

루크에이스의 공략은 후에 정확히 23명의 희생자를 확인했다. 정예 모험가들의 죽음은 슬프지만 공략은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 본래는 완전히 공략할 생각이었지만, 90층을 돌파하고 92층에 관한 정보까지 손에 넣었다.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것이다. 완전한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루크에이스의 주민들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천랑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칭송을 할 정도로 미궁은 공략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

테드는 새하얀 함박눈이 내리는 루크에이스를 한 번 보고서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동안 사용했던 저택도 제법 괜찮은 가격에 팔 수 있었고, 괜찮은 가구나 물건들은 이미 아공간에 챙겨두었다.

루크에이스 중립지대의 중심인 네메스의 눈이 있는 곳 까지 향하는 기간은 약 3주로, 테드와 사이나는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미궁이 아닌 곳에서 노숙을 하는건 오랜만이라 생소한 기분도 느껴졌다. 다행인 점은 곁에 사이나가 있어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는 점이다. 무언가 불편하다고 생각되면 말하지 않았는데도 여지없이 사이나가 나타나 해결한다.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지… 테드는 그녀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아도는 시간에 느긋하게 움직여 네메스의 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네메스 눈을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그곳의 이름은 ‘제텍스’ 마을이라 하기엔 제법 컸고, 도시라 하기엔 조금 많이 작은 느낌이었다. 마을의 위쪽에 네메스의 눈이 있기 때문에, 네메스의 눈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순간부터 관광마을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유명한 마을이다.

관광마을인 만큼 입구에서부터 여관같은 숙박시설이 줄지어있다. 사람도 제법 많아서 가격도 싸고, 질도 좋은 유명한 여관의 경우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고객이 자리 잡았거나, 예약까지 되어 있어 구하는 것이 힘들었다.

물론 테드와 사이나는 굳이 힘들게 싸고 좋은 여관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호텔, 최상급의 숙박시설인 그곳을 빌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호텔이라기보다는 콘도미니엄이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사치스러운 주택을 통째로 빌린 것이다.

별장같은 곳으로 테라스에서 거대한 호수, 네메스의 눈이 훤히 보인다. 경치와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무수히 많은 콘도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곳이다. 건물만 해도 귀족의 저택처럼 세련되어 있으며, 보안이나 방범까지 확실하게 마법으로 방비되어 있었다. 덤으로 개인 수영장이 테드의 마음에 쏙 들었다.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하루 숙박비만 들어도 웬만한 부자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가격이다. 테드는 이 콘도를 일주일을 빌렸는데 무려 루크에이스의 주택을 팔고 받은 돈의 7할을 사용해야 했다. 듣기로는 이 콘도는 원래 개인 소유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소유자는 유명한 상단 ‘레드 크로니클’의 간부 중 한사람이의 것이었다 한다.

레드 크로니클. 마도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단이다. 지구로 따지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유명한 대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이 개인별장은 그 레드 크로니클의 간부였던 사람이 네메스 대륙에 있는 별장을 정리하면서 상업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테드는 이 콘도가 마음에 들어 단숨에 계약했지만, 그의 옆에 있던 사이나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다른 시설과 비교하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좋은 시설인 것은 인정한다. 시설 안에 있는 편의를 위한 마법들은 그 하나만을 설치하는 것에도 무수한 돈과 수고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건물 또한 나쁘지 않았다. 가격 대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 쪽이 좋았다. 작지만 개인 수영장도 있었다. 편의를 위한 마법은 없지만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떠날 곳이었다. 굳이 마법이 없어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이나는 테드를 말리지 못했다. 그 돈은 전부 테드의 돈이고, 그녀는 메이드일 뿐이다. 놀라울 정도로 많이 사용했지만, 테드의 재산을 알고 있기에 이 정도의 사치는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이런 식으로 생활할 수는 없다. 돈은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사이나는 어쩌면 하는 생각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테드와 자신을 상상했다.

테드의 어처구니없는 금전감각을 생각하면 실현될 가능성도 적지만 있었기에 그녀의 안색은 밝지 못했다.

테드는 금전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벌면 된다고 시원하게 생각했다. 그는 어린 외모와 달리 그 속에 있는 지식과 정신은 대마도사다. 돈이 궁하면 적당한 비전 마법 한 두 개 정도 팔면 된다. 그럼 돈이 썩어날 정도로 많은 마도사들이 좋다고 달려들 것이다.

“음. 패션은 완벽해.”

테드는 콘도의 무수히 많은 방 중, 가장 좋은 방을 자신의 방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한구석에 있는 전신거울의 앞에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의는 푸른색의 알록달록한 알로하 셔츠고, 하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통이 큰 반바지다. 신발은 피부가 고스란히 노출된 황색의 샌들이다.

화룡점정으로 얼굴위에는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선글라스라 어두운 시야는 어색하기만해서 테드는 투시를 사용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게 주위가 보인다. 선글라스는 패션용일 뿐이었다.

테드가 몸을 획 돌렸다. 그의 뒤에는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성인 3~4명이 누워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을 정도로 큰 침대다. 마법이 걸려 있는 침대라 굉장히 편안하다. 그 침대 이불 위에는 직사각형의 상자와 제법 커다란 아이스 박스가 있다.

침대에 다가간 테드가 직사각형의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문양이 박힌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담겨 있는 낚싯대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이지만, 낚싯대 손잡이 끝부분에 있는 캡은 금색으로 고급스럽게 치장되어 있다. 검은색 손잡이 부분과 은색의 릴만이 보인다.

이 낚싯대는 콘도 근처에 있는 유명한 낚시가게에서 200골드를 지불하고 얻은 최고급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의 장인이 정성을 들어 부품을 만들고 조립한 것으로도 모자라 실용성이 높은 마법까지 떡칠한 최고 걸작 낚싯대다.

낚시 가게 주인은 이 낚싯대를 입을 마르도록 칭찬했다. 듣기로는 마법이 걸려 있어, 초보자가 다루기에도 문제없다고 한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은 낚싯대가 알아서 신호를 주고, 릴 또한 알아서 감기니 낚싯대를 들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한다. 롤러 등 마법기능을 키거나 끄면서 설정할 수 있기에, 낚시 손맛을 원하면 직접 설정하면 된다고 했다.

더군다나 낚싯줄. 이것도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소량의 미스릴이 섞여 있기 때문에 끊어질 걱정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사용해도 된다고 한다.

테드가 낚싯대를 손에 쥐었다. 착감기는 그립의 손맛이 일품이다. 금색의 캡을 살짝 돌리자 낚싯대의 내부에서 가이드가 튀어나와 길어진다. 순식간에 길어진 낚싯대를 들어 올린다. 생각보다 굉장히 가볍다. 괜히 초보자에 맞는 최고 걸작 낚싯대가 아니었다.

오른손에 잡은 낚싯대를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왼손으로 아이스 박스를 들었다. 테드가 흡족하게 웃었다.

지금 현재 사이나는 이 마을의 특산물을 찾기 위해 밖에 나가있는 상태다. 그녀에게 휴가를 주었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며 말했기에 강제로 말리기도 뭣했다. 테드는 그런 사이나를 위해 저녁부터 함께 보내줄 시간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모처럼 온 이곳에서도 일을 찾아서 할 게 뻔했다. 그녀를 쉬게 하려면 옆에 붙어서 감시를 해야 했다.

“블링크.”

테드의 몸이 사라지고 콘도의 입구에 나타난다. 시설이 너무 넓어서 입구까지 걷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귀찮다는 이유로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본래 블링크는 시야가 닿지 않으면 발동할 수 없지만, 벽을 투시하는 것으로 그 조건을 클리어 했다. 남들이 보기엔 블링크라기 보다는 텔레포트에 가까웠다.

입구의 대문을 나서자 바깥의 시원한 바람이 테드를 훑고 지나갔다. 테드는 완전히 여름의 복장을 하고 있으나, 그곳의 계절은 여름이 아니었다. 따뜻한 봄이 한창이다. 테드의 옷은 어디까지나 휴가 기분을 내기 위해서다. 지금 날씨에선 시원하다는 것 빼고는 실용성이 없다. 대낮이니 이렇지, 저녁만 되면 피부가 으슬으슬해질 정도로 날씨가 싸늘해질 것이다.

테드는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훑었다. 고급 펜션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의외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큰길로 나가자 그제야 사람들이 보였다. 온갖 종류의 종족들이 있었는데 유난히 엘프가 많이 보였다.

제텍스에 있는 네메스의 눈에는 3개의 구역이 있다. 하나는 물놀이를 위해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마법으로 구현한 수상레져를 즐길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뱃놀이를 위한 구역이다. 여기서 배를 빌려 호수의 깊은 곳까지 갈 수 있다. 네메스의 눈 중심에 있는 거대한 성을 배를 타고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세 번째 구역이 오늘 테드의 목적지인 낚시구역이다. 이 호수, 네메스의 눈은 낚시로도 유명하다. 이 거대한 호수 안에는 담수어, 해수어, 기수어 등의 모든 종류의 물고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어도 서식하는 곳이다. 속되게 말해서 생태계가 개판인 곳이다. 어떻게 이 호수 안에 있는 생태계가 유지되는지 미스테리 할 정도다. 가장 유력한 설로는 시스템의 관리설이다. 호수안의 생태계를 시스템이 직접 관리해서 온갖 종류의 물고기가 있어도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것 때문에 ‘네메스의 눈’은 시스템의 어항, 혹은 시스템의 수족관이라고도 불린다.

신기한 점은 이 호수에 몬스터가 없다. 아니, 네메스의 눈 근처에도 서식하는 몬스터가 없다.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몬스터가 이곳을 꺼려해 다가가지 않는다. 네메스의 눈 바로 아래에 있는 제텍스는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마을이다.

테드의 숙박지에서 가까운 낚시구역에 도착한 테드는 주위를 살폈다. 저마다 호수 앞에 앉아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 나이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중년이고 간혹 가다 청년 몇 명이 보였다. 테드 또래의 애들은 보이지 않았다.

테드는 적당히 좋은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한쪽 구석을 발견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그늘이 져있는 제법 괜찮은 장소다. 더욱이 주위에 사람도 얼마 없다. 그곳으로 걸어간 테드는 아공간에서 푹신한 소파를 꺼냈다. 루크에이스의 집에 있던 소파다. 테드가 누워도 공간이 남는 커다란 소파였다.

소파에 앉은 테드가 아공간에서 낚시 가게에서 구입한 떡밥을 꺼낸다. 가게 주인이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는 비법을 이용해 만든 떡밥이다. 이것만 있으면 대물 정도는 손쉽게 낚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가게 주인이 알려준 대로 적당량의 떡밥을 덜어서 낚시 바늘에 꽂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낚싯대를 젖혀 바늘을 던진다. 퍽!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테드가 등뒤를 바라봤다. 떡밥이 나무에 부딪혀 박살나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첫 시작부터 영….’

병찐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테드가 거추장스러운 선글라스를 벗어 아공간에 집어넣고서 다시 떡밥을 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같은 실패는 없었다. 제대로 호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한 손으로 낚싯대를 잡은 테드가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

3분 정도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잠이 솔솔 왔다. 테드의 귀차니즘이 폭발하는 것이다. 테드가 아공간에서 낚시 가게에서 구입한 받침대를 꺼내서 빠르게 설치하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지나가던 낚시꾼이 웬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소파에 누워 푸른 호수를 바라봤다.

‘이게 바로 평화지.’

낚시고 나발이고 일단 한숨 잘까, 생각하는 중이었을 때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좋은 자리네? 나도 여기서 낚시해도 될까?”

테드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성게처럼 삐죽삐죽한 특이한 모양의 보라색 헤어스타일을 가진 젊은 청년이 있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의 이마에는 갈라진 틈이 보였다. 레안족이다.

그는 꽃무늬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반팔의 틈에서 보이는 근육을 보면 평범한 일반인은 아니다. 휴가차 제텍스에 온 것인지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양손에 들고 있는 것은 커다란 낚시 가방과 용품들이다. 테드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내가 전세 낸 것도 아니니까.”

상대가 먼저 반말을 내뱉었기에 테드 또한 거리낌 없이 반말을 사용했다. 그는 테드의 반말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사람 좋게 웃으며 테드의 옆에서 낚시용품을 풀기 시작했다.

간이 의자를 비롯한 뜰채, 떡밥, 낚시대 등 용품들은 모두 새것이었다. 그 중에 몇 개는 뜯어보지도 않았는지 포장지에 감싸여 있다. 낚시 도구는 렌탈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 의아했다. 자신처럼 돈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는 낚시 경험이 있는지 능숙하게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낚시 바늘에 미끼를 끼워서 호수에 던지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 할까? 난 바론 크로우. 지나가는 용병이지!”

그가 약간 장난스럽게 자신을 소개했다.

용병이란 말에 멈칫한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에서 용병은 평판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테

드는 곧바로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편견은 좋지 않다.

“인연이랄 것까지야…. 난 테드 크루시안. 지나가는 모험가지.”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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