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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66화 (6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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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정확히 73명의 모험가가 공략대에 남은 전부였다. 나머지 47명의 모험가 중 죽음이 학인된 모험가는 약 2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귀환부를 사용해 미궁을 벗어났거나 실종되었다. 추측이 그렇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70명의 모험가들은 스스로 다음 층으로 향할 것을 선택했다. 그들은 누구의 강제도 없이 스스로 결정한 사항이다. 91층의 특이 사항도 그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이프티 존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테드를 비롯한 일찌감치 세이프티 존에 도착한 모험가들은 충분히 휴식을 취했지만, 뒤에 도착한 모험가들은 전혀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일지라도 낯선 환경에 의해 과도한 긴장상태가 계속되어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을 것이다.

다음날 공략대는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쉐도우 비스트의 습격은 없었다. 70명이 넘는 공략대가 모여 있기 때문일까. 92층으로 향하는 동안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다음층으로 향하는 석문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석문의 앞에서 천랑의 짧은 주의사항을 듣고서 그들은 문을 열었다. 석문을 열자 계단이 나타났다.

얼마 안 되는 좁은 계단을 전부 올라가자 좁은 통로가 나왔다.

천장의 높이는 4M 정도이고, 통로의 폭은 3M정도다. 70명이 함께 움직이기에는 말도 안

되게 좁았으며 천장의 내부에도 컴컴했다. 천장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나, 간신히 앞길을 구분할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흩어지지 않아서 다행이군.”

천랑이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그 말과는 달리 조금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좁은 통로. 후위의 지원이 거의 불가능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고작해야 전위에 있는 3명이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방법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중층이라면 몰라도 이곳이 최상층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천랑은 공략대 전부와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레인저 몇 명과 함께 전위에 서면서 직접 공략대를 이끌었다.

91층은 어떤 의미로 편했다. 미궁의 함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통로의 경우에는 함정을 총망라한 듯 엄청난 수의 함정이 곳곳에 있었다.

앞에서 길을 살피던 레인저가 질릴 정도의 양이었다. 인원도 많다보니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제거할 수 있는 함정은 제거하고, 그러지 못하는 함정은 공략대에게 알려서 피해간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공략대 전체가 움직일 수 없다. 자유를 속박하는 듯한 답답한 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층이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이 92층이 미로라는 점이다. 길을 걷다보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그럴 경우에는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70명의 모험가들이 최적의 위치를 다시 배치해야하기 때문에 적잖은 시간과 귀찮음이 따른다. 힘들지는 않으나 짜증을 유발시키는 일이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더군다나 아직 몬스터가 나오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불안요소였다. 미지의 몬스터.

이 좁은 통로에서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 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제법 화기애애한 공략대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전부 말을 잃었다. 전원 묵묵하게 통로를 걸을 뿐이었다. 괜히 입을 열어봤자 불만만 터져나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몬스터가 나온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였다. 공략대의 앞이 아닌 옆, 그러니까 줄지어서 통로를 지나고 있는 공략대의 옆… 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돌을 갈아서 만든 듯한 날카로운 칼날이 벽에서 뻗어 나와 가차 없이 모험가들에게 휘두

른 것이다. 인기척이란 것이 없이 조용히 뻗어 나왔고, 대상이 된 모험가는 그대로 팔이 베였다. 다급히 주위에 있던 모험가들이 벽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으나, 미궁의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흠집이 나도 곧바로 벽은 재생되어 버린다. 미궁의 벽을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빌어 먹을! 갑자기 벽에서 나타나다니 쉐도우 비스트 같은 놈인가?!

모험가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불만이 부서진 독처럼 쏟아진다.

“기생석(The Ston parasite)이야. 마법 생물에 가까운 녀석들인데…….”

흑갈색의 로브를 뒤집어 쓴 여마법사가 말했다. 천랑은 다크 서클이 진한 여마법사, 마리아를 향해 걸어갔다. 자세히 묻기 위해서다.

“그 기생석이란 것은 어떻게 처치해야 하지? 부탁이네. 알고 있는 걸 가르쳐 다오.”

“……나도 자세히는 알고 있지 않아. 대충 들은 것뿐이야.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아예 없는 것 보다 났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기생석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기생석은 이름 그대로 돌에 기생하는 생물이야. 아주 옛날에 마법 생물로서 창조되었어. 먹는 것은 따로 없고 그저 돌에 스며들어 조용히 살아갈 뿐이야. 공격 본능도 없어서 건드리지만 않으면 나타나지 않아. 몸을 분열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걸로 알고 있어.”

“……마법 생물. 골렘같은 건가?”

“비슷해. 다만, 핵같은게 없어. 기생하는 돌을 부수면 기생석은 다른 돌로 기생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그때 해치우면 돼. 이 경우에는… 미궁의 벽을 부수면 되겠네.”

천랑은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을 애써 억누르며 마리아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깊게 캐묻고 싶으나… 마리아의 얼굴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본인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당장 바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리아,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기생석을 해치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궁의 벽은 시스템으로 인해 보호받고 있다. 강력한 공격을 퍼부어도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작해야 흠집을 내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 흠집은 빠르게 회복되어 미궁의

벽은 원상 복귀된다.

미궁의 벽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예를 들면 함정과 관련된 벽이라면 부수는 것도 가능하다. 함정이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시스템이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미궁의 벽은 게임으로 치자면 파괴불가 오브젝트에 가깝다.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형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천랑은 공략대에게 기생석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당연하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서 불만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모험가들은 이 통로에 있는 한 공격을 받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랑으로선 모험가들을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클랜원이었다면 권력을 이용해 불만을 일시적으로 찍어 눌렀을 것이다. 아니, 그녀에게 불만을 낼 수 있는 실버 울프 클랜원이 있을지 조차 의문이다.

팔이 잘린 모험가는 성법사들의 재빠른 조치 덕분에 큰 탈 없이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모험가 생활에도 지장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흘이 지난 뒤였다.

미로같은 미궁은 엄청나게 넓어서 아직 세이프티 존도 찾지 못했다. 레인저들이 지도를 그리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미궁의 미로는 계속 바뀌는 것인지 지도는 무용지물인 쓰레기로 전략했다. 그런 와중에서 드디어 모험가 중 한명에게서 불만이 나온 것이다.

천랑이 우려했던 일이었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로 좁은 통로는 걷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무언가가 전혀 없었다. 햇빛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며, 시원한 샤워도 불가능했다. 함정을 조심해야했고, 벽속에서 튀어나오는 기생석을 주의하며 몸을 긴장시킨 채 걸어야 했다. 정글을 91층의 정글을 헤메는 쪽이 훨씬 편했다.

불만을 나타낸 것은 전위를 맡는 전사였다. 솔직히 천랑은 함정을 파악하는 레인저 쪽에서 참지 못하고 불만을 표출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이건 예상밖이었다.

“난 못하겠어! 이젠 한계야! 빌어먹을 감옥같은 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천랑이 두 눈을 감았다.

천랑은 그를 달래볼까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여자처자해서 달랬다고 치자. 하지만 그 다음은? 이 미로에 대한 확신한 공략법이 없는 이상 다른 모험가들에게서도 불만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들 모두를 어르고 달랜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임에도 틀림 없다. 그렇지만 한계는 찾아올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겠지. 그리고 그건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공략대는 천랑, 그녀 스스로가 시작했고, 그녀의 의견에 따라 끝을 마쳐야 한다.

고민 끝에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불만을 표한 전사가 아닌 그 뒤에 있는 모험가들 전원에게 말한다.

“솔직히 무리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 더 이상은 한계라고 나도 생각하네. 차라리 여기보다 감옥이 더 나으면 나았지. 거긴 적어도 목숨을 위협받진 않으니까.”

천랑은 휴식시간이면 모험가들을 찾아갔다. 혹시 좋은 의견이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여기저기 움직였다. 그녀 혼자로서는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드 또한 천랑의 말에 생각해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패밀리어 마법은 함정이 만연한 이곳에서 효율이 전혀 없다. 패밀리어가 함정에 걸려 사라지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는 미궁의 벽을 마법으로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혹시나 싶어 벽을 투시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시스템의 개입인지 투시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시스템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루크에이스 미궁의 완전공략은 오만이었네. 우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포기하긴

이르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네. 그렇지만 내가 볼 때는 이미 공략은 실패 했네. 92층까지 온 것만으로, 최상층에 대한 정보를 일부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사람의 멘탈이라는 건, 강한 듯 하면서도 약하다. 정말로 강철처럼 굳건한 정신을 가진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빛조차 희미한 어두컴컴한 좁은 통로, 끊임없이 이어진 함정과 길. 방심하는 순간 곧바로 공격해 들어오는 기생석. 끝은 고사하고 세이프티 존마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절망적인 상황. 음식을 섭취해도 섭취한 것 같지 않고, 잠을 자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최악의 생활. 그 모든 것들이 스트레스가 된다.

92층의 미궁은 서서히 사람의 정신을 갉아 먹는다. 스트레스를 풀 거리가 전혀 없다. 몬스터는 미궁의 벽에 숨어 있어 처치하는 게 불가능하다. 기생석이 벽에서 나와 공격할 때를 노린다? 말은 쉽지. 쉐도우 비스트 이상으로 인기척을 숨기고 암습한다. 피하는 것이 고작이다. 처음에는 모험가들도 반격을 꾀했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쳐갔고, 지금에 와서는 반격은커녕 피하는 것도 힘들다.

“지금까지 운이 좋아 사상자는 없네. 그렇지만… 그것도 곧 한계라고 생각하네. 자네들은 지쳐 있고, 미궁의 끝은 보이지 않지. 그러니 나는…….”

천랑의 얼굴에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의 앞에서 불만을 표출하던 전사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상황에 무심코 불만을 표출했지만, 그녀를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천랑의 단호한 목소리가 모험가들의 귀에 전해졌다.

“공략 포기를 선언하네.”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얼마나 큰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지 천랑의 자리에 앉지 못한 모험가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결코 가벼운 것을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91층에서 죽거나 실종된 모험가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더 무거운,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모험가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적잖은 부담감을 주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일에 그녀도 상당히 지쳐 있었다. 생각해보면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날, 공략대는 약간이지만 삐걱거렸다.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천랑은 공략대에 더욱 주의를 쏟았다. 앞으로의 계획과 이름도 모르는 모험가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략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있을 정도다.

클랜과는 달랐다. 공략대장으로서 모험가들을 강제할 수 없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그럭저럭 명성이 높은 모험가들이기 때문에 자존심도 높았다. 강제로 무언가를 시키면 그 상황에서는 따를지언정 뒤에서는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이름도 출신도 모른다. 동료애 따윈 기대하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실력은 확실할 지라도 제대로 된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모험가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자체가 불안했다.

한식, 일식, 양식, 중식 등의 각양각색의 맞지도 않은 음식을 한 식탁위에 모아놓은 꼴이다.

미궁은 별다른 시간 없이 모여든 최정예 모험가들만으로 완전히 공략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천랑이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처음부터 너무 성급하게 모험가들이 모였다는 점이었다.

루크에이스 공략대는 92층에서 천랑의 선언으로 그 끝을 맞이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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