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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사이나와 지크는 얼마안가 밀림속에 있는 세이프티 존을 발견했다. 바닥이 초록색으로 되어 있어 구분하는 것은 쉬웠다. 세이프티 존에는 사이나보다 먼저 도착한 선객이 있었다. 바로 공략대의 책임자인 천랑이다.
그녀는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세이프티 존에서 정글을 바라보고 있다가 사이나와 지크를 보고 활짝 웃었다.
“잘 찾아 왔군! 자네들이라면 문제없을 줄 알았지.”
천랑을 포함해 약 20명의 모험가들이 모여 있었다. 모험가들은 앉아서 혹은 일어서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 보였다.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생각보다 심각하군. 다른 모험가들은 없나?”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모험가들의 숫자가 적었다.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래선 공략도 뭐고 할 수도 없다.
“아쉽게도 이 인원이 전부네. 자네 말대로 심각한 상황이지. 이 밀림이 생각외로 너무 넓네. 아까 검은 연기가 하늘위로 올라가는 걸 보았네만… 함정일 수도 있기에 가지 않았네.”
세이프티 존의 위치에 대해 알리는 방법으로 불을 피워 연기로 정글 곳곳에 있는 모험가들에게 알리는 방법이 있다. 문제점은 정글에 있는 적에게도 알리게 된다는 점이다. 세이프티 존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매복을 할 가능성이 높다. 쉐도우 비스트에게 그 정도의 지능은 없지만, 91층에 나오는 몬스터가 쉐도우 비스트만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10명 정도 더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수색을 보냈네. 뛰어난 레인저와 모험가들이지. 정글에 숨어 있는 쉐도우 비스트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네.”
공략대의 대장이 아니었다면 천랑 스스로가 움직여 밀림에 흩어진 모험가들을 찾아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녀는 공략대의 중심으로서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이 세이프티 존에 있는 것이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지?”
“…….”
지크의 물음에 천랑이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가 묻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마도 공략을 계속하느냐, 마느냐의 것의 물음이다. 91층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아무리 A등급의 모험가라도 각각 흩어진 상태에서 쉐도우 비스트의 기습은 위험하다. 특히나 개인 전투에 서투른 마법사나 성법사가 그렇다. 그들은 후위에서 보호받으면 안전하게 공격을 하는 위치다. 직접전투는 서투르고 암살에 약할 것이다.
천랑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포기하듯이 내뱉었다.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공략은 포기해야겠지. 실제로 몇몇 모험가들은 귀환부를 사용해 1층으로 이탈했을 테지.”
무단이탈이지만 이 상황에 한해서 뭐라고 할 수 없다. 모험가들이 제각각 떨어진 상태다. 변명은 충분하다.
“그리고 다음 층으로 통하는 입구도 발견하지 못했지. 자네도 귀환부를 사용해 이탈해
도 상관없네. 책망하지 않겠네.”
“천랑… 너는 어떻게 할 거지?”
“이래보여도 이곳의 책임자네. 자네처럼 공략대를 찾아 움직이는 모험가들도 있으니 그들을 기다리거나, 찾아야겠지.”
“나도 모험가의 일원이다.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기다리다가 영 안되면 수색을 하도록 하지. 보니까 이곳엔 미궁의 지독한 함정이 보이지 않더군. 레인저가 없어도 상관없겠지.”
“도와주는 건가. 그건 감사하군.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게.”
지크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쉐도우 비스트로 인해 정글을 움직이는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언제 기습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쉐도우 비스트에 대한 걱정이 없는 세이프티 존에 도달하고 나서야 그 긴장이 풀렸다.
천랑이 테드를 안고 있는 사이나를 바라봤다. 쥐 죽은 듯 잠들어 있는 테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상황에서 태평하게 잘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일 있었나?”
“…….”
사이나는 말을 골랐다. 그녀의 입장에선 있는 그대로 말해도 상관없지만, 테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기억이다. 모험가로서 뒤로 자빠져 기절을 했다니… 놀림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사이나는 테드를 위해 대충 얼버무리기로 결정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차갑기 그지없는 사이나의 대답은 반론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하나 천랑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알 수 없는 기백에 밀린 천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마법의 후유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네들은 처음부터 같이 있었나?”
테드와 사이나를 보며 천랑이 물었다. 천랑의 경우엔 우연히 가까운 거리에 모험가가 있
었다. 또 손을 잡고 문을 통과해 함께 전이된 커플 모험가도 보았다. 아마도 신체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으면 흩어지지 않고 함께 전이되는 모양이다. 다음 번 공략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정보다.
“아뇨. 주인님과 저는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인님이 저를 먼저 찾아내셨죠.”
악마계약에 관해서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사이나가 악마란 사실은 네메드 대륙의 상식과 분위기를 생각하면 숨겨야 할 사실이고, 사이나를 긴급히 소환할 수 있는 스킬의 존재는 테드의 비장의 한수이기도 하다.
“……과연. 마법인가! 확실히 사람을 찾는 마법도 있을 테지!”
천랑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드가 깨어난다면 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 같아선 지금 당장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싶다. 그렇지만 그의 메이드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천랑이 조심스럽게 사이나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이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그를 깨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저기 말일세.”
천랑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그러나 그 말이 끝까지 나오진 않았다. 사이나의 품에 안겨 있던 테드가 몸을 조금 뒤척이더니 두 눈을 뜬 것이다. 비몽사몽한 듯 반쯤 감겨 있는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테드가 두 눈을 손으로 비비며 억지로 초점을 맞추었다.
“깨어나셨군요. 주인님.”
여전히 차가우나, 어딘가 부드러움이 느껴지는 사이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흐릿한 정신을 각성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사이나의 안겨 있는 것을 파악한다. 테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일어났어. …이제 내려주라.”
테드는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왔다. 땅의 색이 초록색인 것을 확인하고 이곳이 세이프티 존임을 눈치 챘다. 그가 주위를 한 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모험가가 많이 적다.
“면목 없네만, 자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네. 이 밀림에서 사람을 찾는 마법은 없나?”
천랑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담겨 있었다. 테드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짜, 내가 없으면 어쩔 뻔 했나…….”
주위에 있는 모험가들 중에선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마법사가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더 좋았을 것이다.
“탐색마법으로 숲 전체를 스캔하던가…. 패밀리어 마법으로 정글 전체를 뒤지는 수밖에 없어. 어느 쪽이든 마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은 같은데… 지금은 패밀리어 쪽이 더 낫겠
어.”
키메라 패밀리어(Chimera] Familiar).
테드가 마법을 발동하자 수 십 마리의 새와 쥐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부다 하얀색이고 약간의 마력을 품고 있다.
탐색마법으론 정글에 흩어져 있는 모험가를 단숨에 찾을 수 있지만, 그곳으로 데리러 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와중에 모험가가 움직이지 않는 보람이 없다. 단발성이기 지금같은 상황에서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패밀리어를 정글에 풀어 두면 정글에 흩어진 모험가를 패밀리어를 시켜 데리고 오는 것이 가능하다. 모험가가 패밀리어가 찾지 못하는 곳에 꼭꼭 숨어 있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정글로 곳곳으로 흩어지는 패밀리어를 보며 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패밀러와의 연결은 문제 없다. 원한다면 패밀리어와 시야를 공유할 수도 있다.
“자네는 여러 마법을 알고 있군. 우리 클랜의 마법사는 전투계 마법밖에 모르는데…….
정말 우리 클랜에 들어올 생각이 없나? 대우는 확실하게 해주겠네.”
“패밀리어 마법은 전투계는 아니지만 탐색과 추적을 목적으로 한 마법이야. 미궁에선 함정 때문에 그닥 효율이 좋지 않지.”
미궁밖에선 사람을 추적하거나 지역을 탐색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클랜 권유는 언제나처럼 거절이야. 그리고 이번에 루크에이스에서 떠나게 됐고.”
“그거라면 들었네. 소문이 나돌더군. 레드 헥사그램의 해산에 대한 소식이.”
레드 헥사그램은 루크에이스에서 유명한 파티다. 뭐라고 해도 실버 울프와 클랜워에서 승리한 파티다. 신문에 자주 대서특필 되는 모험가 파티 중에 하나이고, 루크에이스 파티 중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파티라 할 수 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말을 건네 본거네. 우리 클랜의 마법사는 언제쯤 자네같은 경지에 설수 있을지….”
“평생을 걸려도 무리일걸.”
테드가 딱 잘라 말했다. 얼굴 모를 실버 울프 클랜의 마법사에 대해서 불쌍한 기분도 들었지만 사실이었다.
마법사는 최상급의 직업이었다. 희귀한 직업이기도 하고, 어딜 가나 대우받는 직업이다. 하급의 마법사라도 적당한 곳이라면 쉽게 취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급으로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우가 천지차이로 바뀌는 것이다. 굳이 위험한 모험가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상급이상의 마법사. 마도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왕국에서 이를 악물고 모셔갈려는 존재들이다.
마도사가 될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마법사였다면 애초에 루크에이스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너무 가차 없군.”
마법사에 관해서 조사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천랑이 쓰게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험가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모험가들이 테드의 패밀리어에게 안내를 받아 찾아온 것이다. 서서히 모여드는 모험가들 만큼 천랑의 얼굴도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모험가의 수는 적었다.
몇 시간 정도 지났을 까. 테드는 문을 발견했다.
“……계곡 끝에 있는 폭포안에 문이 숨겨져 있어. 또… 다른 곳에 있는 동굴안에도 문이 있고.”
“문을 발견했나?!”
천랑이 테드의 말에 놀라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검은 머리위에 있는 은빛의 늑대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테드는 그녀에게서 뒤로 물러나며 진정하라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발견한 건 두 개야. 한 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거겠지. 폭포 안에 있는 이곳으로 올때 보았던 문과 완전히 빼닮았으니… 아마 그게 90층으로 내려가는 문 일거야.”
“그럼 그 동굴은!?”
“지하로 내려가 있는 동굴이야. 다음층으로 올라가야하는데 문이 지하에 있는 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철이 아닌 돌로 만들어진 석문이야.”
테드가 있는 세이프티 존에서 3시간 정도 부지런히 걸으면 동굴의 입구가 나온다. 거기서 지하로 내려가면 넓은 동공이 나온다. 거기에 누가봐도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석문이 있다.
“그럼 석문쪽으로 가야겠군!”
“……공략을 계속하게? 공략대에 남은 모험가는 별로 없다고. 아마 내 패밀리어가 지금 데리고 오는 모험가들 마지막이겠지. 그들을 포함하면 70명 정도가 전부야. 공략은 이미 실패야.”
천랑은 테드의 말에 세이프티 존에 있는 모험가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귀환부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귀환부를 사용하지 않았다. 쉐도우 비스트의 기습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십 몇 명이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이 기왕 90층까지 넘었는데 91층도 넘어야지 하는 일종의 오기를 가지고 있었다. 70명의 모험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자네가 없었다면 이 공략대는 이미 끝났겠지. 하지만… 그들은 미궁으로 올라가기를 원하네. 무리할 생각은 없네. 만약 지금과 같이 흩어지게 된다면 바로 귀환부를 사용하라고 지시할걸세. 또 92층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망설임 없이 귀환부를 찢을 생각이고.”
모험가 길드가 지원해주어 최상급 실력자들의 모험가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궁은 상상이상이었다. 괜히 몇 백년간 공략되지 않은 미궁이 아니었다. 그 미궁을 손쉽게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략을 영영 포기한 것은 아니다. 90층과 91층에 대한 정보가 손에 들어왔다. 조금이지만 모험가는 발전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확실하게 힘을 모으고서 공략에 힘을 쏟을 것이다.
“염치없는 부탁인건 알고 있네. 그렇지만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굳이 공략에 힘써달라곤 하진 않겠네. 자네의 마법으로 모험가들을 구해줄 순 없겠나?”
“……귀환한 뒤에 70명의 모험가가 미궁에서 실종되면 괜히 찜찜해져. 그리고 92층도 궁금해졌어.”
“고맙네.”
천랑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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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