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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사이나는 기절한 테드를 바라보며 그를 깨울까 망설였다. 마법을 이용하면 손쉽게 깨울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깨울 필요가 있을까? 알게 모르게 테드에게도 피로가 쌓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고민하던 사이나는 테드를 들어 올렸다. 공주님 안듯이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조용히 기절해 있는 테드의 얼굴을 바라본 사이나는 될 수 있으면 전투를 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쉴 곳이 필요하다.
사이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는 숲속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근처에 나타났다. 테드를 찾아 움직이려던 찰나에 테드에게 소환되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 시냇물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자신이 나타났던 곳과 테드가 나타났던 곳은 제법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
테드를 안아들고 움직이려던 사이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테드가 있던 바닥에 지네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검지 길이의 작고 시커먼 지네였다. 수십 개의 주황빛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 보는 지네였다. 몬스터는 아니지만, 어떤 독이 있을지 모른다.
지네 중에선 목숨을 위험할 만큼 강력한 맹독을 가진 지네는 드물다. 설령 테드가 지네에게 물렸다고 해도 사이나가 있으니 목숨을 잃을 걱정을 없을 것이다. 다만, 그녀의 입장에선 테드가 지네에게 물린다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절한 테드의 근처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괘씸하기 짝이 없다.
사이나가 발을 들어 그대로 부츠발로 지네를 밟아버렸다. 확인 사살을 하듯 사뿐히 지르밟은 뒤 테드를 안고서 정글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체조각이 된 지네가 한 차례 꿈틀 거렸다가 행동을 멈추었다.
미궁속의 정글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것들이 있었다. 미궁밖과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생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다람쥐나 새 같은 작은 동물에서 온갖 종류의 벌레들과 약초로도 사용가능한 식물들이 잔뜩 있었다. 보진 못했지만 위험한 맹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궁인 이상 그보다 위험한 몬스터도 존재할 것이다.
사이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고 있었다. 혹시 모를 함정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간혹 작은 해충들이 테드와 사이나를 향해 움직이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사이나의 의해 명을 다할 뿐이었지만.
테드를 안고 30분 정도 밀림 속을 걸었을까. 사이나는 함정이 아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궁의 중층과 비교하자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살이 날아오거나, 바닥이 꺼지거나,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는 등의 함정은 10분만 걸어도 보였다. 심할 경우엔 3분마다 나타나는 함정도 본적 있다.
사이나는 3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함정은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정글은 조금 이상했다. 기분탓일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조용한 느낌이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 모험가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것도 이상하다. 모험가들이 뭉쳐있으면 강하다는 것은 기본이지만, 미궁이 처음부터 흩어지게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이곳은 조난당하기 쉬운 밀림이다.
잠시 생각하던 사이나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사냥.
이 정글은 사냥터고, 각각 흩어진 모험가들은 사냥감이다.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를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자꾸 그 생각이 떠올렸다.
얼마정도 걸었을까. 그녀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가 보였다. 연기를 보면 자연적으로 불이난 것이 아니다. 아마도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흩어진 모험가들에게 보내는 신호일 것이다.
잠시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던 그녀가 몸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의미 없이 정글 속을 헤매는 것보다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쩌면 저곳이 세이프티 존일지도 모른다.
사이나는 숲을 해치며 그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가까워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기는 어느 순간부터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몇 분전부터 신호를 보내던 연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연기의 발생지에 도착한 사이나의 붉은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긴 밀림 속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있는 작은 공터였다. 거기에 살아 있는 모험가는 없었다. 주변에 온통 피투성이다. 시체는 베이거나 찢겨지고, 내장이 흩뿌려져 바닥 곳곳에 있다. 나뭇가지 위에 걸려 있는 시체도 있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피투성이의 장소였다.
피는 굳어지지 않고 아직까지 흐르고 있다. 불과 몇 분 전에 이곳에 있던 모험가들이 살해당한 것이다. 시체는 산산이 찢겨져 몇 명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사이나는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있는 모험가의 머리를 찾았다. 온전한 머리가 2개고 나머지 2개의 머리는 구분이 힘들 정도로 박살나 있다.
총 4명의 모험가가 이곳에 있다가 누군지 모를 이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사이나가 몸을 돌렸다. 피냄새가 가득한 이곳에 볼일은 없다. 그녀가 다시 정글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나무 그늘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 순간 일렁이더니 갑작스럽게 나타나 사이나의 등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시커먼 무언가였다. 생물이라기엔 너무나 검다. 눈에서부터 발끝까지, 털 한올까지 전부가 검다. 검은 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일절 없다. 검은 짐승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커다란 앞발을 들어 사이나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은 손톱이 보였다.
크엉…….
“쉿.”
검은 짐승이 거대한 포효를 내지려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한발 앞서 사이나의 입이 열리고 제지한다. 검은 짐승, 샤벨 타이거의 입이 자동적으로 꾹 다물어진다. 그러나 샤벨 타이거의 앞발까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강대한 힘이 담긴 앞발이 사이나의 등을 향해 휘둘러지는 찰나였다.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샤벨타이거가 어리둥절해 그 육중한 몸이 잠시 멈칫하는 순간이었다. 샤벨타이거의 바로 옆에 나타난 사이나가 오른발로 돌려 찬다. 부츠에 달린 짧은 굽이 정확히 샤벨타이거의 뺨을 머리를 가격한다. 거대한 검은 송곳니가 부서지고 목뼈가 우드득 부서지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바닥에 쓰러진 샤벨타이거는 그대로 절명해서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 자리에 마석하나가 달랑 남겼다.
“……그림자 짐승(Shadow Beast).”
쉐도우 비스트. 샤벨 타이거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몬스터의 정체다. 도플갱어의 변종으로 생물의 형태를 복사하는게 가능하다. 다만, 생물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 예를 들면 불을 뿜거나 전기를 만들어내는 등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메스 대륙에도 있지만, 마계에도 있는 마수의 일종이다. 짐승으로 변신하려면 짐승의 모습을 한 번 봐야하는데 이곳에 샤벨 타이거가 있거나, 혹은 미궁의 몬스터이기 때문인지 미궁에 나오는 몬스터로 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이 쉐도우 비스트가 그림자를 통해 몸을 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림자가 이어져 있으면 그림자를 통해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정글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가 겹쳐져서 이어져 있다. 즉, 정글 속이라면 어디서든 순간적으로 나타나 모험가를 덮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동안에는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므로 발견할 수가 없다. 최적의 암살자들이다.
하지만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에는 미약하지만 인기척이 나타난다. 그때를 잘 감지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다행히도 쉐도우 비스트의 전투능력은 뛰어나지 않다.
‘여긴 쉐도우 비스트의 사냥터군요.’
각각 흩어진 모험가들은 최적의 사냥감이다. 그들도 설마 그림자에서 기습할 것이라곤 생
각지도 못할 것이다.
사이나는 바닥에 떨어진 마나석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정글 속으로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시체가 가득한 공터의 반대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쉐도우 비스트는 아니다.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몸을 숨기고 그림자를 통해 이동한다. 아마도 사이나처럼 연기를 보고 찾아온 인물일 것이다.
덤불을 해치고 나온 것은 사이나도 본 적 있는 모험가였다. 테드와 같은 검은 머리칼의 남성, 지크였다. 지크는 공터에 벌어진 참상에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냉정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테드를 안고 있는 사이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나?”
그가 묻는 것은 공터에 대해서다. 사이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쉐도우 비스트의 짓입니다. 아마도 이 정글 곳곳에 쉐도우 비스트가 있을 겁니다.”
“……쉐도우 비스트….”
지크가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그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있다. 이 정글 속에선 상대하기 여간 껄끄러운 몬스터가 아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다만, 천랑을 본적 있나? 아니면 세이프티 존이라도.”
“저도 찾는 중입니다. 다른 모험가를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럼 잘 됐군. 기왕 만난 거 함께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을 제대로 공략하기 위해선 싫든 좋든 뭉쳐야 한다. 지크가 사이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녀가 공주님 안 듯 애지중지하게 안고 있는 테드를 보고서 마른 웃음을 흘렸다.
“거참, 마음 편하게 잠들어 있군. 이리주게. 남자인 내가 드는 게 더 낫지 않나.”
지크가 그녀를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사이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의 주인님입니다. 제가 드는 것이 맞습니다.”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사이나에 지크가 양손을 그냥 내렸다. 저 표정을 본건데 조금도 물려날 생각이 없을 것이다.
“모험가 이전의 메이드인가……. 듣던 대로군.”
사이나와 지크는 밀림을 해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간혹가다 쉐도우 비스트의 기습이 있었지만, 지크의 검에 썰려서 마나석을 남기고 사라질 뿐이었다. 그의 반응속도는 일반 모험
가들 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이러다 해가 지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
해가지면 쉐도우 비스트의 세상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 쉬도 없이 습격해올 가능성이 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부터 해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더군요.”
사이나의 말에 그가 시선을 하늘 위로 옮겼다. 유심히 보지 않아 잘 몰랐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해의 위치가 아까 그곳인 느낌이 들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미궁이라는 건가. 해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군.”
보기에는 손색없는 정글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이 루크에이스 미궁의 내부라고 생각하면 미궁을 관리하는 시스템에 감탄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사이나는 망설임 없이 걷고 있었다. 지크는 그런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것뿐이었다.
“저도 모르겠군요. 그냥 걷고 있을 뿐입니다.”
“…….”
굉장히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당당하게 걸어서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크는 그녀를 이대로 믿고 걸어 되는지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기분 나쁜 인기척이 주변에 둘러왔다. 사이나와 지크의 걸음이 멈춘다. 어둠속에서 수많은 짐승들의 낮은 으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지크가 검을 빼내 양손으로 쥐었고, 사이나가 품에 안고 있는 테드를 한 손으로 등허리를 잡더니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새하얀 검, 나찰을 뽑아들었다.
나무 아래 그림자 속에서 쉐도우 비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샤벨 타이거가 아닌 거대한 거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거미가 날카로운 앞니를 위협적으로 움직이더니 사이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주위에 숨어 있던 수많은 쉐도우 비스트가 동시에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왔다. 거대한 맹금류의 모습을 한 것도 있었으며, 샤벨 타이거, 배틀 래빗, 라이칸 슬로프 등의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한 쉐도우 비스트들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루크에이스 미궁에 나오는 몬스터라는 점이다.
사이나와 지크는 침착하게 쉐도우 비스트를 상대해나갔다. 사이나의 일검에 거대한 거미 형태를 한 쉐도우 비스트가 반으로 잘려서 마나석을 남기고 사라진다.
지크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원심력을 담아 크게 휘둘렀다. 쉐도우 비스트 2~3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후. 91층의 몬스터 치고는 약하군.”
쉐도우 비스트를 모두 제거한 지크가 검을 갈무리하며 크게 숨을 내뱉으며 얼굴을 타고 흐르는 땀 몇 방울을 닦아냈다. 산뜻하게 웃으며 사이나를 돌아봤다.
그러나 사이나는 땅에 떨어진 마나석을 줍는데 바빴다. 그녀는 알뜰했다.
“…….”
뒤늦게 지크가 바닥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생각해보면 이 떨어진 것들은 모두 돈이다.
모험가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은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런 돈 덩어리들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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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