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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테드는 용암호수의 앞으로 나타났다. 붉은색의 눈동자가 부글부글 끓는 용암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그나이트. 그 자체만의 강함을 따지자면 80층이 게이트키퍼인 데스 나이트 마스터보다 약하다. 몸의 속도는 둔하고, 지니고 있는 힘은 생각만큼 압도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그나이트가 가지고 있는 비이상적인 재생력과 숨 쉬는 것만으로도 체력을 뭉텅이로 빼앗아가는 용암지대는 모험가 입장에서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다.
이그나이트는 어딘가 정령과 닮아 있었다. 혹은 골렘의 종류라 할 수 있다.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불을 이용해 싸우기 보다는 육체를 이용해 검은색 석검을 휘두른다. 정령보다는 골렘에 가깝다. 그리고 골렘은 몸의 중심, 동력원인 핵이란 것이 있다.
골렘에 따라 다르지만, 핵이 무사하면 팔 다리 정도는 순식간에 재생할 수 있는 골렘도 있다. 대표적으로 클레이 골렘이 있다. 머리 안에 있는 핵이 무사하면 팔과 다리가 박살나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몬스터다. 다르게 내부의 핵만 박살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정령은 주위에 있는 자연의 기운을 힘으로 사용한다. 자연의 기운만 충분하다면 재생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용암이 가득한 이곳에선 불의 정령이 최선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용암이 내뿜는 열을 자신의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3M 정도인가. 의외로 너무 얕군.’
처음에 테드는 이그나이트가 정령처럼 주변에 있는 열기로 재생하는 것인지 알았다. 흐르는 용암위에서 재생 속도가 더 빨라진 것이 그 이유라 생각했다. 그러나 몸의 불이 완전히 전소하고 검은색 갑옷만이 달랑 남았을 때 재생했을 때 알았다. 에너지의 원천이 열기가 아님을. 그 주변에는 식을 대로 식어서 열기라는 것이 없었다.
테드는 ‘고결한 눈’을 발동해 재생한 이그나이트의 몸을 투시했다. 그 어디에도 핵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갑옷의 내부를 투시해봤지만, 그건 돌로 만든 갑옷일 뿐이었다.
‘바닥에 검은 구슬 같은 게 있군.’
용암호수의 깊이는 3M, 폭은 10M 정도다. 넓지 않았다. 호수라기보다는 웅덩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테드는 투시를 통해 이 용암호수의 바닥에 사람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 구슬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돌로 착각하기엔 구슬의 표면이 너무 매끈했다. 어쩌면 이그나이트의 핵일지도 모른다.
‘용암은 배리어로는 3초도 버티지 못한다.’
테드는 이 용암호수를 식히려고 했었다. 막대한 양의 물을 이 용암호수에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식지 않는다. 오히려 쏟아부은 물이 증발했다. 그리고 용암 호수에선 계속해서 용암이 넘쳐서 땅으로 흐르고 있다. 지하에서 끌어 오르는 용암이 아니다. 호수의 깊이는 3M에 불과했다. 용암호수에서 용암이 증식하는 느낌이다. 아마도 바닥에 있는 검은 구슬과 관계있으리라.
불의 정령을 떠올렸다. 불의 정령이라면 이 용암호수에서 검은 구슬을 꺼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테드는 그 생각을 지웠다. 불의 정령이라도 불에 대한 완전내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바람의 정령이라도 힘이 닿지 않는 거센 바람이라면 몸이 날아가게 된다. 불의 정령 또한 압도적인 화력에 불탈 수 있다.
그래도 상급 정령이라면 용암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공략대에 바람의 상급 정령사는 있지만, 불의 상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불의 정령사는 없다.
‘구슬을 줍는 것은 포기한다. 호수와 함께 한 번에 없앤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유동이 테드에게서 시작된다.
대기가 떨릴 정도의 마력을 느낀 것일까. 공략대의 모험가들의 시선이 한 차례 테드에게 집중되었다가 사라졌다. 그들의 일은 이그나이트를 막는 것이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이그나이트가 테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루크에이스에서 이름 날리는 최정예 모험가들이 이그나이트를 내버려 두지 않
았다. 한 발자국을 움직이면 수 십 명의 모험가가 공격해 들어온다.
주위에 용암이 있었다면 상황은 다르게 흘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드에 의해 이그나이트의 주변에는 용암이 식어서 굳어졌고, 용암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은 시간이 걸린다.
이그나이트를 가장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은 천랑과 사이나다. 그녀들은 굳이 이그나이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 행동을 막아내기 위해서 하반신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다. 다리 한 짝을 잘라내는 것으로 이그나이트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었다.
용암 호수에 새하얀 마법진이 그려진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이전의 마법진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하게 하얀빛의 마법진이 그려지고 있다. 직경 3M에 달하는 하얀 마법진은 테드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마력을 쏟아 부어 발동시킨 것이다.
잠시 허공에 그려지는 마법진을 보던 테드가 몸을 돌렸다. 눈으로 보지 않음에도 마법진이 계속해서 그려지며 서서히 완성되어진다.
테드가 이그나이트, 공략대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테드를 본 천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는찰나였다. 테드의 등 뒤에서 강렬한 하늘색의 빛이 뿜어져 나와 한 순간 천랑의 눈을 가린 것이다.
마나를 이용해 시력을 회복한 천랑이 입을 떡 벌렸다. 용암호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이상의 크레이터가 뜬금없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재
빠르게 이그나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그나이트의 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며 하나의 커다란 마석을 남긴다. 지긋지긋한
이그나이트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쉽게 사라진 것이다.
“…… 자네가 용암호수를 날려버린 탓인가? 자네는 용암호수가 문제인 걸 이미 알고 있었나?”
“용암이 계속해서 흘려 나오는 것도 이상하고. 굳이 이그나이트가 핵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어. 용암 속에 핵을 숨겨놓은 거야.”
어느새 테드의 눈동자는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천랑과 테드는 눈앞에 소리 없이 나타난 5M에 이르는 거대한 철문을 바라봤다. 90층이기 때문일까. 다음층으로 가는 입구가 스스로 허공에서 나타난 것이다.
천랑은 입구를 바라보다가 공략대를 한 차례 모으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루크에이스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네! 그대들이 자랑스럽지만 아직 공략은 끝나지 않았네! 다음층에는 한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뒤에 갈 예정이네. 다음층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휴식은 여기서 취해주었으면 하네.”
천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략대는 제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무기를 갈고 닦고 있으며, 누군가는 비상식량을 입에 물고 있다.
용암호수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곳에 모여 있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기에 휴식에 큰 문제는 없었다.
테드는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의 옆에서 사이나가 과일을 갈아 만든 차가운 음료를 내밀었다. 테드와 사이나는 붉은색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휴식을 취했다.
휴식이 끝나기 직전, 천랑에게서 받은 마력 포션으로 마력을 일정량 회복했다. 다음층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력이 없어 죽을 수도 있다. 혹은 테드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험가들이 죽을 수도 있다.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천랑은 다음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직전 그 앞에서 공략대를 향해 말했다.
“뛰어난 마법사, 테드 크루시안의 도움으로 90층은 손쉽게 공략할 수 있었네.”
천랑 또한 용암지대에서 사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준비해왔다. 대부분이 뜨거운 열기를 대비하기 이한 마법도구다. 그러나 테드가 용암지대를 완벽하게 식혀버려 사용할 일이 없었다.
“91층은 미지의 영역이네. 조금의 정보도 없지. 무엇이 나올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네. 하지만 그대들의 힘이라면 우리는 공략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네. 그대들의 업적은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네.”
천랑이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커다란 철문은 육중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양쪽으로 열렸다. 천랑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푸른색의 은은한 빛이 문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건. 워프 게이트…?”
“다음층으로 이어지는 게이트인가보군. 과연 90층부터라고 해야 하나… 허공에서 문이 나타나지 않나, 그 문이 워프 게이트지 않나. 한 눈에 알 수 있는 특별취급이
군.”
놀라는 천랑의 옆으로 지크가 다가왔다. 국가에 있는 대도시 중에는 워프게이트가 있
다. 국가 간의 이동은 불가능하지만 같은 국가내의 대도시라면 워프게이트를 통해 이동하는 게 가능하다.
“91층에 무엇이 있을 지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었군.”
천랑이 쓰게 웃었다. 문을 통해 다음층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막히게 될 줄은 몰랐다.
천랑이 공략대의 모험가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91층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네. 그대들이라면 문제없을 거라 믿네만… 그래도 조심하게.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가겠네.”
천랑이 망설임 없이 다리를 움직여 문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지크를 포함한 모험가들이 들어간다. 긴장한 표정이면서도 미지에 대한 기대가 담겨있다. 그들 또한 미궁의 선구자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테드도 사이나와 함께 문을 향해 들어갔다.
“……정글?”
워프게이트를 통해 나온 곳은 정글이었다.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는 정글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이 보였다. 햇빛이 내려와 주변을 밝게 비추었다.
테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이나를 포함해 공략대 일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90층에는 용암호수에 이그나이트의 핵을 숨겨 놓더니, 91층은 시작부터 모험가들을 흩어지게 만들었다. 악질적인 미궁이었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때 정글 속에서 덮쳐오는 알 수 없는 몬스터다.
미궁내의 안전지대인 세이프티 존을 찾아야 했다. 그곳이라면 공략대가 모일 것이다.
‘사이나라면… 나를 찾아다니겠지.’
안 봐도 뻔하다. 그녀라면 무표정한 얼굴로 정글 여기저기를 자신을 찾아 뒤지고 다닐 것이다. 사이나의 실력이라면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미궁에는 여러 가지 함정이 있다. 레인저 교육을 받지 못한 사이나다. 감각이 날카로워도 함정을 완벽하
게 피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리와, 사이나.”
테드가 스킬을 발동한다. 그녀와 계약하고 난뒤에 생겨난 스킬로 하루에 한 번 사이나를 자신의 곁으로 소환할 수 있다.
테드의 바로 앞에 작은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이윽고 커지더니 허공중에 폭발해 사라진다. 그리고 테드의 바로 앞에 사이나가 나타났다. 사이나는 어딘가로 뛰쳐나가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테드를 찾기 위해 움직이려 하다가 소환당한 것이다.
사이나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어딘가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멈추려 하지만, 하필이면 나타난 곳이 테드의 바로 코앞이다. 짧은 거리라서 가속도가 붙어 있는 몸을 급히 멈출 시간이 없었다.
“……아.”
놀란 것은 테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한 번 시험 삼아 이 스킬을 사용해본 적이 있었다. 이 스킬의 단점은 사이나
의 의지에 관계없이 테드의 앞으로 소환되고 만다는 점이다. 그때는 서로 준비하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테드는 순간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해 피하려다 관두었다. 그녀 정도면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양팔을 살짝 벌렸다.
그러나 테드가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다. 사이나는 가련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굉장한 육체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전력으로 뛰는 것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의 힘과 속력을 사용해 뛰고 있었다.
단련했다고는 하나, 마법으로 강화되지 않은 어린 육체다. 사이나가 몸에 힘을 풀었다고 해도 육체에 남아 있는 가속도가 곧바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테드의 몸이 사이나와 부딪힌다. 키차이로 인해 사이나의 풍만한 가슴이 테드의 얼굴을 짓누르며 바닥으로 밀어 넘겼다. 그리고 하필 재수 없게 테드의 등 뒤에는 나무뿌리가 어지럽게 땅에서 일어나 있었다. 테드의 후두부가 정확하게 나무뿌리를 향해 떨어진 점이다.
커다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사이나가 테드의 품에서 일어나 그를 살폈다.
“주, 주인님?!”
잠든 듯이 눈을 감고 있는 테드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그의 어깨가 힘없이 흔들렸지만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사이나가 다급하게 테드의 맥을 짚었다. 다행히도 맥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에 기절한 것뿐이다.
사이나가 조심스럽게 테드를 안아 올렸다. 테드의 검은 머리카락에 감싸인 후두부를 만지자 크게 부어오른 혹이 손바닥을 통해 느껴졌다. 사이나의 얼굴에 식은땀 한 줄기가 미끄러졌다.
============================ 작품 후기 ============================
그러고 보니 이승탈출 넘버원에서 참치캔 뚜껑에 베여서 죽은 사례가 생각나는군요.
돈까스 먹다가 사망할 수도 있겠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