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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120명의 공략대가 90층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뜨거운 열기가 그들의 몸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항상 겨울인 루크에이스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생물이 없다. 죽음의 대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위험해 보인다. 검은색 땅에는 시뻘건 용암이 쉬지 않고 흐른다. 어디로 흐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지하로 사라져 다시 분출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가스가 나오고 하늘은 지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붉다.
용암은 공략대가 생각했던 것 보다 많았다. 발을 디딜 틈은 있었지만, 전투를 벌이게 되면 용암에 빠져 죽는 일도 발생할지도 모른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그 중심에 용암으로 된 호수가 있다는 점이다. 흡사 화산의 분출구 같았다. 그곳에서 용암이 꾸역꾸역 나와서 주변에 흐르고 있다. 용암의 시작지점이다.
용암 호수의 중심에는 무언가가 가만히 서있었다. 천랑이 그것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저게 이그나이트인가…….”
온몸이 이글거리는 불로 이루어져 있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그것은 생물체라기보다는 정령같은 정신체 같았다. 불의 몸은 사람의 형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크기가 약 2.5m를 넘어가고 검은색의 돌 같은 장갑을 끼고 있다. 검은색의 돌로 된 장갑이 없었다면 용암처럼 새빨간 몸이라 구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그나이트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 위로 검은색의 돌이 모여들며 하나의 형태를 취한다. 얼핏 보면 몽둥이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한쪽 날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칼이다.
“전원 전투 준비!!”
천랑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그곳에 있던 모험가들이 제각각 자신의 무기를 들고 경계를 취했다.
이그나이트가 천천히 용암호수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용암호수의 표면을 밟으며 서서히 천랑을 향해 다가간다.
“테드! 마법은 아직 인가?!”
천랑이 다급한 어조로 테드를 재촉했다. 테드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미궁의 내부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히도 높은 하늘에 거대한 푸른색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푸른빛을 내는 마법진은 압도적인 속도로 완성되어 간다.
다행히 이그나이트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초조함을 느끼지도 않는 듯 기계적으로 서서히 걸어 침입자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법진은 완성되었다.
“헤비 레인(Heavy Rain)”
마법은 발동된다. 마법진이 사라지고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용암지대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나타난 먹구름은 이윽고 속 시원하게 장대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공략대는 순식간에 내려가는 온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날 정도의 뜨거운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용암지대의 앞뒤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주변에 수중기로 가득 찼다. 비가 용암과 부딪히며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용암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순식간에 웅덩이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세차게 내리고 있는 장대비다. 곧 있으면 용암지대가 식혀질 것이다.
공략대를 향해 천천히 걷던 이그나이트가 걸음을 멈춘다. 그의 몸에도 장대비가 쏟아졌으나, 전부 증발해버려 연기가 된다. 새하얀 수중기 사이에 있는 이그나이트의 머리 부분이 움직인다. 불로된 몸이다. 눈은 없다. 그러나 테드는 이그나이트가 자신을 바라본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여유롭던 이그나이트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그나이트를 막아라!”
천랑이 가장먼저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쥔 검의 날에서 은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천랑이 이그나이트의 앞으로 다가가 검을 휘두른다. 이그나이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랑의 검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검은색 석검을 들어 올렸다.
천랑의 검이 이그나이트의 가슴 부분을 찌르고 들어갔다. 그러나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이그나이트의 갑옷이 검을 막아냈다. 위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갑옷의 일부가 바스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랑이 재빨리 이그나이트의 몸에서 떨어졌다. 천랑이 있던 곳으로 검은색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이그나이트의 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차분히 움직이면 무리 없이 공격한 뒤에 빠질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천랑의 얼굴에 땀이 맺힌다. 그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이그나이트의 몸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그녀를 힘들게 했다.
‘오래 상대할 수는 없겠군. 빠르게 결판을 내야 한다.’
모험가들이 이그나이트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 들었다. 공격하면서도 빠지고 있다. 마나로 강화된 무기가 아니었다면 이그나이트의 몸에 닿는 순간 그대로 녹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오래 이그나이트의 몸에 닿고 있으면 마나로 강화했다고 해도 서서히 녹을 기미가 보였다.
천랑이 주변을 살폈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용암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비를 증발 시키고 있다. 용암의 양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용암 호수에서 계속해서 용암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천랑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하늘 곳곳에 거대한 물방울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대비의 일부가 공중에 모여들어 집채보다 큰 물방울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테드의 짓이다. 용암을 한 번에 식히기 위해 벌인 짓이다.
쾅! 거대한 충격음과 동시에 천랑의 옆으로 한 명의 모험가가 날아갔다. 도중에 동료가 그를 붙잡지 못했다면 용암에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무리하게 공격할 필요는 없다! 전위는 공격을 하되, 무리하지 말고 빠지도록!”
상대는 1명이다. 120명 전체가 동시에 공격할 공간적 여유가 없다. 간간히 중위에 있는 궁사나 마법사들이 지원을 해주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빌어먹을. 재생까지 하는군.”
지크가 강력한 일격으로 이그나이트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그러나 이그나이트의 오른팔은 순식간에 재생한다. 재생하는 것은 불로된 몸뿐만이 아니라, 검은색 돌 갑옷 또
한 재생하고 있다.
“골렘처럼 몸 어딘가에 핵이 있을 가능성도 있네. 갑옷 중에서 가슴 부위가 가장 단단하더군. 그곳이 의심스럽네.”
천랑의 말에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대답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적으로 다가가는 것부터가 고역이다. 어쩌다 다가가도 이그나이트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디버프의 역할을 해서 가까이 붙은 자의 체력과 집중력을 빼앗는다. 아마도 이그나이트가 가진 특이한 스킬의 일종일 것이다.
“이런 미친! 용암으로 들어가고 있잖아!”
지크가 경악성을 내뱉었다. 이그나이트가 주위에 있는 용암으로 걸어간 것이다.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전부 무시하고 강제로 행하고 있었다. 공략대로선 막을 방법이 없었다. 팔이 떨어져도 다리가 박살나도 재생한다. 좀비같은 지긋지긋함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90층의 게이트키퍼 치고는 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특출난 재생력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흐르는 용암 위를 걷는 이그나이트를 보며 다시금 떠올린다. 저것은 미궁 90층의 게이트 키퍼. 지금껏 단 한 번도 모험가에게 돌파되지 않은 괴물이다.
이그나이트의 진정한 힘은 용암에 있었다.
“……안 좋군.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아.”
주위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 검을 휘두르기 위해 다가가는 것이 용암 때문에 불가능하다. 발이 용암에 닿는 순간 그대로 발이 녹을 것이 분명했다.
이그나이트가 천천히 용암을 걷는다. 자신의 유리함을 아는 것일까. 걸음걸이에서 여
유로움이 느껴졌다. 간혹 마법사나 성법사등의 원거리 공격이 이그나이트의 몸에 적중했지만, 이그나이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용암위에서는 재생력 또한 강해지는 모양이다.
“빗물로는 흐르는 용암을 식히는 게 불가능 한가….”
천랑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늘위에 있는 거대한 물방울들을 믿어 볼 수밖에 없다. 저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분명 용암은 식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그나이트는 계속해서 용암을 타고 움직였다. 천천히 걷는 것이지만, 막아서는 이가 없어 금세 테드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그 나이트가 테드를 노리는 것이 명백했다.
천랑이 빠르게 테드의 앞으로 다가와 그를 보호하듯 검을 세워 이그나이트를 노려봤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공략대의 전위를 맡은 이들이 이그나이트를 주변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용암에서 내려오는 순간 바로 공격할 생각이다.
“……테드. 준비는 아직 인가?”
천랑의 긴장감이 섞인 물음에 테드가 씩 웃었다.
“지금 막 끝났어. 물놀이 할 시간이야.”
테드가 오른손바닥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리고 신호를 보내듯 오른손을 아래로 내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 있던 거대한 물방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물방울이 흐르는 용암이 직격한다. 장대비에도 끄덕도 없던 용암이 식기 시작한다. 주변에 굉음과 함께 수중기가 희뿌옇게 쌓인다.
“이것만으론 아쉽지.”
남은 마력을 대부분을 사용한다. 하늘 곳곳에 푸른색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마법진 하나하나의 크기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사람 크기가 전부였다. 그러나 질보단 양이라고 할까. 수가 많았다.
“워터 브레스(Water Breath).”
푸른색의 마법진에서 마치 폭포처럼 대량의 물이 쏟아져 바닥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십 개의 마법진이 동시에.
달아올랐던 대지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흐르던 용암이 식어서 돌이 되고, 워터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은 이그나이트의 몸이 멈춘다.
그것은 공략대의 정신을 일순간 빼앗을 정도로 장관이다. 모험가 중에는 쏟아지는 물에 바닥으로 넘어지는 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엄청난 마법이다. 과연 천랑, 네가 추천하는 마법사군.”
“…아니, 나도 이정도 일 줄은 몰랐네. 그는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하군.”
지크의 말에 대답하며 천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암호수가 있는 중심부근을 제외한 모든 대지는 차게 식어 있다.
대량의 물을 내뱉은 수십 개의 마법진은 사라졌지만, 먹구름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까
지 폭우를 내리고 있다.
천랑이 이그나이트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불은 물에 의해 꺼지고 돌로된 검과 갑옷이 싸늘하게 남아 있다.
‘…끝난 건가? …고작 이 정도로?’
의문이 들었다. 너무 쉽게 끝난 감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테드의 마법은 굉장했다. 그렇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90층의 게이트키퍼의 악명치고는 너무 쉽게 끝났다.
화르륵.
이그나이트의 갑옷에서 불길이 일어난다.
뒤늦게 천랑이 깨닫는다.
시뻘건 불길은 갑옷을 일으켜 세우고서 빠르게 형체를 취한다.
미궁의 몬스터는, 게이트키퍼 또한 예외 없이 죽으면 마석을 남긴다. 전리품을 남긴다 해도 갑옷을 남기는 경우는 없다.
“……핵은 있는건가?”
불길이 사라졌을 때 보인 것은 갑옷뿐이었다. 핵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순식간에 형체를 재생한 이그나이트가 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모험가들이 재빠르게 반응하며 이그나이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아까와는 달랐다. 이그나이트의 온몸에 흐르던 여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광전사처럼 미친 듯이 빠르게 공격해 들어간다.
용암호수에서 부글부글 끓는 용암이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지역은 아까전처럼 용암이 흐르는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테드는 아공간을 열어 절반 정도 남은 최상급 마력 포션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바닥을 기던 마력이 순식간에 가득 찬다.
테드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천랑. 사이나. 놈을 막아.”
그녀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테드의 몸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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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