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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61화 (6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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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공략을 시작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공략대 120명은 89층의 세이프티 존까지 도달했다. 원래는 5일째에 도착했을 예정이었다. 대규모의 인원이다 보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략 보조대의 희생도 있었다. 84층까지 올라오는 와중에 실수 혹은 함정으로 인해 13명이 사망한 것이다. 몇 백, 몇 천 번이나 미궁을 오른 전문가들이라곤 하나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고층은 그 만큼 위험했다.

공략대 120명은 모두 천랑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천랑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공략을 준비해왔다. 손발을 맞춰본 적도 없는 120명의 모험가들을 하나로 이끌고서 89층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는 90층 공략을 시작할 것이다.

89층의 세이프티 존에선 초저녁부터가 휴식타임이었다. 내일을 대비해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기 위해서 이전 층까지 행해왔던 야간 행군이 없는 것이다.

천랑은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세이프티 존에 있는 무수히 많은 텐트 중 하나를 찾았다. 5~6 인용 정도 되는 회색의 캐빈형 텐트다. 높이가 커서 성인이 일어서도 천장에 머리가 닿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텐트라기보다는 집 같은 느낌도 들었다.

“테드. 안에 있나?”

천랑의 말이 끝나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텐트의 입구가 열렸다. 테드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입고 있는 회색 코트를 벗어 던지고 편한 면 옷을 입고 있다.

“무슨 일이야?”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미안하군. 내일 있을 공략에 대해서 상의할게 있어 찾아왔네.”

잠시 테드가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공략에 대한 것이라면 이미 이야기가 끝나있다. 테드가 할 일은 90층의 게이트키퍼인 이그나이트의 상대가 아니라 용암지대의 필드를 마법으로 식히는 것이다. 그녀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이라면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사이나. 손님이 왔어. 일인분 추가야.”

“예. 알겠습니다.”

테드의 말에 천랑이 손을 저었다.

“아니, 됐네. 저녁이라면 먹고 왔네. 저녁 식사 중 일 줄은 몰랐군.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으니 조금 있다가 다시 찾아오면 되겠나?”

“그냥 와서 먹어. 조금 더 먹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잖아. 손님 대접 정도는 받아둬.”

미궁인 만큼 보통은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다. 하지만 테드의 경우엔 사이나가 직접 요리를 하기 때문에 조금 시간이 걸린다. 맛은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공략 보조대가 있을 때는 공략 보조대가 식사를 준비했지만, 그들이 없는 지금은 각자 알아서 식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테드는 첫날 이후로 공략 보조대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맛없냐고 물으면 맛있었다. 고급의 식재를 사용한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사이나의 요리를 먹고 자란 테드다. 무언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어 결국 첫날을 제외한 모든 식사를 사이나에게 맡기고 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자네의 메이드는 요리를 잘한다고 정평이 나있으니 말이지. 사실 궁금하기도 했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테드의 뒤를 따라 텐트의 내부로 들어온 천랑이 입을 헤 벌렸다. 내부는 텐트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늑했다. 아니, 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천랑이 놀란 것은 텐트의 바닥이다. 신발을 벗자 바닥의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 것이다. 마법으로 텐트의 바닥을 따뜻하게 만든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텐트의 내부에 소파나 옷장 등의 가구가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텐트의 벽이 천이 아닌 돌이었다면 이곳이 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그리고 텐트의 한쪽 구석에는 부엌까지 갖추어져 있다. 커다란 냉장고까지 완벽하다. 그곳에 은발의 메이드가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텐트 내부에 부엌이라니… 상상도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천랑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밖에서 보기엔 텐트는 5~6인용의 것이다. 텐트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이 엄청난 넓이가 아니다. 오히려 좁다. 2명이서 사용하기엔 넓을지 몰라도 가구가 들어설 정도의 공간은 턱도 없이 부족하다.

“공간 확장 마법을 이용해 텐트를 조금 개조했지.”

그녀의 의문을 눈치 챈 것일까. 옆에 있던 테드가 말했다.

새삼스레 테드가 뛰어난 마법실력을 가진 것을 깨닫는다. 공간계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말 할 정도면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의 위치일까. 천랑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그가 있으며 내일 공략도 문제없겠지.

천랑은 테드가 가리키는 식탁의 앞에 앉았다. 사이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이든 컵 두 개를 가져와 식탁에 올렸다.

“이제 곧 식사가 준비되니 기다려 주십시오.”

“…….”

테드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천랑은 멍한 눈으로 부엌으로 향하는 사이나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미궁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호화롭게 사는군. 솔직히 말하게. 자네, 귀족아닌가?”

“아니야. 사이나가 너무 완벽한 메이드일 뿐이지. 저 부엌도 사이나가 마법으로 설

치했어.”

“그녀는 검뿐만이 아니라 마법도 사용하나? 그건 놀랍군.”

테드는 조용히 끄덕였다. 이 세상에서 검과 마법 둘 모두를 수행하는 자들은 적다.

검 하나만으로도 수련하기 벅차고 마법은 뛰어난 재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검과 마법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것은 보유한 뛰어난 재능도 이유지만, 악마로서의 긴 수명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외모만을 보자면 20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실상은 그 열배인 200살 정도다. 악마의 기준으로 보자면 어린 편이다.

“찾아온 이유는 뭐야? 공략이라면 문제없어. 공략대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않아.”

“물론 알고 있네. 자네도 B등급의 모험가니까. 내가 찾아온 이유는 혹시 모를 상황

을 대비하기 위해서네. 만약에, 자네의 마법으로도 용암지대를 식힐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지.”

천랑이 품에서 3개의 병을 꺼냈다. 1L 정도 되는 푸른색의 액체가 들어 있는 최상급 마력 포션이다. 1개에 대략 1,000 골드 정도하니 3개면 3,000 골드다.

테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천랑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것을 여기에 꺼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설마하니 뇌물은 아닐테고.

“자네의 마력이 부족한 경우를 대비해서 이걸 전해주기 위해 왔네. 이건 내 사비를 털어산 물건이지.”

“……내 마력이라면 충분하리라 생각하는데. 다른 마법사에게 전해줘도 되잖아? 나를 제외하고도 열명 정도가 마법사인걸로 알고 있어.”

“자네만큼 뛰어난 마법사는 없지. 그리고 그들 중 절반이상이 수(水)계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네. 사용한다고 해도 용암을 식힐 정도의 양은 불가능하고.”

수(水)계 마법은 빙(氷)계 마법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다른 계열의 마법이다. 위력 면에서 수(水)속성의 마법이 약하기 때문에 모험가가 목적인 마법

사는 익히지 않는 마법이다.

“용암지대는 생각보다 넓네. 작은 산 정도의 크기라 할 수 있겠지. 자네의 마력으로 그곳을 한 번에 식히는 게 가능하겠나?”

“…….”

천랑의 말에 테드가 조용히 상상해본다. 작은 산 정도의 크기. 검은색의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그곳은 시뻘건 마그마가 흐른다. 그 크기는 작은 산 정도.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할 수는 없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력이 부족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암브로시아를 써야 될 정도는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걸 쓰면 90층은 어떻게든 될지는 모르나 다음 층의 공략은 포기해야 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네. 90층 위에 있는 91층이지. 어쩌면 빙하지

대가 나올지도 모르지. 혹은 또 다른 자연재해가 있는 곳일 수도 있고.”

“확실히 90층에서 마력을 전부 사용하면 다음층이 문제네.”

91층이 더 문제다. 정보가 아예 없다. 천랑은 치밀하게 공략을 준비해왔다. 그녀가 유일하게 공략을 준비할 수 없었던 영역이기도 하다. 사전에 준비 없이 매순간의 판단만으로 공략대를 이끌어야 한다.

“나같은 검사나 전사들은 자연재해에 순응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자네같은 뛰어난 마법사는 자연재해를 다룬다고 들었네.”

일반 마법사가 아니라 마도사급의 마법사를 말한다. 그들은 자연재해 그 자체다. 전쟁에선 가장 먼저 척살 혹은 암살해야하는 존재이며,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하는 존재다.

“이 공략대에선 자네의 역할이 커. 난 아마도 자네가 없었다면 이 공략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네.”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포션은 내가 가지겠어. 하지만 남으면 돌려줄게.”

“포션은 돌려주지 않아도 그닥 상관은 없다만… 포션을 사용하지 않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군.”

“동감이야.”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사이나가 부엌에서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네모난 트레이 위에 음식이 놓인 접시를 담아 옮긴다. 식탁위에는 곧바로 풍성한 음식들이 나왔다.

따뜻한 밥과 우동, 메인인 치즈 포크 커틀릿까지. 완벽하게 세팅한다. 그 외에도 샐러드같은 밑반찬이 있었다.

천랑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기에는 고급스럽고 먹음직스러웠다. 거기에 양도 제법 많았다. 혼자서 순식간에 요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같은 여자로서 요리 잘하는 그녀가 부럽군.”

천랑은 요리를 못한다. 해본적은 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그건 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에 와서는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있으나, 남에게 요리할 줄 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간단한 요리다.

“솔직히 말해서. 사이나, 자네는 전위에서 싸워주었으면 하네.”

사이나는 테드가 있는 후위에 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테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천랑이 보기엔 그녀 정도의 실력자가 후위에 있는 것은 인력의 낭비였다. 그러나 강제할 수도 없는 것이, 그녀가 전위에 있다고 해도 제대로 싸울지도 의문이다.

테드의 명령이라면 마지못해 따를지라도 그녀의 의식은 항상 테드에게 가있을게 뻔했다.

“80층의 데스 나이트 마스터를 생각하면 후위에도 접근전에 강한 검사가 있는 편이 좋아.”

테드가 따뜻한 우동의 오동통한 면발을 한 차례 흡입하며 말했다. 80층의 게이트 키퍼인 데스 나이트 마스터는 후위에 있는 성법사를 노렸다. 지능이 있는 몬스터의 특징이었다. 가장 성가신 존재부터 없앤다. 데스 나이트 마스터는 자신의 상성관계 위치한 성법사가 굉장히 성가신 것이다.

“90층에선 용암지대를 식히려는 내가 노려질 위험이 있어.”

“그것도 그렇군.”

납득한 천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우동의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 본 그녀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단지 한 숟가락일 뿐이었는데 몸 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일년 내내 겨울인 루크에이스에는 우동같이 따뜻한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았다. 천랑 또한 루크에이스에서 살면서 우동을 정말 많이 접했다. 그렇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루크에이스에서 파는 우동 중에서도 3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맛있다고.

천랑이 치즈 돈까스를 향해 젓가락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심으로 사이나같은 메이드를 고용해볼까 생각했었다.

걱정이 될 정도로 빵빵하게 차오른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며 천랑이 쓰게 웃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폭식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지.”

천랑은 소파에 앉아 대충 손을 흔드는 테드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사이나는 식기를 정리하고 있다.

시선을 돌려 텐트의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를 바라본다. 혼자서 자기엔 조금 큰 사이즈의 침대였다.

“자네는 미궁에서도 뜨거운 밤을 보내겠군. 모험가들이 알면 부러워서 이를 갈겠어.”

“…….”

테드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가 뭐라고 한 소리 하기 전에 천랑은 재빨리 텐트의 밖으로 나선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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