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60화 (6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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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루크에이스 공략

“좋네. 마법이라면 믿을 수 있지. 어쩌면 빨리 사건이 해결 될지도 모르겠군.”

천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겼다. 그녀로서는 빨리 이 사건이 마무리 되었으면 했다. 아직 아침식사도 하지 못한 상황이다. 시간은 지체 될 대로 되었다.

테드는 천랑의 안내를 받아 사건이 일어난 브랙의 텐트 쪽으로 움직였다. 모험가들의 시선이 테드의 등에 꽂힌다.

“음. 이게 브랙 일행의 텐트다.”

천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6인용으로 만들어진 제법 큰 텐트다. 우락부락한 성인 다섯 명이 누워 자도 공간은 어느 정도 남을 것이다. 뾰족한 원뿔 모양의 인디언 텐트를 한 차례 훑어본 테드가 입구 쪽을 바라봤다.

“블링크는 눈에 보이는 곳으로만 갈 수 있어. 내부 안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

능 하지. 그러니 반드시 입구를 지나야해.”

테드의 말에 브랙이 아니꼽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입구까지 왔으면 끝난거나 다름없지! 내 자리는 입구 바로 앞이니까! 텐트의 입구만 조금 열어 칼을 넣으면 손쉽게 머손을 죽일 수 있다!”

테드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천랑을 바라봤다. 그녀는 브랙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 입구를 지나간 인원은 모두 몇 명이야?”

“브랙의 동료들 4명과…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들어간 모험가가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로군.”

테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구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텐트 입구 바닥에 하얀색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리고 한차례 빛을 뿜고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세이프티 존의 초록색 바닥에 눈에 확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발자국이 수십 개 나타났다. 곁에 있던 천랑이 입을 감탄사를 냈다.

“호오. 확실히. 대지의 기억이란 마법이었나? 그 방법이 있었군.”

대지의 기억이란 그 장소에 있었던 일을 보여주는 마법이다. 최상급의 마법으로 일반 마법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마법이다. 나라가 나설 정도로 심각한 사건에 마도사에게 도움을 구해 사용하는 마법이다.

“대지의 기억이 아니야. 그건 미궁 안에서 사용하지 못해. 이건 발자취를 보는 것뿐이야.”

“그래도 발자국이 너무 많군. 이래서야 제대로 살펴보기도 힘들겠어.”

천랑의 말대로 바자국은 이리저리 찍혀 있었다. 그 중에는 겹쳐 있는 것도 상당히 많았다. 보이는 색깔이 달랐다면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테드가 발자국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노란색의 발자국이 환한 빛을 내며 다른 색의 발자국의 위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발자국의 크기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브랙, 네 녀석 말대로 텐트의 입구에서 문을 조금 열고 칼을 집어넣어 죽였을지도 모르겠어.”

테드의 말에 브랙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일까. 도발의 의미인가?

테드는 브랙에게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빠르게 일을 진행해나간다.

“여기에 있는 발자국들은 모두 4시간 전, 새벽 3시부터 찍힌 발자국이야. 당연히 범인의 발자국도 있겠지.”

발자국은 비슷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천양각색이다. 크기도 다를 뿐더러 특히나 발자국에는 신발의 겉창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천랑의 말 덕분에 용의자는 확 줄였으니, 신발의 주인은 사건을 조사한 모험가들로 한정되어 있다. 그들 외의 발자국이 나온다면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발자국은 천천히 걷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텐트의 안으로 들어갔어. 미안하지만, 텐트의 안을 살펴봐도 상관없겠지?”

이 일대에 마법을 걸어났다. 텐트의 안에도 발자국이 나왔을 것이다. 테드의 말에 천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드가 텐트의 입구를 열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텐트 바닥에는 흙먼지가 가득했다. 한 구석에는 브랙 일행의 짐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여 있었다. 노란색 발자국은 텐트 내부에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신발을 신고 들어왔네. 보통은 입구에서 벗고 들어오는데 말이지.”

“그럼 그 노란 발자국은 조사자의 것이로군. 사건을 조사한 모험가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거침없이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기엔 조사하는 모험가들이 많았고,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 먹기 때문이다. 물론 텐트 주인인 브랙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 이 신발 자국이 아닌 발자국은 텐트 주인의 것이겠네.”

테드는 차근차근 발자국을 살폈다. 그리고 약 10분이 흘렸을 때, 테드가 씩 웃었다. 보라색의 발자국이었다. 다른 발자국보다 조금 큰 발자국은 텐트 밖, 경계 근무조가 있던 곳에서 나타났다.

텐트에서 거리가 먼 거리에선 별문제가 없었다. 보폭도 일정했다. 그러나 텐트가 가까워질수록 보폭이 약간이지만 변했다. 거기에 발꿈치 부분이 찍히지 않아 있다. 즉, 발소리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발뒤꿈치를 들었다는 것이다.

“긴장이라도 했나. 왜 여기서 발뒤꿈치를 들어 나 범인이라고 알린 건지.”

테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이해는 가는 게 설마하니 발자국을 나타내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테드가 있을 줄 알았겠는가.

발자국은 텐트의 입구 바로 앞에서 멈춰있다. 양발로 단단히 멈춘 것이다. 테드의 머릿속에 상상이 갔다. 텐트의 입구를 열어 내부를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검을 넣어 머손을 죽이는 범인의 모습이.

혹시나 싶어 텐트 내부의 살폈다. 보라색의 신발 자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 말대로 텐트앞에서 입구를 살짝 열고 죽인 모양이야. 발자국의 크기도 너와 비슷

하고. 소지품 검사 좀 해도 되냐?”

“우, 웃기지마! 지금 내가 범인이라고 하는 거냐?! 친구를 내 손으로 죽였다고?!! 모함이다! 같잖은 모함이다! 애초에 발자국이 나타나는 마법은 들어 본적도 없다! 이건 전부 네놈의 자작극이잖아?!”

“그냥 소지품 검사일 뿐이야. 범인이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아니면, 검에 묻은 피를 닦은 천이라도 주머니에 있는 거냐?”

“빌어쳐먹을!!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람의 몸을 찌르면 검에는 피가 묻는다. 이 피라는게 의외로 진득해서 검을 몇 번 털어내는 것으로 완전히 털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검을 사용하는 검사라면 천을 이용해 피를 깨끗하게 닦아 준다. 검의 관리는 검사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그 피묻은 천은 어떻게 되었을까. 빨아서 다시 사용하거나, 어딘가에 버리거나, 태우면 충분하다. 그러나 브랙은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우선 닦은 천이 그

동료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버렸다간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이 들킬 가능성이 있다. 태우면 연기가 난다. 그리고 그는 마법사가 아니다. 도구가 없으면 손쉽게 불을 지필 수도 없다. 천을 씻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차라리 몬스터를 사냥하고 묻은 피라고 우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그러나 지금 그 말을 해봤자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여기에 있는 전원의 눈은 이미 브랙을 범인으로 보고 있었다.

지크가 브랙의 옆으로 다가왔다.

“브랙. 간단한 소지품 검사다. 협력해줄 수 있겠지?”

차분하게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브랙은 입술을 깨물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새끼 손가락만한 검은색 구슬 같은 것을 꺼내든다.

“그래! 내가 죽였다. 하지만 그래서? 어차피 니들이랑은 상관없잖아?! 모험가가 미궁에서 죽는 건 흔한 일이야! 그냥 묻어가자고! 한명의 모험가가 아쉬운 것은 니들이잖아?!‘

“개소리는 집어 치워라. 우린 살인자가 아니라 모험가다. 네놈은 모험가의 긍지도 없군.”

지크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눈은 진심이다. 여차하면 벨 생각이다.

“모험가의 긍지? 그냥 죽이는 게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일 뿐이잖아?! 돈을 목적으로 몰려든 놈들에게 긍지가 어딨냐, 긍지가!”

테드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브랙은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 과도한 긴장감과 중압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입이 열리는 대로 머리를 거치지 않고 지껄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광역 도발이냐. 진짜 머저리네.”

“네 놈도 마찬가지다! B급이면 B급답게! 괜히 나서지 말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천랑이 인상을 찡그리며 허리춤에 달린 검의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범인이 밝혀진 지금 공략대의 대장인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브랙의 처형. 그것으로 현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하나만 물어보자.”

입을 연 것은 브랙의 동료인 자들 중 한명이다. 브랙을 감싸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분노를 참듯이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머손은 왜 죽였어? …너흰 친구잖아?!”

“친구라면! 돈 정도는 빌려줄 수 있잖아! 모아둔 돈도 많은 주제에 쩨쩨하게 빌려주지도 않는 놈이 어디가 친구냐? 솔직히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의리는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잘못 봤어. 브랙, 넌 진짜 쓰레기구나.”

“뭘 고귀한 척 하는 거냐. 어차피 너도 나랑 같은 쓰레기야.”

그가 입술을 깨물며 창을 쥐었다. 더 이상 예전의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

브랙은 자신을 향해 살의를 내뿜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여기에 있는 모험가들을 적으로 돌리고서 지을 수 있는 미소가 아니었다.

브랙이 자신만만하게 들고 있던 검은 구슬을 입안에 넣었다. 이를 깨물어 구슬을 박살

내 삼킨다.

그리고 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많던 근육이 더욱더 크게 부풀어 오르고 눈동자가 붉게 변한다. 입안에 짐승 같은 송곳니가 눈에 보일 정도로 자라난다.

테드가 눈을 크게 떴다. 피부색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도 나지 않았고. 손톱도 자라

지 않았다. 다만 붉은색의 눈동자는 데비크와 쏙 빼닮아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이 데비크와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데비크 보다 약하다.

‘그 검은색의 구슬은 사탄의 피로 만들었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들어본 적도 없다. 회귀 전에도 구슬 형태로

사탄의 피를 가공했다는 정보는 없었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테드의 개입으로 인해 미래가 바뀌고 사탄교가 발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최악이었다. 될 수 있으면 브랙을 잡아다가 저 구슬을 어디에서 얻었는지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브랙이 순순히 대답해줄 것 같지 않다.

“크하하! 좋은 힘이다! 네놈들 정도는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겠어. 크.”

브랙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온몸에 힘이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당장 눈앞에 것들에게 이 힘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 검은 건 어디에서 얻었지?”

“그 잘난 마법으로 알아보시지?”

테드가 물었지만, 브랙은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브랙이 살의를 내뿜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수백 명의 모험가들의 눈에 갑작스레 변한 브랙을 놀랍다는 듯이 보고 있다. 나쁘지 않은 시선을 느끼며 브랙이 허리춤에 달린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니 놈들 전부를 죽이고 미궁을 내려가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귀환부를 찢어 도망가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그럴 기색이 보이면 바로 모험가들이 움직여 제압할 것이다.

브랙의 지금 태도는 어딘가 이상했다.

“범인이 밝혀졌군. 그를 처형하겠다. 무언가 불만이 있는 자는 있나?”

천랑이 모인 모험가들에게 물었다. 불만을 표하며 나서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천랑이 검을 뽑자 옆에서 검을 겨누고 있던 지크가 다시 검을 갈무리했다.

그 틈을 노리며 브랙이 지크를 향해 검을 치켜드는 순간이었다. 한줄기의 은빛 섬광이 브랙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브랙의 머리가 핏방울과 함께 허공에서 비산하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어느새 브랙의 뒤편에 서있는 천랑이 검을 들고 브랙을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강함이었다.

과연 여기에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 천랑의 검을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몇 명이나 될까.

‘저게 천랑의 실력인가. 빠르네.’

테드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마법을 이용하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순수한 육체능력으로는 피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의 속도다.

천랑이 실력을 보인 것은 이곳에 있는 모험가들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이건 일종의 경고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사고를 일으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다만, 거친 모험가들에게 경고가 제대로 통할지는 의문이다.

“사건을 끝났네. 지금 당장 아침식사를 하고 미궁을 오를 준비를 하도록. 1시간을 주겠네.”

모험가들이 제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테드 또한 잠시 브랙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사탄교에 대해선 미궁을 벗어나면 모험가 길드를 통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될 수 있으면 모험가 길드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다.

브랙의 시체 주위에 남은 모험가는 3명이었다. 한때 브랙의 동료였던 그들은 브랙의 시체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랑이 시체를 처리하려고 했으나, 브랙의 동료였던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처리한다고 말했다. 브랙의 평판은 그닥 좋지 않은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브랙과 마찬가지로 평판이 좋지 않았고.

하지만 의리는 있다고 믿었다. 몇 년이나 함께 다닌 동료다. 수많은 위기를 넘겼고,

즐거운 일도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동료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뿐이었다. 브랙은 그들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이용해 먹기 좋은 놈들?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는 놈들? 생각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답할 수 있는 브랙은 이미 죽었다.

그들은 우울한 기분으로 브랙의 시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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