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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55화 (5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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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크에이스 페스티벌.

어렸을 적 재능을 인정받아 사탄교에 거둬져 암살자로서 교육받은 메로는 목표인 B급 모험가 꼬마를 은밀하게 뒤쫓고 있었다. 타겟은 아니지만, 목표의 옆에는 수인족 사내가 있었다. 암살자로서 목격자를 제거할 의무가 있기에 그 또한 목표에 포함된다.

메로는 조금 짜증이 나있었다. 그들은 멈추는 법 없이 계속해서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길이라도 잃었는지 똑같은 곳을 2~3 번 정도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 즐거운지 대화를 하며 걷고 있다. 은밀하게 행동하는 입장으로서 굉장히 짜증났다.

‘이제 곧 시간이다. 슬슬 움직일까.’

그의 상사, 애시온의 신호가 온다면 미행을 멈추고 사라지면 된다. 허나 신호는 정해진 시간이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았다. 암살을 시작할 때다.

벽의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메로의 손에 단검이 쥐어져 있다. 특별 주문으로 광택

이 조금도 없는 단검이다. 메로가 자주 사용하는 암살용 단검으로 일반단검보다 몇 배나 뛰어난 예기를 지니고 있다.

메로가 단검의 검신을 검지로 스윽 쓰다듬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검지를 통해 매끈한 검신의 감촉이 느껴졌다. 메로가 암살을 하기 전에 하는 의미 없는 버릇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짜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냉정함이 두 눈에 머문다. 작게 심호흡하고 단검을 쥔 손을 아래로 내렸다. 목표를 다시 확인한다.

그의 목표는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신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는 모습에는 연민마저 느껴진다.

메로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 복면이 제대로 착용되었는지 확인한다. 복면은 문제없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다. 당연하지만 기척은 극한까지 줄였고, 조금의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았다. 메로는 개미만큼 조용히 움직일 자신이 있었다.

메로의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급해할 필요 없이 느긋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움직인다.

거리는 순식간에 줄여 들었고, 회색 코트를 입은 소년의 뒤에 도착한 메로가 곧바로 단검을 들어 소년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메로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었다. 테드의 몸이 흐릿하게 움직인 순간 단검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검을 바라보자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으로 단검을 잡고 있는 목표물이 있었다.

테드의 붉은 눈이 복면을 쓴 그를 한번 훑어본다.

“뭐하는 놈이냐?”

그동안 쌓아 놓았던 경험과 본능이 경고를 울부짖었다. 메로는 단검에 손을 떼고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메로가 있던 자리의 바로 아래에 날카로운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멈춰서있었다면 십중팔구 몸이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등 뒤에 식은땀이 배여 나왔다.

‘어떻게 내 기척을 눈치 챘지?’

메로는 전투는 몰라도 암살에 있어서만큼은 사탄교내에서도 자신이 독보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천마’에게서도 암살실력만큼은 인정받은 적이 있다.

“아, 암살자?”

테드의 옆에 있던 알릭이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그의 생활은 전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암살자는 말로만 들어 봤지 직접 보는 이번이 처음이다.

혹시 모를 적의 동료가 있을 가능성에 테드가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빤히 쳐다보고 있는게 보였다. 사령마법으로 암살자를 죽이고 정보를 불게하려는 계획을 버리기로 한다. 알릭과 사람들의 시선이 있다. 사령술을 사용해봤자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았다.

‘B등급 모험가라고? 정보가 잘못 됐다. 저건 결코 B등급이 아니야.’

A등급의 모험가도 암살한 경험이 있는 메로였다. B등급의 실력으로는 결코 자신을 알아차릴 수가 없다.

‘일단 물러나서 사탄교에 잘못 된 정보를 알려야 한다.’

주위에는 복잡한 골목길이 있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은 많았다.

메로가 주위에 있는 가까운 골목길로 도망가려는 순간이었다. 소리도 없이 바닥을 기며 다가온 검은 쇠사슬이 그의 오른쪽 발목을 칭칭 감았다. 당황한 메로가 왼발로 사슬을 밟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 마나가 움직이지 않는다!?’

테드가 뚜벅뚜벅 걸어서 메로에게 다가갔다. 오른발을 움직이려 해도 쇠사슬에 묶여서 움직일 수 없다. 입술을 깨물고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낸다. 광택이 없던 이전의 단검과 달리 햇빛을 받아 검신이 반짝이고 있다.

‘눈이 검은색이다. 분명 붉은색 이었는데.’

암살자의 앞에 선 테드가 스윽 메로를 훑어본다. 복면에서부터 신발까지 칙칙한 검은색으로 완전하게 무장하고 있다.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표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테드씨! 너무 가까인 다가가지 않는 편이…….”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놀라셨지요. 아무래도 절 노린 것 같은데… 말려들게 해

서 죄송해요.”

테드는 잔뜩 독이 오른 고양이처럼 경계하고 있는 메로의 복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메로가 흠칫 놀라 단검을 휘두른다. 깡! 테드의 몸을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방어막에 막혀 단검이 튕겨나갔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단검을 꽉 붙잡은 메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복면을 향해 닿기 일보직전 테드의 손이 멈췄다.

“…….”

키 차이가 커서 손이 복면까지 닿지 않았다. 인상을 와락 찌푸린 테드가 메로의 무릎 뒤, 오금을 향해 로우킥을 박아 넣는다. 메로의 몸이 휘청이고 양 무릎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테드가 암살자의 복면을 잡아 벗겼다. 메로의 얼굴이 드러났다. 깔끔한 인상의 갈색머리 엘프 청년이었다. 짧게 스포츠머리를 한 그는 분한 듯이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복면이 벗겨지는 상황은 암살자로서 최악의 굴욕이었다. 동료 암살자에게 비웃음당해도 뭐라 할 반론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죽이는 것이 좋을 거다.”

메로는 붙잡히면 곧바로 자살하라고 교육받았다. 붙잡힌 암살자에겐 고문밖에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메로가 스스로의 심장에 단검을 꽂지 않는 것은 기다리고 기회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나가 움직이지 않고, 다리가 묶였지만 양팔은 무사하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탈출 할 수 있다.

“……사탄교?”

네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테드가 물었다. 내심 뜨끔한 네로였지만, 훈련의 성과로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사탄교? 뭐지 그게.”

“암살자를 보낼만한 적은 사탄교 밖에 없어.”

적이 사탄교뿐이다. 모험가 길드와의 관계를 양호하고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모험가 중에선 테드를 시기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서 굳이 암살자를 보낼 만큼 깊은 적의를 가진 자는 없다.

테드가 주변을 살폈다. 그 잠깐 사이에 사람 몇 명이 늘어나 있었다. 여기서 암살자를 고문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귀찮기도 했고.

주먹쥔 오른손을 들었다. 긴장으로 몸을 굳히는 암살자를 무시하고 그대로 정수리에 쥐어박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암살자가 힘없이 앞으로 쓰러진다. 테드가 암살자의 몸을 받아 들었다.

“알릭씨. 죄송하지만, 잠시 모험가 길드에 들렸다가도 될까요?”

“아, 예. 괜찮습니다. 마침 길도 잃었으니까요. 아예 시작지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겠죠.”

테드가 마법을 사용해 신체능력을 강화시켜 가뿐하게 네로의 몸을 들어 올렸다.

테드가 암살자를 데리고 모험가 길드에 들어가자 입구의 바로 앞에 락 스턱스가 있었다. 정장을 입은 그는 테드를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테드 님이시군요. 저번에 보고 거의 5개월만인가요. 들고 있는 검은 것은 뭡니

까?”

락은 테드가 들고 있다기보다는 목덜미를 잡아서 질질 끌고 있는 암살자를 가리켰다.

“오랜만이네요. 그리고 이건 절 노린 암살자에요. 아마도 사탄교의.”

“또 사탄교입니까….”

웃는 얼굴을 싹 지우며 락이 말했다. 옆에 있던 알릭이 흠칫 놀랄 정도의 표정변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글서글하던 인상이 180도 변했다. 나쁘게 말하자면 범죄 조직 두목같이 냉정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또, 라니요?”

“아, 방금 전 사이나 씨가 사탄교의 악마라면서 하나의 시체를 가지고 왔습니다. 길드에서 시체를 조사중입니다만… 길드의 마법사는 악마가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테드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사이나는 집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탄교는 자신의 집까지 찾아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다시 습격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대비 정도는 해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사탄교 쪽에선 이미 테드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저희들의 불찰입니다.”

“……다른 파티원들도 습격 받았나요?”

“그런 보고는 없었습니다만, 확인해봐야겠지요.”

암살자 한 명을 자신에게, 악마를 사이나에게 보낸 것을 보면 사탄교는 제대로 전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기야, 고대 유적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아는 것은 기껏해야 시온과 사이나 뿐이다. 나머지 파티원들은 기절하고 있었으니 제대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른다. 시온과 사이나가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은 없다.

“아, 이놈은 아직 살아 있어요. 훈련받은 암살자인 모양이더군요. 모험가 길드에 맡기려고 하는데… 괜찮지요?”

테드가 그를 향해 기절해있는 암살자를 내밀었다. 락이 그를 받아 들며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테드님. 반드시 정보를 알아내겠습니다.”

락이 한손으로 암살자를 받아 들였다. 암살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우리 모험가 길드도 어지간히 얕보인 모양이군요. 루크에이스… 그것도 페스티벌 기간에 당당히 습격할 줄이야. 이거 참…… 짜증나는군.”

뒷말은 테드의 귀에도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테드가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락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락씨는 왜 지금 루크에이스에?”

락은 모험가 길드의 간부 중 한 사람이다. 루크에이스의 모험가 길드 지부장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로 중립지대에 있는 모험가 길드에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루크에이스는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간부가 없어도 큰 문제없이 잘돌아 가는데 페스티벌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말이지요. 길드의 평판과 감찰을 위해 파견되었지요. 진짜 이유는 루크에이스 페스티벌에 관광 온 각국의 고위직들의 상대지만요. 하하하.”

락의 웃음에는 피로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르는 테드는 그저 어색하게 따라 웃을 뿐이었다.

“어, 음. 힘내세요.”

“테드 님도 뒷일은 제게 맡기시고 페스티벌을 즐겨주십시오. 참, 저녁에 있는 불꽃놀이는 놓치지 마시고요. 저번에 한 번 본적 있는데 장관이더군요. 앞으로 1시간 정도 후에 시작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건 기대하고 있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알릭과 함께 모험가 길드를 나선다.

루크에이스는 페스티벌 마지막 날의 저녁에 불꽃놀이를 한다. 모험가 길드에서 주최하는 것으로 대형 마법 폭죽을 검은 하늘에 쏟아내는 것이다. 참고로 마법 폭죽이기 때문에 눈이 내려도 문제없이 빵빵 터진다.

모험가 길드의 앞으로 나온 테드는 거리에 사람들이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북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테드와 알릭이 길을 잃은 이유가 불꽃놀이 때문이었다. 폭죽을 구경하기 좋은 명당이 있다는 소릴 듣고 찾아가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명당자리는 포기해야겠는데요.”

“폭죽은 거리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요.”

테드의 말에 알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여러 골목길을 지나야만 도달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또 다시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테드와 알릭은 불꽃놀이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대열의 뒤쪽에 따라붙었다. 그 뒤를 걷던 중 알릭이 조금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테드 씨는 그 상황이 익숙하신가 보죠?”

“……예?”

뜬금없는 소리에 테드가 되물었다.

“그… 암살 받는 상황이요. 테드 씨는 냉정하게 대처하더군요. 전 머릿속이 새하얗

게 변했는데…….”

그 말에 테드가 얼굴을 굳혔다. 익숙하다. 정곡을 찌르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테드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발을 움직여 대열에 보폭을 맞추며 생각한다. 말문이 열린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 말대로 제겐 익숙한 상황이었죠. 솔직히 이번 생에서도 암살받을 거라곤 생

각지도 못했는데….”

회귀 전에는 수십 번도 받아본 것이 암살이었다. 대부분이 적이 보낸 암살이었으나,

가끔씩 가족의 복수를 위해 찾아오는 암살자도 있었다.

테드는 쓰게 웃었다. 정보 수집의 가치가 없는 암살자는 대부분은 그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한번 시작된 암살 시도는 상대를 찾아내 완벽하게 전멸시키기 전까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사탄교는 이후에도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른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데….”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암살 받으며 사는 삶을 과연 사람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누구나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테드씨.”

알릭이 테드를 불렸다. 방금과 같이 딱딱한 목소리가 아닌 평소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테드가 그를 바라보자, 알릭이 눈을 맞추며 상냥하게 웃었다.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래요?”

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전문 돈까스집은 저희집이 외진곳이라 거리가 멀어 배달이 되지 않더군요. 근처에 수제돈까스집이 하나 있는데 거긴 배달이 안되서 가끔씩 가서 먹습니다.

중간계에 있는 악마는 본체입니다. 죽으면 끝입니다.

회귀 전 테드는 대마도사 중 전투에 한해 세 손가락 안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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