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53화 (5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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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루크에이스 페스티벌.

[이번 결승전의 주제는… 고기 입니다! 모쪼록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해주세요! ]

루크에이스의 요리 대회는 총 3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축제 다섯째 날, 어제 오전에 예선을 치러 2개의 본선 진출자 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후에 본선에서 가장 우수한 1명을 뽑아내 오늘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네메스 대륙에서 요리대회는 그렇게 인기 있는 종류가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치러진 것이다. 그리고 원래 결승전 또한 실내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몰린 관람객들에 의해서 모험가 길드가 다급하게 장소를 광장으로 바꾼 것이다. 광장인 이유는 축제 기간이다 보니 넓은 실내가 있는 경기장은 모두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다.

마법사를 대거 투입해 광장에 한해 실내와 비슷한 온도로 바꾸었으며, 마법 스크린을 설치했다. 모험가 길드 입장에선 저예산으로 요리대회를 저예산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판에 사람들이 모여 생각외의 예산이 들어갔다.

이 요리대회는 따로 길드 측에서 재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사를 하기 위한 주제만을 던져줄 뿐이다. 재료는 요리사가 알아서 구해야 한다. 길드는 재료를 구하는 것도 요리사의 역량이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단순히 예산이 없을 뿐이다.

[심사위원은 총 3명입니다! 모두 모험가 길드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험가 길드의 셰프인 자린 씨와 수셰프인 제난 씨, 그리고 A등급 모험가이자 길드 본점의 직원이신 락 씨 입니다!]

자린과 제난은 쌍둥이 엘프 요리사였고, 락은 테드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모험가 길드 본점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사람으로 더 이상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버젓이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 웃고 있다.

“루크에이스로 좌천 됐나.”

테드가 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왁스를 덕지덕지 발라 전무 뒤로 넘겨 이마를 노출시킨 그는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테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모험가 길드의 간부자리에 있는 만큼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결승전의 제한시간은 1시간이지만, 양쪽 모두 제한 시간을 남기고 조리를 끝내고 심사위원에게 요리를 내밀었다.

사이나의 상대, 베리녹 지리리온은 스테이크 한 조각을 심사위원 3명에게 나누어 주었다. 두툼한 고기 안에 핏물이 고여 있는 레어 스테이크다.

심사위원은 진갈색의 소스가 묻어 있는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잘라 포크로 찍어 입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3명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려 나왔다. 고기를 씹자마자 입안을 가득 채우는 육즙은 머릿속이 텅빌 정도로 압도적이고 강렬한 맛이었다.

“이건… 드래곤 스테이크로군. 최고급이란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드래곤 고기를 사용할 줄이야….”

자린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밖에 먹어 본적이 없을 정도로 희귀한 드래곤 고기다. 돈이 있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재료다. 그러나 드래곤 고기 한 근의 가격은 300골드를 가볍게 넘어갈 정도로 비싸다. 부위에 따라선 한 근의 가격이 1000골드가 넘어가는 것도 있다.

요리대회의 우승상금은 120골드 정도다. 이런 작은 요리대회에 나올만한 식재가 아니다.

사이나가 내민 것은 드래곤 스테이크와 비교하자면 터무니없이 싸구려로 밖에 보이지 않는 돈까스였다. 아니, 겉으로 보기엔 돈까스… 포크 커틀릿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조리과정을 지켜보았던 심사위원들은 들어간 재료가 돼지고기 아님을 알고 있다. 고기만 보고 그 정체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는 없기에 심사위원들이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피어나는 커틀릿을 썰었다. 진갈색의 데미글라스 소스를 찍어 맛본다.

“……이 고기는 돼지 안심… 아니, 바실리스크 인가!”

자린의 말대로 사이나가 사용한 고기를 바실리스크다. 이전 고대유적에서 마주친 바실리스크의 시체에 보존 마법을 걸어 마법 주머니에 넣었었다.

흔히들 뱀은 닭고기의 맛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실리스크 만은 예외다. 바실리스크의 고기는 돼지의 안심과 굉장히 닮아 있다. 바실리스크의 부드러운 육질은 스테이크를 해도 충분히 맛을 살릴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커틀릿 보다는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스테이크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겉의 튀김은 바삭바삭하고 내부의 육질은 부드럽다. 소스는 커틀릿과 깔끔하게 어울려 고기의 맛을 더해준다.

“이걸 왜 커틀릿으로 한 거지?”

자린이 사이나를 향해 물었다. 사이나의 옆에 있던 시온이 입을 열어 의기양양하게 설명하려는 찰나, 사이나가 먼저 앞으로 나서 입을 열었다.

“제 주인님은 스테이크보단 커틀릿을 더 선호하시는 편입니다.”

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에이스 모험가 길드의 요리사인 그는 사이나를 알고 있다. 루크에이스에 살고 있으면 알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의 꼬마 주인도 알고 있다. 확실히 어린아이들은 스테이크 보단 커틀릿 종류를 좋아한다.

사이나의 말을 들은 테드는 멋쩍게 웃었다.

커틀릿, 그러니까 돈까스는 테드가 이 네메스 대륙에 오기 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다. 돈이 그렇게 많지 않다보니 스테이크 보다는 조금 더 싸고 맛있는 돈까스를 선호했다.

심사위원은 각각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사위원간의 상의는 없었다. 3명 중 2명에게 선택받으면 대회에 우승하게 된다.

[그럼 심사 결과의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결과는…… 사이나 씨의 바실리스크 커틀릿입니다! 모두 축하해주세요!!]

자린과 락은 사이나의 요리를 선택했고, 자린의 쌍둥이 동생인 제난은 베리녹의 드래곤 스테이크를 선택했다.

“웃기지마!!!!”

베리녹이 심사위원들의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서 그들을 노려봤다.

“드래곤 스테이크다! 먹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는 드래곤 스테이크를! 저딴 커틀릿 보다 못하다고?!”

드래곤 고기다. 그것도 맛이 가장 좋다는 그린 드래곤의 뒷다리 부위의 최고급 고기

다. 이 고기를 꺼내든 그 순간부터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린은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웠다.

“확실히 드래곤 스테이크의 맛은 엄청났다. 그러나 소스가 너무나도 평범했다. 드래곤 고기를 사용한 것을 보면 소스도 분명 최고급의 재료로 만든 것이었겠지만, 드래곤 고기의 맛이 너무나도 뛰어나 오히려 스테이크 소스가 고기의 격을 떨어뜨렸다.”

소스도 충분히 맛있었다. 브라운 소스를 베이스로 최고급의 와인을 사용해 만든 와인 소스는 드래곤의 고기가 아니었다면 한층 더 그 맛을 끌어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드래곤 고기는 지나치게 맛있었다. 차라리 소스를 뿌리지 않고 레어로 익힌 것만 내밀었다면 더 충분했을 것이다.

“거기에 드래곤 고기에 밑간을 했더군. 그건 명백한 너의 실수다. 진짜 드래곤 고기를 즐겨먹는 자들은 레어로 굽지도 않는다. 생으로 그냥 먹어버리지. 생고기의 육질은 질기지만 씹는 맛이 있고, 드래곤의 피는 극상의 엘프주 만큼 깔끔하고 맛있다 하지.”

되도록 구워먹는 것이 좋다. 드래곤이라해도 생고기에는 기생충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드래곤 고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식재다. 어지간한 실력의 요리사가 손을 대면 오히려 맛을 줄여버리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다.”

자린의 시선이 사이나에게 향한다.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무표정으로 있다. 오히려 그녀의 옆에 있는 차분한 인상의 금발 여인이 더 기뻐하고 있는 느낌이다.

“반면에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들여 요리했다. 드래곤 고기만을 믿고 대충 요리한 너완 달리 온도에서부터 조미료의 양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더군다나 바실리스크의 고기에 남아 있는 독을 전부다 제거 했지.”

뱀의 맹독은 보통 독주머니에서 생성된다. 보통의 뱀에게는 고기 자체에는 독이 없다.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고기엔 미약한 독이 남아 있다. 송곳니를 통해 나오는 맹독은 아니다. 고기에 맹독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자신의 독으로 자멸했을 것이다.

바실리스크 고기의 독은 고작해야 설사를 일으키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굽는 가정에서 전부 산화되어 사라진다.

“바실리스크의 고기는 미약한 독때문에 톡 쏘는 맛이 있다. 고기를 가열하면 독은 사라지지만 그 맛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먹은 이 커틀릿에는 톡쏘는 맛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입안이 녹을 정도로 부드러웠지.”

사이나는 고기를 두드리는 것으로 바실리스크의 독을 뺐다. 자린은 보조요리사와 함께 거의 15분 이상을 두드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

“거기에 밑간과 소스에 사과즙을 넣어 맛과 풍미를 더했다.”

사과는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 바실리스크의 고기가 돼지고기와 제법 비슷하니 사과

와도 잘 어울릴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네가 마음 놓고 요리할 때에도 그녀는 튀김가루 하나하나에도 최선

을 다한 점이다. 넌 보나마나 취미로 요리를 하고 있는 거겠지.”

자린이 말을 하고나서 정정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취미도 아니군. 이런 대회에 드래곤 고기를 내 보이는 것을 봐선… 그냥 귀

족의 과시군. 자신의 가문이 돈이 많다는 것을 이런 대회까지 나와서 자랑하고 싶었

나. 어처구니가 없군.”

베리녹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고, 주먹쥔 양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옆에 있던 그의 동생 제난이 자신의 형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지만, 맛만 따지자면 드래곤 스테이크의 승리였다. 그의 형은 요리는 맛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형의 말대로 소스와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맛만을 따졌을 땐 드래곤 스테이크 쪽이 더 좋더군요. 맛을 따지는 전 드래곤 스테이크를 선택했습니다.”

제난의 말에도 불구하고 베리녹의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오히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일 듯이 자린을 노려보고 있다. 어쩌면 이 대회가 끝나고 가문을 이용해 압박을 해올지 모른다.

남은 심사위원은 락뿐이었다. 그는 싱글벙글 웃는 기색으로 배려 따윈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전 커틀릿이 더 맛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핏물 뚝뚝 흐르는 레어도 좋아하지 않고요.”

락의 웃음기 서린 말투는 어딘가 조롱이 담겨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베리녹이 오른손을 크게 들어 올렸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다.

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베리녹의 몸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만들었다. 락의 살기는 제대로 된 전투는 해보지도 못한 곱게 자란 귀족인 베리녹이 간단히 뿌리칠 수 있는 살기가 아니었다. 얼굴은 하얗게 창백해지고 입술이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그의 이마에서 정수리에 물이라도 쏟아 부은 것처럼 땀이 흘러 얼굴을 적셨다.

“결과는 이미 내려졌습니다.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해도 당신이 불만을 낼 수 있는 권리는 없어요. 심사비리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증거를 가지고 찾아오시면 됩니다.”

락이 웃으며 말을 끝마쳤다.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베리녹은 떨리는 몸을 애써 주체하며 고개를 숙였다. 새삼스레 이 요리대회의 주최측이 모험가 길드임을 깨닫는다. 그의 권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베리녹이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의 짐을 챙겨 광장에서 사라졌다.

루크에이스 요리대회의 우승자는 사이나로 결정이 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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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에이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집안에서 우승 상품으로 받은 레시피를 읽고 있던 사이나는 정원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고개를 들었다. 집의 대문과 담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주인인 테드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문이 열릴 때는 집안에 까지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것으로 보아선 레드 헥사그램의 파티원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사이나가 레시피가 적힌 책을 책상에 놓고서 일어나 레드 와인 컬러의 프렌치 코트를 메이드 복 위에 걸치고 마법 주머니에서 순백의 검을 꺼내 방을 나선다. 그녀의 고운 아미는 침입자에 대한 불쾌감으로 찌푸려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생각한 것보다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작가는 싸구려 입맛이라 스테이크보다 돈까스를 더 좋아합니다. 돈까스를 삼겹살보다 더 좋아합니다. 치킨……보다 더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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